727화. 비약적인 발전
석목은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는 탐월식을 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탐월식을 시전하였다.
이어 둥근 허영이 석목의 등 뒤에 나타났다.
쾅!
황월의 기운이 모여들며 파도처럼 석목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기운을 흡수하는 속도는 이전보다 몇 배는 더 빨라졌다.
석목은 예측이 맞아떨어져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황월의 기운이 잔뜩 몸속으로 스며들자 진기는 더욱 빠른 속도로 짙어졌으며 구전현공의 힘도 점점 빠르게 안정되었다.
석목은 다시 일곱 번째 단계의 힘을 시전하여 최선을 다해 균형을 맞추려 했다.
흑, 백, 녹, 황, 금, 홍, 여섯 갈래 빛이 동시에 몸속 곳곳에서 번지더니 오색찬란한 조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빛 속에 숨겨진 것은 극에 달한 모험이라는 걸 오직 석목만이 알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일곱 번째 단계의 힘이 혼돈되어 몸이 심하게 다칠 수도 있었다.
석목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조심스럽게 일곱 번째 단계의 힘을 시전하였다. 그러자 여섯 갈래 빛이 서로 가까워지며 섞이려는 기미가 보였다.
윙!
가벼운 소리와 함께 여섯 갈래 빛이 부딪치며 다시 제자리로 튕겨져 날아갔다.
석목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으며 등 뒤에 뜬 달의 허영도 반짝이면서 황월의 기운을 모았다.
석목의 몸에서 은빛이 뿜어져 나와 여섯 갈래 빛을 안으로 감쌌다.
빛이 점점 느려지자 다시 평온해졌고, 석목이 이끄는 가운데 다시 천천히 모여들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지나 순식간에 이십 일이나 흘렀다.
황월 고정 속에서 석목은 여전히 가부좌를 튼 채로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몸은 부드러운 은빛을 감고 있었으며 표정은 매우 평온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기운이 석목의 몸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석목이 이룬 수련 경지는 단 한 달 만에 진정한 성계 정상에 이르렀다.
이십 일이 넘은 시간 동안 석목의 몸속에 깃든 진기는 전부 단단해져서 자연스럽게 성계 정상에 도달했다.
잠시 후에 석목이 천천히 눈을 떴는데 날카로운 빛이 반짝였다.
석목이 팔을 들어 올리자 흑, 백, 녹, 황, 금, 홍, 여섯 갈래 빛이 석목의 몸속에 나타났으며 충돌하려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은 채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었다.
“드디어 균형을 찾았어!”
석목은 흥분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석목은 수련 경지가 성계 정상에 도달한 것보다 사행(四行)의 힘이 몸속에서 균형을 이룬 게 훨씬 기뻤다. 이는 구전현공 일곱 번째 단계가 진정한 원만을 이뤘다는 뜻이며 이제 여덟 번째 단계를 수련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열해천령도 가지고 있는데다가 몸속에 흐르는 혈맥이 진정한 미천거원이라는 천수 혈맥에 도달했으니 이제 여덟 번째 단계를 수련할 준비는 모두 마친 셈이었다.
공법에 적힌 바에 따르면 여덟 번째 단계를 수련한 후엔 몸으로 익힌 소 구전현공을 진정한 구전현공으로 바꿔 오행의 힘이 원만의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었다.
그 뒤부터는 아홉 번째 단계로 진입하면 되었다.
구전현공 아홉 번째 단계는 세 번째 단계와 비슷한데 앞 전 여덟 번째 단계까지 익힌 힘을 하나로 뭉치는 것이었다.
여덟 번째 단계까지 익힌 힘을 하나로 섞으면 구전현공은 대성에 이르러 백원왕과 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벅찬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는데 천정과 싸우려면 최소한 예전 백원왕의 실력 경지에는 도달해야만 했다.
석목은 다시 깊은 숨을 내뱉으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침착하게 채아와 안화를 바라보았다.
채아와 안화, 분신은 모두 비슷하게 은빛 구체에 묻혀있었으며 다들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 동료들을 바라보던 석목의 눈에서 놀라운 기색이 어렸는데 셋이 풍기는 기운이 엄청나게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석목이 예상한 바가 적중했다면 채아는 아마 성계 후기에 도달했을 터였다.
이 채색 깃털 앵무새는 애초에 내력이 비범한데다가 마옥이 종족으로 데려가 성수의 의발을 든 후부터는 수련 경지가 대폭 강해졌다. 그리고 그동안 석목을 따라다니며 은근히 많은 이득을 보았기에 채아의 실력은 이미 성계 중기에 이르렀으며 황월 고정에서 한 차례 수련을 거치니 곧장 성계 후기까지 치솟았다. 역시 평범한 앵무새는 아니었다.
여러 가지 조건을 되짚어본 석목은 채아가 발전한 게 놀랍긴 했으나 의외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진정 의외라고 느낀 건 석목의 분신이었는데 분신의 수련 경지는 이미 성계 정상에 도달하여 석목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지만 분신이 황월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속도를 보고는 곧바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분신의 실력이 강해지는 건 석목에게도 좋은 일이었으며 분신의 몸속에 깃든 파손된 영역의 힘은 실력이 늘어날수록 강력해졌다.
분신이 갖춘 실력에 붉은 단검까지 더해지니 진지하게 석목과 한 판 겨뤄보더라도, 석목이 번천곤을 사용하지 않고는 아마 이기기 어려울 터였다.
석목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서 시선을 안화에게로 던졌다.
안화는 은빛 구체에 묻혀있었다. 하지만 그가 두른 구체의 규모와 밝기는 채아와 분신보다 눈에 띄게 컸다.
방대한 기운이 안화의 몸에서 흘러나왔는데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졌으며 그 속에는 은은한 패기도 스며있었다.
‘안화는 나보다 먼저 신경에 도달하겠군.’
석목이 속으로 생각했다.
석목은 다시 두 눈을 감고는 수련 상태에 진입했다.
삼십 일이 되려면 아직 며칠 더 남았기에 황월의 기운을 낭비할 수 없었다.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 눈 깜짝할 사이 사흘이 흘렀다.
석목이 깊은 수련에 빠져있을 때, 강력한 위압감이 몰려오며 공기를 한 겹 벗겨버리는 듯한 기운 파동이 밀려와 하마터면 날아갈 뻔했다.
석목은 다급하게 눈을 떴다가 이내 안색을 바꾸었다.
이 강력한 위압감은 엄연히 안화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으며 그는 붉은 빛덩이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 빛은 극도로 눈이 부셔 안화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없었다. 또한 굵직한 불길이 빛에서 뿜어져 나와 사방팔방으로 날아갔다.
황월 고정 속은 붉은 색으로 물들었으며 빛이 너무 뜨거워 고정 속을 용광로처럼 달구었다.
채아와 분신이 기운 파동에 밀려 날아가 버렸다.
“뭐야, 뭐하는 짓이야……”
채아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채아는 곧바로 그 파동이 흘러나온 곳을 확인하고는 입을 다문 채 놀라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리고 날개를 펄럭이며 석목의 어깨로 날아왔다.
분신도 허공에서 한 바퀴 돌고는 석목에게로 날아왔다.
“석두, 안화 이 녀석 왜 그래? 신경에 진입한 건가……”
채아가 놀라며 물었다.
석목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은 예전에 이런 상황을 목격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연나가 신경에 진입할 때였다.
물론 그때 펼쳐진 광경은 안화보다 훨씬 화려했다.
채아는 눈에 부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석목은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안화는 황월 고정에서 수련을 거친 후에 수련 경지가 대폭 강해진 게 사실이었지만 신경에 도달하려면 아직 시간이 꽤 걸리리라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신경에 도달했다니.
석목은 눈에서 금빛을 뿜으며 붉은빛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았다.
영목신통으로 속을 들여다보자 안화가 처한 상황이 뚜렷이 나타났다.
붉은 화염 안쪽 깊은 곳, 안화의 머리 위에 네모난 옥새가 하나 떠다녔는데 바로 호왕새인이었다.
호왕새인에서 기이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붉은 부문들을 쏟아내어 호랑이 허영으로 뭉치며 다시 안화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렇군……”
석목은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됐다.
호왕새인은 염호 일족 족장의 신물이라 역시 비범했는데 신물은 신경으로 진입하는 것을 돕는 힘을 머금고 있었다.
안화가 내뿜는 붉은빛은 점점 밝아졌으며 곧바로 타오르는 화염으로 변하더니 뜨거운 기운을 뿜어내어 허공마저 일그러뜨렸다.
석목은 뒤로 물러나 몸을 내벽에 바싹 붙였다.
석목이 손을 들어 올리자 붉은 불길이 그의 손에서 날아나갔는데 그 불은 구전현공 불의 힘이었다.
불빛은 붉은 광막으로 펼쳐져선 석목의 앞을 가로막았다.
뜨거운 기운이 팔 할은 줄어든 것 같았다.
석목은 고정 내벽에 적힌 진법의 부문들을 바라보며 눈에서 빛을 반짝였다.
제아무리 온도가 뜨거워도 부문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대체 어떤 재료로 새겼을까?
붉은 화염 속에서 안화는 점점 방대한 기운을 풍겼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렀다.
쾅!
묵직한 소리와 함께 붉은빛은 마치 고래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다시 안화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안화가 천천히 눈을 뜨며 일어서자 방대한 기운을 풍기는 걸보니 엄연히 신경을 돌파했다.
안화는 기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 형!”
석목은 눈빛을 반짝였으며 안화는 두 눈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축하해, 고생스럽게 수련을 해서 드디어 단번에 신경을 돌파했구나. 하늘이 염호 일족을 돕는 것 같군.”
석목이 안화의 앞으로 날아갔다.
“저도 생각지 못했어요. 이 황월의 기운이 이렇게 대단한 힘을 지녔다니. 제 몸속에 흐르는 혈맥의 힘을 자극해 호왕새인 속에 깃든 역대 족장님들이 남긴 신경의 깨달음을 얻어서 단번에 경지를 돌파했어요.”
안화가 웃으며 말했다.
“옥새가 이런 힘을 지녔다니. 안화, 이 옥새를 나한테 이틀만 빌려주면 안 돼?”
채아가 열망하는 눈빛으로 안화가 손에 쥔 옥새를 바라보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저건 염호 일족 족장의 신물이야. 네가 왜 탐내.”
석목이 채아에게 꿀밤을 날리며 말했다.
“이 호왕새인을 쓰려면 우리 종족 혈맥의 힘이 있어야 해. 채아는 안될 거야.”
안화가 말했다.
“그냥 해본 말이야.”
채아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삼십 일이 되려면 아직 하루 이틀 정도 남았으니 빨리 다시 수련하자.”
석목은 그리 말하며 가부좌를 틀었다.
안화도 고개를 끄덕였는데 비록 신경을 돌파했지만 아직 경계가 안정되지 않아 힘을 공고히 다져야만 했다.
* * *
이틀 뒤, 황월 고정 바닥에 새겨진 부문이 밝아지며 현란한 은빛이 번져 석목 일행을 감쌌다.
석목은 눈앞에서 하얀빛이 번지는 걸 느꼈는데 다시 눈을 비비고 바라보니 이미 밖으로 전송되었다.
저녁이라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갰으며 하늘에 뜬 별들이 찬란하게 반짝였지만 달은 없었다.
노란 노을빛이 한참 일렁이다가 점점 줄어들어 이전보다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그리고 실재하듯이 단단해졌다.
“봉인금제가 가동되었으니 십 년 뒤에나 다시 들어올 수 있을 거예요.”
안화가 깊은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아쉽네.”
석목의 어깨에 앉아있던 채아도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석목은 별빛이 가득한 하늘을 보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 미소를 지었다.
석목은 황월 고정에서 얻은 수확이 꽤 만족스러웠으며 실력도 거의 한 단계나 올라간 것 같았다.
안화도 신경을 돌파했으니 역시 만족스러웠다.
둘은 한참 뒤에야 차분한 마음을 되찾았다.
“신경을 돌파했으니 앞으로 염호 일족을 관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너무 방심해서는 안 돼. 천정은 언제든지 다시 음모를 꾸밀 수 있는 놈들이야.”
석목이 안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석 형, 걱정 마세요. 꼭 조심할 테니.”
안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은 한참 침묵하더니 화여의 법보를 꺼내 안화에게 건네며 말했다.
“너는 아직 몸을 보호할 좋은 법보가 없잖아. 이 법보는 네게 주는 선물이야.”
“아녜요. 우리 염호 일족은 석형에게 너무 많은 신세를 졌어요. 그런데 어찌 이 귀한 물건까지 받겠습니까?”
안화가 연신 사양했다.
“내가 가지고 있어도 크게 쓸모는 없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천정과 치를 싸움이니, 네 실력이 늘어나는 것이야 말로 진정 나에게 도움을 주는 거야. 그리고 이 보물은 그냥 주는 게 아냐. 나중에 이 황월 고정이 또 필요할 수도 있으니 이 보물은 미리 주는 답례라고 생각하면 돼.”
석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황월 고정은 워낙 신묘해서 앞으로 구전현공 아홉 번째 단계를 수련할 때 아마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었다.
“석 형, 별 말씀을요. 우리 종족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는데 고작 황월 고정을 몇 번 사용하는 것으로 다 갚을 수 있나요?”
안화가 한참 망설이다가 화여의 법보를 받으며 말했다.
“됐다. 나도 이제 가봐야겠군.”
석목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