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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728화 (728/916)

728화. 다시 비경에 들어가다

“석 형, 며칠 더 머물다 가시지요? 제가 제대로 대접도 못했습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안화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냐. 우리 종족이 심히 걱정이라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아.”

석목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염호 일족에 갑작스러운 재난이 닥쳤으니 미천거원 일족이 더욱 걱정되었다. 게다가 황월 고정에서 한 달 동안이나 머물렀으니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듣자 안화는 몹시 미안했다.

안화가 석목을 염호 일족으로 데려왔기에 꽤 오랜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다. 만약 미천거원 일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라도 했다면 안화는 아마 매우 괴로울 터였다.

“석목 형, 그렇다면 어서 가보세요. 그리고 걱정 마십시요. 앞으로 우리 종족은 서로를 보살피며 함께 천정에 대항할 겁니다.”

안화가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용우비차를 불러서 올라탔다.

“또 보자.”

석목이 안화와 인사를 나누고는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비차가 빛이 반짝이며 하늘로 날아올라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 * *

한 달 뒤.

영남성에 울창하게 펼쳐진 숲의 상공에 찬란한 빛이 스쳐 지나가며 빠르게 앞쪽으로 날아갔다.

빛 속에선 검은 옷을 입은 청년이 꼬리에 두 날개가 달린 비차를 운전했다.

이 사람은 몸집이 웅장했으며 이목구비가 뚜렷한데다가 얼굴에 단단한 힘이 가득했다.

그의 어깨는 깃털이 영롱하고 뚱뚱한 앵무새 한 마리가 두 눈을 비스듬히 감은 채 졸고 있었다.

“석두, 아래에 사람이 있어!”

한참 날아가고 있는데 채아가 입을 열었다.

“봤어, 미천거원 일족인 것 같아. 괜찮아.”

채아가 하는 말을 들은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석두, 한 명이 아닌 것 같아.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채아가 말했다.

“우선 가서 보자.”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 용우비차의 빛을 숨기고는 숲속으로 조용히 내려왔다.

석목은 비차를 거두어들인 후에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조용하니 아무도 없었다.

“석두, 우리를 발견하고 숨은 건 아닐까?”

채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이 침묵을 지키며 채아의 영목신통으로 바라보려고 할 때, 귓가에서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려서 왼쪽을 바라보았다.

시선의 끝엔 울창한 숲이 있었으며 소리는 숲속에서 흘러나왔다.

이때, 숲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커다란 갈색 원숭이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넷째 장로님, 돌아오셨군요.”

갈색 원숭이는 먼 곳에서부터 큰소리로 석목을 불렀다.

“넷째 장로님이 돌아왔다.”

여기저기서 소리가 들려오며 허공에 파동이 일더니 원숭이 몇 마리가 그곳에서 튀어나왔다.

석목은 원숭이들을 한번 훑어보고는 다시 시선을 갈색 원숭이에게로 돌렸다.

갈색 원숭이는 석목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대장로님에게 소식을 통보했던 원숭이였다.

“백강,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있어?”

석목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넷째 장로님, 반년 전에 종족에 일이 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대장로님이 순찰 범위를 넓혀 천정의 첩자들을 막아야 한다고 명을 내렸죠.”

백강이 손을 굽히며 말했다.

“그래, 반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지?”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후우. 그 일은 말하자면 길어요. 우선 대장로님께 가보시죠.”

백강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석목은 잠깐 고민하다가 다시 하늘로 날아올라 종족으로 날아갔다.

* * *

골짜기의 입구에 도착하자 경비를 서는 인원이 두 배나 더 늘었다. 그리고 숨어서 다니는 게 아니라 입구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석목이 다가오자 원숭이들은 전부 석목을 향해 인사를 올렸으며 석목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미천거원 일족 안으로 들어와보니 종족의 분위기는 예전보다 훨씬 얼어붙어 있었다. 예전엔 가끔 어린 원숭이들이 뛰어놀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거원들은 대부분 무장을 하고 있었으며 엄숙한 표정으로 종족 곳곳에서 경비를 섰다.

석목은 동부로 돌아가지 않고서 곧장 대장로가 있는 주전으로 날아갔다.

이제 막 주전이 있는 산봉우리 위에 도착했을 때, 대장로가 주전 앞 광장에서 지팡이를 짚고 선 채 고개를 들어 석목을 올려다보았다.

“석두, 대장로님이 우리를 마중 나왔나봐.”

채아가 말했다.

석목은 대답하지 않고서 광장으로 내려와 대장로를 행해 인사를 올렸다.

“대장로님, 후배가 돌아왔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순조롭게 다녀왔나?”

대장로는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눈에는 기쁜 기색이 가득했다.

“순조로운 편이었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사명은 지켰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그렇다면 천봉 일족이 우리와 연합하기로 결정이 된 건가?”

대장로가 물었다.

“천봉 일족의 성녀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때가 되면 혼사를 치르겠죠. 그때면 연합뿐만 아닌 우리 두 종족은 인친(姻親)이 되는 겁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이런 경사가 다 있나.”

대장로가 그 말을 듣고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천봉, 반귀, 지룡 이 세 종족은 이미 세력이 막강해져 천하 백족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하여 미천거원 일족의 지위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거예요.”

석목이 침묵하다가 다시 말했다.

“괜찮네. 종족의 지위는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지 다른 이들이 인정할 필요는 없네. 다른 이의 입을 통한 게 아니라 자신의 실력으로 정복을 하는 자가 진짜 강자지.”

대장로가 담담하게 말했다.

“대장로님 말씀이 옳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천봉 일족은 언제 자네와 성녀의 혼사를 치르겠다고 했나?”

대장로가 물었다.

“제가 미천거원의 혈맥을 각성한 이후랍니다.”

석목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석목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채아가 불만이 있는 듯 투덜거렸다.

“그 소인배들이 뱉었던 말을 지키지도 않았어. 석두는 분명 혈맥을 각성했는데 또 혈맥이 순수하지 않다면서 석두와 종수 누나의 혼사를 뒤로 미룬 거야. 정말 염치가 없다니까.”

“그래, 이미 종족의 혈맥을 각성했다고?”

그 말을 들은 대장로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리고 석목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기쁜 기색을 들어냈다.

“좋아, 좋아. 혈맥을 이미 각성했구나. 수련 경지도 대폭 상승했군. 이번에 천봉 일족으로 다녀오는 동안 많은 일을 겪은 것 같네.”

대장로가 손뼉을 치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석목이 계속 말을 이어가려고 할 때, 대전 밖에서부터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니 금색 그림자가 대전으로 빠르게 날아 들어왔다.

둘째 장로인 백장이었다.

석목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둘째 장로는 여전히 정신없는 성격이라 절로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군. 이 짧은 시간 동안 또 한 단계 강해졌다니.”

백장은 석목을 보자마자 큰소리로 웃으며 다가와서는 석목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석목은 웃는 얼굴로 백장을 올려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백장의 등은 예전보다 더 구부러졌으며 눈 밑도 많이 어두워져 기운이 예전보다 더욱 초췌해 보였다.

“아, 조금 전에 백강을 만났는데 반년 전에 종족에 큰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죠?”

석목이 무엇인가 생각난 듯이 물었다.

대장로와 백장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으며 같은 일이 떠올랐는지 동시에 얼굴이 어두워졌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자 석목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둘째 장로님, 셋째 장로님은 어디 계시죠?”

석목은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셋째 장로는 큰 부상을 당해 아직 휴양 중이네.”

대장로가 한참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후, 우리가 천정의 실력을 너무 얕보았어.”

백장이 한숨을 내뱉었다.

“두 분, 제가 밖에 있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석목이 다급하게 물었다.

“반년 전에 천정이 갑자기 병사들을 보내 우리를 침범했네. 부대를 이끄는 신경 강자만 셋이었지. 호종 대진으로 물리치긴 했지만 많은 피를 흘렸어. 종족의 제자들도 많이 죽었을 뿐만 아니라 둘째 장로와 셋째 장로까지 큰 부상을 당했네.”

대장로가 깊은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나는 괜찮네. 휴식을 취하면서 꽤 많이 회복했지. 하지만 백비는…… 한쪽 팔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상처도 여전히 아물지 않네.”

백장이 주저하다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 뒤는요? 천정이 계속해서 침입하지는 않았습니까?”

석목이 잠깐 고민에 잠겼다가 다시 물었다.

“그 점이 나도 이해가 되지 않네. 예전에 치른 전쟁 이후로 천정은 침입해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물러났지.”

대장로가 지팡이로 땅을 짚어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서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석목은 대장로가 근심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는데 숨어있는 적은 눈앞에 보이는 적보다 훨씬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보내서 확인해보셨나요?”

석목이 물었다.

“종족 사람들을 보냈었는데 영남성 밖에도 천정 놈들의 종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하더군.”

백장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분명 또 다른 꿍꿍이를 꾸미고 있으리라 생각해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천정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이때, 석목은 갑자기 또 다른 일이 떠올라서 입을 열었다.

“아, 저는 이미 혈맥을 각성했어요. 백원 선조님의 잔혼이 건넨 말에 따르면 다시 시험들을 거쳐서 선조님이 남기신 다른 보물들을 꺼낼 수 있다고 하셨죠.”

석목이 말했다.

“그래, 그럼 빨리 가자.”

석목이 하는 말을 듣자 백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장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셋은 곧바로 대전 밖으로 나가 검은색 산봉우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암벽에 숨겨진 통로를 지나 제단 앞으로 다가갔다.

이번에는 백비가 없으니 채아도 당당하게 따라 들어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난 또 아주 대단한줄 알았네. 고작 이 정도야?”

채아가 쩝쩝거리며 실망한 듯이 말했다.

석목은 어깨에 앉아있는 채아를 잡아다가 한쪽에 두고는 두 장로에게 인사를 올렸다.

“늦어서는 아니 되니 어서 가보게.”

대장로가 입을 열었다.

석목은 곧바로 몸을 돌려 제단으로 걸어 들어가 철원령을 꺼내 검은색 비석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비석에 드리운 검은색 소용돌이에서 빛이 흘러나와 석목을 감싸고는 반짝이며 사라져버렸다.

지난번에 들어갈 때와 다를 바가 없었으며 잠시 후에 석목의 모습이 드넓은 대전에 나타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지난번과 똑같은 환경이었다.

석목은 정신을 가다듬고는 망설이지 않고서 대전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대전에서 나가 복도를 여러 곳 지나자 석목 앞에 폭포가 펼쳐졌다.

석목이 몸에 빛을 반짝이며 구룡쇄금갑을 두르자 세 마리 금룡이 밖으로 흘러나가 원형 광막을 펼쳐 석목을 감쌌다.

모든 준비를 마친 석목은 곧장 폭포 속으로 날아갔다.

이제 막 폭포의 수막 앞에 다가갔을 때, 쏟아지던 폭포가 비틀어지며 불룩 튀어나오더니 커다란 주먹이 속에서 날아 나왔다.

그러자 석목은 오른팔을 살짝 구부려 주먹을 꽉 쥐고는 힘껏 휘둘렀다.

석목의 주먹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근육이 툭툭 튀어나와 그대로 백 배나 불어난 미천거원으로 변신하여 수막에서 튀어나온 커다란 주먹과 부딪쳤다.

쾅!

팔에 엄청난 힘이 전해지면서 몸속 혈기가 흔들려 뒤로 튕겨져 날아가 넘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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