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29화 (729/916)

729화. 천지가 어두워지다

“크헝……”

석목이 제대로 서기도 전에 포효가 들려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았으며 눈앞이 희미해져 심신마저 흔들렸다.

석목이 불편한 기분을 간신히 짓누르며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하자 폭포의 겉면에서 물방울이 튕기더니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백공!”

석목이 멈칫하더니 자기도 모르게 입으로 소리를 질렀다.

폭포 속에서 온몸에 하얀색 긴 털이 자라난 백원왕이 날아 나왔다.

백원왕은 두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곧이어 백원왕은 몸통이 또 몇 배나 더 불어나 천장까지 치솟아 마치 커다란 산봉우리처럼 석목 앞에 우뚝 섰다.

백원왕의 몸에서 금빛이 흐르며 금색 갑옷이 나타났으며 갑옷을 두르자 풍기는 기운이 폭발했다.

석목은 간신히 멈춰서서 다시 집중하여 백원왕을 훑어보다가 흠칫 놀랐다.

백원왕의 외모나 행동거지는 꿈속에서 여러 번 봤던 백원왕과 똑같았다. 다만 희뿌연 동공이 텅텅 비어있어 생기는 없어 보였다.

이로보아 이 ‘백원왕’은 실체가 아닌 어떤 비술이나 진법으로 만들어낸 것 같았다.

석목이 ‘백원왕’을 훑어보며 대범반무진경을 시전하자 몸에서 하얀빛이 흘러나오더니 몸통이 빠르게 불어났다.

잠시 후에 석목도 ‘백원왕’과 비슷한 높이까지 불어났다.

석목을 본 ‘백원왕’은 다시 두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기세등등하게 노려보았다.

이어 ‘백원왕’이 주먹을 꽉 쥐고는 맹렬하게 땅을 내리쳤다.

쾅!

땅이 한참 동안 흔들리며 종횡으로 수십 장에 이르는 틈이 벌어졌다. 커다란 암석들이 균열 속에서 튀어나왔는데 마치 보이지 않는 손으로 다루듯 돌들은 전부 석목에게 날아왔다.

그러자 석목의 한 손이 흐릿해지더니 주먹 그림자가 촘촘하게 나타나 폭풍이 휘몰아치듯 흩날리는 돌들을 받아쳤으며 ‘펑!’ 소리와 함께 돌들은 전부 튕겨져 날아갔다.

동시에 석목은 또 다른 손을 칼처럼 날카롭게 펴서는 앞쪽 허공에 그었다.

그러자 손에서 금빛이 폭발하며 마치 커다란 검날처럼 땅에 깊이가 수십 장이나되는 넓은 골짜기를 만들었다. 이어 줄줄이 뻗어오던 균열은 골짜기에 닿자 순식간에 멈춰버렸다.

이때, ‘백원왕’이 두 무릎을 굽혔다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백원왕’은 거대한 몸집에서 노란빛을 반짝이며 웅장한 산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그 모습에 석목은 받아칠 생각을 접어버리고는 뒤로 물러났다.

쾅!

굉음이 울려 퍼지며 대지가 격하게 흔들리더니 ‘백원왕’이 땅에 떨어진 순간, 빛고리가 퍼지며 석목에게로 뻗어왔다.

석목이 저항하려다가 멈추자 빛고리는 마치 아무 힘도 없는 듯이 스쳐지나갔다.

“크헝!”

이때, ‘백원왕’이 포효하며 석목을 향해 덮쳤는데 거대한 주먹에서 날카로운 금빛을 내뿜으며 내리치려 했다.

뒤로 물러나서 힘을 모아 받아치려던 석목은 갑자기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석목이 고개를 떨궈 바라보니 두 발에 돌들이 두텁게 덮여 땅과 하나가 되었다.

구전현공 돌갑옷을 이렇게 쓸 수도 있다니. 석목은 당황스러웠지만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었기에 오른쪽 주먹을 휘두르며 ‘백원왕’을 내리쳤다.

펑!

방대한 힘이 몰려와 석목의 팔에서 ‘쩍, 쩍!’ 소리가 나더니 곧 부러질 것 같았다. 석목은 몸통도 뒤로 밀려 날아가 버렸다.

석목은 발이 땅에 묶인 채로 끌려갔기 때문에 두 발이 묻힌 땅은 흙들이 바깥으로 밀려나 뒤집혔다.

족히 수백 장이나 밀려났다가 수십 장 안에 자란 나무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나서야 석목은 간신히 몸을 멈춰 세울 수 있었다.

석목은 대범반무진경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렸으며 몸통을 최대한 늘렸지만 힘에서만큼은 ‘백원왕’을 이길 수가 없었다.

석목은 몸을 꼿꼿이 세우고는 빛을 반짝이며 구룡쇄금갑을 둘렀다. 그리고 여의빈철곤을 천기곤초에서 뽑자 금빛이 들끓으며 수백 장 높이까지 불어나 하늘을 찌를 것만 같았다.

“꼭 통과해야 하는 시험이라면 실례하겠습니다.”

석목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는 ‘백원왕’을 향해 손을 굽히며 공손하게 말했다.

그리고 큰 걸음을 내딛으며 앞으로 다가가 빈철곤으로 백원왕의 가슴께를 겨누었다.

‘백원왕’의 눈은 여전히 희미했으며 정신마저 흐릿해 보였지만 움직임은 매우 날렵했다.

‘백원왕’이 수많은 잔영을 끌며 수백 장까지 올라가 석목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커다란 팔을 들어 올리자 손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굵은 곤봉이 옆으로 뻗어나갔다.

“번천곤!”

석목은 동공이 줄어들었는데 ‘백원왕’도 이 보물을 가졌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석목은 동작을 멈추지 않고서 빈철곤으로 ‘백원왕’의 왼쪽 가슴을 겨누었다.

‘백원왕’은 번천곤으로 빈철곤을 내리쳤다.

탱!

방대한 힘이 몰려오며 석목의 곤봉이 다시금 날아왔다.

번천곤을 꺼내든 ‘백원왕’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만약 천기곤초의 힘을 빌리지 않았더라면 여의빈철곤은 이미 부서졌을 터였다.

석목은 밀려오는 힘 때문에 뒤로 수백 장 밀려났다. 그리고 곤봉을 휘두르는 방향을 틀어 큰 걸음으로 앞으로 달려가서는 원노반원(*猿猱攀援:원숭이들이 나무를 타거나 무언가를 잡고 자리를 이동할 때 취하는 자세(행위))의 기세로 허공으로 날아올라 곤봉을 휘둘러 금색 그림자를 층층이 빚어내 만 장이나 되는 금색 곤봉산을 이뤄 ‘백원왕’의 머리를 짓눌렀다.

이 태산압정은 원노반원을 기본으로 시전하는데 그 기세나 위력이 예전보다 훨씬 강력해 허공에 떠돌던 기류마저 압박을 받아 층층이 분열되어 ‘칙, 칙!’거리는 폭발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백원왕은 고개를 들어 포효하더니 번천곤을 휘두르는 방향을 틀어 하늘을 찔렀다가 다시 빠르게 휘저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잔잔한 물결이 층층이 퍼져나갔다가 소용돌이를 이루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하늘에 떠있던 구름이 형태가 없는 힘에 이끌려 빠르게 돌아가다가 커다란 소용돌이로 뭉치며 마치 구멍이라도 뚫린 듯이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구름 소용돌이는 점점 빨라졌으며 마지막에는 ‘우르릉!’ 소리를 내더니 위력이 엄청난 흰색 폭풍으로 변하였고, 폭풍은 마치 커다란 못처럼 하늘을 뚫고서 내려왔다.

동시에 석목의 곤봉 끝도 ‘백원왕’이 치켜든 번천곤과 부딪쳤다.

쾅!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두 곤봉이 부딪친 자리에서 찬란한 금빛이 터져나왔다.

이어서 금빛이 순식간에 불어나더니 사방팔방을 휩쓸었다.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금빛이 스쳐 지나간 곳은 나무와 산들이 전부 부러지고 무너졌다.

순간, 허공은 마치 금빛 때문에 눈이 멀어버린 것처럼 어두컴컴해졌으며 종말이 다가온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선 굉음만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하늘을 가득 채운 금빛은 다시 서서히 사라졌다.

금빛이 사라지자 비경 속은 여기저기 성한 곳 없이 흐트러져 있었으며 ‘백원왕’의 뒤에 자리한 폭포만 마치 어떤 특수한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듯 그대로였다.

이때, 허공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아래로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석목이 허공에서 떨어지며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었다.

석목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곤봉으로 땅을 짚은 채 몸을 숙이고는 ‘웩!’하며 붉은 피를 토해냈다.

부상을 입은 것도 있었지만 마음속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백원왕’이 조금 전에 시전한 곤법은 조금 특이하긴 했지만 분명 멸선곤법을 변환한 초식이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풍겨 석목은 어안이 벙벙했다.

석목은 다급하게 단약을 몇 알 삼키고는 선급 영석을 쥐고서 숨을 골랐다.

한참 뒤에 석목이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두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다시 곤봉을 휘두르며 ‘백원왕’을 공격했다.

‘백원왕’은 안색이 일그러지면서 번천곤으로 석목이 날린 공격을 받았다.

석목은 통천곤법 이십 식을 차근차근 하나하나 시전했다. 그동안 천지는 색이 여러 번 변했으며 광풍이 휘몰아쳤다.

‘백원왕’도 두 손을 끊임없이 흔들며 석목이 날린 공격을 한 방, 한 방 받아냈다. 그가 취하는 동작은 빠르지도 늦지도 않았으며 멸선곤법을 다양하게 시전했다.

석목도 능숙하게 곤법을 시전했으며 ‘백원왕’은 석목이 날리는 공격을 일일이 받아냈다.

비록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공격을 날리진 못했지만 석목의 얼굴에는 곤혹스러운 기색이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흥분을 한 기색이 점점 짙어졌다.

석목은 점점 더 빠르게 곤봉을 휘둘렀으며 끊임없이 커다란 곤봉 그림자를 날려 ‘백원왕’과 자신을 곤봉 그림자 안에 가둬버렸다.

쾅, 쾅!

또다시 폭발음이 울려 퍼지며 수많은 금빛이 흩날리면서 석목이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석목이 땅에 떨어지면서 백 장 깊이인 웅덩이를 만들어내 먼지가 자욱하게 흩날렸다.

순간, 깊은 웅덩이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는데 마치 웅덩이 속에 절세 흉수가 한 마리 엎드려 있는 것만 같았다.

포효와 함께 땅이 흔들리며 하얀 그림자가 웅덩이 속에서 튀어올라왔다.

그림자는 굵고 긴 하얀 털이 온몸에 수북이 났으며 입 안엔 뾰족한 이빨들이 규칙 없이 뻗어있었다. 팔뚝에서 불끈거리는 근육은 곧 터져버릴 것 같았으며 손끝에는 길고 날카로운 손톱이 박혀있었는데 ‘백원왕’과 비슷하게 생긴 하얀 원숭이였다.

하지만 ‘백원왕’과 달리 두 눈에서 빛이 반짝였으며 가슴을 꼿꼿이 세운 모습은 마치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모습이었다.

이 원숭이는 석목이었다.

석목은 두 손을 치켜들고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통을 훑어보았는데 살짝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내…… 내가 미천거원으로 변신했다고?”

석목이 복잡한 심정을 드러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전에도 여러 번 백원으로 변신을 했었지만 그때는 다른 사람이 되어 바라보는 느낌이었으며 몸통을 자유자재로 다스릴 수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미천거원이 된 몸을 완벽하게 다스릴 수 있었다.

석목은 의식을 하며 두 주먹을 꽉 쥐고는 주먹이 머금고 있는 어마어마한 힘을 느꼈다.

석목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백원왕’을 바라보았는데 싸늘했던 살기는 어느새 사라져 온통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

종수의 도움을 받아 몸속 석후 혈맥을 각성하여 미천거원이 되었지만 혈맥이 불안정해 대범반무진경을 시전해도 진정한 미천거원의 몸으로 변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이런 우연한 기회로 멸선곤법과 구전현공에 대해 깊이 깨우쳤을 뿐만 아니라 몸속의 혈맥까지 변해 대범반무진경을 더욱 강력하게 써서 진정한 미천거원으로 변신할 수 있게 되었다.

‘백원왕’은 조용히 제자리에 서서 바라만 볼 뿐 공격을 하지 않았다.

“백공, 저는 절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겁니다. 이제 번천곤으로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석목은 ‘백원왕’을 향해 인사를 올리며 정중하게 말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금빛 찬란한 곤봉을 꺼냈는데 눈에서도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석목의 몸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털들이 전부 꼿꼿이 일어섰으며 붉은 화염이 석목의 왼팔에서 뻗어나가 순식간에 번천곤을 감아버렸다.

화염이 들끓자 석목이 두르고 있던 구룡쇄금갑도 화염으로 뒤덮였으며 등 뒤엔 ‘훅!’ 소리와 함께 수백 장이나 되는 화염 광막이 펼쳐졌다.

화염 광막은 마치 커다란 피풍의처럼 바람을 따라 흩날리며 비범한 기세를 자아냈다.

석목과 마주하고 있던 ‘백원왕’의 몸에서도 금색 화염이 타오르면서 몸을 감쌌다.

‘백원왕’이 두른 금색 화염 속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점점 강력해졌다.

금색과 붉은색 원숭이 두 마리는 몸에 타오르는 화염을 감고서 서로 마주 보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동시에 곤봉을 치켜들고는 앞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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