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34화 (734/916)

734화. 한숨

산길 위에서 자아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 세 명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자아도 실력이 약한 편은 아니었지만 혼자서 셋과 싸우려고 하니 많이 버거웠으며 팔에는 이미 상처가 나 피가 흘러나왔다.

“멈춰!”

석목은 깊은 숨을 내쉬고는 목에 힘을 주며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십 장 밖에 있는 숲에서 마저 ‘스륵!’ 소리가 들렸다.

자아를 공격하던 세 사람은 깜짝 놀라며 동작을 멈추었다.

석목은 눈에 빛을 반짝이며 검은 그림자로 변신하여 세 사람을 덮쳤다.

이때, 날카로운 도광이 옆을 찔렀는데 사악이 날린 공격이었다.

이 도광은 얇고도 길었는데 매우 기이하여 끊임없이 변하면서 한 마리 영사(靈巳)처럼 석목의 등 뒤를 겨누었다.

석목은 깜짝 놀라 동작을 멈추고는 도를 휘둘러 공격을 막아냈다.

둘이 주고받는 동작은 매우 빨라서 눈 깜짝할 사이에 전투를 여러 번이나 치렀다.

“빨리, 저 여자를 죽여!”

사악이 소리를 질렀다.

자아를 둘러싼 세 명은 공세를 가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자아의 몸에 몇 갈래 더 상처를 만들었다.

석목은 화가 치밀어 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꺼져!”

석목의 도광에서 빛이 크게 번지더니 수십 갈래 도영이 나타나 사악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목숨을 걸며 공격을 시도했다.

사악이 발을 짚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 하얀색 비도를 세 갈래 날리며 자아를 공격했다.

석목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비도가 공기를 가르며 내는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비도가 날아가는 속도는 매우 빨랐으며 잠깐 사이에 자아와 세 뼘 정도 떨어진 곳까지 날아왔다.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날렸다.

검은 주먹 그림자가 별똥별처럼 날아가 가까스로 세 자루 비도를 막아냈다.

풉!

석목이 자아를 향한 공격을 막아내는 순간, 하얀 비도가 석목의 오른팔을 그어버렸다.

핏빛이 흩날리더니 석목의 팔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사악이 귀신처럼 다가와 눈에 사나운 빛을 드리우며 석목의 가슴께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풉!

석목은 몸이 날아갔는데 가슴에서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뼈가 움푹 파였으며 입에서는 붉은 피가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와 석목은 무겁게 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처참한 소리가 옆에서 들렸는데 자아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며 가슴에 장검이 박혔다.

“자아……”

석목은 의식을 잃어가며 먼 곳에 쓰러진 아내를 바라보았다.

끝없는 후회와 원한이 석목의 머릿속에서 흘러 다녔다. 만약 석목이 갖춘 실력이 더 강했더라면, 그리고 석목이 안일한 생활을 포기하고 현무종에서 수련을 했더라면 오늘 일어난 모든 일들을 되돌려놓을 수 있었을까?

“잘 가라!”

희미하게 남아있던 시각으로 찬란한 도광이 스쳐지나가는 게 보였으며 그 뒤로는 끝없는 어둠속에 빠져버렸다.

석목은 허공에서 서서 모든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미 구하려 시도를 했었지만 석목은 이 환경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간섭할 수 없었다.

석목은 숨을 거둔 자신을 바라보며 눈에서 이채를 흘렸다.

석목은 뚜렷이 느낄 수 있었는데 바닥에 누워있는 청년 석목에게 남은 건 끝없는 후회와 원망뿐이었다.

“짧은 안일함을 추구하면 그 끝은 이렇게 되겠지? 행복한 삶을 가졌지만 자신조차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었으니!”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마치 한숨을 쉬는 것 같기도 했으며 또 고민에 빠진 것 같기도 했다.

이때,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부서지며 다시 허무로 돌아왔다.

강력한 힘이 석목을 감싸고는 안쪽으로 빨아들였다.

* * *

천지가 한참 동안 뒤바뀌더니 석목이 두 눈을 번쩍 떴다. 석목은 다시 비경의 동굴로 돌아온 것이었다.

석목은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이미 현실 세계로 돌아왔지만 월신과가 만든 환경에서 겪은 모든 일들이 여전히 뚜렷하게 다가와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석목은 고개를 흔들면서 가볍게 숨을 내뱉었으며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굴 속에 펼쳐진 모든 것은 전부 그대로였다. 몇 년이나 월신과가 만든 환경에서 머문 것 같았지만 현실 세계는 단 한순간만 흘렀을 뿐이었다.

하지만 백원왕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는데 의문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 환경이 대체 어떤 의도로 나타났는지 석목은 아직까지 알지 못했다.

백원왕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석목은 침묵에 잠겨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여전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석목은 신식으로 몸속을 들여다보고는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속의 진기가 순수해진 것이었다. 하지만 진기는 끊임없이 흘러 다니며 몸속 곳곳에서 부딪쳐 여전히 불안했다.

석목이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공법을 운용하였다.

쾅!

공법을 시전하자 골격과 사지 속에 흐르는 진기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진기가 영해 속으로 밀려가 응결하려는 기미가 보였다.

석목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건 신경에 도달하려는 징조였다!

석목은 다급하게 두 눈을 감고는 공법을 시전하였다. 그러자 눈부신 빛이 밝아지더니 석목의 몸을 안으로 드리워 동굴 속은 찬란한 빛으로 가득 차 대낮처럼 환했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 반나절이나 흘렀는데 석목의 몸에서 흐르던 빛은 천천히 어두워졌다가 이내 사라졌다.

석목이 두 눈을 떴을 땐 눈에 실망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신경 돌파에 실패한 것이었다.

석목은 깊은 숨을 내뱉으며 상자를 바라보았다. 아직 월신과가 여섯 개 반이나 남아있어서 석목은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신경은 역시 쉽게 돌파할 수 없는 경지였군. 하지만 다행히도 내겐 월신과가 여섯 개 반이나 있지.”

석목은 자신을 비웃는 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두 번째 월신과를 집어 들었다.

과일을 깨무는 순간, 시원한 과즙이 입 안 가득 퍼지더니 석목의 신식은 다시 희미해졌다. 그리고 곧바로 기이한 향기에 취해버렸다.

* * *

잠시 후에 석목은 천천히 두 눈을 뜨고는 몸을 움직였다. 손과 발이 닿은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마치 영혼이 허공을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이런 느낌은 이미 겪어보았기에 석목은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발밑은 무성한 숲이었으며 지금은 달도 뜨지 않은 칠흑 같은 밤이라 매우 한적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관목과 나무들 뿐이었으며 벌레 소리만 간간히 울려 퍼졌다.

후훅!

난데없이 바람이 불어와 허공에 떠있던 석목은 서늘함을 느꼈다.

석목은 숲을 훑어보며 아주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이 환경이 매우 익숙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디였더라?

석목은 안간힘을 다해 기억을 되짚었다. 이때, 숲의 끝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니 넓은 건물에서 노란빛이 반짝이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석목이 두 팔을 휘젓자 몸이 건물을 향해 날아갔다.

대전 앞으로 다가가니 따뜻한 기운이 몰려왔는데 석목은 대전의 천정에 서서 고개를 숙여 대전 속을 내려다보았다.

대전에는 둥그런 탁자가 하나 놓여있었으며 젊은 남녀 한 쌍이 서로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녀는 피부가 눈처럼 하얀데 하얀 치맛자락 아래로 얇은 두 발을 내밀어 바닥을 짚고 있었다. 발목에 걸린 작은 방울은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함께 흔들렸다.

“서문설……”

석목은 어리둥절해졌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시선을 돌려보니 서문설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남자는 눈썹이 검 모양으로 자란 큰 눈이 돋보이는 건장한 청년이었는데 그 청년은 바로 석목이었다.

하지만 청년 석목의 얼굴은 이목구비나 윤곽만 지금의 석목과 같을 뿐, 미간 사이로 드러나는 부끄러움이 가득한 표정과 어색한 몸짓은 지금의 석목과는 매우 달랐다.

“지금은…… 승선대회 전.”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청년 석목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서문설을 바라보며 말했다.

“설 사저, 좋아해요.”

“…… 날 잊어. 과거의 일도 함께. 이번 승선대회에서 나는 반드시 선택될 거야.”

서문설은 잠시 침묵하다가 담담하게 말했다.

석목은 이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승선대회 전에 서문설과의 나눈 대화였다.

석목은 침묵에 잠겨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설 사저, 오늘 이후로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까요?”

한참 후에 청년 석목이 말했다.

석목은 그때의 자신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서문설의 대답은 여전히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었는데 그때의 석목은 절대 서문설을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석목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월신과가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왔을까?

석목은 서문설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처음 만났을 때 마주쳤던 광경을 떠올렸다. 그때 맹세했던 일들까지 떠올리자 마음속이 착잡해졌다.

서문설을 승선대회에 보낸 게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청년 석목과 서문설은 여전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둘이 나누는 대화가 석목의 귓가에서 울려 퍼지더니 갑자기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어 석목은 둘이 나누는 대화가 들리지 않았고,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단 한 마디만 반복하며 울려 퍼졌다.

“그녀를 승선대회에 보낸 게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 * *

“석목, 고마워. 나가서 잠시 정원을 걷자. 선천 경지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궁금한 게 있다면 묻도록 해. 너는 몰랐겠지만, 사실 난 무공과 술법을 동시에 수련했어.”

서문설이 찻잔을 내려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까지 들은 석목은 그제야 무엇인가를 번쩍 떠올리며 아래를 바라보았다.

청년 석목과 서문설이 대전의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둘은 정원을 굽이돌아 양옆에 관목이 무성한 길을 천천히 걸었다.

“설 사저, 왜 꼭 승선대회에 참여해야 하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청년 석목이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서문설은 복잡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침묵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석목, 내 목숨이 내 손에 있지 않다는 걸 느껴본 적이 있어?”

그 말을 들은 청년 석목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떠 있던 석목도 깊은 고민에 잠겼다.

대제국에 자리한 외진 어촌 마을에서 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 결코 쉬운 길을 걸어온 건 아니었지만, 모든 건 석목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비록 유감스러운 일과 안타까운 일도 많았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그런 일들을 온전히 장악할 수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없었어요.”

청년 석목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내 고향은 대진국 효란산(崤蘭山) 북쪽에 있었어. 태어날 때부터 부모 없이 숙부와 숙모의 손에서 자랐지.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그 둘은 나를 한 극장에 팔아 허드렛일을 시켰어. 나는 극단을 따라 대진국을 떠돌아다니며 가장 더럽고도 힘든 일들을 도맡아 했지. 그러면서도 가장 적은 밥을 먹었으며 혹여 병이라도 걸릴까 항상 전전긍긍했어.

병에 걸리면 극단에게 버림을 받을 테고, 그러면 내 병을 치료해주지 않을 걸 알아서 그랬지. 그럼에도 내 노력과는 달리 대제국에 들어온 후에 난 큰 병을 앓게 되었어. 그러다가 죽음이 임박했을 때, 나는 극단의 단주에 의해 길가에 버려져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지. 다행히 사부님이 내 목숨을 구해준 후에 나를 종문으로 데려가 술법을 가르쳐주신 덕분에 지금의 천음차녀가 되었지.”

서문설은 단 몇 마디로 자신이 겪은 지난날들을 설명해주었다. 비록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을 지 석목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이 모든 것들을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어서 석목은 차마 서문설이 승선대회에 참여하겠다는 걸 말릴 수 없었다.

청년 석목은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끝내 내뱉지 못했다.

“그때 나는 고작 열 살이었어. 하지만 내 운명을 스스로 장악하고, 다시는 버림을 받지 않으려면 꼭 내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강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그리고 승선을 해 선계로 진입하는 길은 내겐 기회야. 내 사부님이 평생 동안 소원하신 건 선계에 진입해 더 높은 풍경을 구경하는 것이었어. 그러니 나는 그녀의 소원을 대신 이룰 책임도 있지.”

“설 사저, 잘 알겠습니다.”

청년 석목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둘은 아무 말 없이 나란히 걸어갔다.

툭, 툭!

어둠 속을 떠다니던 먹구름에서 비 한 방울이 청년 석목의 이마에 떨어졌다.

이어서 ‘솨아!’ 소리가 나며 작은 빗방울들이 점점 크게 쏟아졌다.

빗줄기가 허공에 서 있는 석목의 몸을 뚫고서 쏟아졌지만 석목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아래에 있는 두 사람만 바라보았다.

둘은 비를 맞으며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비를 막는 술법을 쓰지도 않았으며 빠르게 걸어가지도 않았다. 둘은 원래 걷던 보폭으로 천천히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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