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36화 (736/916)

736화. 돌아서지 않았더라면 (2)

석목은 폐허가 되어버린 정원을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먼 동쪽으로 던졌다.

거긴 대제국의 끝자락이자 석목의 고향인 풍성이었다.

서문설과 은거생활을 하면서 석목은 고향에 잘 내려가지 않았으며 간다고 해도 동생인 옥환만 보고 돌아오는 정도였다.

“설아……”

청년 석목은 시선을 거두어들이고는 고개를 돌려 서문설을 바라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리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라. 네 아버지와 다녀오마.”

서문설이 따듯한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울고 있는 아기를 가볍게 어루만지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어린 아기는 울음을 뚝 그치고서 동그란 두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아기는 지금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지 못할 터였다.

서문설은 미소를 지은 얼굴로 아기를 바라보다가 석목의 손을 잡고서 비주를 소환하였다. 그리고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날아올라 빛으로 변하여 풍성으로 날아갔다.

허공에서 떠다니던 투명한 석목도 두 사람을 따라서 날아갔다.

* * *

약 세 시진을 날아서야 서문설과 석목은 풍성에 도착했다.

“이게 어떻게……”

서문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놀라서 입을 틀어막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의 밑에는 족히 십 리나 되는 커다란 동굴이 파였는데 곧장 땅속 깊이까지 뻗어있어 거무튀튀하니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설아, 여기서 기다려. 내려가 볼게.”

석목이 말했다.

“같이 가.”

서문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주변의 공기가 격하게 흔들려서 둘은 다급하게 백여 장 뒤로 물러났다.

하늘에 떠있던 구름에서 뜨거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순간, 하얀 구름이 타오르듯이 붉게 물들었다가 증발해버리며 커다란 구름 동굴이 나타났다.

그리고 갑자기 금빛 기둥이 구름 동굴에서 뿜어져 나와 파멸을 시킬 기세로 땅에 생긴 동굴을 내리쳤다.

쾅!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대지가 다시 흔들렸다.

동굴에서 메아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투명한 석목이 하늘에 난 구멍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에 커다란 금색 전함이 층층이 가려진 구름을 뚫고서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 전함은…… 천정!”

투명한 석목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석목과 서문설은 나란히 서서 고개를 들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눈에는 온통 믿기지 않는 기색이었다.

두 사람에게 이런 법보급 전함은 너무 낯설었다.

이때, 남해성 곳곳에 있던 수련자들이 사방팔방에서 날아와 동굴 주변을 둘러쌌다.

이들은 대부분 지계 수련 경지였는데 남해성에서 지계 수련 경지면 이미 대단한 자들이었다.

“이게 대체…… 뭐야?”

누군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모두 겁에 질려 우왕좌왕했다.

쾅!

아래로 내려오고 있던 거대한 전함 앞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굵은 빛기둥이 순간이동을 하듯 쏟아져 커다란 동굴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동굴 근처에 서 있던 몇몇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터져버려 피안개가 되어 흩날렸다.

그 모습을 보자 사람들이 뿔뿔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동굴 속에는 폭발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으며 연기가 자욱이 피어올라 짙은 용암과 유황 냄새가 진동했다.

“대체 누구야? 뭐하는 짓이야?”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도망을 가던 사람들은 멈춰 서서는 시선을 석목 부부에게로 던졌다.

“천위 정상 강자다!”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천위 정상 강자야. 이제 살 수 있겠군……”

인파 속에서 환호 소리가 울려퍼졌는데 그들에게 천위 정상은 신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전함은 청년 석목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내려왔으며 전함이 땅과 가까워졌을 때에야 사람들은 전함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전함 위에는 사람들이 촘촘하게 서 있었는데 통천선교의 무진 도인과 황룡 도인도 그곳에 있었다.

이들 중에 실력이 가장 낮은 자가 천위 경지였으며 우두머리는 보라색 옷을 입은 사내였는데 수련 경지가 신경 초기였다.

신경 강자는 영력 압박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남해성에 머무는 사람들 대부분은 목이 바싹 말라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뭐하는 짓이야?”

석목이 소리를 질렀다.

신경 강자는 석목은 한번 흘겨만 볼뿐, 석목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계속해!”

신경 강자가 지시를 내렸다.

보라색 옷을 입은 도사들은 전함 곳곳으로 다가가 가부좌를 틀고서 앉았다.

도사들이 앉는 순간, 몸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다양한 빛깔을 내뿜는 복잡한 부문들을 날렸다.

도사들이 움직일 때마다 부문에서 나는 빛이 점점 밝아졌고, 서문설은 눈빛에서 의아함이 스쳤으며 안색이 점점 불안해졌다.

윙!

커다란 전함이 흔들리며 둥그런 금색 광막을 펼치더니 온 전함을 감쌌다.

전함 아래에 흐르던 기류는 돌면서 가운데로 모였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다급하게 아래에 있는 수련자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빨리 도망가!”

“네?”

수련자들은 아직 상황 파악을 못했는지 다시 되물었다.

하지만 석목이 다시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전함 아래에서 ‘휙!’ 소리가 울려 퍼지며 폭풍이 휘몰아쳤다.

바람기둥이 전함 아래에서 날아가 강력하기 그지없는 흡인력으로 미처 도망가지 못한 사람들 빨아들였다.

석목은 바람기둥에서 흩어지는 핏빛 가루들을 보며 분노에 차 화난 눈으로 전함 위에 선 신경 강자를 올려다보았다.

“지금이야. 지핵(地核)을 뽑아!”

신경 강자가 소리를 질렀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그대로 얼어붙은 채 시선을 아내에게로 던지며 믿기지 않는 듯이 물었다.

“설아, 저 자가 지금 지핵을 빼라고 말한 건가?”

서문설은 깜짝 놀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여기서 수련 경지가 가장 높아 많은 서책을 읽었기 때문에 당연히 지핵을 뽑아낸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멈춰, 여길 망가트릴 셈이냐!”

석목이 큰 소리를 지르며 전함으로 날아갔다.

펑!

무거운 소리와 함께 석목의 몸이 금빛 광막에 부딪치며 그대로 튕겨져 날아갔다.

이때, 전함 아래에서 부는 거대한 바람기둥이 기승을 부리며 마치 하얀색 교룡처럼 몸을 칭칭 감아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우르릉!

동굴 속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지더니 땅이 ‘쩍, 쩍!’ 갈라졌다.

석목이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니 동굴 근처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굵은 균열이 생기더니 틈은 거미줄처럼 사방팔방으로 갈라졌다.

짙고 희뿌연 연기가 균열에서 흘러나와 수백 장 멀리서도 그 뜨거운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바람기둥이 동굴 깊은 곳으로 파고들수록 대지는 더욱 격하게 흔들렸으며 거미줄처럼 갈라진 균열에서 붉은빛을 번쩍이며 뜨거운 용암이 뿜어져 나왔다.

“땅이 무너졌어…… 도망가.”

누군가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뿔뿔이 도망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허공에는 석목 부부 둘만 남겨졌다.

신경 강자는 부부를 보며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금색 광막에서 날아 나와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

“왜 도망가지 않고 있소?”

신경 강자가 물었다.

“지핵이 무너지면 세상이 무너질 건데 어디로 도망가겠느냐? 너희는 대체 누구며, 왜 이런 짓을 하지?”

석목이 싸늘한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누군지 말을 해줘도 모를 것 같구려. 두 사람은 자질이 뛰어난 것 같은데 내 밑으로 들어오지 않겠소? 그럼 목숨을 살려주겠네.”

신경 강자가 말했다.

“지금 이곳은 풍성이라고 불리는 땅이지. 내 여동생의 가족이 이곳에서 살다가 전부 죽어버렸어. 너희가 지핵을 뽑아내면 내 자식들도 전부 죽어버릴 텐데 내 자식들을 전부 죽여 버리는 주제에 내 목숨을 살려줄 수 있다니? 그 말이 우습지 않은가?”

석목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신경 강자는 안색이 굳었다.

“사리분별도 못하는 우둔한 놈들.”

석목 부부는 서로를 한번 쳐다보고는 동시에 무기를 꺼내들고 신경 강자를 공격했다.

서문설이 들고 있는 무기는 한빙옥척(寒冰玉尺)이었으며 옥척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는데 매우 비범해보였다. 그리고 석목은 손에 운철흑도를 들어 각각 양쪽에서 신경 강자를 공격했다.

“개미 같은 목숨으로 덤벼들다니.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군.”

신경 강자가 경멸스러운 투로 말했다.

이이서 두 손을 펼치자 손에서 현란한 금빛이 뿜어져 나와 허공에서 커다란 손바닥으로 변하더니 두 사람을 붙잡았다.

서문설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한 손으로 법결을 짚어 옥척을 눌렀다. 그러자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와 금색 손으로 몰려갔다.

허공에서 ‘칙, 칙!’ 소리가 울려 퍼지자 하얀빛이 스친 자리는 공기가 얼어붙어 큰 얼음벽을 이루었다.

펑!

얼음벽은 금색 손에 부딪쳐 곧바로 터지더니 얼음 부스러기가 되어 바닥에 쏟아졌다.

금색 손이 흩날리는 얼음 속에서 튀어나와 서문설을 덥석 붙잡았다.

석목은 몸에 빛을 드리우며 운철흑도를 세차게 휘둘렀다. 그러자 천만 갈래나 되는 검은 도광이 마치 하얀 눈처럼 하늘을 절반이나 가렸다.

하지만 금색 손은 끄덕도 하지 않고서 도광으로 찔러갔다.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금색 손이 수십 갈래로 찢어져 금빛이 흘러내렸다.

“꽤나 실력이 있군.”

신경 강자가 차갑게 웃었다.

그리고 몸에 빛을 번쩍이며 손에 난 찢어진 상처를 회복했다. 이어서 신경 강자는 손을 날려 석목을 공격했다.

석목은 큰 산이 짓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며 뼈가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설아, 괜찮아?”

석목은 고통을 억누르면서 다급하게 아내를 바라보았다.

“나…… 괜찮아……”

서문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으며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게 매우 처참한 모습이었다.

“내가 무능해서 그래. 너와 내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어……”

석목은 뼈가 산산조각이 났지만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고는 따뜻하고도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석목이 상대한 건 경지가 두 단계나 높은 신경 존재라 비록 석목이 남해성에서 으뜸가는 강자로 불렸어도 상대조차 할 수 없었다.

서문설이 간신히 웃어 보이면서 고개를 흔들며 애써 말을 하려고 했지만 뜨거운 기운이 몰려와 힘이 전부 빠져버려 몸이 녹아내렸다. 그리고 석목에게 창백한 웃음만 지어보였다.

“안 돼……”

청년 석목은 강인했던 얼굴이 일그러지며 미친 듯이 허우적댔다.

허공에 서 있던 투명한 석목은 이 광경을 바라보며 분노를 억누를 수 없어서 앞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신경 강자의 머리를 향해 힘껏 주먹을 날렸으나 혼이 되어 떠다니는 투명한 석목은 신경 강자에게 아무런 상해를 입힐 수 없었다.

신경 강자는 허우적대는 석목을 한 번 쳐다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성깔 하나는 맘에 드는군. 하지만 급하게 굴지 마라. 곧 네 아내를 만나게 해줄 테니. 그리고 아이들도 곧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신경 강자가 손에 힘을 주었다.

퍽!

석목이 발악하길 멈추었다.

신경 강자는 대충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석목과 서문설은 마치 돌덩이처럼 허공에 선을 그으며 갈라진 땅 위로 떨어졌다.

칙, 칙!

가벼운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시체가 용암 속으로 빠져버렸다.

전함이 나타나서 석목과 서문설이 죽어버리기까지 호흡을 단 몇 번만 거쳤을 뿐이었다.

투명한 석목은 죽어버린 ‘자신’과 서문설의 시체가 용암 속에서 조금씩 녹아버리는 모습을 보며 허무함과 무기력함이 몰려왔다.

백여 년간 석목은 이미 여기서 보내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심지어 석목은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었으며 후손들이 해맑게 뛰어다니는데다가 안일하게 행복한 삶을 누리는 청년 석목을 부러워했다.

석목은 심지어 자신이 내린 선택을 의심하며 수련의 길을 걸었던 걸 후회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제야 석목은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가 한 생각은 틀렸으며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틀렸다.

이 세계에선 오직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강해지지 않으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조차 지킬 수 없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