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7화. 칠세 윤회(七世輪回)
쾅!
또 다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대지가 완전히 무너져 용암 수백 갈래가 균열에서 뿜어져 나와 하늘까지 치솟았다.
검고 짙은 연기가 하늘을 가렸으며 들끓는 용암이 대지를 뒤덮자 갈라진 땅들은 마치 떠다니는 섬처럼 용암 위에서 흘러 다녔다.
모든 생령이 용암에 떠밀려 도망갔지만 결국 삼켜질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한 행성이 무너지는 광경인가?”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다시 암흑으로 바뀌었다.
허무 속에서 방대한 힘이 튀어나오더니 석목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석목이 눈을 떠보니 다시 비경의 동굴이었다.
석목이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다시 신식으로 몸속을 들여다보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몸속의 진기가 더 짙어진 걸 보니 두 번째 월신과가 효과를 본 것 같았다.
석목이 공법을 시전하자 몸속에 깃든 진기가 다시 영해 속으로 밀려가 두 번째 경지 돌파를 시도했다.
이어, 눈부신 빛이 석목에게서 뿜어져 나왔는데 처음보다 훨씬 밝았다.
힘의 파동이 석목의 몸에서 흘러나오자 온 동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 석목이 두른 하얀빛은 다시 어두워졌다.
석목이 창백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면서 눈을 떴다.
여전히 신경을 돌파하지 못했다.
석목은 아무 표정 없이 조용히 앉아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세 번째 월신과를 들고는 망설이지 않고서 삼켜버렸다.
석목은 눈앞이 다시 희미해졌다.
* * *
노란색 행성에서 광풍이 휘몰아치며 모래가 흩날렸다.
쾅!
하얀빛과 붉은빛이 수백 장까지 밀려났으며 흙먼지가 날아올라 진공 상태가 되었다.
푸른 옷을 입은 그림자가 빛 가운데서 날아 나와 무겁게 땅에 떨어졌는데 그는 석목이었다.
석목의 가슴께에는 구멍이 뚫려있었으며 그 구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리고 입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는데 그는 한참을 버둥거리며 일어서려 했지만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으며 기운도 빠르게 쇠약해졌다.
“쳇! 고작 이 정도 실력으로 우리 종족의 성녀에게 접근하려고 들다니. 꿈도 야무지네!”
금색 옷을 입은 청년이 모래 바람 사이에서 날아 내려오며 경멸이 가득한 눈으로 바닥에 쓰러져있는 석목을 내려다보았다.
푸른 옷을 입고 있는 석목은 내키지 않는 눈빛으로 청년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석목의 동공은 빠르게 풀어지면서 빛을 잃었다.
청년이 코웃음을 짓고 불덩이를 날리자 석목의 시체가 활활 타버렸다.
이어서 청년은 금빛으로 변하더니 하늘로 솟아올랐다.
허공에는 투명하고 희미한 그림자로 변신한 석목이 서 있었다.
석목은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며 복잡한 기색을 드러내고는 한숨을 내뱉었다.
석목은 이미 일곱 번째 월신과를 삼켰으며 지금은 일곱 번째 환경을 떠돌고 있는 중이었다.
월신과를 삼킬 때마다 석목은 과거의 한 시점으로 돌아갔으며 그 시점은 전부 석목이 인생을 바꿀만한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놓였을 때였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환경 속에서 보이는 석목은 늘 자신이 했던 선택과 다른 선택을 하면서 꿈에서나 일어날법한 일들을 겪었다.
월신과를 여섯 알이나 먹어버려 석목은 총 여섯 환경을 겪었다. 그러니까 석목은 다른 인생을 여섯 번이나 살았기에 육세 윤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지금, 석목은 일곱 번째 윤회를 겪고 있었다.
이번에는 종수가 잡혀갔을 때 처했던 상황이었는데 환경 속의 석목은 오매불망 종수만 찾아다니며 백 년 만에 드디어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천봉족의 성계 청년에게 죽임을 당해버렸다.
환경 속의 ‘석목’이 죽어버려 석목은 이번생의 윤회도 곧 끝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여섯 번이나 겪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착잡한 기분을 곧바로 잠재울 수 있었다.
이때, 주변에서 큰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공간이 격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크기가 각각 다른 공간 균열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환경이 순식간에 부서지고 찢어져 버렸다.
* * *
석목의 눈앞이 희미해지더니 다시 비경 동굴 속에 나타났는데 현실로 돌아왔다는 뜻이었다.
석목은 다시 깊은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앞에 놓인 옥갑을 바라보았다.
일곱 개 반이나 있던 월신과가 이제 반개만 남았다.
하지만 석목의 몸속에 진기도 크게 달라져 흐렸던 진기가 훨씬 순수해졌으며 영해 속에 깃든 진기도 진득하게 뭉쳤다. 진기 속을 흐르는 작은 알갱이들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많은 시간을 칠세 윤회에 쓴 것 같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한순간이었다.
하지만 석목의 마음은 이전보다 훨씬 단단해졌다.
그리고 마음은 잔잔한 물처럼 평온했다.
많고 많았던 잡념들이 칠세 윤회를 거치며 사라져버려 많은 것들을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석목은 옥갑 속에 반개만 남은 월신과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서 공법을 시전하여 일곱 번째로 신경 돌파를 시도했다.
동굴 속을 가득 채운 빛은 마치 끊임없이 부딪치는 파도 같았으며 말들이 달리는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굴의 허공에서 화려한 빛들이 퍼지더니 빠르게 들끓었으며 칼바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이한 현상은 반나절이나 지속되었지만 또 다시 막을 수 없이 쇠락하여 마침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빛이 사라지자 석목이 나타났다.
석목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려있었으며 표정은 극도로 괴로워보였다. 그리고 꽉 쥔 주먹 때문에 손톱이 살을 파고서 들어갔다.
신경과 단 반걸음만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 같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이 반걸음을 뛰어 넘을 수가 없었다.
한참 후에 석목은 간신히 안정을 취했다. 그리고 복잡한 마음으로 반개만 남은 월신과를 바라보았다.
이 월신과 반개는 석목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였다.
일전에 석목이 신경으로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팔 할이었다면 이제는 가능성이 일 할도 안 되었다.
이 마지막 반걸음이 마치 영원히 넘지 못할 강처럼 느껴졌다.
이때, 거친 목소리가 귓전에서 울려 퍼졌다.
“멍청아, 멍청아, 아직도 모르겠느냐?”
석목이 멈칫하며 고개를 들어보니 백원왕이 서서히 나타났다. 하지만 그는 이전보다 훨씬 어두워졌으며 희미한 허상만 남았다.
“선조님!”
석목은 흠칫 놀랐다가 이내 기뻐하며 다급히 일어섰다.
“선조님, 몸이……”
석목은 백원왕의 몸이 달라진 걸 알아차리고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괜찮다. 내 잔혼일 뿐이니. 진즉에 사라졌어야 하는데 오늘까지 남은 게 천만다행이구나. 내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곧 완전히 사라질 게다. 묻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으니 어서 묻거라.”
백원왕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석목은 잠깐 침묵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선조님, 이 월신과를 먹은 후에 나타나는 환경은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는 어째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또 어째서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까?”
백원왕은 가만히 석목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월신과는 창월 성과로 순수한 원력이 들어있어 진기를 응결시킬 수 있단다. 허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능력은 마음을 씻어준다는 것이란다.”
“마음을 씻어주다니요?”
석목이 놀라며 물었다.
“환경 속에서 펼쳐진 광경들은 전부 네가 유감스러워했던 일이지. 그 일들이 오랫동안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네 심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 게야. 월신과는 너를 환경으로 끌어들여 네가 과거와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들어 그 한을 풀어주는 것이란다.”
백원왕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우두커니 서서는 한참 뒤에야 다시 정신을 차렸다.
이 모든 걸 석목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으나 결코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백원왕이 이렇게 말하니 석목은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렇군요. 월신과는 역시 신묘한 물건이군요. 지금 제 마음 속은 어느 때보다 더 맑고 후련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왜 여전히 신경을 돌파할 수 없나요? 아직 시기가 아닌 겁니까?”
석목이 백원왕을 바라보며 간절한 투로 물었다.
“네 수련 경지로 봤을 때, 이미 진즉에 시기는 다가왔단다. 하지만 네가 계속 경지를 돌파하지 못한 건 여전히 네 초심을 꿰뚫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백원왕이 담담하게 말했다.
“초심……”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무엇인가 알 것 같았지만 또 아리송하니 알 수 없었다.
“네가 왜 수련의 길에 들어섰는지? 무엇을 추구하는지? 만약 이런 것들을 철저히 깨달을 수 없다면 너에게 월신과를 열 개 더 준다고 해도 절대 신경에 도달하지 못할 게다.”
백원왕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려 퍼졌는데 그 목소리는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으며 또 석목의 귓가에 낮게 속삭이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조금 전에 겪은 일곱 환경을 일일이 떠올려봤다.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 서서 눈을 깜빡거렸다.
한참 후에 석목이 머리를 번쩍 들었는데 눈빛이 맑아졌다.
“꿈! 제가 추구하는 건 힘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제 꿈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석목은 많은 일을 겪으며 동분서주하면서 수련을 놓지는 않았지만 강해져야한다는 신념은 예전만큼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칠세 윤회를 겪으며 석목은 드디어 초심을 되찾았다.
석목이 하늘을 향해 큰소리를 지르자 목소리가 마치 천군만마가 달리는 것처럼 울려 퍼져 동굴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족히 일각이나 소리를 지르고 나니 마음속에 담긴 우울했던 것들을 전부 쏟아낸 것 같았다.
모든 것을 깨닫게 되자 석목은 마음속이 후련해졌으며 마치 안개가 흩어져 파란 하늘을 다시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석목은 다시 진기를 영해 속으로 흘려보냈다.
하늘을 찌르는 하얀빛이 석목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밀물처럼 용솟음치며 석목을 안으로 묻어버렸다.
동굴을 중심으로 수백 리 안에 깃든 천지 영기가 격하게 들끓으며 수많은 영역 소용돌이들을 만들어냈다.
천지 영기가 끊임없이 몰려와 뱀 모양을 이뤘다가 용 모양, 학 모양으로 변하더니 동굴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 천지 영기들은 마치 영성이 있는 것 같았다.
동굴은 밑 빠진 독 마냥 쏟아지는 천지 영기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서 빨아들였다.
동굴을 휘감은 영력 소용돌이는 점점 커지면서 사방팔방으로 불어나 천리를 드리우고 나서야 천천히 멈추었다.
족히 몇 시진이나 흘러 동굴이 천지 영기를 빨아들이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다가 멈춰버렸다.
천리까지 드리웠던 영기 소용돌이가 흩어져 수많은 빛들이 되어 흩날리니 오색찬란했으며 너무 현란하여 마치 쏟아지는 비와 같았다.
우르릉!
태양처럼 눈부신 하얀빛이 동굴에서 터져나오자 동굴이 종잇장처럼 터져버렸고, 부서진 돌들이 주변으로 날아갔다.
휘몰아치던 먼지가 눈부신 빛 때문에 밀려나며 석목의 모습이 드러났다.
석목은 빛을 휘감았는데 외모는 크게 달리지지 않았지만 풍기는 기운은 완전히 달라졌다. 강력하기 그지없는 위압감이 석목의 몸에서 풍겼는데 엄연히 신경에 도달한 것이었다.
백원왕은 조용히 석목의 등 뒤에 서있었는데 그가 신경을 돌파하며 일으킨 기이한 현상은 백원왕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석목을 바라보는 백원왕의 눈에는 흡족함과 기쁨이 어렸다.
석목이 눈을 번쩍 뜨고는 몸을 날려 허공으로 올라갔다.
몸 속에서는 다양한 기운이 흘러 넘쳤는데 대범반무진경, 구전현공의 여덟 번째 힘, 명수결, 심지어 몸속에 깃든 토템의 힘마저 들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