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38화 (738/916)

738화. 하늘과 목숨을 빼앗다

석목은 다시 고개를 들고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붉은빛이 석목의 몸에서 쏟아져 나와 찬란하게 빛났다.

처음에는 눈부신 노란빛, 그리고는 한 줄기 푸른빛, 그 다음은 금빛과 파란빛.

다양한 빛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하늘을 찌르는 기세를 풍겼다.

석목은 먼 곳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벅차오르는 기분을 억누르고 싶었지만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드디어 신경에 진입했으며 수련 경지 중에 최고 단계에 들어섰다.

석목은 이날을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하지만 이때, 하늘에서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이어서 온 하늘이 무거운 기운을 풍기며 난데없이 먹구름이 나타났다. 그리고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이 저 멀리 수백 리까지 기승을 부렸다.

구름 속에서 번개가 튕기며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광경에 석목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래에 있던 백원왕도 하늘이 달라지는 걸 바라보며 멈칫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백원왕은 눈이 맑아져서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먹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어 세상이 어둠으로 변하였다.

방대한 위압감이 구름 속에서 뿜어져 나왔는데 석목이 풍기는 위압감보다 몇 배나 컸다. 이건 천지의 위력이라 그 어떤 수련자도 그 힘과는 겨룰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석목은 어리둥절했다.

“이것은 천형신겁(天邢神劫)이란다. 네가 뇌겁(雷劫)을 깨웠구나!”

백원왕이 석목의 옆으로 내려오며 말했다.

백원왕이 짓는 표정은 아리송했는데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걱정스러운 기색이 더욱 많이 묻어있었다.

“천형신겁이요? 그게 무엇입니까?”

석목이 다급하게 물었다.

하늘은 마치 극도로 무서운 무엇인가를 잉태하고 있는 것 같았으며 그 무엇인가가 석목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천형신겁. 말 그대로 수련을 하는 사람이 신경에 진입할 때,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종의 뇌겁이란다.”

“신경에 진입하는데 뇌겁이 내리다니요? 저는 다른 사람이 신경에 진입하는 걸 여러 번 봤는데, 이런 뇌겁이 나타나는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석목이 놀라며 말했다.

석목은 연나와 안화가 신경에 진입하는 모습을 봤지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뇌겁은 모든 사람들이 신경에 진입할 때 나타나는 게 아니란다. 자질이 매우 뛰어난데다가 기본기가 남다르며 끝없는 잠재력을 갖춘 사람에게만 이런 뇌겁이 나타나지.”

백원왕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몹시 놀랐다.

“이 뇌겁의 위력은 극한에 달하는 두려움을 머금고 있단다. 구사일생이라고도 하지. 하지만 이건 절호의 기회인데 만약 뇌겁을 극복하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큰 수확을 이룰 게다. 꼭 조심해라. 그리고 반드시 최선을 다해야해. 실패하면 죽을 테니!”

백원왕이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원왕이 하는 말을 듣던 석목은 어리둥절했는데 그가 한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기승을 부리는 천둥 구름은 석목이 많은 생각을 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쾅!

검은 구름 속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은색 번개 뱀이 구름을 헤집고 다녔다. 번개 뱀은 괴상한 소리로 울부짖으며 흉악하게 입을 벌리고는 사람을 물어뜯으려는 자세를 취했다.

백원왕도 두려웠는지 빠르게 말을 마치고는 몸을 날려 아래로 날아갔다. 그래서 석목은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석목은 무엇인가를 더 물으려고 입을 살짝 벌렸다가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하늘을 노니는 번개 뱀을 올려다보며 다짐했다.

석목은 피하려하지 않았는데 아무리 도망 다녀도 절대 이 두려운 뇌겁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피한다 해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수련의 길을 걷는다는 건 애당초 좌절을 많이 겪고 기구한 인생을 살아갈 팔자이며 하늘을 거역하는 행위였다. 때문에 어려움을 이겨내며 하늘에게서 내 목숨을 지켜야만 대성할 기회라도 얻을 수 있었다.

* * *

미천거원 일족의 하늘에서도 천지 영기가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며 광풍이 휘몰아쳤다.

먹구름이 하늘에 두텁게 드리워있어 매우 기이하고 음침한 분위기가 감돌았으며 살기가 은은하게 풍겼다.

“무슨 일이야!”

미천거원들이 놀란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은 산봉우리 위에 놓인 제단.

대장로와 둘째 장로가 산중턱에서 날아 나왔다.

얇은 채색 그림자가 반짝이며 채아도 그들을 따라 나왔다.

둘은 하늘에서 일어난 기이한 변화를 바라보며 안색이 굳어버렸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혹시 천정이 침입했나?”

둘째 장로 백장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장로는 하늘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검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퍼진 기이한 현상인 것 같군. 석목 장로가 비경에서 무슨 일을 겪는 게야.”

백장의 굳은 얼굴이 일그러졌으며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대장로는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눈빛은 불안했다.

채아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하물며 비경의 금제가 너무 강력하여 석목과 연결도 끊겨버렸다.

하지만 석목이 살아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석두, 꼭 아무 일도 없이 나와야해.”

채아가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 * *

비경 속에 드리운 두터운 먹구름이 층층이 짓눌려와 하늘마저 낮아진 느낌이 들었으며 공기도 억누르는 기운이 가득했다.

석목은 동굴 밖에 자리한 빈 땅에 꼿꼿이 서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으며 눈에 불굴의 의지를 불태웠다.

쾅, 쾅!

묵직한 소리가 두터운 먹구름에서 울려 퍼졌는데 마치 오랫동안 갇혀있던 맹수가 억압된 감정을 담아 울부짖는 것 같았다.

석목은 그 울부짖음 속에서 전해지는 강력한 위압을 느끼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위압은 백원왕과 천제가 치른 격전에서만 딱 한 번 느꼈다.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이 정도 위압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으며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이런 상황에서 이 정도 중압감을 다시 한번 맞이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석목은 곧바로 구룡쇄금갑을 두른 채 한 손으로 하늘을 짚어 여의빈철곤을 꽉 잡았다.

세상을 휘어잡을 것만 같은 뇌전에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깃들어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왠지 두려움보다는 전의만이 점점 치솟았다.

월신과가 보여준 환경을 겪으며 심경이 더 단단해졌는지 석목은 수련에 대한 본질을 더욱 뚜렷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강해지겠다는 갈망을 다시 불태웠다.

이때, 하늘에 뜬 먹구름이 소용돌이치며 광풍이 흩날리던 모래 먼지를 휘감아 원래도 흐릿하던 하늘이 더욱 어두워졌다.

짙은 먹구름 속에서 은빛 구체 아홉 덩이가 밝아졌는데 그것은 마치 거대한 맹수의 눈알과도 같았으며 구체들이 빙글빙글 돌더니 곧바로 아래로 떨어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홉 구체에 은색 번개가 맴돌고 있었는데 곧 허공에서 한 줄로 이어지며 석목을 내리쳤다.

훅!

석목은 곧바로 검은색과 흰색의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올라 은색 번개로 향했다.

석목이 허공에서 몸을 번쩍이며 잔영을 줄줄이 그렸다. 그러자 복부의 영해가 들끓으며 풍성한 영력이 혈맥을 따라 흘러가다가 전부 두 팔로 몰려들었다.

석목은 그 힘을 빌려 빈철곤을 천기곤초에서 꺼냈다.

찬란한 금빛이 반짝이며 여의빈철곤이 석목의 등 뒤에서부터 앞으로 튀어나와 공기를 갈랐고, 곤봉이 허공에 활 모양을 그리자 곤봉 끝에서 금빛이 터져 나와 마치 타오르는 금색 태양처럼 쏟아지는 은색 구체와 부딪쳤다.

쾅!

석목은 두 팔이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으며 마치 천 근이나 되는 거대한 돌이 몸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이어서 금색 태양이 터져버리자 은색 구체에 부딪힌 금색 선이 산산이 부서지며 찬란한 빛이 석목을 삼켜버렸다.

굵은 번개가 빈철곤을 타고서 석목의 몸속으로 들어가자 몸이 뜨겁게 타올라 피부마저 붉게 변하였다. 그래서 석목은 참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이어서 ‘쩍, 쩍!’ 갈라지는 소리가 빈철곤에서 흘러나왔다.

석목은 깜짝 놀라 고통을 참으며 다급하게 빈철곤을 바라보았다.

거무칙칙한 곤봉의 겉면에 균열이 줄줄이 그어졌으며 곤봉 전체에 종횡으로 갈라진 줄들이 가득 보였다.

석목은 뇌겁의 위력이 이정도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단 일격으로 빈철곤을 거의 폐물로 만들어버리다니.

석목이 대책을 생각하기도 전에 두 번째 구체가 이미 날아오고 있었다.

쾅!

은색 구체가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빈철곤에 떨어졌다.

빈철곤은 갑자기 터져버려 수많은 쇳조각으로 변하더니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빈철곤마저 사라지자 석목은 순식간에 은색 구체에 삼켜졌다.

“으아!”

석목이 처참하게 울부짖으며 은빛 속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얇은 은색 번개는 마치 긴 채찍처럼 끊임없이 석목을 휘갈겼다.

번개가 휘갈길 때마다 석목의 피부를 찢기 위해 살과 뼈를 내리쳤다.

하늘에서 흐르는 빛들이 끊임없이 번쩍이며 전부 석목에게로 떨어졌다.

우르릉!

빛 덩이가 번쩍거리자 하늘이 순식간에 밤낮을 오가는 것 같았다.

은빛 속에서 울려 퍼지던 석목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져 이젠 번개가 찢어지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잠시 후에 아홉 덩이 구체가 전부 터져버렸으며 그제야 하늘은 고요함을 되찾았다.

하지만 기승을 부리던 모래 바람은 지칠 줄 몰랐으며 짙은 먹구름도 흩어지지 않았다. 또한 은색 번개도 그 속에서 끊임없이 번쩍였는데 천지 사이에 감도는 강력한 위압감은 줄어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강력해졌다.

펑!

검은 그림자가 땅에 떨어지면서 먼지가 흩날렸다.

잠시 후에 먼지가 서서히 흩어지더니 검게 타버린 석목이 나타났다.

시꺼멓게 타버린 석목의 피부에는 상처가 수백 갈래 얽혀 있었으며 상처 속에는 검붉은 피가 고여 있었다. 석목의 갈라진 피부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어 바라만 봐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석목의 숨결이 매우 약해져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타 죽어버린 시체와도 같았다.

이때, 석목의 가슴에서 푸른빛이 반짝이더니 작은 가마가 나타나 타버린 몸통에서 날아올랐다.

푸른 가마 위에서 빛이 흐르며 복잡한 부문이 촘촘히 밝아지자 순식간에 강력한 흡인력이 나타나 주변에 흐르던 천지 영기가 강물처럼 변하여 푸른 가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영력의 강물이 활력 넘치게 가마 속으로 흘러들어간 후에 다시 가마에 달린 세 다리로 흘러내리더니 곧장 석목의 몸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석목의 몸에서 갑자기 ‘지글지글’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마치 오랜 가뭄으로 뙤약볕에 말라 갈라진 대지가 비와 이슬로 촉촉해져 다시 생기를 되찾듯이 변했다.

석목의 찢어진 상처에서 치솟던 검붉은 피가 조금씩 사라지며 희미한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또한 푸른빛으로 메꾸어진 상처는 끊임없이 모양을 갖추며 모여들어 매우 복잡한 부문을 만들어냈다.

부문이 생기자 석목에게서 피어오르던 푸른 연기가 줄어들며 쪼그라들었던 몸통도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약해졌던 기운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며 힘이 가장 세게 치솟았을 때 보다 더욱 강력해진 느낌이 들었다.

쩍!

굳은 땅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옷의 비늘처럼 생긴 무엇인가가 석목의 몸에서 조금씩 떨어지며 새살이 드러났고, 석목은 손에 영석을 두 개 쥐고 있었다.

입고 있던 옷가지는 이미 전부 타버리고 없었으며 구룡쇄금갑만이 벗겨진 몸을 감싸고 있었다.

얼굴을 덮던 검은 비늘이 완전히 떨어져나가자 석목의 두 눈이 드러났는데 눈에서 금빛이 반짝였다. 금빛으로 빛나는 석목의 두 눈은 마치 신광을 뿜어내는 것 같았으며 정신이 아주 맑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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