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44화 (744/916)

744화. 편이한 태도

대장로는 석목을 바라보며 눈에 이채를 흘렸다. 그리고 곧바로 눈꺼풀을 내리더니 침묵에 잠겨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둘째 장로는 입을 살짝 벌리고는 놀란 얼굴로 석목을 바라보았는데 온통 믿기지 않는 기색이었다.

석목은 차분한 눈빛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석목 장로, 그건 좀…… 그러니까 내 말은 이렇게 대대적으로 일을 벌일 필요는 없다는 말이네.”

둘째 장로가 망설이다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둘째 장로는 진심을 말하지 않았는데 미천거원 일족은 세상을 등지고 산 지 오래라 천하 성역에 있는 종족들과 이미 연락선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 초대장을 돌린다 해도 올 사람이 없을 터였다.

그러니 이렇게 대대적으로 일을 벌였다가는 오히려 망신을 당할 수도 있었다.

미천거원 일족의 영광은 사라졌으며 숨어산 지 오래되었지만 적잖은 노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위엄을 갖춘 종족이었다.

하지만 둘째 장로는 다른 종족들이 미천 거원 일족의 체면을 세워줄지 정말 자신이 없었다.

성대하게 세상 밖으로 나갈 것이라고 선포를 했는데 단 한 명도 축하해주러 오지 않는다면 이런 소문은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으니 차라리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석목은 차분하게 두 장로를 바라보았는데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대장로도 입 밖으로 말을 뱉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걱정을 할 터였다.

“……천정의 세력이 막강한데다 우리 미천거원 일족의 힘은 오히려 약해졌네. 백원 족장님이 계실 때도 천정을 철저히 무너트리지 못했으니 천정을 처치하는 일은 멀리 내다보는 것이 좋을 걸세.”

둘째 장로가 대장로를 한번 쳐다보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천정은 이미 성역을 절반이나 점령하고 있어요.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석목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하지만……”

둘째 장로가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이때,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두 사람이 걸어왔다.

석목은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앞장 선 사람은 셋째 장로 백비였으며 그 뒤로 백홍이 들어왔다.

“둘째 장로님, 다들 여기에 계셨군요.”

백비가 하하 웃으며 대장로와 둘째 장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는데 기분이 매우 좋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석목은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셋째 장로, 상태는 좋아졌는가?”

대장로가 물었다.

“후후, 덕분에 이미 많이 좋아졌습니다.”

백비가 말했다.

“셋째 장로, 이곳에는 어쩐 일로?”

둘째 장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 장로님들. 두 분께 백홍과 관련된 일을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백홍이 얼마 전에 밖에 나갔다가 많은 일을 겪으며 수련 경지가 크게 올라 성계 정상에 도달했어요. 이대로라면 곧 신경에 도달해 우리 종족에 신경 강자가 한 명 더 늘 것같습니다.”

백비가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그래, 안 그래도 다사다난했는데 백홍에게 이런 좋은 일이 생기다니. 우리 종족의 복이로구나.”

대장로가 눈을 반짝이며 백홍을 한 번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백비가 흡족해하며 웃다가 싸늘한 눈으로 석목을 한 번 흘겨보았다.

석목이 갑자기 나타나서 성계 중기 실력으로 장로의 자리를 차지했으니 백홍이 이제 성계 정상에 도달해 석목보다 훨씬 더 많은 자격이 주어지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석목을 넷째 장로의 자리에서 밀어버리기 위해 이 곳에 온 것이었다.

백비가 이제 막 이곳에 온 의도를 말하려고 할 때 대장로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셋째 장로, 잘 왔네. 우리 때마침 석목 장로의 족장 수임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네. 이번 수임 축전은 우리 종족이 천 년 만에 다시 천하 성역으로 나가는 걸 뜻하며 또 천하의 백족들과 함께 천정을 물리치려는 걸세. 석 장로는 천하 성역에 사는 종족 사람들을 초대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네?”

백비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으며 옆에 서 있던 백홍도 멈칫했다.

석목이 비경에서 나온 후로 일부러 신경의 기운을 풍기지 않았기에 둘은 석목을 냉대했으며 석목이 달라진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 석 장로는 조금 전에 비경에 들어가서 우리 종족 족장의 신물을 가지고 나왔소. 그리고 비경에서 신경에 진입했지. 하여 우리가 이전에 의논했던 것처럼 석목 장로가 족장의 자리를 수임하기로 결정을 내렸소. 셋째 장로, 이의 없겠지?”

둘째 장로가 백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백비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백비는 석목이 풍기는 방대한 기운을 느꼈는데 석목이 손에 쥔 불청신후상을 보고는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석목을 바라보는 백홍도 눈빛이 붉어졌으며 시기와 질투의 감정이 동시에 몰려왔다.

“하하하! 어쩐지 오늘은 석목 장로가 훨씬 잘생겨 보이더군. 신경에 올랐다니. 축하하오. 우리 미천거원 일족의 복이오! 석 장로가 족장의 신물을 가지고 나왔으니 족장의 자리를 물려받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아무 문제없소.”

백비가 눈을 한참 동안 굴리다가 큰소리로 웃으며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석목은 깜짝 놀랐는데 셋째 장로가 족장 수임을 기꺼이 반대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반대했을 때, 어떻게 대비할지도 준비하고 있었는데 너무 의외였다.

셋째 장로가 예상치 못한 말을 하니 석목은 한참 동안 어이가 없었다.

대장로와 둘째 장로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채아는 원래 기세등등하게 석목의 어깨에 서서 셋째 장로가 다가올 때부터 계속 상대를 노려보며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채아마저 예상치 못한 백비의 말을 듣자 입만 벌린 채 석목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셋째 장로님, 저……”

백홍이 입을 열었다.

“닥치거라. 여기가 어디라고! 지금 여기서 네가 끼어들 자격이 있느냐! 빨리 물러나거라!”

백비가 갑자기 호통을 치며 백홍이 하는 말을 끊어버렸다.

백홍은 안색이 시퍼렇게 질려서는 한쪽에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었다.

“세 분, 백홍이 아직 젊어서 철이 없군요. 탓하지 마세요.”

셋째 장로가 석목을 비롯한 세 명을 향해 손을 굽히며 말했다.

“괜찮네.”

대장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백홍을 한 번 쳐다보고는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셋째 장로, 조금 전에 말한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장로가 다시 물었다.

백비는 한참 침묵하다가 말했다.

“석목 장로가 낸 제안은 일리가 있습니다. 족장 수임 축전은 천 년 만에 생긴 좋은 일이니 성대하게 열지 않으면 우리가 너무 소심해 보이지요.”

석목이 놀라운 눈빛으로 백비를 한 번 쳐다봤다.

대장로는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셋째 장로도 다른 종족들을 초대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면 이 일은 석목 장로가 한 말대로 하겠네.”

“대장로님, 감사합니다.”

석목이 말했다.

둘째 장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석목 장로, 이 일은 꼭 심사숙고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으니……”

만약 축전에 참여하는 사람이 적다면 난처한 상황에 처할 뿐만 아니라 미천거원 일족의 명성에도 금이 갈 터였다. 그리고 석목이라는 신임 족장의 위치도 흔들릴 게 뻔했다.

“둘째 장로님, 걱정 마십시오. 제겐 다 계획이 있으니.”

석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네.”

둘째 장로는 깊은 숨을 내뱉으며 답했다.

“만약 다른 종족들을 초대하려면 수임 축전이 열리는 때를 뒤로 좀 미루는 것이 좋겠네. 석 달 뒤가 좋을 것 같군. 그리고 초대해야할 종족들도 자세히 의논해봐야 하겠네.”

대장로가 말했다.

“이 일은 대장로님께 맡기겠어요. 하지만 제가 지정한 몇몇 종족들은 대장로님께서 꼭 초청해주시길 바랍니다.”

석목이 옥간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빠르게 빈 옥간에 기록을 마친 후에 대장로에게 건넸다.

대장로는 옥간을 건네받고는 신식으로 훑어본 후에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둘째 장로와 셋째 장로는 대장로의 표정이 달라지는 걸 보며 눈만 껌뻑거렸다.

“그래. 석목 장로, 이 일은 내게 맡기게.”

대장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는 지금 막 신경을 돌파해서 시간을 들여 수련 경지를 다듬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일이 없다면 저는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그래. 수련 도중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우리에게 연락을 하게. 우리의 실력이 아주 뛰어난 건 아니지만 신경에 오랜 기간 머물면서 각자 터득한 비결이 많으니.”

“좋군요.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

대장로를 비롯한 다른 이들도 오래 머물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 * *

석목은 빠르게 사타봉에 자리한 동부로 돌아왔다.

오랫 동안 밖에 나가 있었지만 여긴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먼지도 한 톨 없는 걸 보니 계속 동부를 돌봐주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대전 밖을 지키던 호위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 얼마 전에 미천거원 일족에 변고가 닥쳤을 때 이동시킨 것 같았다.

석목은 곧바로 동부의 대문으로 법결을 날렸고, 하얀빛이 날아가 천천히 펴지자 대문이 서서히 열렸다.

석목은 동부로 걸어 들어가 천천히 문을 닫았다.

후!

석목이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긴장을 풀었다.

비경에서 누적된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와 이대로 자버리고 싶었다.

“석두, 비경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조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을 겪은 것 같지는 않은데. 빨리 얘기해줘.”

채아가 닦달하며 석목이 잠을 자지 못하게 큰소리로 짖어댔다.

석목은 어쩔 수 없이 비경 속에서 일어났던 일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우와, 우와……”

채아는 석목이 하는 말에 빠져들며 감탄만 자아냈다.

“비경에서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구나. 월신과를 일곱 알이나 먹었다고……”

채아가 입맛을 다시며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아, 월신과가 반알 남았는데, 너 줄게. 네 수련 경지도 성계 정상에 도달했으니 이 반 알로 신경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석목은 나머지 월신과 반알을 채아에게 던져주었다.

“와! 석두, 역시 너 밖에 없다니까!”

채아가 눈을 반짝이며 월신과 반알을 물고서 밖으로 나갔다.

“어디서 폐관하고 있을 테니까 방해하지 마!”

소리가 점점 멀어졌고, 채아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석목은 미소를 짓고, 시끄러운 녀석이 사라지자 곧바로 침상에 올라가 잠을 청했다.

그렇게 석목은 하루 종일 잠만 잤다.

* * *

이튿날, 침실에서 나온 석목은 기분이 상쾌해졌고, 피로가 전부 풀렸다.

석목이 신식으로 동부를 훑어보니 채아는 아직 폐관하며 돌아오지 않았다.

석목은 고개를 흔들었다.

여긴 미천거원 일족이라 큰 위험은 없을 터였다. 그는 비밀 석실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금빛이 반짝이더니 구룡쇄금갑이 나타났다.

갑옷은 여기저기 망가졌고, 빛도 매우 어두워져 최상급 전투 갑옷에서 풍기는 광채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었다.

이 지경이 되어버린 구룡쇄금갑을 복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 갑옷을 복구하려면 공수자와 자취로를 소환해야만 했다.

하지만 공수자를 사용할 기회는 단 한 번만 남았는데 이 마지막 기회를 통해 구룡쇄금갑을 영보급으로 강화시킬 계획이었으며 재료도 이미 전부 수집해두었다.

하지만 이런 사고가 생겼으니 공수자가 쇄금갑을 복구하고 등급도 강화시킬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석목은 한참 침묵하다가 구룡쇄금갑을 거두어들였다.

공수자가 연기를 하려면 최소 몇 년은 걸린다. 그런데 석 달 뒤면 축전이 열리니 우선 축전이 끝난 후에 이 일을 해결하는 편이 좋을 터였다.

석목은 기분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낡은 서책을 하나 꺼냈는데 백원왕이 준 서책이었다.

서책을 펼쳐보니 첫 장에 <대범반무성체공(大梵盤武聖體功)>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대범반무성체공……”

석목은 눈썹을 치켜떴다.

백원왕이 전에 석목에게 전수해준 공법은 <대범반무진경>이었다.

이 둘은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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