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47화 (747/916)

747화. 예상 밖

광장에 모인 미천거원족들은 석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손님이 오자 전부 그제야 걱정하던 얼굴에 긴장이 조금 풀린 것 같았다.

“할아버지, 뇌마 일족은 힘이 센 종족인가요?”

몸집이 작은 어린 푸른 원숭이가 옆에 앉아있는 늙은 원숭이의 팔을 흔들며 물었다.

“뇌마 일족? 아주 외진 곳에 있는 눈에 띄지 않는 종족이었단다…… 허나 지금은…… 모르겠구나.”

늙은 원숭이가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

“지금이요? 지금도 여전이 실력이 약한 작은 종족에 불과하죠. 저 족장을 보세요. 고작 성계이지 않습니까? 절대 큰 종족은 아니죠. 저 현준 일족의 족장도 저 자보다는 강한 것 같네요.”

옆에 있던 회색 원숭이가 끼어들었다.

“후, 옛날이었더라면 이런 눈에 띄지 않는 종족들을 우리 종족의 족장이 친히 영접할 일은 없었겠지.”

하얀 털이 자라난 늙은 원숭이가 깊은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몇몇 장로님들도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우리끼리 축전을 열면 될 걸 왜 굳이 다른 종족을 초대한다는 건지. 이런 작은 종족들만 온다면 우리 미천거원 일족의 체면이 어찌 되겠습니까?”

장년 원숭이가 툴툴거렸다.

“못난 놈, 어찌 감히 장로님들이 내리신 결정을 판단하느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 게다. 천하 성역의 요족들이 축전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일이지.”

늙은 원숭이가 말했다.

“이런 작은 종족들도 많이 오지 않는 게 문제지요……”

미천거원 일족에서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 다들 축전에 관한 일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물론 석목도 종족 사람들이 하는 생각을 훤히 꿰뚫고 있었지만 석목은 아무런 걱정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대장로의 옆에 앉아 차분하게 차나 마시며 천하 성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화를 나누면서 손님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제 날이 밝아졌으며 해가 점점 떠올라 중천으로 향했다.

* * *

둘째 장로 백장은 광장 밖에 늘어선 커다란 돌기둥들의 그림자가 점점 짧아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초조한 기색을 드러냈다.

“족장님, 이미 정오가 다 되었습니다. 이게……”

백장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더니 고개를 들어 하늘에 뜬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옆으로 나란히 놓인 의자 수십 개를 훑어보았다.

지금 오른편에 뇌동과 계방응이 앉아있는 의자를 뺀 다른 자리들은 여전히 비어있었다.

반나절 동안 그들 말고는 손님들이 아무도 오지 않았다.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미천거원족들은 전부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보아하니…… 손님이 안 올 것 같군.”

검은 털이 난 원숭이가 입을 열었다.

“휴, 이제 우리 종족에 존엄이라곤 없어……”

“인족을 족장으로 모시는 건 역시 아니었어……”

수군거리는 소리는 점점 커졌으며 내뱉는 말도 점점 심각해졌다. 석목은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다시 폈다.

“후후후, 이게 뇌 형이 말하는 실력이 뛰어난 자인가? 같은 종족들도 저렇게 수군거리는군. 이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천거원족들에게 쫓겨나겠소?”

계방응이 석목을 가리키며 웃으면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뇌동은 안색이 굳어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뇌 형, 구경도 다 한 것 같으니 이제 돌아가지요.”

계방응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옷의 주름을 펴고는 뇌동을 향해 말했다.

“그…… 그건 좀 그렇지. 축전이 끝나고 가겠네.”

뇌동은 일어서지 않았다.

“다 봤잖소. 이 축전은 미천거원 일족이 웃음거리가 된 셈이나 다름없소. 더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으니 뇌 형이 가기 싫다면 저는 먼저 가보겠소.”

계방응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뇌동은 난감한 기색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뇌동이 망설이자 계방응은 곧바로 돌아서서 떠나려했다.

“계 형, 잠시만. 석 족장에게 인사라도 하고 가자고.”

뇌동이 계방응을 불러 세우고는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지.”

계방응은 귀찮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석목과 몇몇 장로 앞으로 다가왔다.

“석 장로님……”

뇌동은 석목을 향해 인사를 올리고는 입을 열더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종족에서 해야 할 일이 생각나 작별 인사를 올리러 왔습니다.”

계방응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백장은 성격이 급했기에 그 말에 ‘퍽!’ 소리를 내며 의자를 치며 일어섰다.

“염치없는 놈. 우리 미천거원 일족의 족장 수임 축전이 어떤 행사인지 알고나 있소? 여긴 오고 싶다면 오고 가고 싶다면 가는 곳이 아니오!”

백장이 호통을 쳤다.

백비는 싸늘한 눈빛으로 지켜보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뇌동은 눈앞에 벌떡 일어선 산 같은 몸집을 바라보며 흠칫 놀라더니 다급하게 해명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어찌 감히……”

“둘째 장로님, 괜찮습니다. 손님이시기도 하지만 종족에 일이 있다고 하시니 편하게 돌아가라고 하세요. 다만 뇌 족장님, 그런데 정말 종족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그럼요.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는 겁니까?”

뇌동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계방응이 끼어들었다.

광장에 모인 미천거원족들은 석대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상황을 발견하고는 전부 낯빛이 어두워져선 큰소리로 웅성거렸다.

“갈 테면 가라고 하지. 조금 있으면 자리가 차서 앉을 자리도 없을 텐데.”

이때, 광장에서 누군가가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미소를 지으며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계방응이 안색을 굳히며 고개를 돌렸다.

미천거원족들이 거대한 몸집을 움직이며 중간에 길을 내주었다.

보라색 피풍의와 보라색 눈이 돋보이는 청년이 큰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뒤로는 종족 사람들 수십 명이 따라왔는데 전부 비범한 기운을 풍겼다.

미천거원족들이 고개를 숙여 궁금한 듯이 바라보았다.

“공자님, 길에서 시간을 빼앗겨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보라색 눈의 청년이 큰 걸음으로 석대에 올라와서는 석목을 향해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이제 자정마우 일족의 족장이니 더는 공자라고 부리지 말라니까. 석 형이라 불러.”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보라색 눈의 청년은 자정마우 일족의 신임 족장인 방진이었다.

“뭐? 자정마우 일족의 족장이라고?”

다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정마우 일족이 왔다니……”

“공자님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목숨도 지킬 수도 없었을 텐데, 족장 자린 더 말할 것도 없지요. 공자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앞으로는 석 형이라 부르겠습니다.”

방진이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방진이 하는 말을 듣자 계방응은 안색이 순식간에 굳었다.

비록 예전만큼은 아니었지만 자정마우 일족은 팔황고족 중에 하나였다. 때문에 많이 쇠락했어도 여전히 현준같은 작은 종족이 따라갈 수 없을 실력을 갖췄다.

“뭐? 우리 족장이 저분을 자정마우 일족의 족장 자리에 앉게 도와드렸다고?”

미천거원족들도 전부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예상 밖의 광경이 펼쳐지자 현장은 들끓기 시작했다.

방진과 석목이 매우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미천거원족들은 전부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 없었다.

“음, 석 형, 이미 신경에 도달했네요?”

방진이 좋아하며 물었다.

“몇 달 전 그리 됐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역시 석 형이군요. 하하하.”

방진이 큰소리로 웃었다.

방진과 석목이 말을 하고 있는 동안 광장은 또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용모가 다르고 복식이 전부 다른 각 종족에서 온 수련자들이 광장을 지나 석대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뇌동은 난감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리고 화가 난 얼굴로 계방응을 바라보았다.

계방응은 입을 벌린 채 눈을 크게 뜨고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백장은 환하게 웃으며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이했다.

대장로와 셋째 장로도 서로 마주보고는 석목의 옆으로 다가와 함께 축하하러온 손님들을 맞았다.

“하하, 석 형. 늦었습니다.”

이때, 붉은 머리를 휘날리는 강건한 사내가 사람들 속을 뚫고서 기세등등하게 석목의 앞으로 다가왔다.

짙은 눈썹에 큰 눈, 번쩍이는 눈빛에서는 패기가 넘치는 기운이 풍겼다.

“적염맹호…… 적염맹호 일족이다.”

미천거원족이 소리를 질렀다.

“적염맹호 일족도 왔다니.”

놀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후후, 축전이 열리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딱 알맞게 왔네.”

석목이 웃으며 반겼다.

적염맹호 일족의 족장인 안화가 나타났다.

방진은 웃는 얼굴로 다가가 안화의 가슴을 가볍게 쳤다. 그리고 셋은 동시에 큰소리로 웃었다.

둘은 비슷한 처지에 처해 비슷한 일을 겪었으며 또 석목에게 도움을 받아 종족에서 다시 일어섰으니 석목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석목이 신경에 도달한 모습을 본 안화는 놀라기도 했으며 또한 기뻐했다.

안화도 신경 수련 경지라 방진은 두 사람을 매우 부러워했다.

안화가 온 뒤로도 축하를 해주러 온 손님들이 끊이질 않았다.

반시진 만에 석대는 각 종족에서 온 족장들만으로도 이미 수십 명이 넘어 꽉 찼다.

이 종족들은 대부분 미천거원 일족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왔는데 천봉 일족에서 석목을 만났던 요족들이라 석목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전부 족장 때문에 온 사람들이야……”

하얀 털이 자란 늙은 원숭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 말을 들은 미천거원족들은 전부 달라진 눈빛으로 새로 수임하는 족장을 바라보았다.

전에는 석목이 백원왕의 후손이기에, 또는 신경 수련 경지에 도달했기에 존경심이 생겼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미천거원 일족은 오랫동안 은거해서 이렇게 시끌벅적한 광경이 너무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종족 사람들은 전부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축전을 치를 시간이 다가오자 석목과 세 장로는 각 종족에서 온 족장들을 자리로 안내했다.

방진은 계방응의 옆을 지나가다가 눈을 반짝이며 다시 돌아섰다.

“간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왜 아직 여기 계시나요? 종족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요?”

방진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계방응은 난감한 기색을 드러내더니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석 족장께서 치르는 수임 축전인데 우리 종족에서 벌어진 작은 일은 아무것도 아니죠. 정말 아무것도 아녜요.”

“하하하, 족장께서 가기 싫다고 해도 남는 자리가 없을 텐데요.”

방진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얼굴이 일그러진 계방응을 거들떠보지도 않고는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

뇌동도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으로 석목에게 다가가 깊게 인사를 올리고는 아무 말 없이 광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석목은 뇌동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를 불러 세웠다.

“뇌 족장님, 잠시만.”

석목이 부르자 뇌동은 멈칫하더니 다시 천천히 돌아왔다.

“석 족장님, 염치가 없어서 더는 못 있겠군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뇌동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난감해하며 말했다.

“천봉 일족에서 뇌 족장님이 처음으로 저에게 다가와 미천거원 일족과 벗을 맺었어요.”

석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뇌동은 석목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진심으로 천정과 싸우려는 마음만 있으시다면 우리 미천거원 일족의 벗입니다. 그러니 제가 왜 벗을 멀리 밀어내겠습니까? 뇌 족장님께선 어서 자리에 앉으세요.”

석목이 뇌동을 바라보며 말했다.

뇌동은 고개를 번쩍 들고는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 족장님, 역시 아량이 넓으시군요.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뇌동은 손을 굽히며 진심이 가득담긴 말을 내뱉었다.

석목은 웃으며 뇌동을 석대에 놓인 자리에 앉혔다.

석대에 놓인 자리는 이미 꽉 차버려 이른 아침에 보던 광경과는 확연히 달랐다.

“후후, 여긴 당신이 앉을 자리가 아니오.”

방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계방응은 아직 앉기도 전에 그 말을 듣고는 곧바로 어색하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방 족장님, 축전이 이제 열리는데 이 자리는 비어있으니……”

계방응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에 방진이 먼저 말을 끊어버렸다.

“누가 비었다고 했습니까? 이제 곧 올 겁니다.”

방진이 광장으로 시선을 던지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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