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48화 (748/916)

748화. 곳곳에서 축하하러 오다

광장에서 손님들이 또 한 무리 걸어왔다.

이 무리는 족히 백 명이 넘었으며 가장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은 화려한 옷을 입은 청년이었다. 평범한 외모에 몸매도 평범했으나 이글거리는 두 눈에서는 영리함이 가득 묻어있었다.

“서유금, 이 녀석도 왔다니.”

석목을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서유금의 뒤로 기운이 매우 깊은 노인이 몇 명 따라왔는데 그들은 전부 붉은색 비단옷을 입고 있었으며 동그란 동전 모양 그림이 옷에 수놓아져 있었다.

이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전부 젊은이들이었는데 모두 수련 경지가 매우 높았다.

“비천서 일족이잖아.”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천하 성역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종족?”

“저들이 여기에 오다니……”

사람들 속에서 감탄하는 소리기 여기저기서 들려왔으며 누군가는 큰소리로 웃었다.

“석 형, 축하드려요.”

서유금과 몇몇 노인들은 함께 석대로 올라와 석목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서 형, 오랜만이군요. 잘 지내셨나요?”

석목이 웃으며 답했다.

“하하! 석 형, 경지를 돌파하는 속도가 정말 놀랍네요. 벌써 신경에 진입했다니.”

서유금이 석목을 한참 훑어보며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서유금의 뒤에 서 있던 몇몇 사람들이 서로 눈치만 살폈다.

“이 분들은……”

석목은 웃으며 서유금의 뒤로 시선을 던졌다.

“전부 우리 종족의 선배님들이죠. 석 형과 겪었던 일을 말했더니 전부 따라오시겠다고 하셔서.”

서유금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석목은 그제야 눈치를 챘다. 아마 서유금의 종족 사람들은 석목이 갖춘 실력을 잘 알지 못했기에 늙은 선배님들을 보내 알아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선배님들, 어떻습니까?”

서유금이 몸을 살짝 돌려 노인들에게 물었다.

“소주님, 역시 안목이 남다르시군요. 석 족장님은 역시 비범하시네요. 우리 종족이 벗이 될 수 있다면 큰 행운입니다.”

가장 앞에 있던 노인이 침묵을 깼다.

“소주님?”

석목은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서유금을 바라보았다.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서유금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우선 자리에 앉으시죠. 축전이 곧 시작될 테니.”

석목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서유금은 방진의 옆에 놓인 자리로 다가가서는 한껏 일그러진 얼굴로 서 있는 계방응을 한 번 쳐다보고는 신경도 쓰지 않고서 자리에 앉아 방진과 담소를 나누었다.

계방응은 경솔했던 자신의 행동이 너무 후회스럽고도 난감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세상밖에 나오지 않았던 미천거원 일족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인족을 내세웠다. 그런데 비천서, 자정마우와 적염맹호 이 세 종족을 포함한 천하 성역의 요족 수십 곳에서 축하를 하러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비록 심사가 뒤틀릴 대로 뒤틀렸으나 계방응은 가라고 해도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제 미천거원 일족과 악연을 맺게 되면 이 수십 요족들도 현준 일족과 연을 끊을 테니 그렇게 되면 종족이 몰락하는 건 시간문제일 터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계방응은 웃는 얼굴로 족장들 가장 왼편에 서 있었다.

이때, 해가 중천으로 떠올라 대장로가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지팡이를 짚은 채 석대 가운데로 다가와 제천의 고문을 읽기 시작했다.

“서 형, 천봉, 지룡과 반귀 일족은 사자를 보내지 않았나 보네요.”

방진이 서유금을 바라보며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이상할 것도 없지. 미천거원 일족은 오랜 기간 세상을 등지고 살았는데 그 사이에 삼대 종족이 힘을 모아 서로 천하 요족들의 우두머리가 되겠다고 날뛰었으니. 이제 석 형이 미천거원 일족을 이끌고 다시 복귀를 하려고 하니까 그 꼴은 절대 못 보겠다는 걸세. 게다가 연합군은 전방에서 싸우느라 아마 축전에 참여할 틈도 없었을 거야.”

서유금이 담담하게 말했다.

“왜요? 천정에서 병력을 증강했답니까?”

서유금은 소식을 매우 잘 알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원래는 대치하던 상태였으나 이제는 오래 못 버틸 것 같다고 하더라고. 우리 종족의 늙은이들은 그 위험을 감지해서 석 형에게 찾아왔고. 그런데 석 형이 이렇게 빨리 신경에 도달한 건 정말 의외라 아마 우리 종족의 늙은이들도 크게 의심을 하진 않을 거야.”

서유금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석목에게로 던졌다.

고문을 읽은 후에 대장로가 정식으로 선언을 하여 석목은 미천거원 일족의 족장이 되었다.

석목은 미천거원 일족의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낸 후에 정중하게 대장로에게서 족장의 신물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석대 가운데로 와서 한 손으로 족장의 신물을 들고는 우렁찬 목소리로 선포했다.

“저, 석목은 백공의 혈맥을 이어받아 미천거원 일족의 족장이 되었습니다. 선조님께서 남기신 유언대로 천하 성역의 종족들과 연합하여 천정을 멸하고 만선을 죽이겠습니다!”

석목은 뒷부분을 말할 때, 유난히 힘을 주었다. 그러자 석목의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지며 광장에서 메아리쳤다.

그 말을 들은 미천거원 일족은 오랫동안 짓눌렸던 분노를 터뜨리듯 혈맥에 숨어있던 불굴의 본성을 그대로 내비쳤다.

“천정을 멸하고, 만선을 죽이자!”

“천정을 멸하고, 만선을 죽이자!”

미천거원 일족은 전부 우르르 일어서서는 일제히 큰소리로 외쳤다.

대장로는 종족 사람들을 바라보며 눈에 복잡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 순간을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던 것이었다.

석대에 앉은 다른 요족 손님들도 분위기에 물들어 혈맥이 부푸는 걸 느끼며 참지 못하고서 함께 소리를 지르려했다.

이 소리는 하늘에서 한참 동안 울려 퍼졌다.

석목은 미천거원 일족을 일일이 훑어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혈맥이 하나로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천 년 전, 백공이 이끄는 가운데 미천거원 일족과 여러 종족들은 힘을 합쳐 천정과 싸웠죠. 비록 천정의 음모로 백공께선 운명을 하였지만 천정도 원기를 크게 다쳐 천 년간 정전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천정이 다시 우리를 침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우리 천하 성역의 백족들을 괴롭혔죠. 허나 오늘, 저 석목과 우리 종족이 다시 세상에 나갈 것을 선포하며 동시에 천정을 향해 전쟁을 선포할 겁니다. 여기에 오신 여러분께선 우리 종족과 다시 연합을 맺고서 천정과 싸우겠습니까?”

석목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축하하러 온 요족을 바라보며 우렁찬 목소리로 물었다.

석목의 목소리는 아주 진중했는데 그 말은 마치 허공에 내던져진 것 같았다. 마지막 물음은 마치 청천벽력과도 같았으며 또 가뭄에 내리친 천둥소리가 같기도 했다. 그 소리를 듣자 광장은 고요해져 한참 동안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때, 붉은 머리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적염맹호 일족의 족장, 안화는 우리 종족을 이끌고 석 족장님을 맹주로 모시며 미천거원 일족과 함께 천정과 싸울 것이며 백 번 죽어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안화가 석목을 향해 인사를 올리고는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자정마우 일족은 석 족장을 맹주로 모시고, 맹주께서 내리신 지시대로 움직이며 천정과 싸우겠습니다.”

방진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석목을 향해 인사를 올리고는 말했다.

“비천서 일족은 석 족장을 따라 연맹에 필요한 양식과 영기, 그리고 갑옷을 제공하여 함께 천정에 대항하겠습니다.”

서유금이 목소리를 냈다.

“뇌마 일족은……”

“교귀 일족은……”

* * *

“암웅 일족은 석 족장을 따라 생사를 함께하며 천정을 멸하고 만선을 죽이겠습니다!”

광장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더니 격앙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미천거원 일족을 우두머리로 하는 연합이 이렇게 성립되자 석목은 미천거원 일족의 족장으로서 아무런 의심 없이 연합의 맹주가 되었다.

미천거원 일족은 석대 가운데에 서 있는 석목이 신처럼 느껴졌다.

석목은 들어오면서부터 미천거원 일족에 너무나 많은 놀라움과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이 시각, 미천거원족들이 석목을 바라보는 시선엔 존경과 신뢰가 가득했다.

대장로는 석목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로는 굽은 허리가 더 구부러진 것 같았고, 바싹 긴장했던 어깨가 조금은 풀렸으며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지고 있던 짐을 드디어 내려놓은 느낌이었다.

둘째 장로의 눈에도 희열이 가득 찼는데 미천거원 일족에서 이 광경을 가장 갈망했던 사람은 바로 둘째 장로였다.

“정말로 해내다니……”

셋째 장로는 이 광경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백홍은 광장 구석에 서서 안색이 어두운 얼굴만 내밀고 있었다.

* * *

큰 축제가 벌어지니 미천거원족들은 전부 축제 분위기에 빠져있었다.

축전에 참여한 여러 일족들도 기분이 좋아졌다. 다들 연합을 맺었으니 드디어 일말의 희망을 봤기 때문이었다.

미천거원 일족은 곧바로 광장에서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

먹고 마시는 건 수련자들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다들 흔쾌히 응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서유금, 안화, 방진 그리고 몇몇 신경 강자들이 한곳에 모였다.

석목은 주인이니 손님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다시 자리로 돌아와 서유금, 안화, 방진을 비롯한 사람들과 연합에 관련된 일을 논의했다.

“미천거원 일족이 다시 세상에 나온 건 실로 축하할 일이지요.”

이때, 뜬금없는 소리가 밖에서 전해졌다.

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현장을 가득 메운 소리를 짓누르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마귀의 목소리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파고 들어가 신혼을 흔들었다. 때문에 수련 경지가 약한 사람들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들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석목이 흠칫 놀라 입을 벌려 큰소리를 내며 사람들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소리를 날려버렸다.

“누가 농간을 부리는가?”

석목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후후, 당신이 미천거원 일족의 신임 족장인 석목이군요. 미천거원 일족이 고작 인족 놈을 내세워 족장이라 부르다니.”

괴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허공에서 파동이 일더니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허공에 나타났다.

서른 살 넘는 중년 남자였는데 각진 얼굴에 짧은 수염이 났으며 머리에는 옥비녀를 꼽고 있었다. 또한 두르고 있는 복식을 보니 마치 서생 같았다.

남자는 아무런 법력도 시전하지 않았지만 그가 허공을 밟자 허공에 하얀 얼음꽃이 피었다.

석목의 동공이 살짝 줄어들었다.

아무런 기운을 풍기지 않았지만 매우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신은 누군가? 어째서 여기서 훼방을 놓는 게지?”

석목이 다가가 묵직한 목소리로 물으며 곁눈으로 대장로와 둘째 장로를 보았다.

축전이 열린 후로 누군가 훼방을 놓는 걸 방지하기 위해 대장로와 둘째 장로에게 미천거원 일족의 수호 대진을 펼치라고 했는데 이 자는 어떻게 들어왔을까?

혹시 축전에 참여하는 손님들 속에 묻혀서 들어왔는데 이제야 본색을 드러낸 건가?

대장로와 둘째 장로는 이미 수호 대진을 펼치라고 명을 내렸기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미천거원 일족의 수호 대진은 다들 연합하여 만든 진법이라 평범한 신경 존재는 절대 여길 드나들 수 없었다.

그런데 저 자는 어떻게 들어왔을까?

광장에는 적잖은 사람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석목을 비롯한 미천거원 일족들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쉽게 종족에 드나들 수 있다니. 이건 마치 모든 미천거원족의 뺨을 후려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시선을 느끼자 대장로는 안색이 더욱 굳어졌다. 특히 둘째 장로는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훼방꾼을 노려보았는데 만약 석목이 없었더라면 이미 공격을 했을 터였다.

“미천거원 일족이 드디어 세상에 나온다하여 제준 어르신이 저를 보내 축하의 선물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남자는 석목이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자 광장이 시끌벅적해지며 전부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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