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9화. 상고 신통
쓱! 쓱!
몇몇 그림자가 날아와 석목의 옆에 섰는데 그들은 미천거원족의 장로들과 현장에 있던 신경 강자들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여기선 당신을 환영하지 못하겠군요. 나가세요!”
석목이 싸늘하게 말했다.
“석 족장님, 왜 이렇게 냉대를 하십니까? 우선 축하 선물부터 확인하시지요.”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후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노란빛이 석목에게로 날아갔다.
“족장님, 조심하세요!”
둘째 장로가 놀라서 소리쳤다.
다들 영기 법보를 꺼내들고 막으려했다.
“잠시만!”
석목은 손을 흔들며 사람들을 말렸다.
노란빛이 사라지더니 선물 상자가 석목 옆에 놓인 탁자 위에 떨어졌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노란 상자를 쳐다보기만 할 뿐, 열지는 않았다.
“후후, 석 족장님, 혹시 그 속에 금제라도 있을까봐 그럽니까?”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성격이 급한 둘째 장로는 곧바로 다가가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안에 있는 물건을 보고는 안색이 굳었다.
그 속에는 하얗고 투명한 얼음이 들어있었다.
얼음 속에는 노란색 작은 사람이 갇혀있었고, 이에 사람들은 안색이 굳어버렸다.
이건 수련 경지가 성계 이상인 무인의 성배였다.
석목은 이 작은 사람과 용모가 비슷한 자를 본 적이 있었다. 그는 바로 천봉 축전에 나타났던 지룡 일족의 신경 강자인 적봉이었다.
“지룡 일족의 신경 장로, 적봉의 성배입니다.”
대장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은 전부 화난 기색을 드러냈다.
적봉의 성배가 이곳에 있다는 건 그 자가 이미 죽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이 성배를 가져온 건 적나라한 도발이었다.
석목은 눈에 분노가 스쳤으나 이내 차분해졌다.
하얀 옷을 입은 남자는 서생 같은 모습이었지만 쓰는 수단이 포악하기 그지없었다.
“천정 놈! 죽어!”
분노한 목소리가 전해지더니 둘째 장로가 하얀 옷을 입은 남자를 덮쳤다.
“둘째 장로! 안 돼!”
대장로가 안색을 바꾸며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한 발 늦었다.
둘째 장로가 하얀 옷을 입은 남자 앞으로 다가가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에서 금빛이 번졌으며 금빛 속에 묻힌 팔이 몇 배나 불어났다. 그리고 팔 위에 금색 털이 자라나면서 원숭이처럼 변하였다.
강력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커다란 주먹에서 폭발하며 강풍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기세등등하게 날아가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은 뒤로 물러났으며 수련 경지가 약한 사람들이 비틀거렸다.
허공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늘을 찌르는 금빛이 둘째 장로의 주먹에서 날아가 빠른 속도로 하얀 옷을 입은 남자에게 드리웠다.
둘째 장로가 갑자기 공격하자 하얀 옷을 입은 남자는 아직 반응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역시, 미천거원 일족은 힘으로 유명한 팔황고족이군요!”
“죽어라! 천정의 개 같은 놈!”
주변 사람들도 전부 놀랐다. 다들 둘째 장로가 보여준 위력에 놀라면서도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죽어버리기를 원했다.
안화, 자정마우 일족의 방회, 대장로와 같은 신경 강자들의 눈에서도 희열이 스쳤다.
하지만 석목은 눈살을 찌푸렸다.
모든 사람들이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큰 부상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이변이 생겼다!
묵직한 소리가 금빛에서 흘러나왔다.
둘째 장로의 몸이 순간 멈춰버렸으며 주먹은 그대로 막혀버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금빛이 흩어지더니 안쪽 상황이 그대로 드러났다.
하얀 옷을 입은 남자는 뒷짐을 지고 서 있었고, 옷자락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리고 차분한 표정으로 둘째 장로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앞에 하얀 얼음이 한 층 나타나 산처럼 다가오는 둘째 장로의 주먹을 막아냈다. 그리고 단 반 뼘도 되지 않는 얼음벽에는 작은 균열 하나 생기지 않았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내지르던 환호성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둘째 장로는 안색을 붉혔는데 이런 수모를 당하는 건 처음이었다.
둘째 장로가 소리를 지르며 몸에 빛을 번쩍이면서 순식간에 크기가 수백 장에 이르는 원숭이로 변하였다.
찬란한 금빛이 둘째 장로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는데 그 모습은 마치 금색 태양 같았다.
둘째 장로가 중얼거리며 두 손을 높이 치켜들고는 손에 금색 화염을 드리웠다.
화염이 한곳으로 모이자 순식간에 커다란 태양 허영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강렬하고도 포악한 기운이 뜨거운 태양 허영에서 뿜어져 나왔는데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 뜬 태양을 끄집어 내린 것만 같았다.
이어 태양 허영이 얼음벽에 묵직하게 떨어졌다.
쾅!
이 일격에 담긴 위력은 조금 전보다 몇 배는 더 커 하얀 얼음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드디어 균열이 생기면서 부서졌다.
하얀 옷을 입은 남자는 그제야 둘째 장로를 싸늘하게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코웃음만 칠 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남자는 크게 움직이지 않고서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퍽!
얇고 투명한 빛이 남자의 손가락 끝에서 날아 나왔다. 그 빛은 아무런 기운도 없었으며 그냥 평범한 빛줄기 같았다. 하지만 빛의 겉에는 무수히 많은 부문들이 새겨져 있었다.
하얀빛이 반짝이며 가볍게 둘째 장로가 만든 태양 허영을 부숴버렸다.
태양 허영에 붙은 불이 빠르게 꺼지면서 허영은 격하게 흔들리다가 이내 흩어져버렸다.
둘째 장로는 안색이 굳었다. 대일비술은 둘째 장로가 웬만해서는 꺼내지 않는 비장의 한 수였는데 이렇게 가볍게 터져버렸다니.
얇은 빛은 계속해서 날아가 둘째 장로의 머리로 향했다.
둘째 장로는 순간 강력하기 그지없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만약 날아오는 하얀빛에 맞게 되면 죽어버리고 말 터였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에 있었기에 피할 수도 없었다.
“비켜!”
둘째 장로가 눈을 감은 채 죽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강력한 힘이 밀려오며 둘째 장로를 옆으로 밀어냈다.
픽!
하얀빛이 둘째 장로의 어깨를 뚫고서 지나갔다.
구멍이 뚫린 어깨엔 극도로 차가운 기운이 상처를 통해 스며들었다. 때문에 둘째 장로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얀 얼음이 서서히 나타나 둘째 장로의 몸 곳곳으로 퍼졌다.
이때, 금색 검광이 반짝이더니 둘째 장로의 왼팔을 잘라버려 허연 뼈가 그대로 드러났고,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둘째 장로의 얼굴은 조금 전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잘려나간 왼팔은 순식간에 하얀 얼음으로 뒤덮여 산산조각이 났다.
그림자가 반짝이며 대장로가 둘째 장로 옆으로 다가와 하얀빛을 드리워 상처 부위를 감쌌다. 그러자 흘러나오던 피가 조금씩 멈췄다.
석목은 잘린 팔에서 시선을 돌려 하얀 옷을 입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한빙 신통이 대단하시군요!”
석목이 천천히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석 족장님도 제 일격을 받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석목을 바라보더니 눈에 싸늘한 빛을 내비쳤다.
픽!
조금 전보다 두 배나 굵은 하얀빛이 가벼운 소리와 함께 석목에게로 날아왔다.
하얀빛이 내는 속도는 아까보다 훨씬 빨라 순식간에 석목의 앞까지 다가왔다.
석목이 큰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휘갈겼다.
쿵!
붉은 화염이 석목의 팔에서 타올랐는데 둘째 장로가 시전했던 태양 허영 보다 훨씬 뜨거웠다.
붉은 화염은 곧장 흉악한 화룡으로 변하여 날아와 포효하더니 하얀빛을 삼켜버렸다.
“족장님, 조심해야해요. 저건 상고 신통인 ‘빙백신광(冰魄神光)’입니다. 세상 만물을 얼려버릴 위력을 지니고 있으니 절대 몸으로 막아서는 안돼요.”
대장로가 초조하게 전음으로 전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안색이 변했다.
“하하, 이 신통을 아는 사람이 다 있다니. 하지만 늦었네요!”
하얀 옷을 입은 남자는 큰소리로 웃으며 법결을 날렸다.
칙, 칙!
붉은 화룡의 몸속에서 싸늘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화룡은 순식간에 하얀 얼음 조각상이 되어 얼어붙었다.
그 광경을 본 광장에 모인 신경 강자들은 전부 놀란 표정을 지었으며 누군가는 두려운 기색을 드러냈다.
석목이 조금 전에 시전한 화룡의 위력은 매우 강력했다. 하지만 이렇게 강력한 신통도 순식간에 얼어붙었으니 빙백신광은 역시 엄청난 신통이었다.
쓱!
얇은 빛은 잠깐 멈추는듯하더니 얼어붙은 화룡에게서 날아 나와 곧장 석목에게 날아갔다.
빙백신광은 화룡을 얼리면서 힘을 소모해 조금 전보다 어두워졌다.
하얗게 얼어붙은 용이 산산이 부서지며 하늘에 얼음 조각이 흩날렸다.
하지만 화룡을 얼리며 시간을 끄는 동안 석목은 이미 준비를 마쳤다.
석목의 눈에서 기이한 빛이 스쳤다.
적, 금, 청, 황, 남 다섯 갈래 빛이 석목의 몸에서 동시에 번졌다.
적, 금, 청, 황 네 가지 빛 속에서 각각 작은 가마 허영이 나타났는데 유독 파란색에만 아무것도 없었으며 심지어 매우 어두웠기에 유난히 눈에 띄었다. 하지만 네 가지 빛과 조화를 이룰 수는 있는 정도였다.
석목은 주문을 외우며 다섯 갈래 빛깔을 손으로 모아 앞으로 밀어냈다.
오색 빛이 얽히고설키며 빙글빙글 돌면서 석목 앞에 오색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소용돌이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경 속에서 신겁을 겪은 석목은 현묘한 오행 전환을 깨우쳐 석 달 동안 수련을 했다. 그 덕분에 구전현공을 수련하진 못했지만 구전현공과 오행을 함께 사용하는 오묘한 이치를 발견했다.
아쉽게도 구전현공 여덟 번째 단계인 물의 힘을 아직 수련하지 않았기에 명수결로 물의 힘을 대체했다.
빙백신광이 단번에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자 소용돌이가 곧바로 커지더니 수많은 하얀색 부문들이 날아 나와 오색 소용돌이를 얼리려고 했다.
하지만 오색 소용돌이는 빠르게 돌아가며 빛이 얽혀 하얀색 부문들을 전부 녹여버렸다.
동시에 막강함 힘이 소용돌이에서 뿜어져 나와 빠르게 빙백신광에 담긴 한기를 삼켰다.
오색 소용돌이의 빛이 점점 밝아지면서 곧바로 하얀 빛을 철저히 짓눌렀고, 빙백신광은 끊임없이 흔들리더니 사라질 기미를 보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하얀 옷을 입은 남자는 얼굴이 살짝 일그러진 채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손끝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와 찬란하게 빛났지만 따뜻한 느낌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오히려 뼈를 찌르는듯한 차가운 기운만 풍겼다.
픽!
더 굵은 빙백신광이 날아 나왔다.
석목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날아오는 빙백신광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는 오색 빛을 더 크게 드리웠다. 그러자 적, 금, 청, 황 작은 가마 네 개가 다시 나타나 소용돌이 속으로 녹아들었다.
쾅!
오색 소용돌이에서 굉음이 울리자 크기가 두 배나 더 불어났으며 돌아가는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빙백신광은 더는 버티지 못한 채 ‘쩍!’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으며 오색 소용돌이 속으로 묻혀버렸다.
석목이 한 손을 흔들자 오색 소용돌이의 빛은 더 커지며 반대로 치솟았고, 이어 석목이 다섯 손가락을 쫙 폈다가 손목을 꺾었다.
그러자 오색 소용돌이가 갑자기 줄어들며 그 속에서 오색 빛이 날아 나와 두 번째로 다가오는 빙백신광과 부딪쳤다.
쾅!
엄청난 신통이 내뿜는 빛이 동시에 흔들리며 찢어졌다.
하늘을 치솟는 하얀빛과 오색 빛이 폭발하며 허공에 물결이 일렁이더니 곧 강풍이 휘몰아쳤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석목과 하얀 옷을 입은 남자를 중심으로 광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전부 밀려났다.
석목은 육신의 힘이 최고봉으로 달려가고 있었기에 이 정도 파동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 몸도 한번 비틀거리지 않았다.
하지만 하얀 옷을 입은 남자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석목은 눈에 빛을 반짝이며 환영으로 변하여 자리에서 사라져버렸고, 이어서 순식간에 남자의 뒤에 나타나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석목의 주먹은 둘째 장로의 주먹과 달리 아무런 기세도 없어 보였으며 별다른 기운을 풍기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럴수록 더 무서운 법이었고, 주먹의 힘을 안으로 묻어버렸다는 건 하나도 기운을 흘리지 않은 채 적의 몸에서 그대로 터뜨릴 것이라는 의미였다.
육신의 힘을 엄청나게 잘 다스릴 수 없었다면 절대 이 방법을 쓸 수 없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