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4화. 또 다른 목적
대장로는 석목의 처소로 향했다.
순간, 석목의 방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대장로를 비롯한 일행들은 일제히 석목의 방을 향해 날아가 근처로 다가왔다.
허나 방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으며 크기가 몇 장에 이르는 노란색 화염만 둥둥 떠다니면서 두려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모든 게 사라졌으며 전함도 아래쪽이 불에 타버려 큰 구멍이 뚫렸다.
대장로 일행은 수십 장 밖에 서 있었지만 여전히 뜨거운 열기를 느꼈으며 신경 강자들도 가까이 가기를 꺼려했다.
“이건 무슨 화염 신통인가! 이렇게 대단하다니!”
비천서 일족의 장로 한 명이 어안이 벙벙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다들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일행들 중에 가장 놀란 사람은 대장로였다.
언제나 끄덕 없는 태산과도 같던 대장로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서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이 노란 화염은 바로 호천성염이었으며 이 같은 위력과 기세는 곧 원만의 경지에 이르리란 걸 말해줬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석목은 얼마 전에 이 신통을 수련하기 시작했는데 불과 이십 일 만에 상고 신통을 대성까지 수련했나?
대장로는 고개를 저으며 마음속에 이는 놀라움을 억눌렀다. 그러나 눈에는 복잡한 기색 어렸다.
상식으로는 절대 납득이 가지 않을 일이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곧이어 대장로는 눈에 기쁨이 가득 어렸다. 어떻게 수련을 해냈든지 석목의 실력이 강해질수록 연합과 미천거원 일족에겐 유리했다.
특히 이런 전쟁이 임박한 중요한 시점이라면!
“대장로님, 맹주님은 지금 폐관의 수련을 하며 중요한 시기에 놓인 것 같군요. 어떻게 할까요?”
안화가 물었다.
“우선 기다려봅시다. 아마 곧 깨어나겠지요.”
대장로가 전혀 망설이지 않고선 말했다.
대장로가 말을 끝내자마자 노란색 화염이 갑자기 소용돌이치면서 뜨거운 열기를 폭발시켜 일행들은 또 뒤로 밀려났다.
그러다가 노란색 화염이 이내 줄어들며 곧바로 석목의 모습이 나타났다.
석목 근처에는 맷돌만한 초록색 화염이 둥둥 떠 있었으며 그 안에선 새 한 마리가 어렴풋이 보였다.
대장로 일행은 이내 석목의 곁에 있던 앵무새를 떠올리며 대경실색했다.
채아가 푸른 화염 속에 들어있었다.
마지막 노란 화염 한 점마저 석목의 몸속으로 스며드는 순간, 석목은 천천히 눈을 떴다.
석목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일어섰다.
“맹주님, 괜찮으십니까?”
대장로 일행이 다급하게 석목에게로 다가와 물었다.
“괜찮습니다. 비술 하나를 수련하느라 힘을 통제하지 못해 방을 부숴버렸군요. 여러분, 많이 놀라게 해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석목이 가볍게 말했다.
며칠 동안 채아와 수련을 하면서 석목의 호천성염은 이미 완벽히 대성에 이르러 원만의 경지와 단 한 걸음만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호천성염은 상고 신통답게 공격력과 파괴력이 구전현공 불의 힘과 양의 화염보다 훨씬 강력했다.
“괜찮으시다면 다행이군요. 아, 우리는 이미 전방에 도착했습니다. 앞쪽에 보이는 게 바로 묵운성입니다.”
대장로가 석목에게 말했다.
“벌써 전방에 도착했다고요? 수련을 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석목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옆에서 떠다니는 푸른색 화염을 한 번 쳐다보고는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채아는 호천성염의 도움을 받아 몸속에 깃든 요화가 이미 원만에 가까워져 곧 신경에 진입할 것 같았다.
석목은 진기를 가득 꺼내 푸른 화염 주변에 파란 광막을 펼치더니 화염을 안으로 감쌌다.
그리고 앞에 놓인 행성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신경 강자들도 전부 석목의 옆으로 날아갔다.
“이미 전방에 온 이상, 숨어 다니지 맙시다. 명을 내리시죠. 묵운성을 목표로 출발합니다.”
석목이 생각에 잠겼다가 단호하게 명을 내렸다.
* * *
묵운성에 들어갈지 말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던 사람들은 석목의 명령이 떨어지자 망설이지 않고서 전함을 몰아 묵운성으로 우르르 내려왔다.
“어떻게 된 겁니까?”
전함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진 황량한 행성을 바라보며 서로 눈을 마주쳤다.
묵운성은 다양한 면에서 꽤 괜찮은 행성이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 앞에 펼쳐진 것은 도처에 황사가 자욱한 황량한 광경이었다.
땅은 울퉁불퉁했으며 곳곳에 커다란 웅덩이가 파여있었다. 아마도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펼쳐진 것 같았는데 심지어 온 행성이 거대한 바람과 함께 부숴질 것만 같은 기미까지 보였다.
행성의 영맥은 이미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온 행성이 황량하고도 고요했다.
뿐만 아니라 삼대 종족의 연합군과 천정이 남긴 흔적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보아하니 격한 전투가 벌어졌던 것 같군요. 행성의 영맥이 이미 파괴되었어요.”
대장로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행성은 마치 껍데기가 한 층 벗겨진 것만 같았다.
“천정 놈들이 천하 성역을 철저히 파괴하려고 작정한 것 같습니다!”
안화가 주먹을 꽉 쥐고는 이를 악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분노가 치밀어 올라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여러분, 천정 놈들을 천하 성역에서 내쫓으면 우리의 땅을 다시 정비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아직 슬퍼하고 아파할 때가 아닙니다. 우선 삼대 종족과 천정 놈들을 찾아갑시다.”
석목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와 곧바로 정신을 가다듬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네!”
전함 다섯 척은 뿔뿔이 흩어져 행성 곳곳에서 수색을 펼쳤으나 혹시 천정이 습격을 할까봐 서로 너무 멀리 떨어지지는 않았다.
대략 반나절 동안 수색을 펼친 후에 전함 다섯 척은 거대한 웅덩이 위에 멈춰 섰다.
석목과 신경 강자들은 전함에서 내려와 깊은 웅덩이 옆에 자리한 빈 땅에 서 있었는데 다들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
“이상하군요. 샅샅이 훑었는데 살아있는 자를 단 한 명도 찾지 못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가 수색한 구역에도 없었습니다.”
* * *
“삼대 종족과 천정은 격전을 치른 후에 여길 떠난 것 같습니다.”
석목이 침묵을 깼다.
“행성 곳곳에 전함의 잔해와 파편들이 남아있어요. 대부분 삼대 종족 연합의 잔해인 걸 보니 연합이 큰 패배를 당한 것 같습니다.”
대장로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모두가 대장로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남은 모든 흔적들은 삼대 종족이 큰 패배를 당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천하 성역의 삼대 종족은 단단한 벽과도 같아 그들이 패배를 당했다는 건 천하 성역의 요족들에게 큰 재앙이 닥치리란 걸 뜻했다.
천하 성역의 요족들은 천정과 맞서는 일에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대부분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품었었다. 그 이유는 삼대 종족이 살아있는 한, 천정이 빠른 시일 내에 그들 종족까지 다가오지 못하리라 추측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적나라한 현실이 이렇게 눈앞에 펼쳐졌다.
일단 삼대 종족이 멸망하게 된다면 다른 요족들이 망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유일하게 다행이라 생각되는 점은 때마침 미천거원 일족이 다른 요족들을 이끌고 있다는 점이었다. 석목이 맹주가 된 요족 연합은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우선 삼대 종족을 찾아야 하겠군요. 제발 멸망하지 않았기만을 바랍니다. 여러분, 혹시 다른 단서가 또 있습니까?”
석목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일행들은 고개를 흔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묵운성 근처의 행성들은 전부 죽은 행성이에요. 그 어떤 생령들도 없지요. 근처에 자리한 행성에서 소식을 묻는 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안화는 이 근처 성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모두 흩어져서 근처 행성을 수색합시다. 천정이나 삼대 종족 연합의 종적을 찾아야 해요.”
석목이 말했다.
* * *
잠시 후에 전함 다섯 척은 뿔뿔이 흩어져 근처에 자리한 다른 행성들로 날아갔다.
“족장님, 이렇게 하염없이 찾아다니면 찾을 가능성이 너무 희박해요.”
대장로가 석목에게 말했다.
“우선 근처에서 조금 더 찾아보고, 만약 찾지 못하면 그때 천봉 일족이 있는 주작성으로 갑시다.”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석목은 주작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주작성은 삼대 종족 중 천봉 일족이 머무는 행성이라 이번 전쟁의 요충지였다. 그러니 그곳에 가면 현재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여 끌려다니는 국면을 바로잡을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석목이 노리는 또 다른 목적은 종수였다.
석목은 이미 신경에 들어섰으며 미천거원 일족의 족장이었다. 또한 요족 연합의 맹주니 천봉 일족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터였다.
만약 천봉 일족이 계속 반대하더라도 석목이 지금 갖춘 실력이라면 종수를 강제로 끌고 나올 수도 있었다!
대장로가 석목이 하는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함 다섯 척은 재빠르게 근처 행성들로 날아가 수색을 펼쳤으며 곧바로 이 근처에 천정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일행들은 완전히 뿔뿔이 흩어져 대대적으로 수색을 시작했다.
석목도 함께 찾아다니려 했으나 대장로를 비롯한 사람들이 맹주는 진두지휘를 해야 한다며 말렸다.
* * *
시간은 어느덧 사흘이나 흘렀는데 요족 연합이 애를 쓰며 곳곳을 찾아다녔지만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했다.
“더는 이렇게 찾고만 있으면 안 될 것 같군. 내일 주작성으로 출발해야겠네.”
석목이 전함에 서서 망망한 별바다를 바라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이때, 한 갈래 빛이 먼 곳에서 날아와 전함에 내려왔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자 백홍이 나타났다.
“족장님, 좋은 소식입니다. 대장로님이 근처 행성에서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분이 한 달 전에 천정과 삼대 종족이 전투를 벌이는 과정을 봤다고 합니다. 대장로님이 그분을 데리고 이쪽으로 오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에게 먼저 가서 보고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백홍이 공손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석목은 희망을 본 것 같아서 좋아했다.
“그래, 알았다.”
석목이 말을 하며 앞으로 걸어갔으며 백홍도 두 걸음 정도 떨어진 뒤에서 석목을 따라갔다.
잠시 후에 대전의 문 앞에 하얀빛이 반짝이며 두 사람이 나타났는데 한 명은 대장로였다.
또 다른 한 명은 회색 옷을 입은 여인이었는데 성계 중기 경지에 올랐으며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여인은 비록 품이 큰 옷을 두르고 있었지만 풍만한 가슴이 유난히 눈에 띄었으며 얼굴에 회색 면사포를 쓰고 있었는데 그 면사포는 무슨 법보라도 되는지 석목의 시력으로도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석목은 회색 옷을 입은 여자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익숙한 기운이 몰려왔는데 어디서 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말을 전해들은 몇몇 신경 강자들도 대청으로 모였다.
회색 옷을 입은 여인은 신경 강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조금도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러더니 오히려 흥미진진하게 사람들을 훑어보고는 마지막에 석목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여인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대장로님, 이 도우님이 삼대 종족과 천정이 싸우는 걸 보셨다고 했습니까?”
석목이 기억을 되짚으며 한참 동안 이 익숙한 느낌을 끄집어내려 했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생각을 멈추고는 물었다.
“네, 맹주님.”
대장로가 답했다.
“도우님, 저는 요족 연맹의 맹주인 석목이라고 합니다. 도우님은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석목은 회색 옷을 입은 여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는 금씨입니다. 석 맹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회색 옷은 입은 여인의 눈에는 웃는 듯 아닌듯한 기색이 어렸으며 목소리는 물처럼 청량했다.
이때, 석목은 머릿속에서 기억이 갑자기 떠올라 벌떡 일어섰다.
“당신……”
석목은 드디어 눈앞에 선 이 여인이 누구인지 떠오른 것 같았다.
“석 맹주님, 며칠 전에 천정과 삼대 종족이 대전을 치르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맹주님께서 전말을 알고 싶으시다면 전부 말씀드릴 수 있죠. 하지만 이 일은 맹주님께만 말씀드리고 싶으니 다른 곳에서 대화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여인은 석목이 하는 말을 끊어버리려고 다급하게 말했다.
석목은 눈빛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여러분은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도우님, 이쪽으로 오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