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57화 (757/916)

757화. 석경기우(汐境奇遇)

“안화 형, 왜 여기 있는가?”

이때, 보랏빛이 날아오며 방진이 나타났다.

“안화 족장님, 맹주님과 이곳에 서 있는 걸 봤는데 맹주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또 다른 한 갈래 빛이 날아왔는데 그는 비천서 일족의 신경 노인이었다.

이들은 전부 조금 전에 보이던 광경을 지켜보다가 전함에서 내려온 것이었다.

잠깐 사이에 신경 강자들 중 절반이 줄줄이 날아왔다.

“맹주님…… 석 맹주가 조금 전에 유화조석으로 들어갔습니다……”

안화가 더듬대며 말했다.

“뭐!”

“이 유화조석은 천하 성역의 삼대 천재(天災) 중 하나로 불려요. 깊은 곳엔 극도로 맹렬한 불길이 이는데다가 심지어 화염 영수들도 많을 텐데 맹주님은 왜 들어가셨답니까?”

“그러니까요. 일그러진 시공의 균열 속으로 말려 들어가기라도 하신다면 큰일입니다.”

“우리 같은 신경 존재들이 힘을 합쳐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인데 왜 말리지 않았습니까?”

다들 놀라기도 했으며 또 약간 화도 내면서 말했다.

“저야 물론 말리고 싶었지요. 하지만 맹주님을 제가 어떻게 말립니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안으로 날아 들어가셨어요.”

안화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리고 고번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만약 석목이 안화의 고번을 복구하기 위해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신경들이 침을 튀기며 나무랄 터였다.

“왜 들어가셨는지 알고 있나요?”

대장로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맹주님은 법보를 하나 복구한다고 하셨습니다.”

안화는 이렇게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법보를 복구한다니요?”

대장로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듣자 흠칫 놀랐다.

“백박 장로님, 유화조석 안은 너무 위험해요. 이제 막 들어가신 것 같으니 아마 멀리 가지 못하셨겠죠. 아마 우리가 힘을 합쳐 쫓아가면 끌고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비천서 일족의 신경 노인이 말했다.

“이미 늦었어요. 유화조석 안엔 방향이 없습니다. 우리가 들어간다 해도 맹주님을 찾을 수 없어요. 게다가 맹주님의 실력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나죠. 맹주님도 막무가내로 들어간 건 아닐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린 이곳에서 맹주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립시다.”

대장로가 침묵을 깨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말을 듣자 다들 한숨만 내뱉었다.

* * *

유화조석 속에 선 석목은 마치 거칠고 사나운 파도에 휘말린 작은 배처럼 떠다니며 발버둥을 칠 힘도 내지 못했다.

주위 화염은 밀물처럼 끓어올랐으며 뜨거운 열기는 거의 모든 걸 태우고 녹여버릴 것 같았다. 또한 공간이 떨려 거대한 힘이 일어나 석목의 몸을 찢어버릴 지경이었다.

“엄청나군!”

석목은 눈이 맑아졌다.

석목에게선 두려운 기색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석목은 입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며 호천성염의 힘으로 고번 세 개를 시전했다.

고번에서는 빛이 번지더니 다시 크기가 몇 배나 불어나 석목을 꽁꽁 둘러쌌다. 그러자 깃발에 크기가 몇 척이나 되는 큰 구멍이 나타났다.

화염의 기운은 마치 빠져나갈 곳을 찾은 듯이 구멍으로 몰려들더니 화룡 세 마리로 변하여 전부 고번 속으로 향했다.

고번이 화염의 기운을 삼키는 속도는 안화의 손에 있을 때 보다 몇 배나 더 빨랐으며 주변 수십 장 범위에 일던 화염이 거의 순식간에 털려버렸다.

그러자 세 고번에 새겨진 문양이 밝아지면서 망가진 부분도 몇 배나 빨라진 속도로 복구되었다.

석목은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게다가 주위에서 받던 압력도 크게 줄어 속박당하는 느낌마저 사라졌다.

석목은 다시 깃발 세 개로 시선을 돌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고번을 복구하는 속도가 빨라지긴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석목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에 몸을 움직여 고번 세 개를 받쳐 들고는 유화조석의 더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우우우……

앞쪽에서 화염이 휘몰아쳐 오더니 갑자기 수백 장이나 되는 붉은 구체가 나타나 석목을 향해 바람을 일으키며 운석처럼 다가왔다.

깃발 세 개는 여전히 복구되는 중이라 석목은 깃발이 다시 망가지게 둘 수 없어서 몸을 날려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불덩이가 석목의 일격을 받아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석목은 몸이 흔들리더니 팔뚝이 은은하게 저렸다.

“화염구가 아니라 화염 결정체였어!”

석목은 깜짝 놀라 부서진 화염을 하나 더 잡았다. 석목이 잡은 건 붉은 결정체였는데 강렬한 화염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런 화염 결정체는 만년 화산의 깊은 곳에서만 생기는 것이었다.

석목은 법결을 하나 날렸다.

그러자 깃발 세 개는 구멍이 더 커지면서 강력한 흡인력을 뿜어내더니 화염구 부스러기를 전부 삼켜버렸다. 그러자 깃발이 뿜어내는 빛도 훨씬 밝아졌다.

석목은 눈에 흥분된 기색을 내비치며 계속해서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 * *

반시진이 흐르자 주변에 일던 화염은 색깔이 붉은색에서 흰색으로 바뀌었으며 뿜어내는 온도도 몇 배나 더 뜨거워졌다.

여긴 유화조석에서도 깊은 곳이었다. 하지만 석목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선 계속 더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가는 내내 석목은 수많은 위험과 부딪쳤다.

공간 폭풍, 화염 비, 심지어 붉은 결정체로 이루어진 홍수도 있었다. 허나 다행히도 석목은 뛰어난 실력과 기지로 모든 위험들을 일일이 피할 수 있었다.

그 사이 깃발 세 개는 이미 많이 복구되었으며 겉면에서 강렬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깃발 세 개가 뿜어내는 붉은빛이 하나로 연결되어 붉은색 화운(*火云: 불 구름)처럼 윙윙 움직이며 놀라운 흡인력을 뿜어냈다. 그러자 주변 수십 장 안에 있던 모든 화염의 기운이 전부 빨려 들어갔다.

화운 속에 선 석목은 이미 열기를 느낄 수조차 없었다.

“이 고번은 아직 복구가 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큰 위력을 발산한다니. 적어도 영보급 보물이겠군. 등급도 아주 높아!”

석목은 주변에 드리운 붉은 구름을 보자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유화조석의 화염이 갑자기 한참 동안 들끓더니 그 속에서 커다란 금색 짐승의 발이 뻗어 나왔다. 그리고 짐승의 굵직한 다섯 발가락 끝엔 길이가 한 장 정도 되는 날카로운 손톱들이 자라있었는데 화염을 감싼 채로 석목을 붙잡으려 했다.

주변 수백 장에 드리운 화염 기운이 세차게 흩어지더니 공간은 강인한 기세에 휩싸여 굳어져 버렸다.

“뭐야?”

석목은 콧방귀를 뀌고는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호천성염이 서서히 나타나 짐승의 발과 비슷한 손바닥으로 변하여 부딪쳤다.

짐승의 발은 강력한 위력을 풍겼지만 호천성염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쩍!

거대한 짐승의 발이 그대로 갈라지더니 황금빛 불꽃이 되어 세 깃발로 휩쓸려 들어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발을 휘두른 짐승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커다란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고통스러운 소리가 화염 속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짐승이 돌아선 채 도망가려 했다.

“멈춰!”

석목은 눈에 금빛은 반짝이며 몸을 날려 붉은 잔영으로 변하여 짐승의 앞을 가로막았다.

다시 짐승의 모습을 확인한 석목은 소름이 끼쳤다.

이 거대한 몸집은 도마뱀 같은 화염 짐승이었다. 도마뱀은 몸집이 족히 수십 장은 되었으며 작은 산봉우리처럼 강력한 기운을 풍겼는데 이미 신경에 도달한 것이었다.

“영수!”

석목이 소리를 질렀다.

화염의 기운이 극에 달한 이곳에서 우연한 계기로 불속성 영수가 자라난 것이었다.

도마뱀은 불에서 태어났기에 화염을 통제할 수 있는 영수였다. 그러니 이 영수가 불속성 신통을 다루는 건 놀라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화염 도마뱀은 그리 영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석목이 앞을 가로막자 방금 부상을 입은 건 금세 잊어버리고는 입을 벌려 석목에게 화염을 뿜어댔다.

“금색 화염! 놀라운 위력이군.”

석목은 흠칫 놀라긴 했으나 이 정도 화력은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곧바로 법결을 날렸다.

고번 또한 붉은 화염이 들끓더니 빠르게 돌아가면서 화염 도마뱀의 앞을 막았다.

금색 화염이 붉은 화운 위를 심하게 내리치자 화운은 가볍게 흔들리다가 곧바로 안정이 되었고, 금빛 화염을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화염 도마뱀은 멍하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이때, 도마뱀 뒤에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석목이 허공에 나타나 주먹을 휘둘렀다.

석목은 미천거원으로 변신한 후에 팔뚝이 순식간에 수십 배나 불어나 호천성염을 감고선 화염 도마뱀의 머리를 내리쳤다.

무궁무진한 힘에 호천성염의 위력이 더해지자 화염 도마뱀의 머리는 수박처럼 부서져 단 일격에 죽어버렸다.

도마뱀의 거대한 몸집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금빛 화염이 되어 부서졌다.

“하!”

석목이 손가락으로 앞을 짚자 붉은 화운이 빠르게 날아가 금빛 화염을 깨끗이 삼켜버렸다.

“음, 이건 뭐지?”

석목은 주먹만한 금색 구슬을 하나 주웠다.

구슬에선 강력한 화염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으나 고번에 빨려 들어가지는 않았다. 자세히 보니 구슬 속엔 도마뱀의 허상이 어렸다.

“요단…… 아니, 요단이라 할 수 없지. 아마 영수 구슬일거야.”

석목이 미소를 지었다.

이건 신경 영수의 구슬이었다. 그러므로 팔 때 매우 가치가 있는 물건일 뿐만 아니라 다른 용도로도 쓸 수 있었다.

석목은 금색 영수 구슬을 거두어들이고는 계속해서 앞으로 날아갔다.

신경 도마뱀의 화염 정기를 흡수하자 고번 세 개는 많이 복구되었다. 부서진 흔적은 이미 많이 사라지고 없었으며 깃발 가운데에 난 구멍 몇 개만 아직 복구가 되지 않았다.

“통쾌하군. 이 유화조석은 다른 사람들에겐 매우 위험한 곳인데 내겐 아주 좋은 곳이잖아!”

석목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석목은 날아가는 도중에 쉴 새 없이 공법을 시전하여 화염을 흡수하였기에 구전현공 불의 힘은 위력이 매우 강력해졌다.

구전현공 불의 힘은 이미 원만에 이르렀지만 화염의 기운을 삼켜 수련을 할수록 그 위력이 계속 커졌다.

게다가 석목은 호천성염도 시전하여 원만 경지와 점점 가까워졌다.

석목은 붉은색 환영으로 변하여 앞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 * *

석목은 대략 반시진 정도 더 날아가다 멈춰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금빛 세계였으며 시선이 닿는 곳마다 금빛 화염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금빛 화염은 두려울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뿜고 있었으며 허공은 이미 철저히 일그러지고 부서졌다가 돌아오길 반복했다.

“금색 화염, 여기가 유화조석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구나.”

석목이 눈을 몇 번 반짝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석목은 곧바로 잔영을 그리며 금빛 불바다 속으로 날아갔다.

칙, 칙, 칙!

화염의 기운이 붉은색 구름을 뚫고 흘러나왔다. 그러자 고번이 미처 화염을 빨아들이지 못하여 극도로 뜨거운 힘이 석목에게 그대로 전해져 옷이 타버렸으며 곧 피부도 붉은색으로 변하였다.

“좋아!”

석목은 소리를 지르며 고번들을 시전했다.

그러자 고번들에서 빛이 번지더니 현묘한 부문이 줄줄이 나타나서는 화운으로 변하여 미친 듯이 주변에 드리운 화염의 기운을 삼켰다.

금색 화염은 외곽에서 본 붉은 화염이나 하얀 화염보다 열 배 이상 순수 해 깃발의 망가진 부분들도 눈에 띄게 회복이 되었다.

석목은 자신이 수련했던 모든 불속성 공법과 신통들을 동시에 시전하여 금색 화염의 기운을 연화시켰다.

“음!”

석목이 눈썹을 치켜 떴다.

석목은 예전부터 적원화경, 구전현공 불의 힘, 호천성염을 비롯한 수많은 속성 신통들을 수련했다.

그 중 구전현공 불의 힘은 호천성염보다 위력은 약했으나 유화조석 안에서는 구전현공 불의 힘이 가장 빨리 화염의 기운을 연화하고 있었다.

그 느낌은 마치 밑바닥이 뚫린 항아리와 같아 밀려오는 모든 금색 화염의 기운을 모두 삼켜버릴 것만 같았으며 위력 또한 빠르게 강해졌다.

석목의 심장 부위에 있던 붉은 가마 부문이 밝은 빛을 뿜어내더니 현묘한 모습을 드러냈다.

“불의 힘…… 어떻게 됐지?”

석목은 의아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어난 다양한 현상으로 봤을 때, 그리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 구전현공의 가장 근본적인 힘은 음양이기에 불속성 원소를 가장 현묘하게 통제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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