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61화 (761/916)

761화. 방대한 기운

무암성.

반귀 일족의 부지 안, 드넓은 광장에 금색 전함이 수십 척 서 있는데 대부분은 훼손되었다.

광장 서북쪽에 세워진 전함들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전함들 주위로 수백 명이 바쁘게 돌아가며 중요한 부품들을 분리시키고 있었다.

광장 뒤편에는 건물들이 백 장이나 이어졌으며 사이사이마다 사람들이 촘촘히 서 있었다. 그리고 건물들 속에서 간간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투를 치르며 다친 부상자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치료를 받고 있었기에 이 근처는 수심이 가득한 것처럼 보였으며 또한 매우 어수선했다.

반귀 일족의 주전은 총 여섯 곳으로 전부 종족이 머무는 부지 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주전은 오각형이었으며 좌우에 직사각형 편청이 두 개씩 딸렸다. 그리고 앞쪽에 네모난 대전이 하나 있는데 이 모습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거북이가 엎드려있는 것 같이 보였다.

가장 앞쪽에 있는 네모난 대전엔 수련 경지가 높은 요족 강자 수십 명이 모여 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천봉, 지룡, 반귀 일족의 족장들도 있었다.

대전 안은 분위기가 매우 침울했으며 전부 어두컴컴한 낯빛을 내비치고 있었다.

쾅, 쾅!

굉음과 함께 대전이 격하게 흔들렸다.

대전 속에 숨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쉴 새 없이 공격을 해오는데 대진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요?”

보라색 옷을 입은 남자가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말이 떨어지자 대전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적 형, 걱정 마세요. 우리 반귀 일족의 수호 대진은 절대 쉽게 뚫리지 않을 겁니다. 이 정도의 공격은 우리 무암성의 영력이 끊이지 않는 한, 십 년 동안 공격을 한다고 해도 절대 뚫을 수 없을 거예요.”

몸집이 거대한 사내가 말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지룡 일족의 족장인 적안과 반귀 일족의 족장인 육규종이었다.

“육 형, 자신감이 너무 넘치는 게 아닙니까? 예전에 미천거원 일족을 지키던 수호 대진도 절대 뚫리지 않으리라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마지막에 뚫려버려 결국 온 행성이 무너졌죠. 물론 지금 보기에는 단단해 보이는데 천정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릴지 어떻게 압니까?”

지룡 일족의 족장 적안이 불안해하며 말했다.

“육 형, 적 형이 하는 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닙니다. 성시 하나쯤은 포기해도 될 것 같군요. 우선 포위를 뚫고 나가서 무암성에서 빠져 나가야합니다. 그리고 실력을 보존해 다시 힘을 합쳐 반격을 하면 되지요.”

천봉 일족의 족장인 조윤이 걸어 나와 말했다.

“두 분,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실 수 있습니까? 만약 지금 포위된 곳이 천봉 일족의 주작성이나 지룡 일족의 규외성(馗隗星)이었다면 수호 대진이 뚫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쉽게 포기했을까요?”

육규종이 언짢아했다.

“육 형,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지금 시국이 이런데 만약 포위를 뚫고서 나가지 않으면 이 별에 갇히는 셈이나 다름이 없어요. 게다가 천정이 대진을 뚫어버리는 건 시간문제지요. 그리고 우리가 만약 여기에 오랫동안 발이 묶이게 되면 우리 두 종족에도 위험이 닥칠 겁니다.”

적안이 말했다.

“흥, 결국 자기 종족들의 안위만 생각하는 꼴이 아닙니까? 포위를 뚫고서 나가려면 얼마든지 나가세요. 우리 반귀 일족은 대대손손 머물던 행성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육규종이 화가 나서 소리 질렀다.

“육 형, 그러지 마세요. 우리 세 종족은 하나입니다. 어떻게 반귀 일족을 버리고 가겠습니까? 비록 지금은 전함 부대가 천정의 포위를 뚫을 수 없지만 이미 전송진법을 통해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지원병을 데리고 오면 함께 포위를 뚫고 나가자는 거죠.”

육규종이 화를 내자 조윤이 곧바로 그를 달랬다.

그리고 적안을 향해 눈치를 주었다.

“지금으로서는 지원병을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다만 이 수호 대진이 정말 말씀하신대로 버텨주길 바랄 뿐이지요.”

조윤이 눈치를 주자 적안은 더는 뚫고 나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말투는 여전히 싸늘했다.

“흥!”

육규종은 화난 걸음으로 대전 밖으로 나가 대전 여섯 곳 가운데에 있는 오각형 대전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도 전부 육규종의 뒤를 따라 나갔다.

이렇게 삼대 종족 수장들이 논의는 기분이 좋지 않게 끝을 맺었다.

“조 형, 육 형이 여길 포기하고 싶지 않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더는 여기서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어요. 다른 방도를 생각해봐야합니다.”

육규종이 나가자 적안이 조윤에게 말했다.

“만약 육 형이 이 현무반운대진을 해제하지 않으면 우리는 천정의 포위를 뚫고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대진이 지원병이 올 때까지 버텨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지요.”

조윤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미리 준비를 해야 할 것 같군요. 이 대진이 뚫리기만 하면 우리는……”

적안이 말을 하다 말았다.

“그 말은……”

조윤도 말을 하다 말았다.

둘은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반나절 뒤.

유화조석의 끝, 화운이 그 속에서 뿜어져 나와 한참 동안 들끓다가 다시 붉은 깃발 세 개로 변하더니 석목의 손에 떨어졌다.

화운이 흩어지자 전함 다섯 척이 나타났다.

“드디어 나왔어!”

요족들이 환호를 했다.

석목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 뒤편에서 흐르는 유화조석을 한번 쳐다보고는 아쉬운 듯이 깊은 숨을 내뱉었다.

안색은 비록 창백했지만 육신의 기운은 매우 강력했다. 그러자 석목의 몸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가 곧바로 사라졌으며 이내 몸은 더욱 단단하고 원만하게 보였다.

석목의 육체 수련은 이미 ‘육신의 원만’ 경지에 들어섰다. 그러니 이제 며칠만 더 지난다면 완벽히 육신의 원만을 이룰 터였다.

허나 아쉽게도 석목에겐 시간이 없었다.

“족장님! 고생하셨습니다!”

대장로가 다가와 존경스러운 눈빛을 내비쳤다.

“대장로님, 여기서 벌어질 일은 대장로님께 맡기겠습니다. 진기를 너무 많이 써서 회복을 해야할 것 같군요.”

석목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네! 족장님, 여긴 제게 맡기세요.”

대장로가 대답했다.

“여긴 무암성과 그리 멀지 않죠. 만약에 천정이 정말 여기 있다면 꼭 조심해서 다가가야 합니다. 절대 매복에 당해서는 안됩니다.”

석목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네, 족장님, 걱정 마세요.”

대장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석목은 몇 마디 더 당부를 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날아갔다.

* * *

반귀 일족 안.

오각형 대전은 텅 빈 채 아무것도 놓이지 않았다. 다만 대전 가운데 바닥에만 거대한 황토색 모래판이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산천, 평야, 골짜기와 같은 형세가 늘어서 있었으며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땅을 압축해 놓은 것처럼 생생하게 보였다.

이 모래판 위엔 비석이 세워진 곳이 서른 군데가 넘었다.

비석 위에는 희끗한 노란빛이 맞장구를 치듯이 연이어 번쩍였다.

그 중 다섯 비석 한가운데엔 둥그런 석대가 하나 서 있었는데 그 위에서 오래되고도 현묘한 부문들이 흘렀다.

육규종이 대전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놓인 모래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모래판 위에 있는 검은 비석 서른여 개가 모두 빛을 발하자 긴장했던 육규종의 얼굴엔 비로소 미소가 번졌다.

“누군가?”

이때, 육규종이 방대한 기운을 느끼고는 묵직하게 물었다.

“육 족장님, 영부 일족의 한절입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밖에서부터 들려왔다.

“아, 한 도우, 들어오게나.”

육규종은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그리고 거북이 모양의 영패를 꺼내 대전 문을 향해 흔들었다. 그러자 금색 광막이 나타났다가 번쩍이며 사라졌다.

“북무성(北武城)에서 순찰을 돌 때, 천정에서 보낸 첩자를 발견하여 죽여 버렸습니다. 아마도 이 일을 육 족장님께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찾아왔죠.”

한절이 대전 안으로 걸어와서는 육규종을 향해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무암성에 다른 행성과 연결된 전송진법은 두 곳 뿐이네. 한 곳은 북무성이고, 한 곳은 우리 반귀 일족 안에 있지. 내가 이미 사람을 보내 진법을 봉쇄하고 긴밀하게 감시하라고 했는데 첩자가 들어왔다니. 그래도 한 도우 덕분에 막아냈군.”

육규종이 말했다.

“천정 놈들은 아마 무암성의 수호 대진을 절대 뚫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첩자를 보내 무암성 안에서 손을 쓰려는 속셈 같군요. 제가 한 명을 죽이긴 했으나 다른 첩자들이 잠입했을 수도 있습니다.”

한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한 도우의 말이 옳네. 단단한 보루는 늘 안에서 뚫려 버리지. 보아하니 현무반운대진 안쪽 수비도 강화해야겠군…… 아, 한절 도우, 천봉과 지룡 일족이 무암성을 포기하라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육규종이 한절을 바라보며 화제를 돌렸다.

“하찮은 의견이긴 합니다만 지금 천정의 공격이 매우 심상치 않으니 강제로 뚫고 지나간다면 죽음을 자초하는 셈이나 다름없을 테죠. 그러니 무암성의 수호 대진을 지켜야만 반격을 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한절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육규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만약에……”

육규종이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한절이 받아쳤다.

“만약 다른 두 종족이 어떻게 해서든 떠나겠다고 한다면 저희 영부 일족은 꼭 반귀 일족과 함께 외적들을 물리칠 겁니다.”

“좋네! 내가 역시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군. 이 현무반운대진의 진추(陣樞)는 전부 진법으로 보호를 받고 있지만 비상시기인 만큼 진법만으로는 무탈하리란 걸 보장할 수 없네. 게다가 우리 반귀 일족에는 실력자가 그리 많지 않아 한절 도우가 대진을 이루는 진추 중에 한 곳을 수비해줘야 하네.”

육규종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큰일은 제가 맡기에 너무 버겁군요. 그리고 저는 외부인이라 반귀 일족이 관할하는 중요한 곳에 들어갈 수 없어요. 육 족장님, 다른 실력자에게 맡기시죠.”

한절이 다급하게 거절했다.

“한 도우, 우리 종족들은 연합을 했으니 영부 일족도 연합 중 일원이네. 그리고 내가 지켜본 바로 한절 도우는 자질이 뛰어난 데다가 매사에 침착하여 우리 연맹의 젊은이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사람 같았네. 만약 한절 도우가 이 일을 맡을 수 없다면 누가 맡겠나? 이 존망이 걸린 중요한 시기에 거절하지 말게.”

육규종이 말했다.

“그럼…… 알겠습니다. 제가 어디 있는 진추를 수비하면 되겠습니까?”

한절이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한절 도우, 이 모래판 위에 놓인 검은 비석들은 진추가 있는 곳이오. 나는 서북쪽의 가장 외진곳에 자리한 진추를 맡기고 싶군.”

육규종이 모래판 위에서 한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절은 모래판을 훑어보았다.

모래판 위에는 불규칙하게 퍼져 있는 검은 비석들이 보였는데 어떤 것은 높은 산꼭대기에 있었고, 어떤 것은 깊은 골짜기에 있었으며 또 어떤 것은 푸른색 이끼가 덮여 있었고, 심지어 폭포에 덮여있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비석들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모두 노란빛을 뿜어내며 서로 호응하듯이 계속해서 번쩍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동족들을 소집하여 진추로 향하겠습니다.”

한절이 손을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그럼 한절 도우께 부탁하겠네.”

육규종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육규종은 장로 한 명을 불러 한절과 함께 서북쪽으로 가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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