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63화 (763/916)

763화. 시간을 다투다

한절은 푸른 덩굴 사이에 난 통로를 통해 천천히 걸어 나와 손목을 꺾었다. 그러자 푸른 조롱박이 한절의 손에 나타났다.

한절이 주문을 외우며 한 손으로 법결을 짚더니 다른 한 손으로는 조롱박의 밑단을 내리쳤다.

푹!

푸른 조롱박이 격하게 흔들리며 겉면에 새겨진 화염 무늬가 순식간에 밝아져 마치 활활 타오르듯 꿈틀거렸다.

그러자 조롱박의 주둥이가 순식간에 뚫려버리며 푸른색 화염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푸른 화염의 깊은 곳에서는 극도로 순수한 붉은빛이 어린 채 어렴풋이 흔들거렸다.

“청련성화(青蓮聖火)!”

육여는 단번에 이 화염을 알아보고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발끝을 들어 올려 바닥까지 닿은 옷소매를 앞으로 날리면서 몸 앞을 가로막았다.

황금성라포의 별빛이 반짝이더니 전부 옷소매로 몰려들어 유유하게 돌아가며 금색 성운을 이루었다.

푹!

맹렬하게 덮쳐오던 푸른 화염은 단번에 성운 속으로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청련성화가 아주 대단할 줄 알았더니, 아무것도……”

육여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얼굴이 굳어버렸다.

주변을 감돌던 성운이 단번에 터져버리면서 육여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옷소매에 큰구멍이 뚫렸다.

청련성화가 그 속에서 뿜어져 나와 육여의 복부에 부딪쳤다.

“청련성화가 어떻게 이런 위력이? 아니, 이건 청련성화가 아니야. 구전현공 불의 힘이지. 너…… 너 구전현공을 수련했다니. 대체 누구냐?”

육여가 놀라 소스라치며 뒤로 물러났다.

육여의 복부에선 여전히 청련성화에 타오르고 있었으며 마치 뼈를 갉아먹는 벌레처럼 육여의 복부에 딱 붙어있었다.

푸른 화염 속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오며 파랗고 붉은 두 갈래 화염이 얽히자 위력이 크게 강해져 육여는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화염을 뿌리칠 수 없었다.

잠깐 사이에 육여의 배에 두른 황금성라포는 크게 구멍이 뚫려버렸으며 화염이 단번에 육여의 몸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쾅!

파랗고 붉은 불빛이 폭발하며 육여의 몸통을 두 덩이로 갈라놓았다. 그러자 복부와 가슴은 사라져 없어졌으며 두 다리와 어깨에 붙은 머리만 남았다.

그림자를 반짝이며 한절이 다가와 청강등모로 빛을 날려 육여의 머리를 뚫어버렸다.

육여는 머리가 터져버리며 신혼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죽은 자는 많은 걸 알 필요가 없죠.”

한절이 싸늘하게 웃으며 검은 비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게 소리를 지르자 가슴과 복부에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 금색이 동시에 밝아지더니 작은 가마 무늬가 나타나 커다란 가마 허상으로 변하여 한절의 뒤에 떠있었다.

이어서 모든 빛들이 한절의 청강등모로 흘러들어가자 청강등모는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네 가지 빛 중에는 붉은빛이 가장 밝았다.

“하!”

한절이 낮게 소리를 지르자 창 하나가 앞으로 찔러나갔다.

크기가 고작 몇 장밖에 되지 않는 그림자였지만 놀라운 위압감을 풍겼다. 그리고 그림자 속에는 붉은 부문들이 어렴풋이 보였으며 옅은 법칙의 힘을 풍겼다.

창 그림자가 비석을 찌르자 비석에서 노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현귀 토템 무늬가 나타나 창을 막았다.

창과 무늬가 부딪치자 빛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으며 땅은 끊임없이 흔들렸다.

한절이 코웃음을 치며 청강등모의 끝을 돌렸다.

그러자 네 가지 색 창 그림자가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곧이어 현귀 토템은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곧바로 부서져 수많은 노란 반딧불이 되어 흩어졌다.

노란 보호막이 사라지자 창 그림자는 가볍게 검은 비석을 뚫어버렸다.

비석에서 굉음이 울리며 터져버렸고, 수많은 돌들이 부서져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땅에 크고 작은 구덩이가 패었다.

비석이 있던 자리 상공에선 노란색 성운이 들끓으며 크기가 수십 리에 이르는 노란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동시에 한절이 무너트린 또 다른 비석이 있던 자리의 상공에서도 노란 성운이 격렬하게 흔들리며 커다란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두 소용돌이는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기에 천천히 합쳐지면서 더 큰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소용돌이 가운데를 뒤덮은 노란 성운은 빠르게 주변으로 갈라지며 통로를 하나 만들었다.

한절이 활짝 웃었다.

하지만 신경 강자를 격살한데다 대신통을 시전하여 비석을 파괴했기에 한절은 진기를 심하게 소모해 곧바로 바닥이 드러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한절은 반귀 일족의 대전 방향을 바라보며 눈에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근처에 자리한 숲으로 들어가 단약을 두 알 삼키고는 선급 영석을 하나 꺼내서 빠르게 그 속에 깃든 영기를 흡수하며 진기를 회복했다.

* * *

반귀 일족의 오각형 대전 안, 모래판에서 묵직한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두 비석이 터져버렸다.

육규종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터져버린 비석을 바라보며 안색이 굳더니 이내 분노로 차올라 눈이 붉게 물들었다.

“어떻게 된 건가. 두 진추가 무너졌어! 여봐라! 모든 법사들을 출동시켜서 따라오라 해라!”

육규종이 소리를 지르자 그의 목소리가 반귀 일족의 부지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육규종은 몸을 날려 노란빛으로 변하더니 재빠르게 서북쪽으로 날아갔다.

반귀 일족의 부지는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 채로 곳곳에서 빛이 날아 나와 육규종을 따라서 서북쪽으로 향했다.

이 시각, 무암성 곳곳을 지키던 반귀 일족의 대군들도 명을 받아 일부만 남은 채 수호 대진을 이루는 비석을 지켰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서북쪽으로 향했다.

* * *

무암성을 공격하던 천정은 동작을 멈추었다.

곧이어 천정의 전함 백여 척이 방향을 틀어 노란 소용돌이 근처로 모였다.

모든 사람들은 노란 소용돌이를 바라보며 흥분한 기색을 내비쳤다.

며칠이나 막고 있던 대진에서 드디어 뚫리려는 기미가 보였다.

전함 뒤편에 서 있던 덩치가 만 장에 이르는 거인들은 북에 그려진 입을 벌린 짐승을 바라보며 손에 든 북채를 높이 치켜들고는 조용히 공격 명령이 내려지기를 기다렸다.

“비로 형, 신의 한 수였소. 이 수호 대진이 드디어 뚫릴 것 같소! 오늘은 무암성을 공격할 수 있겠군.”

남궁경이 노란 소용돌이를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비로 선장에게 시선을 돌리며 감탄을 자아냈다.

“남궁 형, 과찬이오. 이 수호 대진이 자동으로 사라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지. 그동안 이렇게 두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으니 명을 내려 공격하는 것이 좋겠소.”

비로 선장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돌려 서문설을 바라보았다.

“네!”

서문설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서 기이한 빛이 스쳤지만 서문설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서문설이 몸을 날려 허공에 나타났다.

“공격!”

비록 크지는 않았지만 위엄이 충만한 여인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전함 부대 사이에서 울려 퍼졌다.

노란 옷을 입은 거인 백 여 명은 명을 받고선 눈에 빛을 반짝이며 북채를 힘껏 내리쳤다.

쾅!

형태가 없는 파동들이 줄줄이 퍼져나가면서 전함들은 전부 빛이 밝아졌다. 그리고 백 갈래가 넘는 굵고 거대한 금빛 창들이 동시에 뽑혀나가 노란 소용돌이를 공격했다.

펑! 펑!

굉음과 함께 노란 성운이 진동하며 구름이 연기처럼 흔들리더니 물결을 이루며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쿵! 쿵! 쿵!

천정의 전함이 맹렬한 공격을 펼치자 굵은 빛기둥들이 노란 소용돌이를 끊임없이 공격했다.

소용돌이 속을 덮던 노란 구름들은 더욱 빠른 속도로 흩어졌고, 가운데 난 통로는 점점 뚜렷해졌다.

무암성이 처한 전세는 이렇게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 * *

무암성 근처의 별하늘.

흑백 빛을 내뿜는 석목이 먼 곳에서 날아와 순식간에 근처의 운석 위에 내려왔다.

석목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많은 진기를 소모하면서 한계를 초월할 정도로 구전현공 음양의 힘을 시전하여 쉬지 않고서 날아왔다.

석목은 주변을 훑어보며 최상급 영석을 꺼내 들고는 진기를 회복했다.

애초에 석목이 갖고 있던 영석은 이미 진즉에 다 써버렸고, 지금 들고 있는 영석은 연합이 준비한 물자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석목은 요족 연합의 맹주이자 가장 중요한 전력이니 자연스럽게 가장 좋은 자원들을 분배받았다.

무암성은 이미 석목의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으며 외곽을 덮은 두터운 노란 구름층이 은은하게 보였다.

석목은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영목신통을 시전하였지만 여전히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석목은 다급하게 오느라 채아를 데리고 오지 못한 게 이내 후회가 되었다.

석목은 온힘을 다해 영력을 빨아들이자 진기가 칠팔 할 정도 회복되어 다시 무암성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이제 곧 무암성 근처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이미 무암성 근처에선 천정의 대군이 어렴풋이 보였으며 천정은 지금 한곳에 모여 미친 듯이 무암성을 지키는 수호 대진을 공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주변엔 수많은 빛들이 끊임없이 번쩍였다.

석목은 마음이 다급해져 등 뒤에 흑백 날개를 펼치고는 더욱 빠르게 날아갔다.

이때, 푸른색 검광이 성운 속에서 날아 나와 석목을 공격했다.

이 검광은 사나운 기운을 머금고 있었으며 성운에서 나온 순간에 곧바로 사방으로 빛을 뿜었다. 그러자 검광이 내뿜는 살기에선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잘라버릴 것 같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석목은 전력으로 날아가느라 주변에 잠입해있던 사람을 발견하지 못해 흠칫 놀랐다.

하지만 석목은 마치 한 마리 영리한 뱀처럼 몸을 비틀어 비스듬히 푸른 검광을 피했다.

그러자 금색 옷을 입은 남자가 성운 속에서 날아 나왔는데 남자는 반드시 죽이겠다고 날린 검광이 적중하지 못하고 허공에 떨어지자 아주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남자가 손을 흔들자 푸른 검광이 다시 그의 머리 위로 날아올라 빙글빙글 돌았다.

“당신은 누군지? 경고하겠는데 삼대 종족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면 가까이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남자는 석목을 훑어보다가 비범한 실력을 지녔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곧바로 협박을 했다.

남자는 천정의 신장이었는데 비로 선장이 무암성 주변을 순찰하라고 지시를 내려 이곳에 있었던 것이었다.

비로 선장이 남자에게 이런 잡일을 시킨 게 마냥 불만스러웠으나 정말로 누군가 다가왔다.

석목은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고서 한 손을 흔들어 붉은 깃발인 호천현화번 세 개를 꺼내 들었다.

호천현화번은 빠르게 불어나 ‘쿵!’ 소리를 내며 크기가 수십 장에 이르는 붉은 화운으로 변하더니 남자를 향해 날아갔다.

남자는 석목이 공격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해 안색이 굳어버렸고, 남자는 곧바로 푸른 검광을 밝히며 푸른 검기 수백, 수천 갈래로 커다란 연꽃을 뭉쳐 화운을 맞았다.

그러자 석목이 화운 속으로 붉은빛을 날렸다.

붉은 화운은 들끓으며 몇 배나 불어났고, 빛이 번지는 사이로 은은한 흡인력이 흘러나왔다.

푸른 검기로 만든 연꽃은 화운에 닿는 순간, 마치 진흙탕에 빠져버리듯이 사라져 버렸다.

“뭐야!”

남자는 눈에 믿기지 않는 기색이 어렸다.

붉은 화운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채 곧장 남자를 안으로 가두었다.

남자는 눈앞이 희미해졌다가 이내 붉은 공간 안에 놓였다.

“여긴 어디야!”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며 소름이 돋았다.

“네가 묻힐 곳!”

석목의 그림자가 반짝이며 허공에 나타나 두 손으로 법결을 한 갈래 날렸다.

쾅!

붉은 공간이 미세하게 흔들리자 곳곳에 노란 화염인 호천성염이 나타났으며 공간은 순식간에 온도가 뜨거워졌다.

석목이 두 손을 흔들자 수많은 호천성염이 들끓으며 밀물처럼 남자에게로 몰려갔다.

그리고 붉은 공간 안에는 또 다른 공간이 나타나 가운데를 향해 좁아져 남자는 불길을 피할 수도 없었다.

“으아!”

남자는 절망의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신경 강자인 남자는 이렇게 포기할 수 없어 곧장 정신을 가다듬고는 법결을 시전하였다. 그러자 남자에게서 빛이 반짝이더니 법보가 줄줄이 나타나 순식간에 빛나는 보호막을 수십 갈래 펼쳐 온몸을 덮어 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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