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65화 (765/916)

765화. 잠행

“이제 끝이구나!”

육규종은 순식간에 한절을 따라잡고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몸을 꼿꼿이 세운 채 노란빛을 드리워 도끼를 날렸다.

족히 일고여덟 갈래나 되는 도끼 그림자가 동시에 날아 나와 크기가 수십 장에 이르는 맹수의 허상을 이루었다.

이 맹수는 현귀(玄龜)처럼 생겼지만 등에는 노란 무늬들이 높이 튀어나와 보통 현귀와는 조금 달랐는데 마치 거북이가 큰 산봉우리를 지고 있는 것 같았다.

현귀 허상은 수많은 부문을 감고 있었고 옅은 법칙의 기운을 풍겼다. 이어 입을 벌리고는 한절을 삼키려했다.

한절은 깜짝 놀라 피하지 못할 걸 알고는 빠르게 돌아섰다. 그러자 한절의 가슴에서 네 가지 빛이 반짝이더니 등 뒤에 가마 허상이 네 개 나타났고, 한절의 손에는 은색 장극이 들렸다.

한절의 왼손엔 청강등모를, 오른손에는 은색 장극을 들고 있었다. 또한 두 무기에서는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 금색이 빛을 내며 흘렀다.

한절이 동시에 두 팔을 휘두르자 두 무기가 동시에 날아가 네 가지 색 허상을 그렸다. 그리고 허상 속에는 붉은 부문들도 섞여있었는데 부문에선 법칙의 힘이 흘러나왔다. 허나 물론 육규종이 맺은 현귀 허상이 풍기는 법칙의 힘과는 비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법칙의 힘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오직 법칙의 힘뿐이었다.

두 갈래 허상이 커다란 교도(交刀) 허상으로 변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력한 기운을 풍기며 현귀 허상과 부딪쳤다.

육규종은 눈에서 싸늘한 빛이 스쳤다. 그리고 육규종이 손을 들자 현귀 허상은 머리를 꺼내 입을 벌리고는 흡인력을 터뜨려 단번에 교도 허상과 한절을 삼켜버렸다.

맹수의 복부로 들어간 한절은 몸이 짓눌려 곧바로 무릎을 반쯤 꿇었다.

주변에선 노란 부문들이 들끓었는데 한절은 마치 묵직한 산에 짓눌린 것처럼 아무리 힘을 줘도 일어설 수 없었다.

동시에 형태가 없는 큰 손이 한절의 목덜미를 잡아 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비록 내 귀허태장대법(龜墟胎藏大法)은 진정한 영역과 비교를 할 순 없지만 네놈 하나는 거뜬히 해치울 수 있지!”

육규종이 악랄한 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육규종은 들어 올린 손을 꽉 쥐었다.

한절의 뼈에서 ‘뿌드득!’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목덜미에서도 소리가 들려와 곧 부러져버릴 것 같았다.

원래 부상을 당한 몸인데다 격전을 치러 한절은 진기가 턱없이 부족하여 벗어날 수도 없었다.

한절은 이 모든 일을 예상치 못해 안색이 점점 얼어붙었다.

이때, 굵고 검은 연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더니 검은 손으로 변하여 육규종의 현귀 허상 속으로 찔러 들어갔다.

검은 손에선 부문들이 반짝였는데 그 속에 마영이 어렴풋이 떠있었다. 그리고 사람과 짐승 얼굴 수천, 수만 개가 동시에 일그러지며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를 흘려보내 등골이 오싹해졌다.

검은 손이 현귀 허상에 닿는 순간, 허상은 부식되어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그 속에 감돌던 노란 부문들도 흘러나왔다.

검은 손은 순식간에 한절 옆으로 다가와 둥그런 광막을 펼치더니 한절을 안으로 드리웠다.

“이건…… 아비마기(阿鼻魔氣)! 구사윤회 마공!”

육규종은 안색이 바뀌었다.

“후……”

한절은 짓누르던 힘이 풀리자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둥그런 광막 속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한절은 고개를 들어 육규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가에 비웃음을 잔뜩 지었다.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거인인 비로 선장의 그림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천정의 아홉 번째 선장, 비로!”

육규종은 비로 선장을 바라보며 동공이 쪼그라들더니 부들부들 떨었다.

이때, 빛이 반짝이며 그림자 스무 갈래가 연이어 나타났다. 그리고 가장 앞에 선 채로 다가온 사람은 하얀 옷을 입은 남궁경이었다.

육규종의 안색이 다시 바뀌며 뒤로 백 장 정도 날아갔다. 그리고 노란빛을 반짝이며 현귀 방패를 다시 꺼내 들었고, 노란 도끼에도 빛을 크게 드리웠다.

비로는 담담한 눈으로 육규종을 한번 훑어보고는 한절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둥그런 광막이 사라졌고, 한절은 일어선 후에 곧장 비로와 남궁경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두 선장님께 인사드립니다.”

한절이 공손하게 말했다.

“조극, 넌 상처를 입었으니 우선 한쪽으로 물러나거라.”

비로는 그리 말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금빛 한 줄기가 한절에게로 날아갔다.

한절은 한 손을 들어 금빛을 거두어들였다. 그러더니 몸이 희미해졌다가 이내 하얀 옷을 입은 인족 청년으로 변하였다.

사실 한절은 문아한 얼굴에 잘생긴 외모를 지닌 조극이었다.

“고생 많았구나. 천정으로 돌아가면 존상께서 큰 상을 내릴 게다.”

비로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남궁경은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조극을 바라보았다.

비로 뒤에 서 있던 서문설은 그 말을 듣고는 눈에 이채가 스쳤다가 사라졌다.

서문설은 고개를 살짝 돌려 저 멀리 성역을 한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초조한 기색이 서문설의 얼굴에서 스쳐 지나갔다.

이때, 먼 하늘에서 두 갈래의 빛이 날아왔는데 한쪽은 반귀 일족이었으며 다른 한쪽은 천봉과 지룡 일족이었다.

육규종은 천봉, 지룡 일족이 다가온 걸 보자 눈에 희색이 어렸다.

근처로 다가온 삼대 종족의 신경 강자들은 모두 열일고여덟 명 정도라 천정의 신장들보다 숫자가 조금 적었다. 하지만 함께 온 성계 강자들은 족히 수 백 명이나 되었다. 게다가 그들 뒤로도 빛이 계속해서 날아왔으며 지원군과 전함들도 빠르게 다가왔다.

천봉과 지룡 일족이 다가오자 노란 소용돌이 밑에 모인 천정의 신경 강자들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육 형, 어찌된 일입니까?”

조윤이 물었다.

“영부 일족의 한절이 천정의 첩자였습니다. 본명은 조극, 저놈이 진추 두 곳을 무너트려 천정에게 길을 내줬죠.”

육규종은 숨을 고르고 있는 조극을 바라보며 눈에서 싸늘한 빛을 내비쳤다.

조윤은 안색이 굳어지더니 적안과 눈빛을 교환했다.

한절은 천봉 일족의 축전 때부터 삼대 종족을 따라다녔다. 이렇게 오랫동안 잠복해있었다니, 천정이 준비한 계략은 실로 놀라웠다.

“육 형, 수호 대진은 이미 뚫려버렸는데 상대는 우리보다 신경 강자가 많아요. 이렇게 버티기는 힘들 테니 우선 물러서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적안은 비로를 비롯한 천정의 신장들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대진에 구멍은 이제 막 뚫렸어요. 신경 강자가 아니라면 천정 놈들은 절대로 내려올 수 없습니다. 지금 들어온 녀석들이 전부이니 비록 신경 강자가 많을지라도 우리가 숫자에서 유리하니 괜찮아요! 천기(天機) 장로님, 사람들을 데리고 통로를 막으시죠. 다른 사람들은 나와 함께 공격합시다. 지금이 놈들을 죽일 가장 좋을 때입니다!”

육규종이 소리를 지르며 노란 도끼에 빛을 크게 드리워 가장 먼저 비로 선장을 향해 내리쳤다.

반귀 일족은 족장이 먼저 공격을 하자 뿔뿔이 날아 나와 천정의 신장들과 격전을 펼쳤다.

허나 흰머리가 자라난 신경 노인과 성계 수련자들 열 몇 명, 그리고 법사처럼 옷을 입은 반귀 일족들은 함께 따라가지 않고선 하늘로 날아올라 노란 소용돌이로 향했다.

적안은 어쩔 줄 몰라 고개를 돌려 조윤을 바라보았다.

“조 형, 우리……”

조윤은 고개를 들어 노란 소용돌이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천정의 대군이 여전히 미친 듯이 공격을 해도 공간 통로가 점점 늘어났다가 이내 안정을 되찾는 모습을 보자 조윤은 눈에 결연한 기색이 스쳤다.

“통로를 봉인하겠다고? 내가 이곳에 있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남궁경이 코웃음을 지으며 천기 장로를 덮쳤다.

하지만 남궁경이 이제 막 날아올랐을 때, 강렬한 불 속성 기운을 풍기는 적금색 화염이 날아왔다. 그리고 기운이 스친 곳의 허공이 곧바로 녹아버렸다.

남궁경은 이렇게 강력한 화염이라면 그에게도 분명 위협이 되어 안색이 굳었다.

남궁경이 손가락으로 앞을 짚자 빙백신광이 날아 나와 적금색 화염을 막았다.

하지만 남궁경이 시간을 지체하는 동안 그림자 두 갈래가 앞에 나타나서 앞길을 막았는데 두 그림자는 조윤과 금봉이었다.

조윤은 적금색 깃털 부채를 흔들었다. 그 부챗살은 붉은 뼈로 만들어졌고, 그 위에는 금색 깃털이 아홉 개나 자라 있었는데 깃털은 어떤 생물에게서 뽑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매우 고귀한 기운을 풍겼다.

붉은 부문들이 깃털 부채에서 날아 나왔다. 그것들은 부채에 담겨있던 불의 법칙이었다.

금봉은 아무 말 없이 금색 화염을 뿜어냈다. 그러자 붉은색 지팡이에서 불길이 수십 장 높이까지 치솟더니 전력을 다해 상대를 막으려는 기세를 내비쳤다.

남궁경은 눈에서 차가운 빛이 스치더니 다섯 손가락을 활짝 폈다.

“빙백한조(冰魄寒潮)!”

칙! 칙!

다섯 갈래의 한기가 날아와 폭발하며 하늘을 가릴 듯이 펼쳐지더니 조윤과 금봉에게로 향했다.

빙백한조 속에는 하얀 얼음과 얼음 화살이 섞여있어 빙백신광을 뛰어넘는 극도로 차가운 기운을 풍겼다.

조윤이 큰소리를 지르자 부채에 달린 깃털 아홉 개가 전부 펼쳐지며 적금색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이어 조윤이 손을 흔들자 무수히 많은 화염이 불바다를 이루며 빙백한조를 맞았고, 금봉은 손에든 지팡이를 휘둘러 현강금염을 뿜어내 조윤의 적금색 불바다와 함께 빙백한조를 공격했다.

그와 동시에 육규종의 옆에서 그림자가 반짝이더니 적안이 나타났다.

“육 형, 제가 돕겠습니다!”

적안의 몸에서 파란빛이 반짝이자 깃발 하나가 솟아올랐다.

깃발에선 유유하게 파란빛이 흘렀는데 어떤 재료로 제련을 했는지 짙고 두터운 파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깃발 위에는 헤아릴 수 없는 넓은 바다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적안이 가볍게 손을 흔들자 파란빛이 깃발에서 뿜어져 나와 비로 선장을 공격했다.

허나 비로가 손을 흔들자 또 마기가 한 줄기 날아 나왔다.

이번에 날아온 마기는 조금 전에 날린 마기와 달리 하얀색이었고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비로가 손가락으로 앞을 짚자 하얀 기운이 들끓으며 적안의 파란 깃발을 막아섰다.

“조심해야 합니다! 구사 윤회마공이 변신한 마기입니다. 지독하기 그지없어 조금만 묻어도 뼈가 전부 녹아 버릴 겁니다!”

육규종은 적안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는 곧바로 구사 윤회 마공이 지닌 위험을 일깨워주었다.

적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결 같은 파란빛을 뿜어내 자신을 꽁꽁 감쌌다.

둘은 처음으로 힘을 합치는 것이 아니었기에 공격을 하는 게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워 비로 선장은 곧장 비바람 속에 드리워졌다.

허나 비로 선장은 두 손을 흔들며 두 갈래 마기를 다양하게 바꿔 공격과 수비를 적절하게 하면서 적안과 육규종이 날린 모든 공격을 받아쳤다.

비로가 짓는 표정은 마치 반귀족의 진법사들을 보지 못한 듯이 여전히 차분했다.

다른 신장들이 진법사들을 막으려 했으나 반귀 일족의 대군은 희생을 무릅쓰고 미친 듯이 달려들어 신장들을 공격했다. 물론 그 사이에 진법사들은 곧장 노란 소용돌이 밑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빠르개 흩어져 구공도(九宮圖)를 이루었다.

머리가 하얀 노인이 구공도 중간에 서서 주문을 외우며 한 손을 흔들어 노란빛을 날렸다. 그러자 진기 수십 갈래가 노란 소용돌이 속으로 날아갔다.

이에 다른 진법사들도 각자 빛을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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