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66화 (766/916)

766화. 잠입

무암성 밖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천정의 대군이 이끄는 전함 백 여척은 노란 소용돌이 속으로 더 바싹 다가왔고, 그중에 절반이 넘는 전함들이 노란 성운에 뚫린 구멍 밖을 둘러싸고 있었다.

갑옷을 입은 전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전함에 선 채 통로가 안정되면 곧장 무암성으로 쳐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석목이 먼 곳에서 날아왔다.

석목은 전함이 모인 대오와 수 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감추고는 소리 없이 천정의 전함들로 다가왔다. 그리고 잘 보이지 않은 곳에서 멈춰 섰다.

석목은 두 눈에서 뿜어내던 금빛을 거두어들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 근처로 오기 전까지 마주했던 긴장한 국면과 다양한 상황을 떠올리며 석목은 싸울 준비를 했었지만 먼 곳에서 무암성 밖을 둘러싼 천정의 대군과 노란 성운이 기이하게 대치를 하는 건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었다.

석목은 대범하게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중얼거리며 주문을 외워 두 손으로 법결을 짚었다. 그러자 석목의 몸에서 파란빛이 흐르더니 옅은 수막이 나타나 기운을 숨겼다. 이어 석목은 또 다른 날카로운 영력을 흘려보냈다.

석목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뼈에서 ‘뿌드득!’ 소리가 나더니 순식간에 몸집이 몇 배나 불어났다. 그리고 석목은 얼굴도 점점 커져 조금 전에 격살한 신경 남자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하였다.

석목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모습을 훑어보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금색 옷을 하나 꺼내 입었다.

석목은 옷매무새를 만진 후에 심각한 표정으로 허공에 나타나서는 당당하게 전함 부대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그 전함들 중에 하나에 올라갔다.

전함에 모인 사람들이 전부 노란 소용돌이를 바라보다가 석목이 내려오는 모습을 보자 시선을 석목에게로 던졌다.

그중에 보라색 갑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잰걸음으로 석목에게 다가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달로(達魯) 신장님, 비로 선장님이 무암성 주변 상황을 순찰하라고 하셨는데 어째서 돌아오셨습니까?”

석목은 자신이 죽여 버린 남자를 수혼하지 않았기에 아무렇게나 대답을 할 수는 없으니 담담하게 말했다.

“주변엔 별 이상이 없더군. 보고를 하러 왔는데 비로 선장님은 어디 계시는가?”

“비로 선장님 일행은 이미 무암성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우리에겐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셨죠.”

보라색 갑옷을 입은 중년이 대답했다.

석목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선 뒷짐을 진 채 함교 뒤로 걸어갔다.

* * *

무암성 안에서는 여전이 격전이 치러지는 중이었다!

비록 천정의 세력이 강력하긴 했으나 대진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삼대 종족은 우세한 머릿수를 바탕으로 간신히 상대와 싸우면서 천기 장로를 비롯한 진법사들을 위해 시간을 벌었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자 깔때기 모양인 노란 소용돌이가 눈에 띄는 속도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 광경을 본 육규종은 그제야 마음을 조금 놓았다.

허나 모두가 국면이 안정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주문을 외우던 천기 장로는 몸이 굳어선 주문을 읊지 못하더니 거친 목소리만 들렸다.

“풉!”

천기 장로의 가슴에서 검은 무언가가 튀어나왔고, 가슴께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천기 장로의 등 뒤쪽 허공에서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나타났는데 그 용모는 비로 선장과 똑같았으며 세 치 정도 되는 넓적한 검은 귀두도(鬼頭刀)를 들고 있었다.

처량한 귀신의 울음소리가 귀두도에서 흘러나왔으며 기이한 검은 빛도 도에서 뿜어져 나왔는데 그 안에서 삼키는 힘이 느껴졌다.

천기 장로는 몸이 순식간에 메말라 줄어들었다.

검은 비로 선장이 손을 흔들자 귀두도가 다시 천기의 몸에서 뽑혀져 나왔다.

천기 장로의 말라버린 시체는 두 덩이로 갈라졌고, 신혼도 날아 나오지 못한 채 귀두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격전을 치르던 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라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사실 반귀 일족은 공간에 난 통로만 막으면 수호 대진을 가동시켜서 뚫고 들어온 천정 놈들을 단번에 잡아버릴 작정이었다.

“마혼 분신!”

남궁경의 눈에서 빛이 스치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육규종은 안색이 일그러져서는 비로 선장을 노려보았다.

“우둔한 놈들! 내가 들어온 이상, 다시 통로를 막도록 그냥 두겠는가?”

비로 선장이 싸늘하게 말했으나 곧바로 반격을 하지는 않았다.

적안도 안색이 굳어서는 육규종을 한 번 쳐다보았다.

비로 신장이 다시 손을 흔들자 귀두도에서 검은빛이 폭발하며 나머지 성계 진법사들을 전부 검은 빛속에 묻어버렸다.

이어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빛이 사라지며 마른 시체 수십 구가 허공에서 떨어졌다.

쿵! 쿵! 쿵!

허공에 뜬 노란 소용돌이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뚫린 공간 통로가 천천히 안정되었다. 그리고 천정의 사람들이 통로를 통해 줄줄이 무암성으로 들어왔다.

삼대 종족은 전부 깜짝 놀랐다.

“다들 낙심하지 맙시다. 우리는 여전히 우위에 서 있어요. 만약 천정 놈들이 전부 들어오면 우리에겐 죽음뿐이니 죽을힘을 다해 싸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육규종이 소리를 지르며 노란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크기가 수십 장에 이르는 도끼 그림자를 만들어 비로 선장을 내리쳤다.

적안은 잠깐 망설이다가 파란 깃발을 맹렬하게 흔들었다. 그러자 맷돌만한 파란 수강신뢰가 나타나 커다란 홍수를 이루며 비로 선장을 공격했다.

육규종이 힘을 북돋자 삼대 종족 사람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천정과 격전을 펼쳤다.

천정의 사람들은 수련 경지가 더 높은 편인데다 남궁경과 비로는 혼자서 신경 둘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남궁경은 천봉 일족의 족장인 조윤과 금봉 장로를 상대로 싸우고 있었고, 비로는 반귀 일족의 족장인 육규종과 지룡 일족의 족장인 적안을 상대로 결투를 벌였지만 둘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다행히 삼대 종족은 인원수에서 우세를 차지했으며 지리에서도 유리한 형세라 천정의 나머지 신장들과 싸우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양쪽은 한참 동안 대치 상태를 이루며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하지만 천기 장로가 격살을 당한데다가 비로 선장의 마혼 분신이 노란 소용돌이를 지키고 있어 삼대 종족 중에 그 누구도 소용돌이에 가까이하지 못했다. 그러던 사이에 공간 통로는 점차 안정을 되찾았고, 밖에 모여 있던 천정의 대군이 통로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비록 통로는 공간이 비좁아 한 번에 들어올 수 있는 병력이 한정되었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삼대 종족은 불리해질 터였다.

육규종은 미간을 찌푸렸다.

허나 다행히 사방팔방에서 삼대 종족의 지원군이 계속 모여들고 있어 당분간은 문제가 없었다.

육규종은 가까이에 있는 적안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아래에 있던 서른 명이 넘는 성계 강자가 전투에서 벗어나 노란 구름을 향해 공격했다.

가장 앞선 열 명은 비로의 마혼 분신에게로 향하여 분신과 격전을 치렀으며 나머지 성계 강자 스무 명은 두 갈래로 갈라져 비로의 분신 뒤에 자리한 소용돌이 통로로 향했다.

육규종과 싸움을 펼치던 비로는 눈에서 빛을 반짝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노란 소용돌이 근처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와 먹물처럼 짙은 연기를 사방팔방으로 내보내 눈 깜짝할 사이에 주변 백여 장 안쪽을 채웠다.

짙은 연기가 들끓자 그 속에서 기괴한 그림자가 나타나 마치 구유악귀(九幽惡鬼)처럼 흉악한 모습을 드러내며 성계 강자들을 덮쳤다.

“큰일이군! 빨리 피해!”

육규종이 소리를 질렀다.

스무 명의 성계 강자들은 소용돌이와 고작 백 장 정도 떨어져 있어 육규종의 목소리를 듣고선 빠르게 뒤로 물러났지만 가장 앞에 있는 몇몇은 피하지 못한 채 괴상한 그림자에게 쫓겼다.

그림자는 귀신처럼 기이한 자세로 사람들의 겨드랑이 밑을 스쳐지나 곧장 등 뒤로 다가가서는 검은 빛을 반짝이더니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으아……”

앞에 있던 성계 강자들은 처참하게 소리를 지르며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고, 동시에 눈도 까맣게 변하여 흰자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검은색 연기가 피어올랐는데 그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동족들은 그 모습을 보고서 구해주러 가려 했으나 가까이 다가가자 검은색 연기에 물든 몇몇 성계 강자들이 미친 듯이 동족들을 덮쳤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동족을 물어뜯었는데 인성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원혼이 몸에 붙었다. 죽여 버려!”

육규종이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나머지 열 몇 명은 잠깐 망설이는듯하더니 곧바로 원혼이 붙은 성계들을 죽여 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더는 아무도 노란 소용돌이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국면은 다시 대치를 하는 상태가 되었다.

* * *

시간이 흐를수록 공간 통로는 점점 더 커졌으며 천정의 병력은 숫자가 점점 많아져 기세가 점차 한쪽으로 기울었다.

삼대 종족이 우세했던 점들은 점차 사라졌으며 죽는 사람도 더 늘어났다.

하지만 천정의 신경 강자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한쪽에서 서문설이 도인지 검인지 구분할 수 없는 무기를 들고선 혼자서 반귀 일족 성계 강자 세 명과 격투를 펼쳤다.

서문설이 움직이는 몸짓은 매우 유연했으며 검을 내지를 때마다 허공에 검기 수십 갈래가 눈부시게 빛났다. 그리고 검기가 뿜는 위력은 본체와 크게 다르지 않아 절대 막아낼 수도 없었다.

반귀 일족 세 명은 전부 경지가 성계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다들 이미 요족 본체로 변신하여 몸에 반석 같이 커다란 거북이 등껍질을 지고선 입으로는 맷돌만한 노란 구체를 뿜어냈다. 반귀 일족들이 뿜어내는 구체는 눈부신 빛을 머금은 무토신뢰(戊土神雷)였다.

이런 무토신뢰는 위력이 매우 강력해 터질 때마다 수리 밖 허공마저 흔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강력한 셋이 힘을 합쳐도 서문설에겐 적수가 되지 못했으며 서문설의 검기는 가볍게 무토신뢰를 부숴버렸다.

성계 세 명은 굵은 땀을 뚝뚝 흘리며 온 힘을 다해 무토신뢰를 뿜어냈지만 여전히 밀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몸에 난 상처는 점점 늘어났으며 결국 등껍질마저 날카로운 검기를 막아내지 못해 셋은 이미 피범벅이 되었다.

서문설은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화려하고도 뚜렷한 금색 검영 수백 갈래가 허공에 나타나 얽히고설키더니 모든 무토신뢰를 부셔버렸다.

그리고 금색 검영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은 채 셋을 향해 쏟아졌다.

“아아아!”

처참한 비명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반귀 일족 성계 세 명은 전부 머리가 떨어져나가 성배마저 검기 때문에 파멸되었으며 시체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서문설은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눈빛 깊은 곳에는 그늘이 졌다.

“서문 신장, 오랜만이네요. 꽤 오랫동안 못 뵀는데, 실력이 엄청 느셨군요.”

이때, 조극이 서문설에게 다가왔다.

안색을 보니 내상을 완전히 회복한 것 같았다. 과연 조극이 삼킨 금색 단약이 무슨 기이한 효과를 지녔기에 이렇게 빨리 회복되었을까.

“별로 보잘 것 없는 공법이죠. 조극 신장의 구전현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어요.”

서문설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문 신장님, 너무 겸손하시군요. 곤륜 비경에서 장태 어르신의 시체를 얻어서 실력이 빠르게 늘어 성계 경지임에도 불구하고 축운검파의 성주인 목천절을 죽여 천정이 미양 성역을 수복할 때 큰 공을 세우셨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존상마저 칭찬을 하시더군요.”

조극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과찬이에요. 당신이 세운 공적도 대단하던데요. 단번에 삼대 종족의 연맹을 뚫었잖습니까? 놈들은 천하 성역에서 제일가는 능력자들이었지요.”

서문설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보잘것없는 공적이라 입에 담기도 부끄럽습니다.”

조극은 서문설이 하는 말에 의기양양한 기색을 내비쳤다.

“우리는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데, 신장이라 부르지 마시고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서문설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조극은 얼굴에서 이상한 빛이 스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요. 저도 마침 불편했던 터였습니다.”

“천 년 전에 벌어진 그 전쟁에서 십이 선장들 중 네 명이 운명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후로 열 번째와 열두 번째 자리는 이미 수임을 했으나 여섯 번째와 여덟 번째 자리는 여전히 비어있다고 하더군요.”

서문설이 화두를 돌렸는데 그 말에는 어떤 깊은 뜻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맞네요. 예전에는 제가 서문 도우를 많이 오해한 것 같은데 예전 일은 잊어주시죠!”

조극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서문설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매혹적인 웃음을 짓자 조극은 그녀를 바라보며 잠깐 넋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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