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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767화 (767/916)

767화. 구사윤회

서문설은 말을 이어가려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마치 무엇을 본 듯이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비록 서문설의 표정이 달라진 건 한순간이었지만 조극의 눈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조극은 서문설의 시선을 따라 노란 소용돌이에 난 통로를 바라보았다.

통로에는 사람들이 붐볐으며 천정의 전사들이 끊임없이 날아서 내려왔다.

통로 근처에는 삼대 종족의 몇몇 신경 강자들이 사람들을 이끌고선 죽을힘을 다해 적들을 막아냈다. 그리고 통로 근처에서 통제권을 빼앗아 다시 봉인을 하려고 했지만 비로 선장을 비롯한 천정의 강자들이 그들을 끌어내렸다.

통로 근처에는 사람들이 얽히고설켜 빛들이 난잡하게 번지기만 했을 뿐, 아무런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서문설은 조극의 표정을 살피며 흠칫 놀랐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았다.

“조 형, 별일이 없으시다면 저는 먼저 물러나겠어요.”

서문설은 말을 하고는 또 다른 전장으로 날아갔다.

조극은 멀어져가는 서문설을 바라보며 눈에서 빛을 반짝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고는 다른 곳을 향해 덮쳤다.

천정이 우세를 차지하고 있어 삼대 종족을 물리치는 것은 시간문제였으나 이럴 때 일수록 방심을 하면 아니 되었다. 게다가 삼대 종족은 두터운 실력을 지닌 종족들이라 절대 가볍게 볼 수 없었다.

조극은 눈에서 흥분을 하는 기색이 스쳤는데 만약 단번에 무암성을 점령할 수만 있다면 온 천하 성역을 삼키는 건 훨씬 수월해질 터였다.

게다가 조극은 큰 공을 세웠으니 천정에서 지위도 크게 오를 터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조극은 흥분한 기색을 내비치며 소리를 지르더니 청강등모를 꺼냈다.

조극이 한 손을 흔들자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길이가 수십 장에 이르는 거대한 창 그림자가 나타나 아래를 내리쳤다.

* * *

멀리 있는 돌 뒤에서 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날아왔다. 그런데 남자는 조극과 서문설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남자는 석목이었다.

석목은 통로에 잠입하여 들어온 후에 곧바로 용모를 바꿨다. 그 이유는 조금 전에 죽여 용모를 따라한 천정의 신장은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전투 현장은 혼란의 도가니였기 때문에 아무도 석목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서문설에게 단번에 발각이 된 석목은 흠칫 놀랐다.

석목은 주변을 둘러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때, 굵은 곤봉 그림자가 옆에서 날아오며 묵직하게 석목을 내리쳤다. 곤봉 그림자가 내뿜는 기세는 매우 놀라웠는데 공격을 한 사람은 지룡 일족의 성계 사내였다.

석목이 천정의 복식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사내는 그를 적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석목은 한 손을 흔들어 붉은빛을 날리더니 곤봉을 잡고는 가볍게 비틀었다.

그러자 곤봉 그림자가 흩어지며 검은 곤봉이 석목의 손에 들어왔다.

지룡족 사내는 흠칫 놀랐는데 법보를 적에게 뺏긴다는 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사내가 소리를 지르자 온몸에서 근육이 툭툭 튀어나오더니 방대한 힘이 그에게서 폭발해 공기 중에 파동이 일었다. 그리고 사내는 온 힘을 다해 곤봉 법보를 뽑으려했다.

하지만 석목의 손에 들어간 곤봉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때문에 스스로 힘이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나다고 여기던 사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곤봉을 보자 어안이 벙벙했다.

석목은 담담하게 지룡족 사내를 한번 훑어보고는 손가락을 굽혀 붉은 화염을 날렸다.

지룡족 사내는 법보를 뺏을 겨를도 없이 고통스러워하며 뒤로 물러났다.

붉은 화염은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은색 옷을 입은 남자도 사라졌으며 오직 검은 곤봉만 조용히 허공에 떠있었다.

지룡족 사내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계속 멍하니 서 있었다.

이때, 석목은 이미 수백 장 밖으로 날아가 여러 격전지를 이리저리 오갔다.

석목이 갖춘 실력이라면 파동이 조금 일어날지는 몰라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자리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석목은 신식을 펼쳐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을 대충 둘러보았다.

그리고 멈칫하며 은밀한 곳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석목은 미간을 찌푸린채 초조한 기색을 드러냈다.

무암성이 처한 상황은 석목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좋지 않았다. 석목은 별을 지키는 수호 대진이 뚫린 건 진즉에 알았지만 삼대 종족이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 처한 줄은 몰랐다.

국면은 점점 불리한 쪽으로 기울어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는 삼대 종족은 전부 무너져 철저히 소멸당할 터였다.

석목은 머리를 굴리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허공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지자 다양한 빛이 얽히고설켜 방대한 영압이 흘러나왔다.

방대한 여섯 갈래 빛은 마치 화난 용 여섯 마리처럼 들끓었는데 그들은 격전을 치르는 육규종과 비로를 비롯한 여섯 강자들이었다.

석목은 문아한 남자에게로 시선을 던지며 실눈을 떴다.

그는 바로 미천거원 일족의 족장 수임 축전에 쳐들어왔던 남궁경이었다. 남궁경은 혼자서 조윤과 금봉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실력이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석목은 시선을 돌려 반귀 일족의 족장인 육규종과 싸우고 있는 비로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비로는 몸에 마기가 맴돌고 있었으며 흩날리는 파란빛 검영과 금색 도끼가 마기 속에 갇혀있었다. 그렇게 육규종과 적안이 동시에 공격을 했지만 비로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로의 몸에서 마기가 뿜어져 나와 육규종과 적안을 촘촘히 공격하니 주변에 있던 삼대 종족 사람들은 단번에 쓸려나가 버렸다.

마기로 침습이 된 사람들은 순식간에 두 눈이 텅텅 비어버렸고 신혼마저 흩어졌다. 게다가 어떤 이들은 뼈까지 녹아버려 가죽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삼대 종족 사람들은 깜짝 놀라 온힘을 다해 도망을 쳤고, 아무도 강자 여섯 명이 다투는 격전지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석목은 심장이 답답했다.

비로도 육규종과 적안을 상대하고 있었지만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니 비로는 실력이 남궁경과 비슷한 것 같았는데 심지어 더 강해보이기도 했다.

석목이 가장 걱정하던 천정이 천하 성역에 보낸 선장이 하나가 아니라 둘인 광경이 펼쳐졌다.

“마기…… 이건 구사윤회 마공인가?”

석목은 흩날리는 마기를 똑바로 보며 무엇인가가 떠올랐는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연나는 석목에게 마공과 관련된 것들을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중에도 구사윤회 마공은 흑마 성역에서 만 년 가까이 전해진 상고시대의 삼대 마공 중 하나였는데 ‘구사무생’, ‘영추윤회(永墮輪回)’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구사윤회를 끝까지 수련하면 몸속에서 극에 달한 마기를 아홉 갈래 시전할 수 있었다.

구사윤회가 지닌 능력 중에 하나는 피부를 상하게 하지 않고도 뼈를 녹이는 힘이었다. 또한 방어력이 매우 뛰어나 아무도 그 마기를 제어할 수 없는데다가 원혼을 몸에 붙여 신혼을 삼킬 수도 있었다.

또한 구사윤회가 대성에 이르면 천하무적이 될 터였는데 비로 선장이 시전하는 마공의 위력을 보니 철저히 대성에 이르지는 못했어도 대성과 그리 멀지 않은 듯 보였다.

허공에서 다투던 여섯 명 중에 육규종 쪽은 네 명이나 되었지만 비로 신장과 남궁경이 갖춘 실력이 워낙 뛰어나 네 명은 계속 밀리고 있었다.

석목은 시선을 거두어들이고는 고개를 돌려 통로를 지키고 있는 비로의 화신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몸을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 * *

공간 통로.

이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를 펼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공간 통로였다.

점점 많은 천정의 대군이 전장으로 몰려들며 새로운 전력이 계속 보충되었다.

삼대 종족도 천정의 세력이 점점 강해지는 걸 알아차리고는 빠르게 전세를 조정했다.

삼대 종족 연합들 중에 절반이나 되는 병력이 통로로 몰려들었으며 미친 듯이 공세를 펼쳐 통로를 주관하는 통제권을 빼앗으려 했지만 천정이 훼방을 놓았다.

통로 근처에선 다양한 빛이 반짝였으며 굉음이 끊이질 않았다.

통로에서 펼쳐지는 전투는 허공에서 다투는 비로 선장을 비롯한 강자들과 규모를 비교할 수 없었지만 그 치열한 정도는 이미 여섯 강자를 뛰어넘었다. 통로에선 시시각각 사람이 죽어갔는데 그 모습을 보니 마치 거대한 분쇄기 같았다.

통로 근처의 허공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석목이 나타났다. 그리고 석목은 전장의 안쪽을 올려다보았다.

천정과 삼대 종족은 각각 신경 강자들을 통로쪽으로 보냈다.

삼대 종족 쪽엔 신경 강자가 네 명 있었다.

반면에 천정의 신경 강자는 세 명 뿐이었지만 비로 선장의 마혼 분신과 고만족 신장이 두 명 있었다.

천정 쪽은 신장이 한 명 더 적었지만 마혼 분신은 실력이 매우 뛰어나 신경 중기 강자와 비등했다.

분신은 굵은 마기를 내뿜으며 구사윤회 마공을 시전하고 있었다. 분신이 내뿜는 위력은 비록 비로 선장의 본체만큼은 아니지만 손에 귀두도를 들고 있어서 혼자서 삼대 종족의 신경 강자 둘과 싸울 수 있었다.

신경 강자 일곱 명이 치열하게 전투를 펼쳤으며 성계와 천위 강자들도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기에 전장은 매우 참혹했다.

석목은 멀리서 마혼 분신을 바라보다가 전장으로 날아가 중심과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데다가 석목은 천정의 복식을 입고 있어서 아무도 석목을 발견하지 못했다.

전장 가운데서 마혼 분신은 두 신경 강자와 결투를 하며 다양한 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기포가 끊임없이 터져 나와 백 장 안쪽으론 아무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마혼 분신이 소리를 지르며 손에 든 귀두도를 휘두르자 검은 기운이 도에서 뿜어져 나와 수많은 악귀로 변하여 사람들을 물어뜯으려 했다.

동시에 분신은 입으로 중얼거리며 손을 흔들더니 아홉 갈래 마기를 검은 도에 불어넣었다.

그러자 검은빛이 미친 듯이 번쩍이더니 마기와 도광이 합쳐져 길이가 수십 장에 이르는 용으로 변하여 두 사람을 공격했다.

분신과 맞서는 두 신경 강자들 중 한 명은 천봉 일족의 조주명이었으며 다른 한 명은 피부가 고동색인 반귀족 사내였다.

두 사람은 전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조주명은 주문을 외우더니 붉은 비검 수십 갈래를 날려 몸 앞에 나란히 세웠다. 그리고 빠르게 법결을 짚어 앞을 가리키자 비검에서 빛이 번지더니 하나로 뭉쳐 거대한 화룡으로 변해 맹렬하게 앞으로 향했다.

반귀족 사내는 굵고 푸른 낭아봉을 꺼내 들었다.

낭아봉에서 수많은 푸른색 무늬가 생기더니 높이가 수십 장에 이르는 푸른 화염이 타올랐다.

사내가 소리를 지르자 푸른 화염이 들끓으며 순식간에 날아가 불길이 되어 조주명의 화룡과 함께 마혼 분신이 만든 검은 용을 공격했다.

하늘이 무너질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자 빛 세 갈래가 하나가 되어 터져버리면서 강풍이 휘몰아쳐 주변으로 밀려났다.

이후 두 그림자가 전장에서 날아 나왔는데 그들은 바로 조주명과 반귀족 사내였다.

둘은 낯빛이 어두웠고 입가에 피가 묻어있었는데 조금 전에 치른 격전에서 부상을 당한 것이었다.

허나 여파가 흩어지기도 전에 마혼 분신이 나타났다. 마혼도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으며 크기도 반이나 줄어들었다. 하지만 조주명과 반귀족 사내보다는 상태가 좋아보였다.

“포기해라! 천하 성역은 우리 천정의 손아귀에 들어올 테니. 너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다.”

마혼 분신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조주명과 반귀족 사내는 안색이 굳은 채 서로를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

이때, 마혼 분신의 뒤에서 빛이 번쩍이며 한 청년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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