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8화. 정세를 바로잡다
석목은 이미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석목은 붉은빛을 뿜으며 한 손을 휘둘러 붉은 깃발 세 개를 날렸다. 그러자 깃발들이 마혼 분신의 머리 위에서 순식간에 수십 배나 커졌는데 그 깃발들은 바로 호천현화번이었다.
쾅!
호천현화번에서 빛이 번지더니 깃발들은 거대한 화운으로 변하여 기세등등하게 하늘에서 내려와 마혼 분신에 드리웠다.
마혼 분신은 깜짝 놀라 아홉 갈래 마기를 순식간에 부풀려 합치더니 검은 기둥으로 변신시켜 화운을 밀어냈다.
석목은 주문을 외우다가 손가락으로 앞을 짚었다.
그러자 붉은 부문들이 수도 없이 날아 나와 빛 덩이로 변하더니 화운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화운은 한참 들끓다가 커다란 소용돌이를 만들어 놀라운 흡인력을 뿜어냈다. 그러자 검은 기운이 소용돌이에 닿는 순간, 순식간에 삼켜져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마혼 분신은 낯빛이 다시 바뀌었다.
하지만 분신이 다른 공격을 시전하기도 전에 거대한 화운이 번개 같은 속도로 마혼 분신을 묻어버렸다.
조주명과 반귀족 사내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변을 인지하기도 전에 마혼 분신은 이미 화운 속에 갇혔다.
둘은 어안이 벙벙해 멍하니 나무처럼 서 있었다.
특히 조주명은 석목을 잘 알고 있었다. 분명히 얼마 전만 해도 경지가 성계였던 사람이 지금 자신조차 전혀 상대하지 못하고 있는 적을 제압했다니.
“두 분, 긴박한 상황이니 자세히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이 마혼 분신과 공간 통로는 제가 잠시 막고 있을 테니 빨리 천정 놈들을 격살하세요. 통로를 다시 막아야 합니다!”
석목이 빠르게 조주명과 반귀족 사내에게 전음을 보낸 후에 화운 속으로 들어갔다.
쾅!
화운은 다시 크기가 수백 장으로 불어나더니 거대한 보루처럼 움직이면서 가까이 자리한 통로로 향했다.
주변에 있던 천정의 대군은 깜짝 놀랐는데 나머지 고만족 신장 두 명은 넋을 놓다가 그제야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는지 소리를 지르며 화운을 향해 날아갔다.
“막아!”
조주명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삼대 종족의 또 다른 신경 강자 두 명이 빠르게 날아가 고만족 신장들 앞을 가로막았다.
화운은 마치 거대한 전함처럼 무겁게 천정의 대군과 부딪쳤으며 재빠르게 공간 통로로 날아갔다.
천정의 대군은 그제야 화운이 움직이는 의도를 파악하고는 전부 죽을힘을 다해 공격했다. 하지만 모든 공격은 전부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깐 사이에 화운은 공간 통로로 다가가 구멍을 막아버렸다.
그 모습은 마치 급류를 틀어막는 보처럼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천정의 대군을 순식간에 막아버렸다.
노란 구름 소용돌이 아래쪽 공간 통로가 막히자 삼대 종족 연합군은 사기가 크게 올랐다.
조주명과 반귀족 사내를 선두로 삼대 종족 대군은 마치 뾰족한 창처럼 곧장 혼란에 빠져있는 천정의 대군을 향해 나섰다.
* * *
비로 선장을 비롯한 여섯 강자는 여전히 치열한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비로 선장은 심각해진 얼굴로 검은빛을 반짝이며 구사 윤회 마공을 끝까지 시전하였다. 그러자 비로의 등 뒤에 커다란 원판 허상이 떠다녔는데 원판에는 검은 구멍이 아홉 개나 뚫려있었고, 구멍마다 굵은 마기를 뿜어냈다.
아홉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전부 달랐는데 안개처럼 가벼운 것도 있었고, 물처럼 무거운 것도 있었다. 그리고 마기 속에서 귀신 그림자가 번쩍이면서 구슬피 우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기의 위력은 극에 달하였고, 하늘과 땅을 삼킬 것 같은 놀라운 기세를 풍겼다. 그리고 마기가 스친 곳은 전부 허무로 돌아갔다.
하지만 육규종과 적안도 만만치 않았다.
육규종은 이미 요족의 본체가 지닌 특성을 드러내 노란 비늘 갑옷을 두르고는 묵직한 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육규종이 몸짓을 하는 사이에 천하를 부숴버릴 듯한 같은 막강한 위력이 흘러나왔고, 그건 엄연히 신경 중기 강자의 위압이었다.
적안도 본체로 변신하여 몸에서 파랗고 굵은 뼈 가시가 튀어나와 흉악하기 그지없는 모습이 되었다.
적안의 파란 깃발 영보에서도 빛이 뿜어져 나오자 주변에 파란 꽃이 나타났는데 꽃이 살짝만 움직여도 파도 소리가 흘러나왔다.
둘은 연합하여 비로 선장이 날리는 모든 공격을 받아쳤다. 비록 둘은 여전히 밀리고 있었지만 절대 무너지지는 않았다.
* * *
한편 조윤의 금색 화염과 금봉의 현강금염도 매우 기이하게 변하여 신통을 이루면서 남궁경과 격전을 펼쳤다.
이때, 통로에서 갑자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커다란 화운(火雲)이 통로를 막아버리자 허공에서 정신없이 싸우던 여섯 명이 동시에 통로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비로 선장과 남궁경은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면서 삼대 종족의 계략에 말린 것이라고 짐작했다.
반면에 조윤을 비롯한 삼대 종족 사람들은 얼굴에 화색을 드러냈다.
비록 누가 화운 신통을 시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연합에게 도움이 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신경을 쓰지 않기에는 화운 신통이 지닌 위력이 너무 막강했다. 삼대 종족의 강자들이 최후의 필살기를 꺼낸다 해도 이 정도의 위력을 풍기지 못할 터인데 대체 이 엄청난 신통을 시전한 사람은 누구인가?
“남궁 선장, 여긴 내게 맡기게. 가서 누가 훼방을 부리는지 확인해야할 것 같군.”
비로가 심각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 말을 듣던 남궁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빙백신광을 날려 조윤이 날리는 화염을 막아낸 후에 아래를 향해 날아갔다.
“거기 서!”
조윤이 소리를 지르며 손에 쥔 부채 황극화우(凰極火羽)의 빛을 눈부시게 드리우더니 크기가 수십 장에 이르는 불타는 봉황의 환영을 허공으로 날렸다.
그러자 남궁경의 앞쪽 공간에 균열이 찢어지면서 불타는 봉황의 환영이 틈 속에서 튀어나와 앞을 가로 막았다.
“건방진 놈.”
육규종과 적안도 가세했다.
그러자 비로 선장이 두 손으로 법결을 짚으며 입을 크게 벌리고 검은 부문들을 촘촘하게 토했다.
비로가 등 뒤에 드리운 원판 허상도 순식간에 크기가 몇 배나 불어나 이삼십 장만하게 변하였다.
허공을 수놓은 검은 부문들이 순식간에 원판 허상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슥, 슥!
원판 허상이 펼쳐지며 입체적인 구역으로 변하더니 번개 같은 속도로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드리웠다.
육규종을 비롯한 이들은 검은 구역에 갇히는 순간에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힘이 몰려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고, 진기마저 제대로 시전할 수 없게 되었다.
“완벽한 영역…… 네가…… 어떻게!”
육규종과 적안은 곧바로 이 검은 구역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서둘러!”
비로 선장이 고개를 돌려 남궁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비로의 표정은 퍼렇게 질려있었고, 끊임없이 법결을 날리는 두 팔을 부르르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영역을 시전하느라 많은 힘을 뺐으리라.
남궁경도 영역 안에 있었지만 영역의 힘에 제압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몸을 날려 통로로 향했다.
* * *
비로의 마혼 분신은 화운에 묻혀버렸다. 그러자 마혼 분신은 눈앞이 흐려지면서 순식간에 눈앞에 붉은 공간이 펼쳐졌다.
쾅!
붉은 공간에 호천성염이 나타나자 공간은 순식간에 노란 불바다로 변하였고, 수많은 화염들이 마혼 분신을 향해 몰려갔다.
“상고 신통, 호천성염!”
비로의 마혼 분신은 깜짝 놀라더니 애써 냉정을 유지하며 주문을 외우면서 두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분신의 몸에서 마기가 흘러나오더니 크기가 수십 장에 이르는 커다란 구체로 변하였다.
검은 구체가 만들어진 순간, 호천성염이 몰려와 구체와 끊임없이 부딪쳤다.
퍽, 퍽!
검은 마기는 호천성염과 같은 순수한 양의 화염에 매우 취약해서 화염에 닿는 순간 곧바로 흩어져버렸다. 또한 눈 깜짝할 사이에 구멍이 수천 수만 개나 뚫리면서 빠르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검은 구체는 줄어들수록 마기가 점점 짙어져 호천성염의 엄청난 위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증발하지 않았다.
검은 구체의 크기가 삼분의 일로 줄어들자 마기는 먹물처럼 짙어져 결국 호천성염이 아무리 충격을 줘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때 빛을 반짝이며 석목이 붉은 공간에 나타났다. 그리고 석목은 검은 구체가 사라지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구사 윤회 마공을 수련한 분신은 역시 다르군!”
석목도 분신이 있었기에 이 마혼 분신의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이런 수단으로 현화 대진을 막는 건 역부족이었다.
석목은 두 손을 흔들며 입으로 무엇인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현화 공간에서 불타던 호천성염이 마구 들끓으며 한곳으로 몰려들어 순식간에 크기가 수십 장에 이르는 노란 교룡으로 변하더니 극에 달하는 뜨거운 기운을 풍겼다.
불타는 교룡은 나타나는 순간 검은 구체를 덥석 잡고는 힘을 꽉 주었다.
퍽!
공에서 균열이 갈라지며 곧바로 터져버리자 검은 기운이 흩날렸다.
이어서 마혼 분신이 비틀거리며 나타나 단번에 불타는 교룡에게 사로잡혔다.
겁에 질린 분신이 소스라치게 놀라 발버둥을 치면서 검은 칼로 미친 듯이 교룡의 발을 베어댔다.
그러자 교룡의 발에서 바람 소리가 울려 펴지더니 붉은 부문이 나타났다. 그리고 순식간에 검은 칼이 ‘펑!’ 소리를 내며 튕겨져 날아갔다.
석목이 눈에 사나운 빛을 내뿜으며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교룡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매우 순수한 노란 화염으로 마혼 분신을 삼켜버렸다.
이내 처참한 소리가 화염에서 흘러나왔다가 사라졌다.
화염은 다시 흩어지기 시작했고, 불타는 교룡의 손에서 어렴풋이 무엇인가가 보였다. 이때 석목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가 다시 한 번 공격을 날렸다.
그리고는 이내 멈칫했다.
화염이 완전히 흩어지자 불타는 교룡의 손에 부문이 빼곡히 새겨져 있는 검은 뼈대가 하나 나타났는데 뼈대에서는 짙은 마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분신은 이미 의식을 잃어버렸고, 신혼도 화염 때문에 흩어져버렸다.
“이건……”
석목은 검은 뼈대를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홍루 마조의 시체를 떠올렸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눈앞에 놓인 이 뼈대도 어떤 마존의 시체 같았다. 아마도 비로 선장이 이 시체를 주워다가 분신으로 제련한 것 같았다.
이때, 석목에게서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곧이어 분신이 나타나 탐욕스러운 눈으로 검은 뼈대를 바라보았다.
석목은 머릿속이 반짝였는데 석목의 분신은 황월 고정에서 성계 정상에 도달한 이후로 계속 신경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이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목이 법결을 날리자 붉은 교룡은 다시 화염으로 변했고, 검은 뼈대가 석목의 분신을 향해 날아갔다.
분신은 환호하며 몸에 빛을 드리웠다. 그러자 석목의 분신과 검은 뼈대가 딱 달라붙었다가 천천히 합쳐졌다.
순간, 석목의 분신이 풍기는 기운이 폭발하여 신경을 돌파할 기세를 보이더니 기운이 끊이질 않고서 강해졌다.
석목은 기분이 찢어질 듯 좋았지만 밖은 여전히 위급한 상황이라 분신이 경지를 돌파하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분신과 검은 뼈대를 영수 주머니에 넣어두고는 몸을 날려 현화 공간 밖으로 날아갔다.
* * *
현화 공간 밖으로 날아나간 석목이 주변의 상황을 둘러보았다. 이때, 하얀 빙백한광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동시에 남궁경도 허공에서 날아 내려왔다.
석목을 본 남궁경은 순간 깜짝 놀랐다.
“남궁 선장님, 오랜만이네요!”
석목이 큰소리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노란 화염이 석목의 손에서 날아가 화염 무지개를 이루며 빙백신광을 받아쳤다.
쾅!
굉음과 함께 상고 신통 두 갈래가 부딪쳐 허공이 완전히 찢어지더니 미세한 알갱이가 되어 흩어졌다.
두 사람이 날린 신통 두 갈래도 번쩍이며 흩어져버렸다.
남궁경은 흠칫 놀라며 멈춰 섰다.
물론 석목의 실력은 비범하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해도 남궁경이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었다.
축전이 열리던 날에 남궁경이 도망을 간 건 혼자서 요족 연맹 전체와 싸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마주한 석목은 그때와는 달랐는데, 실력이 놀라울 정도로 깊어져 가볍게 남궁경이 날린 빙백신광을 막아냈다.
“실력이 놀라울 정도로 강해졌군요. 탄복합니다!”
남궁경이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남궁 선장님, 과찬이십니다!”
석목이 통쾌하게 웃으며 곁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통로 근처에 모인 천정의 대군은 삼대 종족에게 밀려 이미 혼란에 빠져버렸고, 통로를 막을 통제권이 곧 삼대 종족에게 넘어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