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69화 (769/916)

769화. 다시 선장과 싸우다

석목이 재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니 전세가 점점 안정을 되찾는 것 같았다.

이때, 남궁경의 몸통에서 기운이 순식간에 폭발하더니 그가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석목의 옆에 나타났다. 그리고 석목이 한눈을 판 사이에 빠르게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었다.

남궁경의 눈에서 싸늘한 빛이 스치며 손끝에선 눈부신 빛이 반짝이면서 하얀 골무 법보가 나타났다. 그리고 골무 법보에서 부문이 끊임없이 튕겨져 나오며 섬뜩한 기운을 풍겼다.

이어서 남궁경의 손가락이 그림자를 수백 갈래 그리며 빗줄기처럼 석목에게로 쏘아졌다.

석목은 주변의 공기가 답답해지면서 형태가 없는 압박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석목은 당황하지 않고 공법을 시전해 영력으로 지영(*指影: 손가락 그림자)을 막아냈고, 흑백 날개를 펼쳐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하얀 지영은 빙백신광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빙백신광보다 훨씬 더 강하고도 신묘한 지법(指法) 무기였다.

지영이 스친 허공은 마치 교도 수만 개로 동시에 잘라내듯이 촘촘한 균열이 그어졌고, 틈이 갈라지는 속도도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석목은 몸을 날려 이리저리 피해 다녔지만 지영은 마치 춤추는 나비처럼 영리하게 석목을 뒤쫓아왔다. 그리고 그 광경은 매우 어수선해 보였지만 나름대로 지영은 현묘한 궤적을 그리며 석목을 공격했다. 때문에 석목은 마음이 다급해져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무리 피해도 지영을 피할 수 없게 되자 석목은 날개를 거두어들이고는 자리에 멈춰 서서 몸을 빙글빙글 돌리더니 호천성염을 시전하여 불벽을 세워 앞을 가로막았다.

치익!

수백 갈래 지영이 불벽에 떨어졌다가 살짝 흔들리는 듯하더니 곧이어 불벽을 뚫고선 계속해서 석목에게로 날아갔다.

깜짝 놀란 석목의 동공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호천성염을 날려 공격했을 때, 그 위력은 빙백신광과 비슷했으나 호천성염으로 이루어진 불벽은 매우 약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불벽은 석목에게 시간을 조금 벌어다 주었다.

석목은 빠르게 몸을 뒤로 날려서 피하며 공법의 힘을 끝까지 끌어올린 후, 두 주먹에 호천성염을 감싸고는 눈부신 노란빛을 뿜어냈다.

빛 속에선 무수히 많은 붉은 부문들이 맴돌았고, 법칙의 힘이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석목이 소리를 지르자 두 주먹이 희미해지면서 앞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하늘이 찢어질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주먹 그림자 수십 갈래가 밀물처럼 밀려가 하얀 지영과 부딪쳤다.

굉음이 울려 퍼졌고, 찬란하게 눈부신 빛이 폭발하면서 날아오던 공격 두 갈래가 전부 흩어져버렸다. 그러자 허공에서 현란한 빛이 번져 맨 눈으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때, 석목이 당황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남궁경이 공격을 멈춘 채 돌아서서 아래에 떠있는 화운으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남궁경의 목적은 석목과 싸우는 게 아니었다. 남궁경의 목적은 화운을 파괴하여 다시 공간 통로를 연 후에 천정의 대군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순간, 남궁경에게서 하얀빛이 번지더니 하늘마저 얼어버릴 것 같은 한기가 뿜어져 나와 주변 곳곳에 서늘한 얼음꽃들을 활짝 피웠다.

남궁경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자 얼음꽃들이 빠르게 합쳐지면서 다시 크기가 열 장 정도 되는 커다란 얼음꽃 하나로 뭉쳤고, 그가 두 손으로 거대한 얼음꽃을 받쳐 들었다.

꽃 가운데선 눈부신 빛이 번쩍였는데 기운이 매우 불안하여 곧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석목은 얼음꽃이 머금고 있는 굉장한 한기를 느끼고는 안색이 굳은 채 몸을 날렸다.

그리고 손으로 허공을 잡아 호천성염으로 화염창을 만들었다.

석목이 앞을 향해 팔을 휘두르자 화염창이 별똥별처럼 날아가 남궁경의 등 뒤로 향했다.

그러자 남궁경이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날리더니 얼음꽃과 함께 커다란 화운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석목의 화염창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허공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석목도 순식간에 화운 속으로 남궁경을 뒤쫓았다.

석목이 현화 공간에 들어가자 폭발음과 함께 찬란한 빛이 공간 안에서 휘몰아쳤다.

하얀빛이 스친 허공은 일그러졌고 곧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석목은 눈에 금빛을 뿜으며 두 손으로 법결을 짚었다.

그러자 현화 공간의 변두리에서 수많은 노란 화염이 흘러나와 곧 터져버리려던 하얀빛을 안정시켰다.

호천성염과 하얀빛이 부딪치는 순간, 둘은 동시에 사라지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이때, 하얀빛이 일그러지면서 순식간에 불어나더니 힘이 점차 강력해졌다. 때문에 호천성염이 빠르게 줄어들어 현화 공간이 격하게 흔들리며 터져버리기 직전까지 갔다.

“기(起)!”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두 손을 합쳤다가 나눴다.

후!

석목의 손에서부터 붉은 부문들이 흐르고 있는 호천성염 기둥이 날아가 현화 공간으로 스며들었다. 또한 기둥에는 세 깃발의 그림자가 은은하게 휘날렸다.

석목이 힘을 불어넣자 공간에서 타오르던 호천성염이 순식간에 활활 일렁이며 화염 속에 적힌 부문들도 더 뚜렷해지면서 단번에 하얀빛이 가한 충격을 막아버렸다.

이어서 흔들리던 공간이 서서히 멎었다.

하지만 석목이 숨을 돌리기도 전에 남궁경이 번개 같은 속도로 덮쳐왔다.

남궁경의 눈빛은 싸늘했고, 손가락 끝에서 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서 지영이 수백 갈래 터져 나와 놀라운 속도로 석목을 공격했다.

석목은 아직 현화 공간을 완전히 안정시키지 못했기에 두 손을 뺄 수도 없었다. 게다가 둘은 사이가 너무 가까워 피하기에도 이미 늦어버렸다.

일촉즉발의 순간에 석목은 곧바로 전략을 바꾸었다. 그러자 현화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강력한 공간의 힘이 수백 갈래의 지영을 튕겨내 버렸다.

수많은 지영은 마치 거센 바람 속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규칙 없이 휘날려 궤도를 벗어나 석목을 스쳐지나갔다.

덮쳐 오던 남궁경도 거대한 공간의 힘 때문에 밀려버려 속도가 느려졌다.

이때, 석목의 호천성염이 공간의 변두리에서 튕겨져 나와 화염검 두 자루로 변하여 남궁경을 기습했다.

그러자 남궁경은 얼굴이 퍼렇게 질리며 공격을 멈추었다.

공간의 힘이 남궁경이 움직이는 걸 막았기에 그는 피할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남궁경은 빙백신광으로 얼음칼을 만들어 간신히 화염검을 막아냈다.

검과 칼이 부딪치며 동시에 전부 부서져 버렸다.

석목은 그 틈에 깊은 숨을 내뱉고는 또 다시 굵직한 호천성염을 현화 공간에 불어넣었다.

공간은 드디어 완벽하게 안정되었고, 호천성염이 활활 타오르자 하얀빛은 전부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석목의 안색은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현화 대진을 유지하려면 호천성염을 써야만 했다. 하지만 연이어 대진을 펼쳤고, 조금 전에도 공격을 날려서 모든 호천성염을 소모해 버렸다.

호천성염이 모두 사라지면 현화 대진을 시전할 수 없고, 위력을 터뜨리는 건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공간은 단순히 비술로 만든 게 아니라 법보로 도움을 받고 있었군. 네가 쓴 깃발 세 개는 내 얼음꽃 비술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흔하지 않은 영보인가 봐. 그런데 이를 어쩐다? 대진을 시전하려면 상고 신통인 호천성염을 시전해야 할 텐데, 몸속에 더는 화염이 없지?”

남궁경이 웃는 듯 아닌듯한 얼굴로 유유자적하게 말을 내뱉었다.

남궁경이 예리한 눈으로 석목의 허점을 꿰뚫고 있어 석목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석목은 다급하게 대책을 떠올려 보았다.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석목의 심장에서 붉은 가마가 흔들리더니 구전현공 불의 힘이 그 속에서 뿜어져 나와 얼마 남지 않은 호천성염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호천성염은 순식간에 가득 채워져 단 몇 번 호흡을 할 동안 충만한 상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구전현공 불의 힘은 많이 줄어들었다.

구전현공 불의 힘이 이런 신묘한 힘을 지녔다니.

“여긴 내 공간이니 당신 안위나 걱정하시죠. 멋대로 들어올 수는 있지만 나갈 때는 마음대로 아니 될 겁니다.”

석목이 차갑고도 자신만만하게 웃더니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현화 공간에 빛이 들끓으며 호천성염이 무수히 나타나 촘촘하게 공간 전체를 채웠다.

남궁경이 믿기지 않는 얼굴로 공간을 가득 채운 호천성염을 바라보았다.

분명 조금 전만 해도 석목의 호천성염은 전부 사라졌었는데 어째서 다시 채워졌나?

석목이 주문을 외우며 법결을 짚었다. 그러자 호천성염이 격하게 흔들리며 수많은 노란 줄기들로 변하였다.

그리고 석목이 다시 법결을 날리자 무수히 많은 빛줄기가 남궁경에게로 날아갔다.

그러자 남궁경이 차가운 기운으로 소용돌이를 만들어 두꺼운 얼음으로 몸을 감쌌다.

이것은 남궁경이 미천거원 일족에서 시전했던 얼음 구체 비술이었다.

하지만 이 얼음 구체 비술은 그때보다 몇 배나 더 두꺼웠고, 얼음 구체에 현묘한 부문들이 떠다녀 강렬한 법칙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빛줄기가 얼음 구체에 꽂히자 소나기가 쏟아지는 소리가 울렸다.

수많은 구멍이 뚫렸지만 얼음 구체는 터지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법결을 짚었다.

공간 속을 가득 채운 호천성염이 또다시 들끓으면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얼음 구체 속에 있던 남궁경은 낯빛이 끊임없이 바뀌었다.

남궁경의 몸속에 깃든 빙백신광도 얼마 남지 않아 이렇게 계속 지체하다가는 이 공간 속에서 죽어버리게 될 터였다.

이때, 남궁경이 이를 악물고 손을 흔들자 하얀빛이 반짝이며 날아 나왔다.

하얀빛에서는 엄지만한 구슬이 나타났는데 아담한 구슬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한기가 흘러나왔다. 심지어 남궁경 본인마저 구슬이 내뿜는 한기 때문에 추워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슬 속에선 부문이 어렴풋이 떠다녔다.

남궁경이 혀를 깨물어 정혈을 뿜어내면서 다시 법결을 짚었다. 그러자 정혈이 붉은 부문으로 변하여 순식간에 하얀 구슬로 스며들어갔다.

남궁경은 다시 진지하고도 심각하게 법결을 줄줄이 날렸다.

그러자 하얀 구슬에서 옅은빛이 흘러나오더니 ‘윙윙’ 소리와 함께 남궁경의 미간으로 날아갔다.

구슬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남궁경의 미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펑!

막강한 기운이 남궁경의 몸에서 터져 나와 그가 두르고 있던 얼음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균열이 ‘쩍, 쩍!’ 갈라졌다가 부서져 버렸다.

석목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원래 석목은 어떻게 얼음 구체를 터뜨려 버릴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얼음 구체가 스스로 사라졌다.

석목이 다시 법결을 날리자 공간 속에서 불타던 호천성염이 빠르게 들끓더니 불꽃을 튀기며 수많은 불화살로 변하였다.

이어서 흩날리던 불화살이 쏟아지는 빗줄기처럼 공기를 찢으면서 남궁경을 공격했다.

현화 대진은 매우 현묘하여 다양한 공격 수단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석목은 공격 수단을 일부만 터득했을 뿐, 아직 완전히 깨우치지는 못했다.

이때 남궁경은 매우 이상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는 두 눈을 감은 채 날아오는 화살들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남궁경은 두 손으로 매우 기이한 동작을 취하고 있었고, 몸에서는 투명한 빛이 뿜어져 나왔는데 그 빛은 싸늘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남궁경이 감고 있는 기운은 빙백신광보다 훨씬 강력한 기운이었다.

순간, 남궁경이 기괴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며 몸도 빙글빙글 돌렸다.

하얀빛이 남궁경의 몸속으로 사라져 다시 희뿌연 영역을 이루자 그 영역 속에서 수많은 부문들이 번쩍이며 눈꽃을 흩날렸다.

석목은 깜짝 놀라며 몸을 날려 간신히 하얀 영역을 피했다.

이어서 수많은 불화살이 남궁경에게로 쏟아졌지만 하얀 영역에 닿는 순간 전부 멈춰버렸고, 하얀 영역에서 빛이 흐르자 이내 불화살들은 폭발하며 사라져버렸다.

석목은 안색이 굳어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