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70화 (770/916)

770화. 일당지위(一撞之威)

하얀 영역은 석목의 현화 공간 속에 있었지만 마치 다른 시공간에 있는 듯이 현화의 힘으로 다스릴 수 없었다.

“영역!”

석목은 곧바로 하얀 영역의 정체를 떠올리며 흠칫 놀랐다.

그리고 석목은 의구심이 들었다. 과연 남궁경은 이렇게 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데 왜 미천거원 일족에서 도망을 쳤을까?

이때 남궁경이 눈을 번쩍 뜨자 동공이 희뿌옇게 변하며 싸늘한 기운이 맴돌았다.

석목은 희뿌연 눈과 마주치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남궁경의 동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빛을 보니 석목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석목은 마치 또 다른 누군가가 남궁경의 눈을 통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석목이 눈빛을 반짝이며 두 손으로 허공을 짚었다.

그러자 찬란한 금빛이 석목의 손에서 뿜어져 나와 날카로운 소리를 내더니 금색 곤초가 나타났다.

석목은 한 손으로 곤초를 잡고선 다른 한 손으로 번천곤을 잡았다.

금색 파동이 번천곤에서 뿜어져 나와 주변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석목은 신경에 들어선 후로부터 번천곤을 시전해도 몸속의 모든 진기가 소모되지는 않았다.

이제 석목은 언제든지 번천곤을 소환하여 공격할 수 있었다.

석목은 번천곤을 손에 들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남궁경은 석목을 한 번 쳐다보고는 곧바로 시선을 현화 공간으로 돌렸다.

이어서 남궁경이 주문을 외우자 하얀 영역이 한참 들끓더니 그 속에서 맷돌만한 큰 손이 네 개 튀어나왔다.

하얀 손들은 서툴고 둔탁해 보였지만 움직임이 매우 날렵했고, 순식간에 현화 공간의 변두리로 날아가더니 단번에 공간을 이루는 장벽을 뚫어버렸다.

남궁경은 몸을 다시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얀 영역도 함께 빙빙 돌았고, 네 손으로 현화 공간을 찢어댔다!

남궁경은 동작이 번개처럼 빨라 석목이 미처 막아내지 못했다.

현화 공간은 그렇게 일그러지다가 순식간에 찢어졌다.

그러자 석목은 기혈이 들끓어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입에서 피를 뿜었다.

* * *

거대한 화운이 터져버리자 화염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면서 공간 통로가 또 다시 활짝 열렸다.

호천현화번 세 개는 찢어진 화운 사이에서 나타나 허공에서 빙빙 돌더니 이내 석목에게로 날아갔다.

현화번을 거두어들인 석목은 안색이 까맣게 변해버렸다.

석목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무암성 바깥쪽 별하늘을 바라보자 눈에서 이채가 흘렀고, 표정도 많이 차분해졌다.

공간 통로가 또 뚫려 버렸다!

무암성 안팎에 있던 모든 사람은 그 광경을 보자 전부 어안이 벙벙했다.

비로 선장은 혼자서 육규종, 조윤을 비롯한 신경 강자 네 명을 상대하고 있어서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심지어 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비로 선장의 검은 영역은 이미 사라졌고, 구도 마기도 쇠약해져 처음보다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하지만 비로는 여전히 온 힘을 다해 육규종을 비롯한 신경 네 명을 막아내고 있었다.

화운이 사라지자 비로 선장은 눈에 희열이 번졌다.

그동안 천정의 대군이 무암성으로 많이 들어오긴 했으나 고작 삼분의 일도 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통로가 열리면 바깥의 대군이 전부 들어올 수 있어 승리는 자연스럽게 천정이 거머쥐게 될 것이었다.

육규종을 비롯한 신경 강자 넷은 안색이 굳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더욱 맹렬한 공세를 취해 비로 선장에게서 벗어나려했다.

만약 네 사람 중 단 한 명만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전세는 또 다시 역전될 수 있었다.

하지만 비로 선장은 피를 뿜어내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비로가 내뿜은 붉은 피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또한 피 속에서 부문들이 꿈틀거리면서 흩날리는 혈무로 변했다가 다시 비로 선장의 몸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순간, 비로 선장의 몸이 ‘쩍, 쩍!’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몇 뼘이나 더 커졌다. 그리고 기운도 순식간에 강력해지더니 등 뒤에 드리운 구도 마기도 다시 원래 굵기로 회복이 되었고, 심지어 더 크게 불어난 것 같기도 했다.

“큰일이다!”

육규종이 다급하게 다른 공세를 퍼부으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굵직한 마기 아홉 갈래가 몰려와서 네 사람이 동시에 날아가 버렸다.

“구사무생! 대천마해!”

비로가 소리를 지르자 구도 마기가 광기를 풍기며 먹구름이 되어 뭉쳤다.

육규종을 비롯한 신경 강자 네 명은 먹구름에 갇혀 한참 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하늘을 가릴듯한 먹구름이 석목의 눈앞을 채웠다.

비로 선장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기대가 가득한 눈빛으로 통로를 바라보았다.

* * *

무암성 밖에서 천정의 대군은 통로가 열리는 모습을 보고는 환호성을 질렀고, 사기가 하늘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전사들이 나란히 줄을 서서 다시 공간 통로를 뚫고선 무암성으로 들어가려했다.

이때, 먼 곳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그 소리가 매우 작게 들렸으나 단 몇 번 호흡을 하는 동안 소리는 어느새 굉음으로 변하였다.

빛 다섯 갈래가 먼 곳에서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그리고 그 빛들은 요족 연합의 전함 다섯 척이었다.

“전함이 나타났다!”

천정의 대군에 속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천정의 전함이 아냐! 공격!”

곧바로 누군가가 이어서 소리 지르자 천정의 대군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몇몇 천정의 전함이 천천히 방향을 틀어 전함 다섯 척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 다섯 전함이 날아오는 속도는 매우 빨랐고, 천정의 대군은 모두 공간 통로에 모여들어 통로가 크게 벌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서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부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었다.

때문에 천정의 대군이 다섯 전함을 맞이하기에는 이미 늦어 버렸다.

요족 연합의 전함은 별똥별처럼 천정의 대군 속으로 찔러 들어갔고, 정확하게 가운데에 놓인 공간 통로로 향했다.

쾅!

별을 지키는 수호 대진의 노란 구름이 미친 듯이 소용돌이쳤다!

이 일당지위(*一撞之威: 강력한 일격에 담긴 기세)는 너무나 강력했다!

공간 통로 근처에 모여 있던 천정의 전함 수십 척은 순식간에 뒤집어졌고, 일부는 망가져 적잖은 천정의 전사들이 짓눌려 피범벅이 되었다.

천정의 대군은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버렸다.

요족 연합의 전함 다섯 척에도 커다란 균열이 갈라졌다.

요족 연합의 전함이 종횡으로 공간 통로를 막아버렸고, 그 중 하나는 때마침 공간 통로에 박혀버렸다.

다섯 전함이 멈춰 서자 곧이어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요족 연합의 대군이 전함 속에서 날아 나와 혼란에 빠진 천정의 대군을 격살하기 시작했다.

“공격!”

안화를 비롯한 신경 강자들이 가장 앞에서 공격을 했다.

요족 연합은 고작 수 천 명밖에 되지 않아 천정의 대군에 비하면 십분의 일도 채 미치지 못했지만 통로 바깥에 있던 천정의 대군에는 신경 강자가 단 한 명도 없는데다가 기습 공격을 당하여 진형이 흩어진 탓에 병력을 집중하지 못했다.

무암성 밖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지자 수많은 빛이 안개를 이뤄 어둡던 성역을 밝게 비추었다.

요족 연합의 목적은 적을 죽이는 게 아니라 천정의 진형을 파괴하는 것이었는데 천정의 대군이 집합을 하면 요족 연합이 흩어놓아 아수라장이 되었다.

무암성 밖은 한참 동안 죽처럼 들끓었다.

천정은 전함이 수십 척이나 있었지만 적군과 아군이 얽히고설켜 있어 전함으로 쉬이 공격을 하지 못했다!

대장로 백박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공간 통로를 지켰다.

백박의 길게 드리운 눈썹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살살 흔들렸고, 마른 얼굴에 형형한 두 눈은 유난히 빛났다.

대장로는 전세를 살피며 희색을 드러냈다.

“채아 도우, 도우의 영목신통으로 앞서 전투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으니 이런 전술을 세울 수 있었네!”

대장로는 고개를 돌려 채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나는 건앵의 왕이야!”

채아가 대장로의 어깨에서 자리를 조금 옮기더니 자신만만한 표정을 드러냈다.

대장로는 눈에 웃음을 머금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실력이 너무 약해. 신경 강자가 있긴 하지만 천정의 대군을 물리칠 수는 없어. 그러니 지금 중요한 건 무암성에서 펼쳐지는 전투야. 우리는 바깥에 있는 천정의 대군이 짜놓은 진형을 흩어놓아 무암성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해. 여길 지킬 수만 있다면 석두와 삼대 종족이 아래에 있는 천정의 군사들을 해치우고 승리를 거둘 수 있어!”

채아가 말했다.

“채아 도우, 정말 똑똑하군. 존경스럽네!”

대장로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채아는 흡족해하며 웃었다. 하지만 눈빛은 조금 이상했다.

조금 전에 채아가 한 말은 전부 석목이 심신을 통해 알려준 것들이었다. 하지만 채아는 이 모든 게 석목이 세운 전략이라는 사실을 절대 말하지 않을 터였다.

“그럼 여긴 대장로가 알아서 해. 나는 석두를 도와주러가야겠어!”

채아가 날개를 펄럭이며 통로 속으로 들어갔다.

대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으로 신식을 보내 각각 진형을 이룬 이들의 동향을 파악했다.

* * *

무암성의 공간 통로 근처, 석목과 남궁경은 허공에서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남궁경은 안색이 일그러졌다.

공간 통로가 뚫린 지 반주향이나 흘렀지만 천정의 대군은 단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다.

석목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공간 통로를 쳐다보지도 않고는 흑백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번쩍이며 자리에서 사라져 남궁경의 등 뒤에 나타났다.

석목이 번천곤에 금빛을 뿜어내며 아래로 내리쳤다!

쾅!

수많은 금빛이 번천곤에서 흘러나와 금색 홍수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금색 부문들이 끊임없이 반짝이며 어렴풋이 연결되더니 길이가 각각 다른 금색 실로 변하였다.

금색 실에서 법칙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석목은 안색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심장이 요동쳤다.

번천곤의 위력이 예전보다 몇 배나 더 강해졌다.

금색 홍수가 하얀 영역을 내리치자 영역이 격하게 흔들렸고, 특히 금색 부문으로 이루어진 실 때문인지 하얀 영역은 곧 터지려는 기미를 보였다.

남궁경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두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하얀빛이 남궁경의 손에서 날아 나와 부문을 이루며 하얀 영역으로 스며들었다.

그제야 하얀 영역은 다시금 안정되었다.

남궁경은 석목의 번천곤을 바라보더니 눈에 싸늘한 빛이 스쳤다. 그리고 낮게 소리를 지르고는 두 손에 빛을 드리워 바퀴 모양을 만들었다.

윙! 윙!

하얀 영역이 돌아가자 머리가 두 개 달리고 팔이 네 개 달린 거대한 환영이 영역에 나타났다.

남궁경은 입으로 찬란한 빛을 뿜어내어 환영에 불어넣었다.

하얀 환영은 곧바로 실체로 변하였다. 특히나 네 팔에서 눈을 찌를 듯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는데 마치 끝없는 힘이 숨어있는 것만 같았다.

남궁경이 손을 흔들며 법결을 날렸다.

하얀 환영에 달린 네 팔이 순식간에 희미해졌다.

칙, 칙!

우르르 날아 나온 하얀 주먹 그림자는 전부 맷돌만한 크기였고, 겉면에 하얀 부문들을 촘촘하게 감고 있었다. 그리고 주먹 그림자에서 막강한 위력과 하늘을 찌를 듯한 한기가 뿜어져 나와 석목에게로 향했다.

막강한 위압을 느낀 석목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법결을 짚어 손을 힘껏 흔들었다.

그러자 붉은 화염이 흔들거리며 호천현화번 세 개가 나타났다.

석목이 주문을 외우며 연이어 법결을 날리자 현화번은 한참 동안 희미해졌다가 삼각형을 이루며 호천성염을 뿜어냈다.

호천성염이 다시 뭉쳐져 커다란 방패 모양 화염 광막을 이루었는데 광막에서는 놀라운 화염 파동이 흘러나왔다.

펑! 펑!

화염 광막이 만들어진 순간, 수많은 주먹 그림자가 우르르 몰려와 광막에 부딪쳤다. 그리고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광막이 맹렬하게 흔들렸지만 터질 것 같지는 않았다.

석목은 긴장을 풀며 하늘로 몸을 날려 다시 아래를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쾅!

금색 홍수가 다시 나타났고, 이번에 석목은 천기곤초의 힘을 시전하여 거대한 홍수가 길이만 해도 수십 장에 이르는 금색 곤봉 그림자를 이뤄 하얀 환영을 공격했다.

그리고 곤봉 그림자가 다가오기도 전에 두려운 법칙의 힘이 먼저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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