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1화. 순간의 깨달음
남궁경은 눈을 껌뻑거리며 법결을 바꾸었다.
영역 위에 선 하얀 환영이 빛을 반짝이더니 허공에서 사라버리는 바람에 금색 곤봉 그림자는 허공을 내리쳤다.
석목도 재빠르게 법결을 바꾸었다.
그러자 금색 곤봉 그림자가 계속해서 아래를 짓누르며 곧장 하얀 영역을 내리쳤다.
남궁경이 끊임없이 두 손을 흔들자 하얀 영역 속 법칙의 힘이 윙윙 소리를 내며 밝아졌다. 그리고 서서히 나타난 빙산 허상 속에선 하얀 빙하가 흐르고 있어 그 광경은 마치 얼음의 세계를 축소해놓은 것만 같았다.
금색 곤봉 그림자가 얼음 영역에 부딪치는 순간, 무궁무진한 위력이 갈라지더니 얼음의 세계에 묻혀버렸다.
그러나 하얀 영역은 살짝 흔들리기만 하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석목의 눈에서 뜨거운 빛이 뿜어져 나왔는데 이것이야말로 영역이 지닌 무궁무진한 힘이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신경 강자는 자신이 이룬 영역 속에서 천하무적인 상태에 이르러 그 어떤 공격도 쉽게 녹여버릴 수 있다고 들었다.
석목은 처음에 이런 말들을 믿지 않았고, 잘 이해도 되지 않았지만 지금 드디어 영역의 힘을 깨달은 것이었다.
석목이 잠시 넋을 놓은 순간, 뒤에서 하얀 환영이 나타났는데 그가 멈칫하는 사이에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하얀 환영은 네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가 빠른 속도로 아래를 향해 내리쳤다.
석목은 주변의 공기가 비틀어지는 것 같아서 숨이 턱 막혔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간신히 돌아서서 번천곤으로 금색 광막을 만들어내 네 주먹을 막아냈다.
쾅!
네 주먹이 금색 광막에 부딪치자 밀려난 힘 때문에 주변 공기가 일그러지며 ‘윙윙’ 소리를 냈다.
금색 광막은 한참 동안 흔들리다가 종잇장처럼 터져버렸다. 그리고 석목의 몸통은 돌덩이처럼 허공에서 떨어졌다.
다행히 석목은 육신이 단단했기에 이 정도 공격으로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고, 그는 곧장 붉은빛을 내뿜으며 빠르게 멈춰 섰다.
하지만 석목이 별다른 공격을 날리기도 전에 하얀빛이 또다시 나타나 번개 같은 속도로 날아왔는데 그 빛은 남궁경의 영역이었다.
석목은 조금 전에 남궁경의 영역에 담긴 위력을 맛봐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만약 그 속에 갇히게 된다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석목은 곧장 번천곤에 빛을 크게 드리우며 수많은 금색 부문으로 남궁경의 영역을 막아냈다.
하얀 영역은 다가오는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하지만 다음 순간, 영역 속에서 한참 동안 빛이 번쩍이더니 금색 부문들이 터져버리기 시작했다.
번천곤은 위력이 막강했지만, 석목은 아직 금속성 법칙의 힘을 깨우치지 못해 큰 위력을 발산하지 못했다.
그리고 공격형 영보인 번천곤으로 영역을 상대하는 건 너무 불리했다.
하지만 석목은 잠깐의 시간을 벌 수 있었고, 고개를 돌려 한쪽에서 타오르던 화염 광막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화염 광막은 곧장 해체되었고, 호천현화번 세 개로 변하여 석목의 손으로 날아왔다.
이어 그는 곧바로 공법을 시전하여 호천성염을 호천현화번에 불어넣었다.
윙!
호천현화번에서 빛이 번지더니 붉은 화해(火海)를 이루어 화염을 줄줄이 날렸다. 그리고 그 모습은 마치 바다의 거센 파도 같았고, 어렴풋이 영역의 윤곽도 보였다.
호천현화번이 시전한 현화 대진의 본질은 영역에 담긴 위력을 모방한 것이었다. 그리고 석목은 이미 불의 법칙을 깨우쳐 비록 영역의 힘을 깨달을 정도로 수준이 높지는 않았으나 불의 법칙과 현화 대진을 합친다면 대충 영역이 지닌 위력을 뿜어낼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나 다행히 번천곤에 드리운 금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모든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다.
쾅!
영역이 부딪치자 마치 맷돌 두 개가 서로 짓누르는 것 같은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심장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영역이 부딪치는 순간 허공은 완전히 어두워져 세상이 멸망할 듯한 광경을 펼쳐놓았다.
붉은 화해는 간신히 하얀 영역이 떨어지는 걸 막아내 조금 전에 날린 번천곤처럼 곧장 무너지지는 않았다.
석목은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때, 남궁경이 코웃음을 치며 얼음 영역 위에 우뚝 섰다. 그러나 싸늘한 남궁경의 표정 너머로 보이는 초조함은 감출 수 없었다.
남궁경이 법결을 날리자 하얀 환영이 날아와 다시 수많은 빛으로 부서지면서 영역 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얀 영역 속에서 무수히 많은 얼음 환영들이 빛을 냈고, 영역은 훨씬 뚜렷해졌다.
비틀거리는 석목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때, 사방팔방에서 형태가 없는 위압감이 몰려와 하얀 영역은 마치 또 다른 세계를 이룬 것만 같았고, 그 세계가 석목의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석목은 망치에 두들겨 맞은 것처럼 가슴이 먹먹해져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붉은 화해도 미친 듯이 흔들리더니 부서지려는 기세를 보였다.
일촉즉발의 순간에 석목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몸속에 깃든 모든 화염의 힘을 뿜어냈다.
석목은 호천성염, 구전현공 불의 힘, 혼원진화, 양의 화염을 비롯한 모든 화염을 화해 속으로 녹여 온힘을 다해 공격을 막아냈다.
“죽어!”
남궁경의 두 눈에서는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는데 그 빛은 점점 짙은 하얀색으로 변했다.
이때 남궁경의 등 뒤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림자는 이목구비가 뭉개진 듯이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사악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석목은 동공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남궁경이 두 손을 흔들자 등 뒤의 희미한 그림자도 같은 동작을 취하며 동시에 얼음 영역으로 하얀빛을 날렸다.
그 순간, 얼음 영역에서 빛이 번지더니 영역은 주변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마치 입을 천천히 벌리듯이 갈라지면서 석목과 화해를 단번에 삼키려고 했다.
석목은 모든 게 얼어버릴 것만 같은 차가운 기운이 느껴져 안색이 퍼렇게 질렸다. 그리고 붉은 화해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기 시작했다.
“석두!”
이때, 채아의 목소리가 들렸고, 채색 그림자가 반짝이더니 석목의 근처로 다가왔다.
“채아!”
“내가 도와줄게!”
채아는 몸에 빛을 반짝이며 순식간에 몇 장이나 커져서는 입으로 굵직하고 푸른 화염을 뿜어냈다. 그러자 건원 요화가 붉은 화해 속으로 스며들었다.
채아의 도움을 받자 부서지려던 붉은 화해는 천천히 멈춰서더니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뭐야!”
남궁경은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
기다리고 있던 천정의 지원군은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석목의 지원군이 나타났다. 밖에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했나?
건원 요화가 화해로 들어가자 곧바로 호천성염과 뒤섞이더니 회백색 화염으로 변하였다.
하지만 이 회백색 화염은 지난 번보다 훨씬 옅었다.
이때, 석목의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번뜩였다. 그러더니 현묘한 의념 한 갈래가 회백색 화염에서 석목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석목에게 흘러들어간 현묘한 의념은 엄연히 무궁무진한 불의 오묘함이라 그는 순간 자리에 얼어버렸다.
왜 갑자기 이런 의념이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석목은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의식을 하며 화염에 깃든 오묘한 의미를 흡수하자 화염의 법칙을 다스리는 것도 점점 수월해졌다.
순간, 석목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천막이 찢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하! 그렇군…… 이게 바로 영역이었어!”
석목은 큰소리로 웃으며 두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석목의 손에서 부문들이 점점 펼쳐지더니 크기가 한 장에 이르는 붉은 공간을 이루었다. 공간 속엔 수많은 화염들이 타올랐는데 그건 엄연히 화염 영역이었다.
다만 이 화염 영역은 매우 약했고, 남궁경의 얼음 영역보다 훨씬 작아 마치 갓 태어난 아이와 어른 하나가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융(融)!”
석목은 두 눈에서 맑은 빛이 흘렀다.
그러자 부서져가던 붉은 화염이 맹렬하게 흔들리더니 모든 화염의 힘이 전부 갓 만들어진 영역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화염 영역은 빠르게 불어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얼음 영역과 비슷한 크기로 변하였다. 또한 화염 영역 속엔 수많은 화산이 있었고, 용암이 강물처럼 흘러내리면서 곳곳에서 활활 타올라 완벽한 화염의 세계를 이루었다.
석목은 벅차오르는 기분을 억눌렀다. 이제 모든 압력이 사라져 버린 석목은 화염 영역을 천천히 움직이며 완벽하게 얼음 영역을 막아냈다.
남궁경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석목이 일촉즉발의 순간에 화염 영역을 깨우쳐 남궁경의 영역을 막아냈다!
남궁경은 낯빛이 시퍼렇게 변했지만 당황하는 기색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영역을 만들어도 소용없지. 내 얼음 영역의 속성은 운이 좋게도 화염 영역을 억제할 수 있어! 이제 넌 죽어야 할 시간이야!”
남궁경이 묵직하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미간을 짚었다. 그러자 남궁경의 두 눈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얼음 영역이 환하게 변하더니 거대한 얼음 짐승처럼 앞을 덮쳤다.
화염 영역 속에 선 석목은 마치 화염에서 태어난 태고의 신령 같았다. 그리고 석목이 차분하게 법결을 짚었다.
화염 영역은 지체하지 않고 앞으로 날아가 얼음 영역과 강렬하게 부딪쳤다.
두 영역이 딱 붙어버려 갈라지지 않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뿔로 힘을 겨루는 짐승들과 같았다.
영역 주변의 허공은 이미 무너졌고, 백 장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은 작은 먼지가 되어 서로 다른 원기와 섞이면서 폭풍이 되어 휘몰아쳤다.
두 가지 기류가 한곳에서 폭발하자 저 멀리 있던 허공까지 부서졌다.
모두 석목과 남궁경이 치르는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밖에 있던 천정의 대군이 무암성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차렸다.
무암성에 내려온 천정의 대군은 밖에서 어떤 변고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초조해졌다.
비로 선장도 낯빛이 어둡게 일그러졌다. 또한 마기는 여전히 맹렬하게 들끓었지만 그 속에 갇힌 육규종이 곧 벗어날 것만 같았다.
“이런, 대체 누구야! 화염의 영역을 시전하다니!”
비로 선장은 석목을 바라보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석목 저 자식만 아니었더라면 무암성은 이미 천정의 손아귀에 들어갔을 터였다.
서문설이 먼 곳에서 차분한 얼굴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
한편, 조극은 지룡족 성계 장로의 가슴께에서 천천히 청강등모를 뽑아내며 얼굴에 살기가 가득한 표정을 내비쳤다.
동시에 조금 놀랍기도 했고, 또 두렵기도 했다.
“어떻게 된거지? 저놈의 실력이 어떻게 십이 선장과 싸울 수 있을 정도가 된 거야!”
조극은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동안 조극은 단 한 번도 석목과 제대로 된 전투를 벌인 적이 없었다. 물론 지난 번 천봉 일족의 성녀 수임 축전에서 석목과 대결을 펼치긴 했으나 신분이 드러날까 두려워 조극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극은 애당초 석목을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절대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석목이 보여준 실력은 조극이 바라볼 수 없을 경지에 이르렀다.
“석목! 너야말로 내 진정한 적이었구나. 하지만 결국 내가 너를 밟아주마!”
조극이 마음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반대로 삼대 종족의 대군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자 기세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화염 영역과 얼음 영역은 서로 부딪치면서 놀라운 위력을 내뿜었지만 진기 또한 매우 크게 소모했다.
두 영역의 힘이 사그라지자 다시 빠르게 어두워졌다.
석목과 남궁경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석목은 수련 경지가 남궁경보다 낮았고, 이제 막 영역의 힘을 깨우쳐 아직 영역을 시전하는 게 많이 낯설었다. 또한 진기도 너무 빨리 소모되어 화염 영역이 빠르게 어두워져 영역 속에 보이던 화산의 허상은 이제 옅은 그림자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