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72화 (772/916)

772화. 혈투

“아야, 석두, 상황이 좋지 않아!”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 서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석목은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영역은 진기를 너무 빨리 소모해 선급 영석으로 영기를 보충한다고 해도 턱없이 부족했다.

“이제 막 만들어낸 영역으로 나와 싸우려는 건 너무 건방진 생각이구나!”

남궁경은 긴장했던 얼굴이 살짝 풀렸다. 하지만 전처럼 유유자적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표정은 매우 흉악스러웠다.

남궁경이 손을 흔들자 얼음 영역에서 빛이 번지며 수많은 부문들이 번쩍이더니 빙룡 두 마리가 나타나 입을 크게 벌리고는 석목의 화염 영역을 물어 뜯어버렸다.

그러자 화염 영역에서 천이 찢어지는 소리가 울리며 곧바로 흩어져버렸다.

저항할 수 없는 막강한 힘 때문에 석목은 피를 뿜으며 튕겨져 날아갔다.

영역이 파괴되자 호천현화번도 다시 석목의 몸속으로 날아갔다.

남궁경의 눈에서 살의가 스쳤다.

얼음 영역에서 틈이 벌어지자 수많은 얼음이 영역 속에서 터져 나와 순식간에 빙룡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빙룡의 옥처럼 투명한 몸통에선 방대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끝없이 흘러나왔고, 용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빙룡이 풍기는 기운은 신경 중기 강자와도 같았다.

빙룡은 석목을 노려보며 꼬리를 흔들다가 순식간에 석목을 쫓아갔다.

빙룡의 커다란 발은 하얀빛을 층층이 감고 있었는데 그 빛은 엄연히 빙백신광이었다.

영역은 매우 막강했지만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어 도망가는 적을 공격할 수 없었다.

그때 석목이 코웃음을 치며 번천곤을 들고 가로로 휘저었다.

그러자 금색 홍수가 다시 나타나 빙룡과 부딪쳤다.

하얀 빙룡이 입을 벌려 숨결을 뿜어내자 극도로 차가운 기운이 용의 입에서 흘러나와 금색 홍수를 막아냈고, 빙룡은 발로 석목을 잡아채려 했다.

생각보다 훨씬 막강한 빙룡의 실력에 석목은 깜짝 놀랐다.

석목은 흑백 날개를 펼쳐 간신히 빙룡의 일격을 피해냈다.

빙룡은 거대한 몸통을 이리 저리 움직이면서 석목을 쫓아갔다.

남궁경은 빙룡이 석목을 공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그런데 이때, 남궁경의 이마에서 하얀빛이 번지더니 얼굴이 일그러져서는 고통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리고 남궁경의 등 뒤에 있던 희미한 환영이 그에게로 날아가 몸속으로 스며들어가려 했다.

남궁경은 입에서 묵직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고, 몸을 굽힌 채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법결을 짚었다. 그러자 오른손에서 하얀빛이 나타났다가 희미한 손으로 변하더니 다시 미간으로 향했다. 남궁경이 보여주는 행동은 마치 미간을 뚫고 들어간 무엇인가를 끄집어내려는 것만 같았다.

남궁경 근처에 자리한 얼음 영역도 격하게 흔들리더니 부서져 버렸다.

석목을 쫓아다니던 빙룡도 멈춰버렸고, 내키지 않는 듯이 울부짖다가 하얀빛으로 찢어지더니 흩날렸다.

“으아!”

남궁경이 갑자기 무릎을 꿇자 손바닥에서 힘줄이 툭툭 튀어나왔고, 입으로는 짐승 같은 소리를 냈다.

남궁경의 미간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하얀 구슬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남궁경의 환영도 이미 절반이나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어갔고, 원한이 가득한 목소리로 울부짖다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구슬에서는 하얀 털이 하나 자라났는데 그건 조금 전에 남궁경의 머릿속으로 뚫고 들어갔던 물건 같았다.

하얀 구슬이 남궁경의 머리에서 나오자 남궁경은 눈이 다시 맑아졌다. 하지만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남궁경은 천천히 일어서서 복잡한 시선으로 하얀 구슬을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구슬을 거두어들였다.

이때,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궁경의 옆에서 금색 곤봉이 가로로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남궁경이 다급하게 하얀빛을 뿜으며 손으로 법결을 짚었다.

하지만 금색 곤봉은 곧장 남궁경의 몸을 가차없이 내리쳤다.

남궁경의 몸통이 ‘펑!’ 소리를 내며 수많은 얼음 부스러기가 되어 흩날렸다.

허공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석목이 나타나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또 이 공법이야.”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체신 공법은 요족 연합을 맺을 때 남궁경이 시전했던 공법이었다.

이때 백 장 밖 허공에서 하얀빛을 반짝이며 남궁경이 더욱 창백한 안색으로 나타났다.

“네가 시전한 영역의 힘은 온전히 자기 힘을 쓴 게 아니라 다른 도움을 받고 있었군. 하지만 그 힘은 아주 위험한데다가 너는 지금 힘이 다 빠졌겠지!”

석목은 남궁경을 한 번 쳐다보고는 그리 말을 하며 몸을 날렸다.

그리고 번천곤으로 남궁경의 머리를 내리쳤다.

산 같은 금색 그림자가 촘촘하게 나타나 하늘을 가르며 남궁경에게로 몰려갔다.

남궁경은 안색이 얼어붙은 채 두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등 뒤에서 빛이 번지더니 하얀 환영이 다시 등 뒤에 나타났는데 그건 조금 전에 나타났던 하얀 환영이었다.

하지만 환영은 많이 옅어진 채로 비틀거리며 석목의 앞에 나타났다.

환영을 날린 남궁경은 곧바로 멀리 있는 비로 선장에게로 날아갔다.

남궁경은 지금 석목이 말한 대로 힘을 전부 써버렸다. 그러나 신경 중기 강자인 남궁경은 시간만 조금 더 주어지면 자신만의 비술을 시전하여 곧바로 원기를 대부분 회복할 터였다.

하얀 환영은 반짝이며 석목의 앞으로 다가와 내리치는 번천곤을 온몸으로 받으며 두 손으로 석목의 몸을 덥석 잡았다.

쩍! 쩍! 쩍!

무수히 많은 한기가 폭발하더니 얼음 구체가 나타나 석목을 안으로 가두었다.

쩍!

하얀 환영의 본체는 번천곤에 맞아 부서져 버렸다.

먼 곳으로 도망가는 남궁경의 얼굴에 희색이 스쳤다.

이때, 남궁경의 앞에서 채색 그림자가 반짝이더니 커다란 앵무새가 나타나 길을 가로막았다.

“히히, 어딜 도망가!”

채아가 소리를 지르면서 입을 벌려 푸른 화염을 뿜어냈다.

푸른 화염은 한참 들끓다가 화염 새장으로 변하여 남궁경을 안으로 가둬버렸다.

남궁경은 흠칫 놀라며 오른쪽 손가락으로 앞을 짚었다. 그러자 골무 법보에서 빛이 번지더니 지영이 날아가 화염 새장을 내리쳤다.

펑! 펑! 펑!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푸른 화염 새장은 견고하기 그지없어 격하게 흔들리기만 할 뿐, 곧바로 터지지 않았다.

채아는 조금 전에 건원 요화와 호천성염이 다시 이변을 일으키며 화염의 오묘함을 더욱 깊숙이 깨달아 건원 요화 신통이 크게 강해져서 씩 웃었다.

쾅!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석목 주변을 감싼 얼음이 부서져 갇혀있던 석목은 곧 벗어났다.

남궁경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려버려 포효하듯 소리를 지르며 지영을 줄줄이 날려 화염 새장을 내리쳤다.

석목은 멀리 있는 남궁경을 바라보고 눈에 빛을 반짝이면서 날아갔다.

연이어 지영으로 공격을 받자 화염 새장은 드디어 터져버렸고, ‘펑!’ 소리와 함께 불 찌꺼기가 되어 흩날렸다.

하지만 석목은 이미 남궁경에게로 날아왔다.

“이제 끝내자!”

석목의 몸에서 붉은 화염이 끊임없이 들끓어 화염 갑옷을 이루었다.

석목은 등 뒤에서도 붉은빛이 일렁였고, 공기 속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림자는 윤곽이 천 장이나 되는 흉악한 거원이었는데 몸에 화염을 감싼 채 화운에서 치솟아 올라 남궁경을 덮쳤다.

번천곤에서 ‘윙, 윙!’ 소리가 흘러나오자 곤봉 밖에 금빛이 한 층 덮여 부문들이 줄줄이 나타나더니 곤봉을 에워싸고는 날카로운 기운을 풍겼다.

이 위력과 기세는 산과 바다를 몰고 가듯 주변을 압박했으며 피할 수도 없게 짓눌렀다!

“나를 이정도까지 몰아 붙이다니!”

남궁경은 이를 악물고 얼굴에 결연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리고 기이한 법결을 날려 현묘하고도 어려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남궁경은 피부가 순식간에 하얀색으로 변했고 몸통도 투명해졌다. 그리고 검은색이던 머리카락은 서리가 가라앉은 듯 하얗게 변하였다.

차가운 기운이 남궁경의 피부에서 흘러들어가 몸 주변으로 펴지더니 하얗고 화려한 빛을 만들었다.

쩍! 쩍!

얼음이 어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남궁경의 주변에 있던 물기가 전부 하얀 얼음이 되어 얼어붙었다.

그리고 얼음들은 다시 한 층, 한 층 겹쳐 두꺼워졌으며 얼음 위에는 기이한 무늬가 생겼다.

얼음들은 다시 얼음 손으로 변하였는데 손 하나마다 크기가 백 장은 되어보였다.

거대한 얼음 손들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점화(拈花) 모양, 복마(伏魔) 모양을 비롯한 다양한 모양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손들 중엔 병을 들고 있는 손도 있었고, 공이를 들고 있는 손도 있었다…… 다양한 자세로 여러 가지 무기를 들고 있는 손이 족히 천 개는 넘는 것 같았다.

이 거대한 손들 천여 개가 한 곳에 모여 먼 곳에서 바라보니 마치 커다란 얼음 산봉우리처럼 웅장했다.

얼음 손이 천 개 나타남과 동시에 석목도 남궁경의 앞으로 다가왔다.

석목이 번천곤을 높이 치켜들고는 금빛을 드리우자 금색 부문이 곤봉에 맴돌았다.

그리고 석목의 등 뒤에는 커다란 원숭이 환영이 나타났다.

원숭이는 석목과 같은 동작으로 움직였으며 환영은 손에 천 장 정도 되는 화염 곤봉을 들고 있었다.

화염 곤봉에서는 붉은빛이 반짝였으며 그 속에서 부문들이 줄줄이 나타나 법칙의 기운을 뿜어냈다.

“하!”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번천곤을 휘두르자 곤봉에서 금빛이 폭발하며 부문들을 휘감으면서 남궁경에게로 몰려갔다.

남궁경은 무슨 비술을 시전했는지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했고, 이마에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하지만 풍기는 기운은 이전과 달리 막강했으며 원기도 이미 가득 보충이 된 것 같았다.

남궁경의 뼈는 이미 투명에 가까워져 얼핏 보면 그는 얼음 조각상과 같았다.

“덤벼라!”

남궁경이 소리를 지르며 두 손으로 석목의 번천곤을 받아쳤다.

쾅!

굉음이 울려 퍼지자 남궁경의 등 뒤에 있던 거대한 손들에서 찬란한 빛이 번지며 빙백신광이 뿜어져 나와 석목에게로 향했다.

쾅!

석목의 번천곤이 막강한 기세로 천여 갈래 얼음 손들을 내리쳤다.

번천곤이 빙백신광 속을 뚫고 지나가자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은 날카로운 금빛을 뿜어내더니 단번에 거대한 손들을 층층이 부숴버렸다.

“아…… 말도 안 돼……”

남궁경은 자신의 비술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믿기지 않는 기색을 내비쳤다.

이어서 소리를 지르며 눈으로 미친 듯이 빛을 뿜어내더니 두 손을 힘껏 위로 받쳐 들었다.

그러자 찬란한 빛이 파도처럼 거대한 손으로 밀려 들어갔다.

석목은 손이 마비되는 느낌을 받았고, 아래를 짓눌렀던 번천곤은 방대한 힘 때문에 뒤로 밀려났다.

이때, 석목의 원숭이 환영이 팔을 흔들자 환영이 들고 있던 붉은 곤봉과 번천곤이 합쳐졌다.

극도로 뜨거운 힘이 번천곤 속으로 흘러들어가자 석목의 두 팔이 무거워져 번천곤으로 다시 아래를 짓눌렀다.

파멸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번천곤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법칙의 힘을 머금은 화염이 흉흉하게 몰려와 단번에 얼음 손들을 태워버려 하얀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얼음 손들이 한 층, 한 층 녹아내리니 번천곤도 결국 바닥을 내리쳤다.

비로 선장과 육규종을 비롯한 신경 강자들은 먼 곳에서 멍하니 이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았다.

육규종 일행들은 이미 비로 선장의 마해(魔海) 속에서 벗어나 다시 격전을 펼쳤다.

“남궁……”

비로는 입이 찢어질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손에서 붉은빛을 반짝이니 골도(骨刀) 여섯 자루가 나타났다.

비로가 손을 흔들자 여섯 자루의 골도가 자신의 가슴과 어깨를 찔렀다.

윙!

비로 선장의 주변에서 사나운 빛이 번져나와 마기 속으로 들어가더니 한참 들끓다가 육규종을 비롯한 신경 강자 네 명에게로 향했다.

펑! 펑! 펑! 펑!

연이어 네 번 굉음이 울리자 육규종 일행 네 명이 동시에 날아갔다.

비로는 단번에 네 사람을 물리친 후 몸을 날려 남궁경에게로 향했다.

네 강자는 곧바로 일어서서 비로를 막아섰다.

육규종은 몸에 노란빛을 번지며 다가왔다. 그리고 법결을 날려 두터운 노란 방패로 비로의 앞을 가로막았다.

“꺼져!”

비로가 소리를 지르면서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두 손에서 마기가 들끓으며 굵직한 화살로 변하여 노란 방패와 부딪쳤다.

쾅!

방패가 흔들리자 마기도 흩어졌다.

비로는 몸통이 희미해지더니 미처 흩어지지 않은 마기 속을 비집고서 나왔다.

훅!

활활 타오르는 화염이 비로의 머리를 뒤덮으며 또 앞길을 막아섰다.

“어딜 도망가!”

조윤이 황극화우로 비로의 앞을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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