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3화. 뒤늦은 후회
비로는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신경 강자 네 명이 동시에 앞을 가로막자 한참 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안 돼……”
이때, 먼 곳에서 남궁경이 외치는 절망한 목소리가 들렸고, 석목은 번천곤으로 드디어 남궁경을 세차게 내리쳤다.
그러자 거대한 손 천여 개로 이루어진 높은 산은 아무런 힘도 없이 부서져 버렸다.
펑!
굉음과 함께 석목의 번천곤이 남궁경의 머리 위를 내리쳤다.
쩍! 쩍!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남궁경의 주변을 보호하고 있던 강기도 터져버렸고, 번천곤은 빛이 폭발해 수십 갈래로 갈라졌다. 그리고 형태가 없는 위압감이 말려와 다시 폭발하였다.
법칙의 힘을 머금은 번천곤이 공격을 날리자 남궁경은 신혼마저 부서져 버렸다.
남궁경이 숨을 거둔 순간, 전투 현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비로의 두 눈은 피로 물들었으며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조윤을 비롯한 삼대 종족 강자들의 얼굴은 환해졌다.
전장에 있던 삼대 종족의 대군은 남궁경이 죽어버리자 일제히 환호했다.
반면에 천정의 대군은 얼굴에 잔뜩 그림자가 드리웠다.
천정의 대군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던 선장이 상대에게 격살을 당하자 모두 순식간에 힘이 풀려버렸다.
먼 곳에 서 있던 서문설이 통로를 바라보며 눈에서 빛을 반짝였다. 그리고 한참 동안 놀란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석목의 실력은 서문설이 상상하는 바를 초월했다.
조극도 낯빛이 시퍼렇게 질려있었으며 악독한 눈빛으로 석목을 노려보았다.
석목은 남궁경을 격살한 후에 한참 동안 허공에서 몸을 비틀거리더니 곧장 땅으로 떨어졌다.
석목은 몸속의 진기를 전부 써버려 힘이 하나도 없었다.
“석두!”
채아가 놀라서 석목을 부르며 푸른 요화로 석목을 받쳐 들고는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석목은 채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에 단약 몇 알을 삼키고 나서야 안색이 돌아왔다.
“채아, 빨리 가서 저 시체에 남은 모든 물건들을 챙겨. 하나도 놓쳐서는 안 돼.”
석목은 갑자기 무엇인가를 떠올리며 채아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남궁경의 신분은 선장으로 보물을 많이 가지고 있을 터였다.
“알았어. 걱정 마.”
채아는 대답을 하고는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갔다.
석목은 그제야 한숨 돌리며 전장을 둘러보았다.
이제 석목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으니 나머지 일은 삼대 종족에게 맡겼다.
석목은 선급 영석을 손에 쥐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눈을 감은 후에 진기를 회복했다.
비로는 분노가 극에 달했지만 이성을 잃지 않고서 주변을 훑어보았다. 이미 죽어버린 남궁경 말고도 또 다른 신장 두 명이 전투를 벌이며 운명하였고, 나중에 내려온 전사들도 삼대 종족의 공격을 받아 많이 죽어버렸다.
물론 삼대 종족 연합이 입은 손실은 천정보다 훨씬 심했는데 신경 강자만 해도 네 명이 죽어버렸고, 그 밖에도 목숨을 잃은 전사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대 종족의 머릿수는 천정의 대군보다 훨씬 많았고, 먼 곳에서 계속 지원군이 날아오고 있었다.
비로는 고개를 들어 현무반운대진에 뚫린 구멍을 바라보았는데 밖에서 폭발음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밖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천정의 대군은 여전히 단 한 명도 들어오지 못했다.
비로 선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두 주먹을 꽉 쥐자 주먹에서 뼈가 쓸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철수!”
비로는 드디어 내키지 않는 듯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명령이 내려지자 격전을 치르던 천정의 전사들은 서로를 한 번 씩 쳐다보고는 전투에서 벗어나 현무반운대진에 뚫린 구멍으로 날아갔다.
천정이 승리할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대군들은 모두 철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딜 도망가!”
“공격!”
삼대 종족 연합은 이미 유리한 전세를 잡았기에 이대로 천정의 대군을 돌려보낼 수는 없어 미친 듯이 공세를 가했다.
하지만 천정의 대군은 매우 질서 있고도 빠르게 철수를 해 삼대 종족 연합의 대군이 힘을 다해 막아보려 했지만 여전히 끌어내리지 못했다.
잠깐 사이에 천정의 대군은 이미 절반이나 철수했다.
게다가 서문설과 조극을 비롯한 신장들이 곧바로 철수하지 않고서 마지막 까지 남아 천정의 대군이 물러날 수 있도록 호위를 한 후 마지막에야 통로로 날아갔다.
통로의 한편에선 비로와 육규종을 비롯한 신경 강자 네 명이 여전히 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비로는 연이어 비술을 시전한데다 이미 투지가 꺾여 물러날 기세였다. 하지만 육규종을 비롯한 신경 네 명이 아무리 미친 듯이 공격을 날려도 비로를 철저히 무너트릴 수는 없었다.
육규종을 비롯한 신경 강자 네 명은 전투를 치를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공격과 비술을 날렸다.
입장을 바꿔서 만약 네 사람이 이 정도로 공격을 받았더라면 몸이 이미 부서지고 말았을 터였다. 하지만 비로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공격을 받아냈고, 반격까지 할 여유도 있었다.
“이놈이 정상인가?”
적안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음을 보내며 말했다. 그리고 파란 깃발에 빛을 크게 드리워 크기가 한 장에 이르는 파란 창 그림자를 날렸다. 그러자 창 그림자에서 온통 파란 부문이 반짝이더니 비로의 몸속으로 스며들어갔다.
그러자 비로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며 묵직한 폭발음이 울렸다.
순간, 비로는 몸이 격하게 흔들리며 입으로 붉은 피를 뿜어내더니 곧바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계속 전투를 펼쳤다.
“또 이 모양이야!”
적안이 소리를 질렀다.
적안 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 강자들도 안색이 심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 기괴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맹공격만 날렸다.
비로는 천정의 대군이 대부분 철수한 모습을 보고는 몸에 빛을 번쩍이며 한참 동안 마기를 용솟음치듯 뿜어냈다. 그리고 마기에 올라타고는 천천히 하늘로 올라갔다.
“오늘은 너희가 운이 좋았구나.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비로가 싸늘하게 말하며 검은 구름으로 변하여 통로를 뚫고서 지나갔다.
“거기 서!”
적안이 소리를 지르며 몸을 날려 쫓아갔다.
검은 구름에서 마기가 빠르게 날아와 ‘펑!’하며 적안의 가슴을 내리치자 적안은 뒤로 넘어져 버렸다.
육규종을 비롯한 나머지 강자들이 적안을 쫓아가려 했지만 조윤이 큰 소리로 말렸다.
“멈추십시요. 저놈이 쓰는 공법은 매우 기이하군요. 쫓아가봤자 좋을 것도 없으니 우선 대진부터 복구합시다.”
육규종을 비롯한 신경 세 사람은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알 수 없는 비로의 공법이 두려워 조윤이 소리를 지르자 다들 멈춰 섰다.
* * *
석목은 진기가 어느 정도 회복되어 천천히 눈을 떴다.
긴박한 상황인 만큼 천천히 회복을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석목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하늘에는 삼대 종족 연합군들만 있을 뿐, 천정의 대군이 사라지고 없어서 순간 어리둥절했다.
“석두, 천정 놈들은 철수했어!”
채아가 옆에서 석목을 지키고 있다가 석목이 깨어나는 모습을 보고는 천천히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큰일이야! 요족 연합이 아직 밖에 있어!”
석목은 갑자기 무엇인가가 떠오른 듯이 다급하게 하늘로 날아올라 통로를 뚫고서 지나갔다.
채아도 깜짝 놀라 날개를 펄럭이며 석목의 어깨에 앉았다.
통로 근처에 있던 삼대 종족의 대군은 조금 전에 석목과 남궁경이 격전을 치르는 모습을 보았기에 석목이 다가오자 다급하게 길을 내주었다.
석목은 빛으로 변하여 공간 통로를 뚫고서 지나갔다.
“조금 전에 그분은 천봉 일족의 성녀 수임 축전에서 봤던 미천거원 일족의 석목입니까?”
통로와 가까이에 있던 육규종이 멀어져가는 석목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조윤은 안색이 어두워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별 보잘것 없어보였던 인족 녀석이 천정의 선장과 결투를 할 정도로 강해져서 돌아왔다니. 게다가 선장을 죽여 버릴 만큼 강해지리라곤 애당초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조윤은 석목이 이렇게 놀라운 잠재력을 갖춘 사람인줄 알았더라면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해 후회가 몰려왔다.
다른 종족의 신경 강자들도 조윤을 힐끔힐끔 쳐다봤는데 쏟아지는 다양한 시선에는 비웃는 눈빛이 어렸다.
예전에 천봉 일족의 성녀와 석목 사이에 벌어진 일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 천봉 일족은 실력이 막강한 데릴사위를 쫓아낸 격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조윤은 뜨거운 시선을 느끼자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정말 그 자였어. 단 몇 년 사이에 실력이 이렇게 늘었다니. 상상도 하지 못했군.”
조주명은 조윤의 안색을 살피지 못했는지 활짝 웃는 얼굴을 내비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적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조윤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러나 조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적안도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 * *
석목이 무암성 밖으로 날아갔을 때, 별하늘엔 전함의 파편과 잔해들이 떠다녔는데 전부 천정의 전함들 같았다.
천정의 대군은 한곳에 모여 있었는데 그나마 온전한 전함들은 한쪽에 나란히 서 있었으며 모두 집합하여 천천히 먼 곳으로 철수했다.
석목은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요족 연합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을 보고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요족 연합이 전부 천정의 대군에게 살해당했나?
요족 연합은 고작 수 천 명뿐이라 천정의 대군과 맞서 적수가 되지 못했다.
“석두 걱정 마. 다들 아무 일 없어. 지금 근처에 있는 성운에 숨어있어.”
채아의 목소리가 석목의 가슴에서 울려 퍼졌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채아의 시선을 따라 근처에 자리한 성운을 바라보았다.
성운에서는 빛이 맴돌고 있는데다가 그 빛이 너무 두터워 석목의 시력으로도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채아가 하는 말이 맞을 터이니 안심을 해도 되었다. 그래서 석목은 다시 고개를 돌려 천정의 대군을 바라보았다.
서문설이 아름다운 자태로 전함의 끝에 선 채로 두 눈을 반짝이며 석목을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눈빛도 매우 복잡해보였다.
한편, 또 다른 전함에서 익숙한 모습이 석목을 노려보고 있었다.
조극은 표정이 그리 환하지 않았는데 문아한 얼굴에 먹구름이 한 층 드리웠으며 분노로 가득 찬 낯빛이었다.
석목은 조극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서문설을 한참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피했다.
* * *
천정의 대군이 철수하는 속도는 매우 빨라 잠깐 사이에 그들은 검은 별하늘 깊은 곳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석목은 시선을 거두어들이고는 채아가 가리키는 성운 쪽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석목은 이내 눈썹을 치켜뜨며 멈춰 섰다.
성운이 한참 동안 들끓은 후에 너덜너덜해진 전함 다섯 척이 천천히 날아 나왔다.
전함에는 대장로 백박과 안화, 방진을 비롯한 사람들이 모두 서 있었다.
“맹주님!”
석목을 보자 대장로 일행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군요.”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식을 드리웠다가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격전을 펼쳤기에 요족 연합도 손실을 입었지만 다행히 신경 강자들은 전부 살아있었다.
전세를 파악할수록 신경 강자의 소중함이 뼈저리게 다가왔으며 천정의 세력과 싸울 수 있는 중요한 역량이라 생각하니 절대 잃어서는 아니 되었다.
“어떻게 성운에 숨어계실 생각을 다 했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멀리서 무암성이 처한 상황을 파악한 후에 적들이 우리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아냈죠. 그래서 논의를 거친 끝에 밖에 있는 천정의 대군을 묶어두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녀석들이 무암성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천정 놈들이 하나둘씩 통로 밖으로 철수해 나오자 대장로님이 우리 모두를 철수시켜 성운 속으로 들어가니 천정의 대군들이 쫓아오지 않았어요.”
안화는 대장로를 한 번 쳐다보고는 빠르게 말했다.
“제 불찰이군요. 무암성 안에 있어서 천정의 대군이 어떤 상황인지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네요. 그래도 다행히 빠르게 움직여 피할 수 있었군요.”
석목이 깊은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