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75화 (775/916)

775화. 맹수지쟁(盟首之爭)

한동안 대전 속엔 고요한 침묵만 흘렀다.

“미천 연합은 이제 막 수립되었으며 규모나 인원수로 봤을 때는 여전히 부족하죠. 만약 연합을 합치게 된다면 제 생각엔 우리 삼대 종족 연맹을 주력으로 삼은 후에 미천 연합이 보조를 하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적안이 마른기침을 하며 침묵을 깼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눈살을 찌푸렸고, 방진과 안화도 안색이 굳어버렸다.

“적 족장님, 그 말씀은 잘못되었습니다. 이번에 보신 미천 연합의 군사들은 연합의 일부일 뿐이죠. 그리고 미천 연합은 지금 지원군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미천 연합은 모두 다른 종족 마흔일곱 곳이 연합을 하여 본대가 머지않아 곧 무암성에 도착할 겁니다.”

대장로가 입을 열었다.

“정말입니까!”

그 말을 들은 육규종은 두 손으로 의자를 잡고는 몸을 앞으로 내밀며 큰소리로 웃었다.

다들 기분 좋은 소식을 듣자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반귀족들이 가장 좋아했다. 필시 수많은 군사로 지원해준다면 무암성을 지키는 건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들은 조윤은 눈썹을 치켜뜨며 의아하게 여겼다.

적안은 조윤과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걱정스러워하는 분위기로 눈을 마주쳤다.

“적안 형, 연합을 이끄는 맹주를 어찌 인원수로 정하겠습니까? 천정과 싸우려면 적과 싸운 경험이 가장 중요하죠. 석 족장은 수련 경지는 높지만 나이가 젊은데다가 또 미천거원 일족은 오랜 시간 동안 은거하여 천정과 접점이 많지 않을 테죠. 하지만 우리 삼대 종족 연합은 이미 천정과 오랫동안 싸웠으니 우리 삼대 종족이 연합을 이끄는 쪽이 더 낫겠군요. 이것 또한 천하 성역의 미래를 위한 일입니다.”

조윤이 말했다.

“만약 천정과 싸운 경험으로 말하면 아마 우리 미천거원 일족과 비교할 수 있는 종족은 없을 테죠. 천 년 전에 우리 미천거원 일족의 백원왕은 천하의 백족을 이끌고서 천정의 대군과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수도 없이 치렀습니다. 그리고 석 맹주는 우리 백원왕의 후손이며 지금 석 맹주가 이끄는 가운데 이미 여러 번 천정을 내쫓았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기필코 더 많은 전공을 세우겠죠.”

대장로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조윤과 적안은 눈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천봉과 지룡 일족을 비롯한 거대 종족들이 오랫동안 바랐던 일이 바로 미천거원 일족을 대신하여 팔황고족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장로가 한 말은 다른 거대 종족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피하고 있던 부분을 건드려 두 사람은 얼굴이 어색하게 일그러졌다.

“게다가 우리가 급히 지원을 하지 않았더라면 삼대 종족 연합이 아직 남아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방진이 조윤과 적안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은 후에 물었다.

“육 족장님이 죽어도 무암성을 지키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남았죠. 그렇지 않았더라면 당신들이 도와줄 필요도 없었습니다.”

적안이 분노하며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내뱉었다.

“적 족장님,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겁니까? 제가 거점 행성을 버리고 당신들을 따라서 도망가기라도 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육규종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육 족장님, 적 족장님. 아직 가장 큰 적을 물리치지도 못했습니다. 우리가 벌써 안에서부터 갈라지면 안 되겠죠.”

대장로가 적안을 한 번 쳐다보고는 눈에 빛을 반짝이며 차분하게 타일렀다.

“너무 심한 말이 아닙니까? 연합을 이룬 목적은 천정을 물리치기 위해섭니다. 그러니 석 맹주님의 실력을 다들 보셨잖습니까? 우리 반귀 일족은 마음속으로부터 탄복했습니다. 그러니 연합을 이룰 때 맹주의 자리를 어찌 할지는 석 맹주님의 뜻을 따라야 하겠지요.”

육규종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자 속으로 한숨만 나왔는데 누가 연맹을 이끌든 석목은 정말로 상관이 없었다. 석목은 오직 천정 놈들을 천하 성역에서 내쫓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석 족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윤이 고개를 돌려 석목을 쳐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석목이 대답을 하려고 할 때, 머릿속에서 조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 도우, 급하게 대답할 필요는 없어요. 예전에 천봉 일족이 보여준 처사는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우선 사죄부터 드리겠습니다.”

“지나간 일입니다. 조 족장님,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석목이 눈살을 찌푸리며 전음으로 대답했다.

“석 도우님은 우리 종족의 성녀인 조령수와 혼약을 맺으셨지요. 만약 석 도우가 저를 지지하신다면 바로 저와 함께 천봉 일족으로 돌아가 좋은 날에 혼사를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추후에 벌어질 전쟁에서도 절대 미천거원 일족이 위험에 처하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맹세도 하죠.”

조윤이 속으로 웃으며 전음을 보내면서 말했다.

“조 족장님의 좋은 뜻은 마음으로만 받겠습니다. 지금은 천정이라는 대적을 물리칠 때니 제 사사로운 감정은 나중에 다시 논의합시다.”

석목이 담담하게 전음을 보내며 말했다.

종수와 혼사를 맺는 건 종수와 맺은 약속일뿐만 아니라 석목의 소망이기도 했다. 그러니 조윤이 이 일을 꺼내서 거래를 하려는 건 정확하게 석목의 취약한 부분을 건드린 셈이었다.

하지만 지금, 석목은 혼자가 아니라 백원왕의 후손이었으며 미천거원 일족의 족장이자 미천 연합의 맹주였다. 그러니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연합의 이익을 저버려서는 아니 되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조윤은 다시 얼굴이 굳었다.

“여러분, 천정의 대군은 여전히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암성에서 일어난 급한 불을 끄는 게 우선이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천정의 대군을 물리칠지 논의를 하는 것이죠. 그러니 누가 맹주를 할지는 나중에 다시 논의합시다.”

석목이 말했다.

석목이 그리 말하자 전부 고개를 끄덕였고, 특히 규모가 작은 종족 사람들이 공감을 했다.

석목이 하는 말은 천하 성역의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 작은 종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암성에 일어난 급한 불을 끄다니요? 석 족장님, 그럴 필요가 더 있습니까?”

조윤이 갑자기 차갑게 웃더니 친절하지 않은 투로 말했다.

“조 족장님, 그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석목이 눈살을 찌푸렸다.

“얼마 전에 일어난 일로 이미 증명이 되지 않았습니까? 무암성을 지키는 수호 대진은 그리 단단하지 않아요. 그러니 하루 빨리 전선을 뒤로 물려 차류성(車流星)으로 물러나는 편이 좋겠군요.”

조윤이 차갑게 말했다.

“조 형이 하는 말씀은 일리가 있습니다. 전선을 뒤로 끌고 가야만 연합과 천정의 대군 사이에 충분한 완충 지대를 둘 수 있어 우리도 숨을 돌릴 수 있겠죠. 그래야만 다시 천정과 싸울 실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적안이 말했다.

삼대 종족 연합에 속한 작은 종족의 족장들은 천정의 대군과 연이어 교전을 치르며 많은 피해를 입어 이미 지쳐있었다. 그리하여 작은 종족의 족장들은 다들 적안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 말을 한 번 들어보시죠. 육 족장님은 현무반운대진이 뚫린 게 첩자가 벌인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대진 자체에는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사실상 천하 성역에 이렇게 단단한 방어 대진이 없을 겁니다. 하여 우린 무암성에 방어선을 만들어서 천정과 싸워야합니다.”

석목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 뚫린 곳이 두 번 뚫리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무암성에 지금도 천정의 간첩이 없으리라 어떻게 장담합니까?”

조윤이 계속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 분이 하시는 말씀은 우리 무암성의 수호 대진에 허점이 많다는 뜻입니까?”

육규종이 조윤과 적안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이렇게 가볍게 천정 놈들이 침입해올 수 있는데 육 족장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조윤이 차갑게 웃었다.

“육 형, 누가 첩자인 조극 놈을 보내서 진추를 지키도록 했습니까?”

적안이 육규종을 한 번 흘겨보고는 차갑게 말했다.

“너……”

육규종은 분노가 더욱 치솟았다.

결국 현장의 분위기는 매우 팽팽해졌다!

석목은 조윤과 적안이 한심했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우선 어떻게 무암성을 지킬지 논의해 봅시다.”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종족의 신경 족장이 입을 열었다.

“굳이 무암성을 지키겠다면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천봉 일족은 함께하지 못하겠습니다.”

조윤이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우리 지룡 일족도 여기서 마냥 머물 수는 없습니다.”

적안이 조윤의 옆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몇몇 작은 종족의 족장들은 눈치를 살피며 망설이다가 아무 말도 없이 두 사람의 옆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이 두 종족을 따르던 작은 종족들의 족장과 장로들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천정의 위협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두 족장님, 멀리 내다보시고 꼭 심사숙고하십시요.”

석목이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다들 함께 물러납시다. 하지만 물러나지 않겠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지요. 우린 먼저 가보겠습니다.”

조윤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갈 테면 가라고 하세요. 천정의 대군이 공격해 올 때, 저 자들은 이미 우리 반귀 일족을 버리고 가려고 했죠. 그렇다면 우리 반귀 일족도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선포하겠습니다. 우리 반귀족은 삼대 종족 연합에서 나와 본격적으로 미천 연합에 가입하겠습니다.”

육규종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조윤은 안색이 싸늘해졌다. 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육규종을 바라보았다.

육규종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서 화난 눈으로 상대와 눈을 마주쳤다.

적안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육규종과 석목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자 대장로는 아쉬운 감정이 앞섰다.

천봉과 지룡 일족은 천 년간 수고스럽게 종족을 이끌어 천하 성역의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미천거원 일족이 이제 막 복귀를 해 그들의 자리를 빼앗아 새 연합의 우두머리가 되겠다고 하니 조윤과 적안이 받아들일 수 없을 만도 했다. 그러니 절대로 두 사람을 말릴 수 없을 뿐더러 두 종족이 미천 연합에 합류한다는 건 더욱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석목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굳이 말리지 않았다.

조윤은 곧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족장이 밖으로 나가자 천봉 일족은 전부 일어서서 조윤을 뒤따랐다.

조주명은 아쉬운 눈빛으로 석목을 한 번 쳐다보고는 곧바로 따라서 나갔다.

적안도 성큼성큼 대전 밖으로 나가자 지룡 일족도 전부 우르르 일어섰다.

이어서 천봉과 지룡 일족을 따르는 종족들도 그들을 따라 나갔다.

두 종족의 세력들이 전부 나가자 대전은 순식간에 허전해졌으며 침울한 분위기가 흘렀다.

* * *

그날 저녁, 천봉과 지룡 일족은 사람들을 데리고 전함 사십여 척을 이끌고 무암성을 떠났다.

“육 족장님, 현무반운대진에 뚫린 구멍은 복구가 잘 되었습니까?”

전망대에 서 있던 석목은 멀어져가는 두 종족의 전함에서 시선을 거두어들이며 육규종에게 물었다.

“석 맹주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현무반운대진은 진추가 훼손되었을 뿐만 아니라 천정의 전함이 연이어 공격을 하여 예상보다 많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아직 온전하게 복구하지 못했습니다.”

육규종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육 족장님, 천정이 천봉과 지룡 일족이 철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전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족장님과 우리 대장로님은 참전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과 제가 데려온 자들을 투입시켜 함께 작전을 펼칠 준비를 하세요.”

석목이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네.”

육규종과 대장로가 동시에 대답했다.

“꼭 기억하세요.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전함을 하늘로 보냅니다. 그리고 무암성 밖으로 나가지는 말고 현무반운대진에 뚫린 구멍을 지키죠. 천정 놈들이 통로를 통해 침입하려고 하면 곧바로 공격을 합시다.”

석목이 말했다.

육규종과 대장로는 명을 받든 후에 곧바로 전력을 동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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