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7화. 선장의 유품
“맹주님, 어떤 묘책이라도 있습니까?”
대장로가 희색을 드러내며 다급하게 물었다.
그리고 모두 석목에게 시선을 던졌다.
“천하 성역에는 수많은 종족들이 있죠. 우리 미천 연합에는 종족 수십 곳이 가입을 했지만 우린 절대 천하 성역을 이루는 전부가 아닙니다. 그리고 성역이 위급한 상황에 놓였으니 우리는 연합의 이름을 내세워 온 천하 성역에 초대장을 날려 모든 종족이 연합에 가입하여 함께 천정의 침입을 막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석목이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족장들은 눈을 반짝였다.
“옳습니다. 연합이 성립된 후로 우리는 아직 본격적으로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죠. 미천 연합과 석 맹주님의 명망으로 아마 많은 종족들이 모이려할 거예요.”
대장로가 감격스러운 투로 말했다.
이렇게 되면 미천거원 일족은 명망을 다시 되찾을 것이며 심지어 천하 백족을 거느리던 때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족장들이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연이어 천정의 대군을 물리치면서 미천 연합의 명성은 이미 삼대 종족 연합을 초월했을 터였다.
“다들 찬성하는 듯한데 그렇다면 서둘러 진행하죠.”
석목이 말했다.
“네!”
족장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그리고 곧바로 어떻게 구체적으로 초대장을 보낼 것이지 논의를 한 후에 각자 거처로 돌아갔다.
육규종은 이미 모든 사람들이 머물 거처를 세심하게 안내해주었다.
“육 족장님, 반귀 일족에 폐관 수련을 할만한 곳이 있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연이은 격전을 치른 후에 천정은 이미 미천 연합의 실력을 알게 되었을 터라 당분간을 무작정 침공을 하진 않을 터였다. 그래서 석목은 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석 맹주님, 폐관 수련은 제 부저에서 하시면 됩니다. 제가 머무는 부저의 동부엔 진법이 강화되어있으며 영력도 풍성하여 폐관 수련을 할 때 아주 적합하죠.”
육규종은 멈칫했다가 곧바로 대답했다.
대장로는 아직 떠나지 않았기에 그 말을 듣고는 곧바로 석목에게로 다가왔다.
“족장님의 부저인데 제가 어떻게 감히 그곳으로 들어가겠습니까? 다른 곳은 없나요? 조용하고 방해가 되지 않는 곳이면 충분해요. 그리고 물 속성 원기가 짙으면 더 좋을 것 같군요.”
석목이 말했다.
석목은 구전현공 여덟 번째 단계를 수련해야만 했는데 이미 너무 늦어져 반드시 수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조극이 나타나 석목은 압박을 받았다.
비록 둘이서 교전을 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조극이 이미 구전현공 여덟 번째 단계를 수련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구전현공은 단 한 사람만이 대성에 이를 수 있었으며 조극은 천정에 속하였으니 쓸 수 있는 자원도 석목보다 훨씬 풍부할 터였다. 그러니 만약 조극이 먼저 구전현공을 대성까지 수련한다면 석목의 세상은 무너질 터였다.
“물 속성이 짙은 곳이요?”
육규종은 그 말을 듣고선 멈칫하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석두, 또 폐관할 거야? 네가 폐관하면 나는 또 심심해서 죽는다고.”
채아가 둘이 나누는 대화를 듣다가 허공에서 석목의 어깨로 내려오며 툴툴댔다.
“이 녀석, 이미 반귀 일족 천 리 안쪽을 다 날아다녔잖아? 어디에 천재지보가 있는지 다 알고 있지? 육 족장님께 이 먹보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줘야지.”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석두, 나는 네 영총이야. 내 생각도 좀 해줘야지.”
채아는 두 볼이 볼록 튀어나왔다.
“하하…… 채아 도우, 우리 무암성에 있는 천재지보는 찾는 대로 다 드셔도 됩니다. 부족하다면 저에게로 오시죠. 제대로 대접해 드릴 테니.”
“석두, 봤지? 족장님의 넓은 아량을 보라고. 아이고, 주제에 맹주라고……”
채아가 불만이 가득해하며 말했다.
석목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 맹주님, 우리 종족에 동천복지가 한 곳 있는데 폐관 수련하기에 적합할 것 같군요.”
육규종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디에 있습니까?”
석목이 다시 물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만 리 정도 가면 항량산맥(恒涼山脈)이 있는데 거기엔 백유골(百幽谷)이 있죠. 백유골은 산이 푸르고 물이 맑아 물 속성 원기가 다른 곳보다 백 배나 짙은 명당입니다. 예전에 사람들을 데리고 탐색을 하러 갔었는데 골짜기에 물 속성 영천(零川)이 하나 있었죠.
우리 종족은 전부 흙속성 공법을 수련해 그 영천을 쓸 일이 없어 봉인해두라고 일러두었습니다. 그러니 직접 가보시면 만족하실 겁니다. 다만 백유골은 인적이 없는 황량한 골짜기라 제가 사람들을 보내서 청소를 하고 거기에 맹주님이 머무실 동부를 하나 지으라 일러둘까요?”
육규종이 말했다.
“영천이 있다고요? 그럼 그곳으로 정하겠습니다. 그리고 동부는 지어주실 필요 없습니다.”
석목이 좋아하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육규종은 하얀 옥간과 영패를 하나 꺼내서 석목에게 건넸다.
“이건 지도 옥간이고 이건 진법 금제 영패입니다.”
육규종이 두 물건을 석목에게 건넸다.
“네. 연합에서 처리할 일은 족장님과 대장로님께 맡기겠습니다. 급한 일이 있다면 전신진반을 통해 연락을 주세요.”
석목이 물건을 받고선 다시 하얀 진반을 두 개를 꺼내 육규종과 대장로에게 주었다.
“맹주님, 걱정 마세요!”
육규종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대장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두 분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석목이 웃으며 작별을 한 후에 채아를 데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석목에게 만 리는 그리 먼 길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처럼만 날아간다면 곧바로 목적지에 도착할 터였다.
백유골은 항량산맥 동쪽의 외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지도를 보지 않으면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석목은 허공에 서서 산골짜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육규종이 말한 바와 같이 골짜기 속은 고요했으며 괴석들이 앙상하게 놓여있는데다가 도처에 짙은 흰 안개들이 자욱하여 마치 선경(仙境)에 온 것 같았다.
바깥쪽 산골짜기는 낮고 텅텅 비어있었고,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신식을 막고 있었는데 아마 반귀 일족이 설치한 금제 진법일 터였다.
석목은 금제 영패를 꺼내 흔들면서 안개 속에 하얀빛을 날렸다.
그러자 흰 안개가 한참 들끓더니 서서히 흩어졌다. 하지만 모든 안개가 흩어지지 않는 걸 보니 남아있는 안개는 금제 때문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었던 안개 같았다.
석목의 눈에서 빛이 스치더니 채아를 데리고 흰 안개 속으로 날아가 바닥으로 내려왔다.
산골짜기 곳곳에는 보라색이 흐르는 대나무 숲이 펼쳐져 있었고, 동쪽과 서쪽으로 무리지어 기이한 문을 이뤘는데 그 모습을 바라만 봐도 눈앞이 현란했다.
“어쩐지. 흔하지 않은 천연 환술 진법이 있더라니.”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석두, 여기엔 대나무가 왜 이렇게 많아? 너무 어지러워. 내가 올라가서 볼게.”
채아는 눈앞에 자란 대나무 숲이 어지럽게 느껴졌다.
“돌아다니지 마……”
석목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채아는 이미 날개를 펄럭이며 골짜기 위쪽 하늘로 날아갔다.
그런데 채아가 곧바로 다시 내려왔다.
“왜? 뭐가 보여?”
석목이 물었다.
“안개 밖은 또 안개야. 내 시력으로도 멀리 내다볼 수 없어. 그리고 밖으로 날아서 나갈 수도 없을 것 같아.”
채아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속으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채아는 신경에 들어선 후로 영목 신통이 크게 강화되었지만 어쩐지 여기에 드리운 안개는 뚫어볼 수 없었다.
“가자!”
석목은 골짜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골짜기는 구불구불 했고, 한참 굽이돌아가서야 가장 깊은 곳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드넓은 빈 땅이었다.
쏴아아!
높이가 수십 장에 이르고 너비가 네다섯 장인 거대한 폭포가 하늘에서부터 연못으로 쏟아졌다.
연못은 무려 너비가 이삼십 장이나 되었는데 그 사이에서 짙고도 검은 소용돌이가 어른거려 좀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짙은 물안개가 소용돌이로부터 흘러나오며 음산한 기운을 은은하게 풍겼다.
“정말 영천이 있었어.”
석목은 가슴이 시원해졌다.
그리고 몸을 날려 연못으로 들어가 가장 깊은 곳으로 헤엄쳐 갔다.
연못에 들어서자 음한의 기운이 강해져 육신이 단단함에도 몸을 파르르 떨었다.
연못의 깊은 곳에는 검은 우물이 있었으며 검은 돌로 쌓아올린 둘레에 적힌 수많은 부문들이 그윽하고도 검은빛을 뿜어내 우물을 덮었다.
우물은 간간이 푸르스름한 빛깔을 뿜어냈지만 검은빛이 닿는 순간에 다시 되돌아갔다.
검은 우물의 벽은 반귀 일족이 세운 봉인이었고, 영천에 흐르는 영력을 대부분 봉인해 놓았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연못에 흐르는 음한의 기운이 절대 이뿐만이 아닐 터였다.
석목은 눈에 빛을 내며 몸을 날려 검은 우물 위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우물 아래쪽에는 깊은 동굴이 있는데 얼마나 깊은지 알 수는 없었지만 우물 속엔 파란빛이 가득 차 있어 빛이 유유하게 흐르며 물살 모양을 이루었다. 깊은 곳에서 눈부시게 빛나던 파란빛은 푸른 화염이었는데 열기는 전혀 없었고, 기이한 기운을 뿜으면서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느낌을 주었다.
“물과 유유히 흐르는 한기를 보니 혹시 전설 속의 남묘진수(藍渺真水)인가!”
석목은 무엇인가가 떠올랐는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눈에 빛을 이글거렸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남묘진수는 하늘이 낳고 땅이 기른 이수(異水)로 일 년 내내 달의 정화를 흡수하여 기이할 정도로 차갑다고 들었다. 게다가 매우 희귀한 물이라 행성 하나를 뒤져도 단 한 방울도 찾을 수 없다고 전해졌다.
그러니까 물 속성 공법을 수련한 사람에게는 단 한 방울만 있어도 엄청난 보물이었는데, 여기에 이렇게 많이 있다니!
석목은 이 남묘진수가 구전현공 물의 힘을 수련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이 영천만 있다면 오 년 안에 구전현공 여덟 번째 단계를 대성의 경지로 수련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아졌다.
석목은 심호흡을 하며 하늘로 몸을 날려 다시 연못으로 날아갔다.
“석두, 아래 영천이 있어?”
채아는 연못 근처에서 놀고 있다가 석목이 나타나자 곧바로 날아왔다.
“찾았어. 수질도 아주 좋은 것 같아. 나는 이제부터 수련을 해야 하는데 너는 여기서 놀 거야, 아니면 반양골로 돌아갈 거야?”
석목이 물었다.
“여기도 재미있는데. 이 근처에서 놀고 있다가 심심하면 나가서 놀게. 신경 쓰지 말고 수련이나 하고 있어.”
채아가 날개를 펄럭이며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어 진기를 꺼내 진법 결계를 펼치더니 연못에 드리웠다. 그리고 다시 연못의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석목은 물을 피하는 신통을 시전하지 않은 채 그대로 영천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석목은 곧바로 수련에 몰입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허리춤에 있는 검은 주머니를 꺼냈는데 그 속엔 석목의 분신이 들어있어 막강한 마기가 일렁였다.
석목은 눈에서 화색이 돌았는데 분신의 기운이 훨씬 더 강력해졌고, 이제 며칠만 더 지나면 곧 신경을 돌파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곧 석목의 동료 중에 신경 강자가 한 명 더 생기는 셈이었다.
석목은 주머니를 거두어들이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하얀 골무와 반지가 나타났다.
이 두 물건은 선장 남궁경이 남긴 유품이었다.
석목이 하얀 골무를 들자 막강한 한기가 그 속에서 흘러나왔는데 빙백신혼의 기운과 똑같아 아마도 남궁경이 빙백신광을 쓰기 위해 제련한 법보일 터였다.
이제 하얀 골무 법보는 주인이 없는 물건이 되어 석목은 신식으로 골무 법보를 훑어보며 어떻게 연화할지 생각해 보았다.
하얀 골무의 이름은 뱅빅신지조(冰魄神指罩)였는데 상고시대부터 내려온 보물이며 남궁경이 제련한 물건이 아니었다.
빙백신지조는 등급이 매우 높은 영보이며 호천현화번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골무 법보에는 신통한 구결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구결은 빙백신광이었다.
남궁경은 이 빙백신지조를 갖게 되면서 빙백신광이라는 상고시대의 신통을 수련할 수 있게 되었다.
석목은 남궁경과 여러 번 교전을 치르며 빙백신광이 얼마나 대단한 신통인지는 이미 확인했다. 확실히 빙백신광은 호천성염보다 훨씬 뛰어났다.
석목은 구전현공 여덟 번째 단계를 수련한 다음에 이 상고 신통을 익히도록 시도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호천성염이나 빙백신광과 같은 상고 신통은 수련하면 할수록 법칙을 깨우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빙백신광을 수련할 시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