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8화. 수령자(水靈子)
석목은 하얀 골무를 넣어두고는 신식으로 하얀 반지를 훑어보았다.
그 순간 석목은 너무 기뻐서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역시 천정의 선장이라 그런지 저장 반지에는 많은 보물들이 들어있었고, 석목이 가지고 있는 것들보다 몇 배는 더 많았다.
다양한 법보와 단약, 귀한 재료들이 있었고, 석목에게 가장 필요한 선급 영석도 대략 백 개는 들어있었다.
석목은 선급 영석을 전부 꺼내 자신이 쓰는 저장 반지에 넣어두었고, 필요한 단약들도 챙겼다.
“음, 이건 남궁경이 전투를 치를 때 몸속에 넣었던 구슬이잖아?”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자 손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하얀 구슬이 하나 더 나타났다.
극도로 차가운 기운이 구슬에서 흘러나왔는데 이 한기는 남궁경의 빙백신광보다 훨씬 강력했다.
석목은 공법을 시전하여 한기를 막았다.
하얀 구슬은 남묘진수의 기운을 느끼기라도 한 듯이 빛을 반짝이며 들끓다가 영천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석목이 당황하여 다급하게 구슬을 붙잡았다.
“자아를 지녔다고? 이건 무슨 법보지?”
석목은 하얀 구슬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구슬 속에는 구름 모양 그림이 떠있었는데 무수히 많은 부문들로 이루어져 매우 현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것은?”
구름 그림을 한참 바라보던 석목은 그림 속에 들어있는 신묘하고도 무궁무진한 법칙의 오묘함을 느꼈다.
그는 눈빛을 반짝이며 하얀 구슬을 얼굴 가까이에 대고는 현묘한 그림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 보려고 했다.
이때, 하얀 구슬이 반짝이며 빛이 날아 나와 빠른 속도로 석목의 얼굴로 다가왔다.
하얀빛에서는 킥킥거리는 괴상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큭큭, 네 몸을 나에게 줘!”
스윽!
하얀빛은 석목의 얼굴에 닿았지만 안으로 뚫고 들어가지는 못했다.
석목의 몸이 희미해지면서 서서히 사라졌는데 그것은 잔영이었다.
그러자 하얀빛에서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서는 놀라는 기색을 드러내더니, 눈을 깜박이다가 다시 하얀 구슬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때, 큰 손이 번개처럼 다가와 빛을 반짝이며 단번에 하얀빛을 잡았다.
석목이 서서히 나타나서 하얀빛을 잡은 손을 꽉 쥐자 손에서 ‘뿌드득!’ 뼈가 꺾이는 소리가 들렸다.
“도우님, 살려주시죠. 전부 오해입니다. 오해예요!”
하얀빛 속에서 나타난 사람의 얼굴이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며 소리를 질렀다.
“오해? 조금 전에 내 육신을 탐한 것 같은데 이것도 오해인가!”
석목은 눈빛이 싸늘해져 말을 이었다.
“그건…… 조금 전에는 정신이 없었죠. 어르신, 용서해주세요. 무례를 범한 부분은 충분히 보상을 해드릴 테니,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하얀빛 속에서 나타난 얼굴은 연신 애원하며 간곡히 부탁했다.
하지만 석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얀빛을 꽉 틀어쥐었다.
그러자 하얀빛 속에서 나타난 얼굴이 초초한 표정을 드러냈다.
“내가 구슬 속에서 신혼 파동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너는 이미 내 육신으로 침입했겠지. 비록 네가 침입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를 해치려는 놈은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석목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우님, 조금 전에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도우님의 화를 가라앉힐 수만 있다면 저는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하얀빛이 반짝이며 얼굴이 사람 그림자로 변하여 석목에게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석목은 눈빛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다.
이 사람 그림자는 매우 생생했는데 하얀빛이 신혼을 통제하는 힘이 그야말로 무서운 정도에 이르렀다는 뜻이었다.
“그래, 그럼 내가 묻는 말에 답하면 네 목숨은 살려주지. 하지만 거짓말을 한다면 가차 없이 죽여 버릴 거야!”
석목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하얀빛은 부들부들 떨었다.
“도우님, 물어보십시오. 제가 아는 건 전부 말씀해드리겠습니다!”
하얀빛이 곧바로 대답했다.
“우선, 너는 누구냐? 수련자의 신혼인가?”
석목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석목은 아직까지 자신이 붙잡고 있는 이 빛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혹시 수련자의 신혼이 아니라면 또 다른 무엇일까 너무나 궁금했다.
하얀빛 속에서는 신혼의 힘이 파동을 내뿜고 있었지만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차가운 기운도 머금고 있었다.
신혼이 어떻게 이토록 차가운 기운을 풍길 수 있을까?
“네, 도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신혼이죠. 다만, 평범한 신혼은 아니지요.”
하얀빛이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자세하게 제대로 말해!”
석목이 차갑게 말하며 손가락에 힘을 줬다.
“네네! 저는 수령자라고 합니다. 상고 시대의 수련자인데 수명이 끝나 비술을 시전하여 신혼과 현명신주(玄冥神珠) 속의 현명진수(玄冥真水)와 하나가 되어…… 그리하여 신혼이 기이한 모양으로 변해 한기를 풍기고 있죠.”
하얀빛이 떨리는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
“상고 시대의 수련자?”
석목은 흠칫 놀랐다.
상고 시대 수련자의 신혼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니?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았나?
“신혼과 현명진수를 합쳤다고? 어떻게 한 건가?”
석목이 계속해서 물었다.
현명진수는 남묘진수처럼 천지에 흐르는 음한의 속성이 담긴 이수였다. 게다가 남묘진수보다 더욱 희귀했다.
석목은 이런 천연 이수로 수련을 하는 방법을 들어본 적은 있었으나 신혼과 이수를 합치는 방법은 처음 들어보았다.
“가능하지만 매우 어렵고, 또 성공할 확률도 매우 낮죠. 운이 좋아야 하는데다가 물의 법칙과 영역에 대해 깊게 이해를 해야만 미약하게나마 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도를 했는데 성공을 했죠.”
수령자가 말했다.
석목은 수령자를 바라보며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런데 왜 그렇게 했지?”
석목이 물었다.
“당연히 살아남기 위해서지요!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살아있으면 천지간의 모든 걸 느낄 수 있지만 죽으면 아무 소용 없죠!”
수령자가 흥분하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물론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그 대답이 의외라 흠칫 놀랐다.
수련자들은 누구나 목숨을 금쪽같이 여기며 최대한 오랫동안 살고 싶어 했다. 그리고 특히나 수련 경지가 높을수록 그 간절한 마음은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신경 강자라 할지라도 수원이 끝나면 연기처럼 사라질 테며 영원히 산다는 것은 결국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수령자가 정말 상고 시대의 수련자라면 살아온 세월이 신경 강자의 수원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럼 얼마나 살았는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지? 신혼과 현명진수를 합치면 죽지 않는 건가?”
석목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계속해서 물었다.
“형태가 있는 세상의 모든 물건엔 수명과 한계가 있는 법이지요. 그러나 어떤 사물들은 영원히 소멸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천지간에 흐르는 이수와 타오르는 이화(異火)와 같은 건 이 세상에 나타난 순간부터 죽지 않으며 영원히 소멸되지도 않지요. 그리하여 제 신혼과 현명진수가 어우러지자 저는 자연스럽게 죽지 않고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완벽한 영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찌됐든 영생은 영생이죠.”
수령자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여전히 넋을 놓은 표정을 지었지만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 깨달음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수령자가 한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신혼을 이수나 이화와 같은 실물들과 합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수령자는 아마도 살아있을 때 천재였을 터였다.
“도우님, 신혼과 이수를 합치는 방법이 궁금하시면 그 방법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수령자가 웃는 얼굴로 아부를 떨며 말했다.
“말 돌릴 생각하지 마. 네가 한 짓을 용서한다는 건 아냐.”
석목이 차갑게 말했다.
“그건……”
수령자가 웃음을 거두었다.
“신혼이 죽지 않는데 왜 내 육신을 탐했지?”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수령자는 망설이다가 석목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지는 걸 느끼고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비록 제 신혼은 죽지 않지만 제게는 힘이 없죠…… 현명신주 속에 오랫동안 갇혀있다보면 심심해져 육신을 하나 구해서 다시 힘을 갖는 기분을 느끼고 싶게 됩니다. 허나 다만 제 눈이 삐어서 사람을 잘못 선택했습니다. 도우님, 용서해주세요.”
말을 마친 수령자는 다시 사죄를 했다.
석목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도우님, 저를 살려주시면 도우님께도 엄청난 좋은 점이 있죠. 저는 무수히 많은 상고 비술을 알고 있는데 전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도움을 받으면 더 빨리 신경 중기에 오르실 겁니다. 게다가 저는 물 속성 법칙을 깊은 단계까지 깨우쳐 이 세상에 저를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죠. 그러니 도우님이 법칙을 수련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수령자가 계속해서 미끼를 던졌다.
하지만 석목은 전혀 표정이 달라지지 않아 마치 수령자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럼 남궁경은 왜 현명신주를 자기 몸에 넣은 건가?”
석목이 침묵을 깨며 물었다.
“남궁경 그 멍청이가 제 힘을 쓰려고 했던 거죠. 그 자식은 물 속성 법칙을 아주 얕게 깨달았지만 현명신주를 몸에 녹이면 잠시나마 제 힘을 빌려 얼음 영역의 위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수령자는 남궁경을 탐탁찮게 여겼다.
“허나 그것도 대가를 치러야겠지? 네가 그놈의 육신을 강탈하려 했잖아. 물론 실패를 했지만.”
석목이 말했다.
수령자가 무안한 표정을 드러냈다.
석목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그렇게 많은 쓸모가 있다고 하니 너를 살려줄 수도 있고, 나중에 함께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석목이 그리 말하자 수령자의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 스쳤다가 다시 굳었다.
“그런데 왜요?”
“그 전에 시도해보고 싶은 게 있어.”
석목은 입가에 기이한 미소를 그리더니 손에 하얀빛을 드리웠다.
“당신……”
수령자가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펑!
석목이 손에 힘을 주자 하얀빛이 터지며 빛이 되어 흩날렸다.
하지만 하얀빛은 다시 합쳐지며 빛덩이가 되어 뭉쳤다. 다만 빛덩이는 조금 작아졌고, 방금 전보다 많이 어두워졌다.
스윽!
하얀 빛덩이가 현명신주 속으로 날아갔다.
“역시 현명진수와 합친 불사신혼은 남다르군. 이 정도 공격으로는 절대 널 죽일 수 없어.”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이 망할 놈아!”
현명신주에 깃든 수령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리고 수령자는 화가 나서는 불을 뿜어낼 듯한 눈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너는 내 육신을 탐했고, 나는 네 신혼을 한 번 부숴버렸으니 아주 공평하지 않나?”
석목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웃으며 말했다.
“망할 자식, 함께 하자더니 이런 짓이나 하고. 어쩌자는 거야?”
수령자가 분노하며 말했다.
“나는 진심을 다해 함께하지 않는다면 좋아하지 않아. 그리고 넌 상고 시대부터 살아온 불사신혼인데다가 또 오랜 세월을 살았어. 그러니 나보다 이 세상을 더 잘 알겠지만 이런 잔머리로는 날 따라올 수 없을 거야. 그러니 약한 척하지 마.”
석목이 비아냥거리며 현명신주를 매만졌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파란빛 몇 갈래가 날아가 금제 보호막을 펼치며 주변의 연못과 분리되었다.
“어쩌자는 거야?”
수령자는 석목의 행동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이 현명신주를 부술 수 있을지 궁금해서.”
석목이 가볍게 웃으며 하얀 화염을 날렸다. 그러자 순수한 양의 불꽃이 현명신주를 감싸고선 활활 타올랐다.
수령자는 안색이 바뀌며 차갑게 웃었다.
그러자 현명신주에서 화려한 빛이 흘러나와 제아무리 양의 불꽃이 충격을 줘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순수한 양의 불꽃으로 안 된다면 이건 어때?”
석목은 붉은빛을 반짝이며 구전현공 불의 힘으로 현명신주를 감쌌다.
그 모습을 본 수령자는 눈에 심각한 빛을 띠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구전현공 불의 힘이 활활 타올랐지만 현명신주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노란 호천성염을 드리웠다.
호천성염에서 무수히 많은 붉은 부문이 나타났고, 화염 법칙의 힘을 시전하여 위력을 가장 강하게 이끌었다.
그러자 주변이 곧바로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고, 연못의 물이 증발해 영천 속에 흐르던 파란빛도 충격을 받아 파동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