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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779화 (779/916)

779화. 거래

호천성염이 뜨겁게 타오르자 수령자는 드디어 견디지 못하고 심각한 표정을 드러내며 현묘하고 어려운 주문들을 외우기 시작했다.

“풋.”

현명신주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와 한기를 풍기자 현묘한 신주의 겉면에 하얀 얼음이 한 층 나타났고, 얼음 위에도 하얀 부문들이 새겨졌다.

하얀 부문들은 서로 연결이 되면서 광막을 형성하여 간신히 호천성염을 안정시켰다.

호천성염이 끊임없이 충격을 주었지만 현명신주는 물론 부문으로 이룬 광막마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석목은 눈썹을 치켜뜨며 호천성염을 거둬들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역시 상고 시대의 수련자라 신통이 대단하군. 신혼임에도 불구하고 공격할 수 없다니.”

“휴, 현명신주로 겨우 성염을 막아냈을 뿐이지…… 그런데 도우, 정말 나랑 힘을 합칠 생각은 안하고 현명신주를 파괴해서라도 나를 죽이려는 건가?”

수령자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고 시대의 수련자라 배울 점이 많을 테니 당연히 힘을 합쳐야지. 다만 내가 당신을 통제할 수 없는데 어찌 힘을 합치겠나? 그러니 혹시 모를 후환은 없애버리는 게 상책이지.”

석목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리고 손에 금빛을 반짝이자 화려한 빛과 함께 번천곤이 나타났다.

번천곤을 본 수령자는 겁에 질려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잠시만, 도우. 알았어, 알았네. 맹세할게. 절대 도우를 해치는 일이 없을 거야…… 현명신주는 지극히 평범한 영보라 도우가 현천 영보로 날리는 일격을 절대 막아낼 수 없어.”

석목은 수령자가 하는 말이 귀에도 들어오지 않는지 현명신주를 던져버리고는 곧바로 번천곤을 휘두르며 현명신주를 강하게 내리쳤다.

쩍!

현명신주에 싸인 광막에 균열이 생기자 안에 있던 수령자는 몸통이 흔들리더니 고통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좋아. 이제 마음이 놓이네. 그럼 협력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볼까?”

석목이 흡족해하며 번천곤을 거두어들이며 말했다.

상대는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는지 알 수 없는 늙은 요괴라 석목은 번천곤이 현명신주에 확실하게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만 마음을 놓고서 협력을 논할 수 있었다.

“이, 이 망할 놈!”

수령자는 화가 치밀어 올라 석목을 바라보며 욕설을 한바탕 퍼부었다.

그러자 석목은 웃는 얼굴로 수령자를 보기만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욕설을 퍼붓던 수령자는 화가 조금 풀렸는지 드디어 입을 다물었다.

“화가 풀린 것 같으니 이제 얘기를 좀 나눠볼까?”

석목이 차분하게 물었다.

수령자는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석목을 노려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협력에 관심이 없는가? 그럼 십 년 뒤에나 다시 얘기하는 게 좋겠군.”

석목은 담담하게 말을 하며 현명신주를 저장 반지에 넣으려고 했다.

“잠깐만!”

수령자가 눈에 빛을 내며 말했다.

그러자 석목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손을 거두었다.

“좋아. 협력하지.”

수령자가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통이 크네.”

석목이 입이 찢어지도록 웃었다.

“어떻게 하고 싶은가?”

수령자가 물었다.

“평등하게 교환을 하지. 내게 수련 방법을 가르쳐주면 나도 도와줄 수 있는 선에서 도와줄게.”

석목이 말했다.

“그래! 나는 수련 방법을 가르쳐 줄 수도 있고, 상고 신통도 알려줄 수 있어. 그럼 너는 선천 수원(水源) 혈맥을 가진 육신을 찾아서 내가 붙어다닐 수 있게 찾아줘.”

수령자가 눈에 빛을 내며 말했다.

“선천 수원 혈맥!”

석목이 깜짝 놀랐다.

석목은 이런 혈맥을 전집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그건 천지조화를 이루는 몇 안 되는 최상급 혈맥 중 하나라 종수의 천봉 혈맥처럼 매우 희귀한 혈맥이었다.

“그래. 최선을 다해서 찾아는 볼게. 다만 그런 혈맥은 흔하지 않으니 찾을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해.”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최선을 다해서 찾기만 하면 돼. 내게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거든.”

수령자가 막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다만 딴 짓은 하지 마. 딴 짓을 한다면 곧바로 번천곤으로 현명신주를 깨버려서 혼비백산하게 만들어 줄테니! 우리는 평등하게 거래를 하지만, 실력은 내가 너보다 강하다는 걸 잊지 마.”

석목이 눈에 싸늘한 빛을 내뿜으며 천천히 말했다.

“하하하. 걱정 마. 내 목숨은 네가 쥐고 있잖나? 나는 이미 오랜 세월을 살았어도 아직 부족해. 그러니 아직은 죽기 싫어.”

수령자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석목의 눈에서 싸늘한 빛은 서서히 사라졌지만 여전히 경계를 놓지는 않았다.

“물어볼게 있어. 조금 전에 왜 번천곤을 현천 영보라고 한 건가?”

석목이 물었다.

“현천 영보도 영보 중에 하난데 우리 상고 수련자들이 부르는 방식이지. 지금은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막강한 신통력을 지닌 영보만 이렇게 불러. 현천 영보의 위력은 천지를 뒤흔들 정도라 상고 시기에도 흔하지 않은 귀한 영보였지. 헌데 그 귀한 걸 네가 들고 있을 줄은 몰랐군.”

수령자가 부러워하며 말했다.

석목은 다시금 번천곤을 매만졌다. 그리고 늘 번천곤의 위력이 다른 영보보다 훨씬 뛰어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번천곤이 영보보다 등급이 높은 현천 영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네가 현명신주에 흠집을 냈으니 다 쓰지도 못할 이 영천의 남묘진수 중에 절반은 내게 나눠줘. 현명신주에 갈라진 틈을 복구해야 해!”

수령자가 옆에 있는 영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그런데 방금 전에 신경 중기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지? 알려주면 남묘진수를 절반 나눠주지.”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그럼 말해봐. 신경 중기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수령자가 석목을 한 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신경 중기는 허로 몸을 연화시켜서 본명 원신을 기르는 과정이지.”

석목은 속승 진인이 말해줬던 바를 그대로 읊었다.

“그래. 본명 원신을 기르기만 하면 신경 중기에 도달할 수 있어. 그리고 수련 공법에 따라 다르지만 모든 본명 원신은 대부분 오행에 속하지.”

수령자가 말했다.

석목은 오행이 세상 만물의 근본이라는 도리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본명 원신을 기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냐. 우선 수련 경지를 신경 초기 정상으로 끌어올려 충분한 원기를 쌓은 후에 경계를 돌파해야 해. 그리고 속성의 법칙을 아주 깊이 깨달아야지…… 그런데 너는 이미 이런 조건들을 갖추고 있군.

네가 수련한 공법은 불 속성 공법이고 불 속성 비술도 함께 수련한 것 같으니 네가 기른 본명 원신은 아마 불 속성 원신일 거야. 불 속성 법칙을 이미 깊이 깨달았으니 내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아마 곧 신경 중기에 도달하겠지. 다만 걸리는 시간이 길고 짧은 문제가 있겠군.”

수령자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침묵에 잠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수련한 공법은 불 속성 공법이 아니지만, 예전에 화염 원신을 응결 시키는 법결을 얻은 적이 있어. 그것으로 너를 도와 짧은 시간 안에 불 속성 법칙을 크게 깨닫게 만들 수도 있지.”

수령자가 손을 흔들자 하얀빛이 나타났다. 그리고 하얀빛에는 무수히 많은 작은 글씨가 튕기고 있었다.

석목이 신식으로 빛을 드리우자 머릿속에서 어렵고도 현묘가 구결이 나타났다.

석목이 그 구결을 읽어보고는 기쁨을 드러냈다.

이 구결은 매우 현묘했으며 조금만 깨우쳐도 몸속에 깃든 대황 진기가 흔들릴 정도였고, 특히 몸속에 깃든 화염들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석목은 깊은 숨을 내뱉으며 흐르는 진기를 억눌렀다.

석목은 불 속성 법칙을 꽤나 깊이 이해해서 법결을 읽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고마워. 그럼 약속대로 영천에 있는 남묘진수를 절반 줄게.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조금 더 기다려야 해.”

석목이 말했다.

수령자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괜찮아. 남묘진수를 나에게 주기만 하면 돼. 그 정도 시간은 충분히 기다릴 수 있지.”

“그럼 나는 수련을 해야 하니, 미안하지만 수 도우, 우선 저장 반지에 좀 머물러야 할 것 같아.”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현명신주를 저장 반지에 넣었다.

석목은 수령자를 경계해 수련을 할 때에도 조심해야 했으니 곧바로 수령자를 저장 반지에 넣어둔 후에야 안심이 되었다.

석목은 조용히 앉아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그리고 하얀 옥병을 하나 꺼냈는데 강렬한 물 속성 파동이 옥병 속에서 흘러나오는 걸 보니 필시 열해천령이었다.

석목이 손가락으로 옥병을 짚자 강렬한 물기가 병속에서 날아 나와 석목에게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석목은 구전현공의 여덟 번째 단계를 시전하며 물기를 흡수했다.

* * *

시간이 조금씩 흘러 보름이 지나자 석목의 몸에 투명한 파란빛이 나타났는데 마치 만수지원(萬水之原) 같았다.

석목이 눈을 번쩍 뜨고는 주문을 외우자 호천성염이 날아 나와 영천의 우물벽을 따라 빠르게 맴돌았다.

펑!

우물벽을 둘러싼 검은 돌이 순식간에 녹아버리자 영천을 지키던 봉인도 사라졌고, 굵고 파란빛이 영천에서 뿜어져 나왔다.

석목이 한 손을 흔들자 파란빛이 전부 석목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석목은 부들부들 떨면서 깊은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곧바로 구전현공 여덟 번째 단계를 시전하여 남묘진수를 빨아들였다.

석목이 두르고 있던 파란빛이 빠르게 밝아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은 또 반 년이 흘렀다.

백유골은 이전과 같이 매우 고요했고, 연못에서만 유유한 빛이 흘러나왔는데 그 모습이 실로 아름다웠다.

* * *

채아가 연못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 어디에서 물어왔는지 모를 파란색 영과를 씹어 먹고 있었다.

순간, 채아는 눈빛이 변하더니 아직 다 먹지 못한 영과를 한쪽에 버려두고서 연못으로 시선을 던졌다.

연못이 부글부글 끓으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파란빛을 뿜어냈고, 파란빛이 반짝이며 석목이 연못에서 날아 나왔다.

석목은 허공에서 휙 한 바퀴 돌고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석목은 두 눈을 감고 몸에 빛을 두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파란 영천수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빛에서 물소리가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석목의 옆에선 하얀빛이 둥둥 떠다녔는데 그 모습은 마치 석목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때, 석목이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고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고요하던 백유골에서 한참 동안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잠시 후에 석목이 두르고 있던 파란빛은 천천히 사라졌고, 석목이 눈을 뜨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반 년 동안 수련을 거치며 석목은 남묘진수의 힘을 빌려 구전현공 여덟 번째 물의 힘을 이미 소성 경지까지 익혔다.

수련 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빨랐다.

연못 속에서 흘러나오던 파란빛은 전부 사라져버렸다.

석목은 그동안 영천에 흐르던 남묘진수를 수령자와 함께 깨끗이 흡수해버려 깊은 숨을 내뱉었다. 그러니 이제 구전현공 여덟 번째 단계를 빨리 수련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석두!”

채아가 날개를 펄럭이며 날렵하게 석목의 어깨로 내려왔다.

채아는 석목의 옆에서 떠다니는 하얀빛을 바라보며 혐오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몇 개월 전에 석목의 분신이 신경을 돌파할 때, 채아는 수령자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이 상고 시대의 신혼은 채아에게 호감을 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채아에게 이유 없는 미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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