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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780화 (780/916)

780화. 별하늘 깊은 곳으로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진반을 꺼냈다.

진반에서 나는 빛이 물결처럼 퍼지자 대장로와 육규종의 환영이 나타났다.

“대 장로님, 육 족장님, 무암성에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석목이 다급하게 물었다.

석목이 폐관 수련을 하는 동안 무암성은 차차 안정을 되찾았다. 하여 대장로는 석목이 수련을 할 때 방해가 될까봐 계속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연락이 오니 석목은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족장님, 무암성엔 아무 일도 없습니다. 다만 천정 쪽에 이상한 움직임이 있는 것 같군요.”

대장로가 말했다.

최근 천정의 움직임은 매우 수상했다. 그러나 대장로는 석목이 수련을 할 때 방해가 될까봐 계속 말하지 않다가 한참을 고민한 후에야 석목에게 전음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석목은 연합의 맹주이기에 큰일은 반드시 석목이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혹시 천정에서 또 병력을 추가했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아뇨. 천정은 병력을 추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와 전쟁을 멈췄습니다. 더는 무암성을 공격하지 않았죠. 천정에 혼란을 주려고 파견한 첩자들의 말을 듣자니 천정의 대군은 기세가 많이 꺾였다고 하더군요. 방어만 할 뿐, 반격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천정이 우리를 무서워하는 건가?”

채아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석목이 침묵을 깨며 답했다.

“천정의 꿍꿍이는 알 수 없지만 아마 고의로 계획한 전략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방심하는 틈을 타서 다시 반격을 하려고 들 수도 있죠.”

“네. 저희도 그 부분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선 계속 긴장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대장로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아, 맹주님. 천정에 점령당한 천하 성역의 또 다른 종족들이 보낸 소식이 있는데 천정은 석 달 전부터 점령 구역에 있는 영석들을 미친 듯이 채굴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적잖은 행성들이 일 년 사이에 폐성으로 전락했죠.”

육규종이 말했다.

“천정의 대군이 우리와 교전을 멈춘 것은 언제부터죠?”

그 말을 들은 석목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바로 석 달 전입니다…… 처음에는 확실하지 않아 다양한 경로로 알아봤는데 이런 상황이 한동안 지속됐다는 걸 확인했죠. 맹주님, 이 두 가지 일이 연관이 있다고 짐작하시는 겁니까?”

육규종이 말했다.

“수령자, 너는 남궁경의 옆에 꽤 오래 있었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

석목이 허공에 떠있는 빛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얀빛이 반짝이다가 수령자가 얼굴을 드러냈다.

“그건 나도 잘 몰라…… 음, 어렴풋이 생각나는 건 남궁경이 비로에게 말한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어떤 엄청난 계획을 실행…… 수많은 영석을 모아야한다나 뭐라나.”

수령자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어렴풋이? 같기도 하고? 너 이 자식 아는 게 도대체 뭐야. 하나마나한 말만 하고 있잖아.”

채아가 툴툴거렸다.

“후후…… 그건…… 나도 관심이 없어서…… 그래서……”

수령자는 웃기만 할 뿐, 반박은 하지 않았다.

“대장로님, 각 종족의 족장들과 신경 강자들에게 모이라고 하세요. 이 일을 제대로 논의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곧바로 연합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석목이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천정은 미양 성역에서 이진종을 통해 이런 짓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그리고 흑마 성역에서도 똑같은 짓을 저질렀다.

대체 무슨 꿍꿍이를 숨겼기에 미양, 흑마, 천하, 심지어 더 많은 성역들을 공격하여 영석 광산을 채굴해 미친 듯이 영석을 뽑아낼까? 심지어 이렇게 수많은 행성들을 파멸시키면서도 그 일을 꼭 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네.”

대장로가 대답했다.

진반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대장로와 육규종이 사라졌다.

“우리도 준비하고 출발하자.”

석목이 고개를 돌려 채아에게 말했다.

“그래!”

채아가 흔쾌히 대답했다.

채아는 백유골이 너무 지겨웠던 참이었는데 밖으로 나간다는 말을 듣자 기분이 좋아졌다.

석목은 말을 하며 하얀 구슬을 거두어들이자 수령자도 곧바로 하얀빛으로 변하여 구슬 속으로 날아갔다.

* * *

대략 반시진이 흐른 후에 석목은 반귀족으로 돌아왔고, 모든 족장과 신경 강자들은 이미 의사 대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석목이 의사 대전에 들어가자 모두 우르르 일어서서 석목에게 인사를 올렸다.

석목은 인사를 하며 주좌로 걸어가 앉았다.

“대장로님, 연합이 처한 상황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자리에 앉자 석목이 물었다.

“이제 막 맹주님께 보고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지난 달 말에 유문돈 일족은 이미 대형 전송진법을 만들기 시작했죠. 덕분에 이제 반귀 일족에서 우리 미천거원 일족으로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족장님께서 내리신 명령대로 연합은 천하 성역에있는 각 종족들에게 초대장을 날렸고, 수십 종족이 우리 미천 연합에 가입하겠다고 했죠.”

대장로가 말했다.

“네. 백유골에서 오는 길에 대형 전송진법을 봤습니다. 반귀 일족 곳곳에도 사람들이 이전보다 훨씬 늘어나 더 시끌벅적해진 것 같군요.”

석목이 말했다.

“맹주님, 뿐만 아니라 각 종족들이 보낸 전쟁 준비 물자도 전송되어 미천거원과 반귀 일족에 비축해두었습니다. 그러니 천정과 장기간 전투를 벌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서유금이 말했다.

“서 형과 비천서 맹우님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서유금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긴 국면이 안정을 되찾았으니 천정은 아마 한동안 공격을 하지 못하겠죠. 그러니 이 기회에 저는 무암성을 잠깐 떠나야할 것 같습니다.”

석목이 웃음을 거두어들이며 말했다.

“천하 성역이 처한 상황은 호전이 되었지만 아직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헌데 어째서 무암성에서 나가려 하십니까?”

대장로가 물었다.

“석 맹주님, 급한 일이 아니라면 장로님을 보내면 됩니다. 맹주님께선 이곳에서 자리를 지키셔야 군심을 다잡을 수 있어요.”

“천정이 갑자기 미친 듯이 영석을 채굴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일을 제대로 알아 봐야할 것 같군요. 그리고 천봉 일족에도 다녀와야겠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그…… 천봉과 지룡 일족은 그때 떠나버린 후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대장로님이 시국을 고려해 여러 번 사람을 보냈는데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훼방을 놓으며 몇몇 작은 종족들이 미천 연합에 가입하는 걸 방해했죠.”

육규종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두 종족이 미천 연합에 합류하는 걸 껄끄러워 하지만, 어쨌든 연합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팔황고족 중에 하나이지 않습니까? 천정과 싸울 수 있는 중요한 전력이죠. 만약 두 종족과 힘을 합칠 수 있다면 우리는 단번에 천정의 대군을 향해 반격을 하여 철저히 천하 성역에서 내쫓을 수도 있습니다.”

다들 석목이 하는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종수는 저와 혼사를 치를 사람입니다. 이번에 가서 종수를 데려와야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일도 알아봐야 하고요.”

석목은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렇게 하셔야지요.”

대장로와 육규종이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하지만 저는 연합의 맹주니 군영을 떠나는 건 결코 마땅한 일이 아니겠죠. 군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제가 무암성을 떠난다는 걸 비밀로 해주세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는 아니 됩니다.”

석목이 말했다.

“네.”

대전 속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 * *

연합 사람들은 회의를 마친 후에 각자 흩어졌다.

하지만 안화는 끝까지 남아서 떠나지 않았다.

“석 형, 무슨 일로 남으라고 했습니까?”

“예전에 호왕성 근처에서 상고 유적지를 발견했었다고 했지? 거기서 세 고번을 얻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정황을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을까?”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석 형, 갑자기 그 일은 왜요?”

안화가 물었다.

“고번에 있는 원숭이 그림이 미천거원 일족 족장의 신물과 똑같이 생겼어. 두 물건 사이엔 분명 어떤 특별한 관계가 있을 거야. 무암성에서 주작성으로 가는 도중에 호왕성이 근처에 있어, 가는 길에 비경에 가보고 싶어서.”

석목이 말했다.

“그 상고 유적지는 우리 종족 사람들이 호왕성 근처에 자리한 한 죽은 행성에서 발견했죠. 나중에 제가 사람들을 데리고 여러 번 찾아다녔으나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했어요. 그리고 지난번에 유적지에서 신경 선배님을 한 분 만났는데 그분이 유적지의 비경을 열어주셔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세 고번을 얻게 됐죠.”

안화가 말했다.

“신경 선배님? 어떤 선배님이신가?”

석목은 의문이 풀리지 않는지 계속해서 물었다.

“선배님은 외모도 몸도 평범하셔서 특별한 점이 없었죠…… 비경을 열어주신 후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비경 속으로 들어가시더군요…… 그리고 우리를 막으려는 것 같지 않기에 사람들을 데리고 따라 들어갔지요. 그렇게 비경에서 고번을 얻은 후로도 계속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했으나 신경 선배님께서 다시 나오셔서 우리도 다급하게 밖으로 나왔습니다.”

안화가 기억을 되짚으며 말했다.

“그리고?”

석목이 또 물었다.

“나온 후에 선배님이 사라져버려 저는 사람들을 데리고 종족으로 돌아갔죠.”

“그 상고 유적지는 죽은 행성의 어디에 있었나? 그리고 호왕성에서 그 별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지?”

석목이 침묵하다가 안화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죽은 행성은 빛이 아주 어두워요. 호왕성에서 나오면 찬란한 별바다에서도 유난히 어두운 행성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상고 유적지는 죽은 별 위에 자리한 어두운 산골짜기에 있죠. 자세한 건 제가 이 옥간에 기록해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신경 선배님이 어떻게 비경의 문을 열었는지는 알 수 없었어요.”

안화가 그리 말하며 하얀 옥간을 석목에게 건네었다.

“고마워.”

석목이 옥간을 받았다.

“석 형, 이 옥간에 표시를 해두긴 했는데 별하늘에서 폐허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함께 갈까요?”

안화가 물었다.

“안 형, 마음만 받을게. 안 형은 무암성의 염호 일족 강자들을 이끌어야 하니 여기에 남는 편이 좋을 거야. 혼자 나가야 자취를 감추기도 좋고, 대체로 더 안전할 거야.”

석목은 마음이 따뜻했다.

“그래요. 그럼 석 형, 꼭 조심해서 다니셔야 해요.”

안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화가 떠난 후에 석목은 기운을 성계 후기로 조절하고는 채아를 데리고 북무성으로 향했다.

북무성에도 전송진법이 하나 있었는데 무암성 근처에 있는 다른 행성으로 갈 수 있는 진법이었다.

* * *

보름 뒤.

호왕성의 울창한 숲 속에서 갈색 피풍의를 입은 훤칠한 남자가 고개를 든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어깨엔 토실토실한 채색 앵무새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채아, 우리가 갈 곳은 확인되지 않은 곳이라 위험할 수 있어. 그러니 영수 주머니에 들어가 있어.”

석목이 고개를 살짝 돌려 채아에게 말했다.

“나는 이미 신경이야. 날 너무 가볍게 보지 마.”

채아가 말했다.

“그래. 그럼 제대로 서 있어.”

석목이 웃으며 흑백 날개를 펼치고는 곧장 하늘 높이 날아갔다.

하늘로 날아오른 석목은 불빛을 번쩍이며 화살처럼 빠른 속도로 호왕성 위에 뜬 구름 속을 뚫고서 들어갔다.

호왕성은 영력이 풍성한 거대한 별이었는데 호왕성의 하늘에 떠있는 성운은 매우 두터웠고, 강력한 흡입력을 뿜어냈다.

석목은 이미 신경에 도달했지만 맨몸으로 호왕성을 뚫고 나가는 건 여전히 버거웠다.

채아는 석목의 어깨에 서서 막강한 압박을 받으며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이럴 줄 알았으면 잘난 척하지 않고 조용히 영수 주머니에 들어가 있을걸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용솟음치는 구름 속을 대략 반각 정도 날자 석목은 드디어 호왕성을 벗어날 수 있었다.

석목은 힘이 풀려 아무런 압력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미 몸은 별하늘에 떠 있었다.

“아이고, 드디어 뚫고 나왔구나. 석두, 다음번에는 네 말대로 영수 주머니에 들어갈게.”

채아가 목을 빼내며 중얼거렸다.

석목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안화가 말한 죽은 행성을 찾기 시작했다.

“찾았다. 가자.”

말을 마친 석목은 흑백 날개를 펄럭이며 별하늘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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