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2화. 황건 역사(黃巾力士)
풍리는 고개를 돌려 부타에게 대충 설명을 해준 뒤에 석목을 끌고 한쪽으로 가서 얘기를 나누었다.
부타는 풍리가 신경을 쓰지 않는 게 내키지 않았는지 싸늘한 빛을 내뿜었다. 하지만 풍리를 꽤 중요한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타 족장님, 저 인족은 절대 만만한 인물이 아녜요. 풍리 저 자식과 알고 지내는 걸 보니…… 비경에 들어간 후에 곧장 저 두 놈을 죽여야 후환이 없을 겁니다.”
구탑이 눈을 껌뻑거리며 전음으로 부타에게 말했다.
“풍리는 우리 종족 사람이 아니라 어차피 살려두려고 하지 않았지. 네 말대로 들어가면 곧장 둘을 죽여 버릴 거야.”
부타는 석목과 풍리를 번갈아보며 전음으로 말했다.
풍리와 석목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한참 동안 대화를 주고받았다.
“석 형, 어째서 천하 성역에 있는가?”
풍리가 물었다.
“말하자면 길죠. 저놈들 비경에 들어간 후에 우리를 죽일 모양이군요.”
석목이 부타를 비롯한 원숭이들을 한 번 흘겨보고는 손가락을 움직여 방음 결계를 펼친 후에 말했다.
“하하, 저놈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나도 저놈들을 이용하여 비경을 찾고 싶었을 뿐이야. 그나저나 석 형, 수련 경지가 신경에 도달했지?”
풍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저놈들 대체 뭐하는 놈들입니까?”
석목은 풍리가 하는 말을 부정하지 않는 듯한 얼굴로 다시 되물었다.
“천하 성역에 사는 작은 종족인 금원(金猿) 일족이 하더군. 녀석들은 용맹하고 전투를 즐기며 자신감도 하늘을 찌르지. 그리고 녀석들이 상고 비경을 찾고 있어서 나도 이 비경이 궁금해 저놈들과 함께 왔네.”
풍리가 말했다.
“그렇군요.”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웅덩이 옆으로 모였다.
“찾은 것 같군.”
풍리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석목은 손을 흔들어 방음 결계를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구덩이에서 쇳덩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는데 어떤 딱딱한 물건을 건진 모양이었다.
구덩이 옆으로 다가가 보니 그 속에서 푸른 대문이 하나 나타났다.
“빨리, 깨끗이 치워.”
부타가 흥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우르르 구덩이로 뛰어들어 뒤덮인 흙을 깨끗이 치웠다.
잠시 후에 구덩이 밑에서 푸른 돌문 두 개가 나타났다.
이 돌문에 새겨진 꽃무늬는 주변에 선 건물에 새겨진 무늬들과 똑같았고, 두 문의 가운데엔 움푹 파인 곳이 있었는데 그 윤곽은 원숭이 모양이었다.
석목은 눈을 반짝이며 저장 반지를 한 번 쳐다보았다.
부타는 푸른 문의 파인 자리를 바라보며 눈에 온통 희색을 띈 채 고개를 돌려 풍리에게 말했다.
“풍 형, 여긴 풍 형에게 맡기지.”
“그래.”
풍리가 대답을 하고는 웅덩이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풍리는 돌문의 파인 자리를 한 번 바라보고는 붉은 원숭이 조각상을 꺼냈다. 그런데 그 원숭이 조각상은 두 손으로 눈을 막고 있는 모습이었다.
석목은 원숭이 조각상이 그가 갖고 있는 족장의 신물과 크기나 형태가 똑같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원숭이 조각상들은 단지 취하고 있는 동작만 다를 뿐이었다.
석목은 호천현화번을 떠올렸는데 세 고번 중에 한 개에 눈을 가리고 있는 원숭이가 있었고, 지금 풍리가 들고 있는 조각상과 똑같이 생겼다.
풍리는 원숭이 조각상을 들고는 돌문의 파인 자리에 대고서 가볍게 눌렀다. 그러자 조각상이 딱 맞게 구멍에 박혔다.
쩌걱!
가벼운 소리와 함께 푸른 돌문에서 문양이 밝아지더니 부드러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쾅!
대지가 흔들리며 땅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돌문이 서서히 열렸다.
푸른 문이 천천히 열리자 그 속에서 칠흑같이 검은 동굴이 나타났다.
비록 돌문이 열렸지만 아무도 막무가내로 들어가지 않았고, 다들 조심스럽게 두리번거렸으나 앞이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석목은 신식을 보내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신식이 돌문에 닿는 순간, 형태가 없는 힘이 몰려와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안에 금제가 드리워져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볼 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후후, 인족 도우님. 석목이라고 하셨나요? 앞으로 가서 길 안내 좀 해주시죠. 만약 보물을 찾게되면 꼭 나눠드리겠소.”
부타가 손을 흔들자 금원족들이 우르르 석목을 둘러싸고는 달갑지 않은 눈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또한 금원족들이 풍리를 대하는 모습도 아까처럼 공손한 모습이 아니었다.
석목은 미소를 지으며 구덩이 속으로 몸을 날려 풍리를 한 번 쳐다보고는 가장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석목이 아무 말 없이 들어가자 부타는 오히려 멍했다.
옆에 서 있던 풍리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돌문에 들어간 원숭이 조각상에서 붉은빛이 반짝이더니 파인 자리에서 튕겨 날아와 다시 풍리에게로 향했다.
풍리는 조각상을 거두어들이고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풍리와 석목의 모습이 어둠속에서 사라져 점점 멀어져가는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가자, 따라가.”
부타는 석목과 풍리가 별 탈 없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명령을 내렸다.
주변 사람들은 이미 상고 비경에 얼마나 많은 보물들이 있는지 상상하며 안달이 나 있던 터라 부타가 명을 내리자 전부 망설이지 않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삐걱!
모두가 들어가자 푸른 돌문에서 끌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자동으로 문이 닫혔다.
* * *
동시에 불빛이 반짝이며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다.
돌문 안에는 둥그렇고 넓은 공간이 자리한 게 마치 지하 동굴 같았다. 그리고 이 공간은 넓이가 족히 사오십 장은 되어 보였다.
벽면에는 무수히 많은 붉은 부문들이 새겨져 은은하게 거대한 진법을 이루었다.
진법 부문의 벽에는 푸르스름한 사람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모두 갑옷을 입은 전사들이었다. 그리고 전사들의 모습은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생생했다.
석목과 풍리는 곧바로 공간 한쪽으로 다가가 나란히 서 있었다.
“문이 왜 갑자기 닫힌 거야!”
금원족이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그중 몇몇이 돌문으로 다가가 힘껏 문을 열려고 했지만 아무리 힘을 쓰고 심지어 법보 영기로 내리쳐도 돌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곧장 다가가 힘을 합쳤다. 심지어 부타를 비롯한 강자들도 힘을 합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석목은 금원족을 신경 쓰지 않고 붉은빛을 뚫고는 주변을 둘러싼 둥그런 벽면을 바라보았다.
풍리도 주변 상황을 둘러보았다.
부타를 비롯한 금원족들은 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아무 소용이 없자 이내 포기해 버렸다.
“우선 앞으로 가자. 보물부터 찾고 다시 나갈 방법을 생각하자.”
부타가 말했다.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게 되자 다들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때 ‘윙!’하며 공간이 흔들리다가 벽면을 둘러싼 진법 부문들이 전부 밝아졌다.
기이한 파동이 일어나 사방팔방으로 밀려 나가더니 온 공간을 드리웠다.
“금제다!”
금원족이 소리를 질렀다.
석목과 풍리의 안색도 바뀌었다. 그리고 석목은 급하게 법결을 짚으며 신통을 시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석목은 진기가 전부 가로막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신통을 시전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진기를 쓸 수 없어.”
“나도……”
금원족들이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이때 둥그런 벽에서 붉은색이 번졌다. 그리고 벽에 새겨진 사람 모양들이 희미해졌다가 하나둘씩 벽에서 튀어나왔다.
대충 훑어보니 튀어나온 전사들은 족히 열여덟 구는 되는 것 같았다.
더욱 놀라운 건 전사들이 벽면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몸이 검푸른 색에서 고동색으로 변하였고, 두 눈에서는 검은빛이 뿜어져 나왔는데 그 모습은 마치 육신을 지닌 진짜 전사들 같았다.
전사들은 머리에 누런 두건을 두르고 있었고, 소매가 없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또한 드러낸 두 팔에는 근육이 탄탄하게 튀어나와 있었는데 그런 전사들의 모습은 마치 황건 역사(黃巾力士) 같았고, 풍기는 기운은 성계 정상에 도달했다.
황건 역사 열여덟 구는 아무 표정 없이 가운데로 몰려들었다.
금원족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다가 뒤로 물러나면서 중간으로 모였다.
“당황하지 마! 진기를 사용할 수 없어도 육신의 힘은 쓸 수 있어. 우리 금원족이 이런 죽은 시체들에게 밀려서는 안 돼! 공격!”
족장 부타는 당황하는 금원족들에게 사기를 불어넣으며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금원족은 냉정을 되찾았다. 금원 일족의 육신의 힘은 천하 성역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였다.
부타가 명을 내리고는 석목과 풍리를 훑어보며 차갑게 웃었다.
이렇게 당하는 입장이라면 체격이 작은 인족은 반드시 죽을 것이기에 부타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석목과 풍리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 금원족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는 황건 역사를 훑어보기만 할 뿐, 다급하게 공격을 하지 않았다.
황건 역사 열여덟 명은 곧장 금원족들을 가운데로 내몬 후, 두 팔에 힘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주먹을 휘둘렀다.
“악!”
보라색 옷을 입은 금원족 사내가 소리를 지르며 구안대환도(九眼大環刀)를 꺼내들고는 바닥에서 뛰어오르며 대도에 빛을 번쩍이면서 황건 역사의 머리를 내리쳤다.
진기를 불어넣지는 않았지만 대도는 엄연히 법보였다. 그러니 대도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기운과 산을 가를 것 같은 힘은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황건 역사는 마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주먹을 치켜들고는 서슬 퍼런 칼날을 내리쳤다.
탱!
보라색 옷을 입은 남자가 휘두른 대도 법보가 부러져 버렸다.
이어서 바람이 공기를 가르더니 황건 역사 한 명이 놀라운 속도로 주먹을 휘둘렀다.
펑!
주먹이 보라색 옷을 입은 사내의 가슴에 닿는 순간, 사내는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아무 힘없이 날아가 육신이 터지면서 죽어버렸다.
그 광경을 본 금원족들은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또한 공격을 하려던 이들도 전부 뒤로 물러났다.
“황건 역사는 막강한 힘을 지녀 육신이 매우 단단해 보이는군.”
풍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석목에게 말했다.
“육신의 힘으로는 절대 쉽지 않겠죠.”
석목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전혀 걱정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때 굉음이 울려 퍼졌다.
부타는 몸에서 금빛을 반짝이더니 짙은 금색 털이 빠르게 자라났고, 근육도 팽창해 온몸에 금색 털이 뒤덮인 거원으로 변신하였다.
석목은 공간에 걸린 금제가 진기는 억제했지만 혈맥의 힘은 그대로 시전할 수 있었기에 눈빛을 반짝였다.
부타가 변신한 금색 거원은 미천거원과 매우 비슷했다. 하지만 석목은 그 본질적인 차이를 잘 알았다.
금색 거원은 혈육의 힘이나 육신의 기운이 미천거원보다 훨씬 뒤처졌다.
금색 거원으로 변신한 부타는 두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하늘로 날아올라 앞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 순간, 가장 가까이에 있던 황건 역사가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금원족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금빛을 반짝이며 전부 원숭이로 변신하여 사방팔방에서 밀려오는 황건 역사들을 덮쳤다.
한동안 공간에선 굉음이 끊이지 않았다.
금색 거원으로 변신한 금원족은 육신의 강도와 힘이 순식간에 몇 배나 강해졌지만 여전히 황건 역사들에게 밀리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천위 경지 금원족이 몇 명이나 죽어버렸다.
그리고 남은 성계들도 일부만 간신히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고, 나머지는 뒤로 밀리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면서부터 석목과 풍리는 황건 역사의 공격을 피해 한쪽에 숨어 있었다.
“이 황건 역사들은 전부 인형이겠지요? 상고의 인형이 이렇게 막강하다니. 성계 경지 강자들과 맞먹는군요.”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풍리는 석목이 차분히 생각하자 제아무리 신경 존재라 할지라도 몸속에 흐르는 진기가 금제되어 황건 역사의 전력에 미치지 못할 게 자명해 계속 놀라기만 했다.
혹시 석목은 금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