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4화. 신경 인형
금원족들까지 전부 들어가자 등 뒤에 놓인 푸른 돌문은 또 다시 닫혔다.
비록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긴 했으나 돌문이 닫히자 불안감이 엄습했는데 또 이상한 금제 진법이 나타날까봐 두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주변은 고요했고, 아무런 진법도 없는 것처럼 어떤 파동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진기 금제가 없군. 이제 온전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겠어.”
부타가 긴장을 풀면서 구탑에게 말했다.
“금제가 없다고 마냥 좋은 건 아닌 것 같군요. 이번 시험은 아마 더 어려울 거예요.”
구탑은 오히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때, 멀리 서 있던 벽에서 ‘픽!’ 소리와 함께 빛이 번지더니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다.
사람들은 전부 놀라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앞의 돌벽에 새겨진 인형 세 마리를 보았다.
“저것들이 목표겠어.”
석목이 말을 떨어뜨리기도 전에 벽에서 빛이 일그러지더니 세 인형은 눈을 데굴데굴 돌리며 팔을 앞으로 뻗으면서 벽을 헤집고 나왔다.
벽에 새겨진 인형이 육신을 지닌 몸으로 변하자 인형들은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형들은 마치 이제 막 갖게 된 육신에 적응을 하는 것처럼 매우 현란히 움직였다.
왼쪽은 갑옷을 두른 인형이었는데 온몸이 거무칙칙했고, 주변에 먹물처럼 검고도 긴 끈을 끌고 있었다. 그 긴 끈은 마치 마기 같기도 했고, 또 옅은 흑염 같기도 했다.
중간에 선 인형도 마찬가지로 갑옷을 두르고 있었는데 갑옷 위에 붉은 옷을 한 벌 더 두르고 있었다.
또한 붉은 머리는 마치 타오르는 화염처럼 꼿꼿이 선 채 좌우로 흔들거렸다.
오른쪽에 있는 인형은 두 눈만 내놓은 채 온몸에 금빛 찬란한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그래서 빛이 그리 밝지 않은 곳에 서 있었지만 매우 눈부셨다.
세 인형은 고개를 돌려 일제히 석목 일행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세 인형이 풍기는 기운이 순식간에 폭발하며 밀려왔다.
석목과 풍리는 가장 앞에 서 있었다.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석목과 풍리는 옷자락을 휘날렸지만 별다른 영향을 받지는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두 사람 뒤에 서 있던 금원족들은 안색이 시퍼렇게 질려있었다.
부타를 비롯한 몇몇 실력이 강한 사람들을 빼면 다들 막강한 위압을 견디지 못한 채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가 풀썩 땅에 주저앉았다.
“신…… 신경 인형!”
한 금원족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세 마리야!”
“싸울 수 없어. 도망가……”
또 다른 금원족이 바닥에서 일어서며 소리를 질렀다.
부타도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시선은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타는 인형이 아닌 석목과 풍리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앞에 선 이 두 사람의 실력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어 걱정이 몰려왔다.
“석 형, 나는 저 검은 갑옷을 입은 귀신이 마음에 드는군.”
풍리가 검은 갑옷을 입은 인형을 바라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앞으로 날아가 검은 갑옷을 두른 귀신을 내리쳤다.
풍리가 하늘로 날아올라 주먹을 휘두르자 검은 주먹 그림자가 검은 갑옷을 두른 인형을 공격했다.
그러자 검은 갑옷을 두른 인형 주변에서 맴돌던 마기가 들끓더니 풍리가 날린 주먹을 받아쳤다.
풍리는 ‘후후’ 웃으며 한쪽으로 피했다.
순간, 검은 갑옷을 두른 인형이 방향을 틀어 성큼성큼 풍리에게로 다가갔다.
풍리가 검은 갑옷을 두른 인형을 끌고 가자 석목은 붉은 갑옷을 두른 인형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래. 너다!”
석목이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걸어가 붉은 갑옷을 두른 인형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저 둘은 정말 성계 경지인가? 어째서 홀로 신경 인형과 싸울 수 있지?”
금원족들은 석목과 풍리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어안이 벙벙했다.
구탑은 안색이 어두워져서는 혼이 나간 듯이 석목을 쳐다봤다. 그리고 구탑은 자신이 품었던 생각이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 금색 인형이 움직이며 금원족들을 덮쳤다.
“죽여!”
부타가 소리를 지르며 금색 갑옷을 입은 인형을 맞이했다.
“다들 가만히 서 있지 말고 족장을 도와!”
구탑이 정신을 가다듬으며 낮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몸을 날려 부타를 따라 금색 갑옷을 두른 인형을 공격했다.
인형 두 마리는 석목과 풍리가 끌고 갔고, 이제 금원족들은 금색 갑옷을 입은 인형만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다시 용기가 생겼는지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향했다.
석목은 붉은 갑옷을 두른 인형과 여러 번 주먹을 휘두른 후에 몸을 날려 뒤로 물러났다.
붉은 갑옷을 두른 인형은 체격이 황건 역사에 미치지 못했지만 몸에서 풍기는 괴력은 황건 역사보다 족히 열 배는 더 강력한 것 같았다.
만약 힘으로만 싸운다면 석목이 미천거원으로 변신하지 않고선 절대 겨룰 수 없는 힘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여긴 진법으로 제한이 되지 않아 석목도 굳이 육신의 힘만으로 인형과 교전을 치를 필요는 없었다.
석목이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자 팔에서 붉은빛이 반짝이며 화염 기둥이 용처럼 뻗어 나와 어깨와 팔을 촘촘히 감쌌다.
화염이 날아 나오자 공기의 온도가 빠르게 올라갔다.
석목이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와 오른쪽 주먹을 허리춤에서부터 앞으로 휘둘렀다.
훅!
화룡이 석목의 팔에서 뿜어져 나와 붉은 인형을 공격했다.
화룡 속에선 밝은 불길이 타올랐는데 불길 속에서 법칙의 기운이 담긴 붉은 부문들이 반짝였다.
검은 갑옷을 두른 인형과 교전을 하던 풍리는 석목의 화염 속에 깃든 기운을 느끼고는 덮쳐오는 인형을 주먹으로 물리치고 고개를 돌려 놀란 눈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붉은 갑옷을 두른 인형은 눈에서 빛이 반짝였는데 그건 마치 밝은 화염 두 갈래가 번쩍이는 것과 같았다.
인형은 다섯 손가락을 활짝 폈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붉은 화염이 뿜어져 나오더니 촘촘한 화염 그물처럼 석목의 화룡을 삼켜버렸다.
석목은 자신이 날린 화염이 붉은 갑옷을 두른 인형의 화염과 섞이는 걸 보고는 흠칫 놀라며 눈썹을 치켜떴다.
“이건……”
석목은 의아했다.
석목의 화염은 법칙의 기운을 담고 있어서 이론상 상대의 화염에도 때마침 법칙의 힘이 들어있지 않는 한 다른 화염에 삼켜질 리가 없었다.
“재미있군.”
석목이 다시 붉은 갑옷 인형을 덮쳤다.
석목이 손을 흔들며 법결을 짚자 붉은 화염이 뿜어져 나와 허공에서 세 갈래로 나뉘더니 호천현화번으로 갈라졌다.
현화번은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붉은 갑옷을 두른 인형 주변에 떨어져 다리가 세 개 달린 가마 모양이 되어 인형을 가운데로 둘러쌌다.
석목은 주문을 외우며 빠르게 법결을 날렸다. 그리고 한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었다.
훅!
굵직한 호천성염 세 갈래가 고번에서 뿜어져 나와 화염으로 끈을 이루며 붉은 갑옷을 두른 인형을 꽁꽁 묶어버렸다.
화염은 활활 타오르며 붉은 갑옷을 두른 인형을 삼켜버렸다.
타오르는 화염 속에 선 인형은 마치 용암이 녹아내리듯 조금씩 땅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잠시 후에 석목은 안색이 갑자기 바뀌었다.
바닥으로 흐르던 용암이 석목의 발 가까이에 다가오더니 순식간에 터져 나오면서 허공에서 굳으며 다시금 붉은 주먹으로 변하여 석목의 얼굴로 향했다.
붉은 주먹은 타오르는 불길을 감고 있었고, 그 열기는 석목이 불태우는 호천성염과 비슷했다.
주먹 뒤로 붉은 갑옷을 입은 인형의 팔과 몸 반쪽도 전부 굳어버렸다.
석목은 번개처럼 뒤로 물러선 후에 붉은 갑옷을 두른 귀신의 왼쪽 가슴을 바라보았다.
인형의 왼쪽 가슴은 살짝 올라와 있었는데 마치 반원 모양 물체가 튀어나온 것 같았고, 검붉은 꽃무늬가 어렴풋이 보였다.
석목이 오른손을 위로 치켜들자 ‘휙!’ 소리와 함께 파란빛이 석목의 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파란빛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매우 부드러워 보였는데, 붉은 주먹과 부딪치는 순간, 갑자기 미친 듯이 용솟음치더니 단번에 붉은 팔뚝을 삼켜버렸다.
칙, 칙!
하얀 안개가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붉은 주먹을 감고 있던 화염도 조금씩 꺼졌다.
이때, 화염을 감은 석목의 왼손이 쫙 펴지며 앞으로 세차게 밀려가 정확히 붉은 갑옷을 두른 인형의 왼쪽 가슴을 내리쳤다.
탱!
석목의 왼손이 다시 인형의 가슴에서 떨어지자 손바닥에는 주먹만 한 붉은색 구체가 붙어있었다.
그 구체는 조금 전에 인형의 가슴 위에 붙어있던 튀어나온 물체였다.
석목은 눈에 빛을 내비치며 붉은 구체를 받쳐 들고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주먹만 한 구체는 무슨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겉면에 붉은 문양이 살아있는 듯이 번쩍였다.
구체가 붉은 갑옷을 두른 인형의 가슴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용암 때문에 몸이 굳어져 가고 있던 인형이 멈추었다.
인형은 상반신은 사람 모양이었으나 하반신은 흘러내린 암석으로 변하였다.
석목은 암석으로 변해버린 붉은 갑옷을 두른 인형을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손에 있는 붉은 구체로 신식을 보내 훑어보았다.
붉은 구체는 특수한 힘을 머금고 있었는데 강력하기 그지없는 불 속성 법칙의 기운이 공에서 흘러나왔다.
붉은 갑옷을 두른 인형이 신경 수련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구체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석목 도우, 그건 인형의 심장이야.”
이때, 수령자의 흥분한 목소리가 석목의 심장에서 울려 퍼졌다.
“웬일로 네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지? 흔치 않은 일이군. 그래, 말해봐. 이건 뭐하는데 쓰는 물건인가?”
석목이 물었다.
“후후, 우리 상고시대의 물건을 보니 기분이 좋군. 이 심장은 인형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인형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인데…… 너는 인형에 대해 잘 모르니 알 필요 없겠어.”
수령자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알 필요도 없는데 왜 알려준다고 나섰지?”
석목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인형에 대해 할 필요는 없지만 이 물건은 네가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물건이야. 아마 눈치를 챘겠지? 네가 들고 있는 인형의 심장 속에 불 속성 법칙의 기운이 들어있어. 그러니 네 법칙의 힘을 깨우치는데 큰 도움이 될 거야.”
수령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기뻐하며 붉은 구체를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중요한 일을 마치면 시간을 들여 연구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석목이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풍리가 검은 갑옷을 두른 인형과 교전을 치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우세를 취하고 있어 조금만 더 있으면 인형을 죽여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금원족들은 힘겹게 금색 갑옷을 두른 인형과 싸움을 펼쳤다.
상대는 신경 인형이었는데 금원족들은 전부 고작 성계였다. 게다가 성계 정상에 오른 족장인 부타마저도 신경을 돌파하려면 한참 멀었다.
금색 갑옷을 두른 인형은 영리하게 몸을 움직이며 잔영을 끌면서 입으로 날카로운 금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금빛이 다시 검으로 뭉쳐져 소나기처럼 금원족에게로 쏟아졌다.
소나기처럼 내리는 검들은 기세는 막강했지만 공격 방식이 조금 단조로웠는데 그건 영지가 없는 인형이 날린 공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형도 신경 강자라 맹렬히 공격을 날리자 금원족들은 온힘을 다해 막아냈지만 눈 깜짝할 사이 몇몇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으며 그 중 한 명은 검으로 심장이 뚫려 죽어버렸다.
부타는 손에 커다란 금색 바퀴 병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바퀴의 테두리에는 굵고 날카로운 톱니바퀴가 자라나 있어 위아래로 빠르게 돌아가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금색 바퀴의 가운데에선 원숭이가 입을 찢으면서 웃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어 보기만 해도 매우 섬뜩해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