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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786화 (786/916)

786화. 세 번째 시험

“이건 뭐지?”

부타는 막강한 힘에 짓눌렸으며 진기도 형태가 없는 힘에 가로막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화염은 마치 영성이라도 지닌 듯이 부타를 칭칭 감았다.

부타는 겁에 질린 표정을 드러내며 살려달라고 빌고 싶었지만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그대로 영역의 일렁이는 화염 속에 묻혀버렸다.

석목이 법결을 날리자 화염 영역이 미세하게 흔들리면서 터져버렸다. 그리고 영역 속에서 바퀴 법보 하나와 금색 구슬, 저장 반지 하나가 나타났다.

부타는 사라지고 없었지만 이 세 물건은 온전하게 그대로 놓여있었다.

영역 속에서 석목의 힘은 절대적이라 원하기만 한다면 화염 영역에 종잇장을 넣어도 절대 타버리지 않을 터였다.

석목이 세 물건을 집어 들고선 바퀴 법보를 대충 훑어본 후에 저장 반지에 넣었다. 그리고 금색 갑옷을 두른 인형의 심장을 들고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비록 부타가 인형의 심장을 삼켜버렸지만 심장에 깃든 금 속성 법칙의 기운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석목은 금 속성 법칙의 영역을 아직 깨우치지 못했기에 이 인형의 심장이 매우 시기적절하게 나타난 셈이라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되면 심장으로 금 속성 법칙의 힘을 깨우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길지도 몰랐다.

석목은 인형의 심장을 챙겨 넣고는 부타의 저장 반지에 신식을 흘려보냈다.

비록 성계가 지니고 있는 물건들이 마음에 들 리는 없었지만 한 가지 물건만은 꼭 가져야 했다.

그건 바로 붉은 조각상이었는데 그 조각상은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 원숭이 조각상이었다.

석목은 신식으로 조각상을 훑어보더니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예상했던 대로 조각상 가운데엔 하얀 알갱이가 하나 박혀있었다. 미루어 보건데 금원 일족은 이 조각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각상에 잠들어있는 비밀을 몰랐을 터였다.

석목이 하얀 알갱이에 신식 한 갈래를 불어넣었다.

윙!

그리고 무수히 많은 하얀 신문이 알갱이에서 뿜어져 나와 석목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신문을 한참 들여다보던 석목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문에는 체수 공법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그건 <천화신체공(天火神體功)>이었다.

백원왕이 석목에게 전수해준 <대황반무성체공>과 달리 이 <천화신체공>은 온전한 체수 공법이었으며 그 속에는 심지어 석목이 그토록 원하던 혈해를 수련하는 방법도 완벽하게 적혀있었다.

석목은 탐욕스럽게 <천화신체공>을 읽어내려 갔다. 그러자 몸속에 자리한 혈해가 천천히 파동을 일으켰다.

하지만 지금은 수련을 할 때가 아니었다.

석목은 재빠르게 공법을 한 번 훑고는 내용을 전부 기억하고 나서야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원숭이 조각상을 거두어들였다.

이때, ‘쾅!’ 소리와 함께 굉음이 울렸다.

석목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풍리가 검은 갑옷을 두른 인형을 두 덩어리로 갈라놓으며 낸 소리였다.

풍리는 때마침 몸을 굽혀 검은 갑옷을 두른 인형의 심장을 꺼내고 있었다.

풍리는 심장을 한참 매만지더니 얼굴에 희색을 드러내며 심장을 거두어들였는데 그 모습은 마치 인형의 심장이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석목은 조금 의아했다.

석목은 풍리를 바라보다가 풍리의 저장 반지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눈을 반짝이며 다가갔다.

“후후, 미안하게 됐네. 인형과 싸우느라 석 형의 시간을 빼앗았군.”

풍리가 석목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석목이 손을 흔들었다.

풍리는 바닥에 널브러진 금원족들의 찢어진 시체를 한번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 풍리는 전투를 펼치며 금원족들이 보여주는 모든 행동을 엿보고 있었다. 그래서 석목이 부타를 죽여 버렸지만 풍리는 전혀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다.

“이 시험도 통과했군. 여기서 치르는 시험은 그리 어려운 것 같지 않아.”

풍리가 말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으나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지금까지 치른 시험은 석목과 풍리에겐 크게 어렵지 않아 심지어 너무 간단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흥! 너희 운이 좋았을 뿐이야. 수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황건 역사나 인형의 위력이 많이 줄어들었지. 만약 전성기였더라면 그 인형들은 전부 실력이 신경 중기였을 게야.”

수령자의 목소리가 석목의 가슴에서 울려 퍼졌다.

“아, 그렇군.”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됐든 가볍게 시험을 통과했다.

석목이 한창 풍리와 대화를 나눌 때, ‘끼익!’ 소리가 울렸다.

석목이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니 가까이에 자리한 땅이 갈라지며 또 다른 검은 기둥이 서서히 올라왔다. 그리고 돌기둥 위에는 둥그런 받침돌이 하나 있었으며 그 위에 석합이 놓여있었다.

“또 비어있는 건 아니겠지?”

풍리가 석합을 바라보며 장난치듯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선 시선을 석합으로 던졌다.

석합이 천천히 열리자 그 속엔 검붉은 전투 갑옷이 들어있었다. 그건 확실히 낡은 갑옷이라 빛이 많이 어두워져 언제든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석목은 고작 전투 갑옷이라 실망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물론 이 전투 갑옷은 예전엔 매우 비범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이미 영력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아마도 오랫동안 석함 속에 보관되어 있어 영력이 많이 흩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풍리는 전투 갑옷을 보자 매우 기뻐했다.

“풍 형, 갑옷이 마음에 드는 것 같은데 그냥 가지세요. 다만 이 갑옷은 영력이 많이 사라진 것 같으니 복구하려면 조금 번거롭겠어요.”

석목은 이미 구룡쇄금갑이 있었기에 이런 전투 갑옷엔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이 전투 갑옷은 음암(陰暗) 속성의 힘이 들어있어 화염의 힘 외에 잘 알지도 못하는 석목이 수련한 공법들과 잘 맞지도 않았다.

“그…… 그래, 그럼 석 형, 이 갑옷은 내가 가질 테니 다음번에는 어떤 포상이 주어지든지 다 석 형이 가지게.”

풍리가 망설이는 듯한 후에 말했다.

석목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풍리는 앞으로 다가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석합 속에 든 전투 갑옷을 꺼내 들고는 한참 동안 만족스러운 눈으로 훑어보았다.

“아, 풍 형. 이 돌문을 열었던 원숭이 조각상을 저에게 한 번 보여줄 수 있을까요?”

석목이 물었다.

“이거 말인가?”

풍리가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원숭이 조각상을 꺼내며 말했다.

“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물건은 열쇠 같은 거라 다른 용도는 없을 걸세. 마음에 든다면 석 형에게 주지.”

풍리는 별 보잘 것 없는 물간이라는 듯이 석목에게 조각상을 던지고는 계속해서 전투 갑옷을 매만졌다.

석목은 흥분한 얼굴로 조각상을 받아들었다.

석목이 가지고 있던 원숭이 조각상에 호천성염을 수련하는 공법이 들어있었으며 부타의 조각상에는 <천화신체공>이 들어있었다. 그러니 풍리의 조각상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석목은 곧바로 신식으로 원숭이 조각상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하얀 알갱이를 향해 신식을 보냈다.

윙!

무수히 많은 하얀 신문들이 알갱이 속에서 흘러나왔는데 이번에는 다른 두 조각상보다 적혀있는 신문이 훨씬 많았다. 그리고 신문들은 전부 석목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석목은 흥분한 마음을 억누르며 빠르게 신문을 훑어보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훑어보던 석목은 기뻐하는 동시에 실망스러운 감정도 숨길 수 없었다.

이 조각상 안에 들어있는 공법은 그리 신묘한 공법이 아니었는데 그 정체는 바로 막강한 상고시대의 대진인 ‘양의리지현화진(两儀離地炫火陳)’이라는 진법이었다.

이 진법은 땅속에 흐르는 용암의 힘을 강제로 뽑아내 그 힘을 진법을 이루는 근원으로 삼는 방법이었다.

대진을 제대로 펼치기만 한다면 진법으로 자동으로 땅속에 흐르는 화염의 힘을 뽑아낼 수 있어 끊임없이 화염의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런 힘을 오랫동안 끌어모으면 문파를 지킬 때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다.

석목은 조금 의아했다. 현화 상인은 왜 이 조각상에 이런 진법을 남겼을까?

하지만 조각상에 무엇을 넣어둘지 정하는 건 온전히 현화 상인의 마음대로였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미천거원 일족에 진법을 설치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 진법이 갖춘 위력은 아마 반귀 일족의 수호 대진보다 강력할 터였다.

석목이 깊은 생각에 빠져있을 때, ‘끼익!’ 소리와 함께 돌문이 옆으로 벌어지며 통로가 하나 나타났다.

석목은 조각상을 거두어들였으며 풍리도 검붉은 갑옷을 챙겼다.

석목은 풍리를 보며 망설이다가 끝내 원숭이 조각상의 비밀을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석목은 일부러 숨기는 게 아니었다. 만약 풍리의 조각상에 들어있는 게 어떤 신통이었더라면 풍리와 공유했을 텐데 고작 대진을 펼치는 공법이라 풍리처럼 홀로 떠돌아다니는 사람에게는 필요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저리주저리 말을 해주는 건 몹시 귀찮았다.

“가죠.”

석목은 자신의 불청후 조각상을 꺼냈다.

“세 번째 원숭이 조각상이 석 형에게 있었다니.”

풍리는 석목이 들고 있는 원숭이 조각상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저도 우연히 얻게 된 거예요. 그리고 이 물건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이곳을 찾게 되었지요.”

석목이 하는 말을 듣자 풍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둘은 통로로 걸어 들어갔다.

석목과 풍리는 한참이나 통로에서 걸어서야 세 번째 돌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석목은 망설이지 않고서 불청후 조각상을 돌문 중앙의 움푹 파인 곳에 박아 넣었다.

쩌걱!

* * *

예상대로 돌문이 천천히 열리자 칠흑처럼 검은 공간이 펼쳐졌다.

석목은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어떻게 됐지? 석 형, 앞이 보이나?”

풍리가 물었다.

“너무 어두워서 영목신통으로도 잘 보이지 않네요.”

석목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우선 들어가서 상황에 따라 움직이지.”

풍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풍리와 나란히 걸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오자 두 사람의 등 뒤에서 ‘쿵, 쿵!’ 소리가 울리더니 돌문이 다시 닫혔다.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바닥이 그리 평평하지 않다는 게 느껴져 석목은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움직였다.

옆에 있던 풍리도 무엇인가를 발견했는지 마찬가지로 걸음을 늦추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석 형, 이 바닥에 무늬가 새겨진 것 같지 않아?”

“네, 저도 느꼈어요. 방금 전과 같은 인형일까요?”

석목이 물었다.

풍리가 대화를 이어가려고 할 때, 발밑이 갑자기 격하게 흔들렸다.

순간, 어둠 속이 환하게 밝아졌다.

“훙……”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석목과 풍리 주변이 밝아지면서 흉악하고도 거대한 몸통이 백 장 밖 어둠 속에서 부터 다가왔다. 그리고 짐승은 눈에서 금빛을 뿜고 있었다.

“이건 뭐야?”

석목과 풍리는 전부 깜짝 놀랐다.

어둠 속에서 몸집이 거대한 화룡 아홉 마리가 사방팔방에서 달려오더니 석목과 풍리를 에워쌌다.

화룡 아홉 마리는 길이가 족히 백 장이나 되는 것 같았으며 온몸에 붉은 화염을 감고 있었다. 또한 화염 속에는 검붉은 비늘이 붙어있었고, 동공에선 금색 화염이 맴돌았다.

한데 실존하는 육신을 지닌 것 같았지만 또 뭔가 달라 보였다.

“이건…… 신경 요수 인형?”

풍리는 짐승의 몸에서 풍기는 기이한 기운을 느끼고는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아녜요. 이 화룡의 몸에는 인형의 심장이 내뿜는 특별한 기운이 없어요. 인형은 아닌 것 같으나…… 실력은 아주 막강하네요.”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인형이 아니라고? 그럼……”

풍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주변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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