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89화 (789/916)

789화. 현화비록(玄火秘錄)

모든 곳이 다시 고요하게 되었다.

석목은 눈에 빛을 번쩍이며 붉은 전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전집에는 상고 신문으로 ‘현화비록’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풍 형, 혹시 현화비록에 관심이 있습니까? 전집은 보물과 달리 탁본을 남길 수 있죠. 현화 상인도 자신이 익힌 신통이 널리 알리기를 바라는 것 같았고요.”

석목이 풍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필요 없네. 내가 수련한 공법과 양의 기운이 담긴 현화 공법은 거리가 멀어서 가져도 크게 쓸모가 없을 거야.”

풍리는 현화비록에 관심이 없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석목도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풍리는 마 속성 공법을 수련했기 때문에 현화비록은 큰 쓸모가 없었다.

“아, 풍 형, 물어볼 일이 있어요.”

석목은 무엇인가가 떠오른 듯이 질문을 했다.

“우리는 좋은 친구잖나. 무엇이든 편하게 말하게.”

풍리가 멈칫하다가 말했다.

“뜬금없는 말이긴 하나, 혹시 붉은 원숭이 조각상을 어디서 얻었는지 알 수 있습니까? 제가 갖고 있는 조각상은 미천거원 일족에서 가져왔는데 미천거원 일족의 족장인 백공 선조께서 남긴 물건이에요.”

석목이 그리 물어보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조각상의 출처를 밝혔다.

“그렇군…… 그 원숭이 조각상은 주염 어르신이 내게 남겨줬다네. 주염 어르신이 하신 말에 따르면 원숭이 조각상은 예전에 미천거원 일족의 백공과 금원 한 마리가 함께 떠돌아다니며 얻게 된 것이라고 들었네. 그래서 나도 천하 성역에 오게 되었고 금원 일족을 찾아 보장을 열려고 했지. 그런데 백공의 조각상이 석 형에게 있었다니.”

풍리가 웃으며 말했다.

“주염?”

석목이 눈썹을 치켜떴다.

“그래, 석 형도 주염 어르신을 알고 있었군.”

풍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풍 형, 풍 형은 주염에게 대물림을 받았을 터인데 혹시 주염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습니까? 주염과 천정은 어떤 관계입니까?”

석목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조금 전에 본 꿈속에서 주염이 천정의 갑옷을 입고 있었기에 석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풍리가 주염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으니 석목이 꿈속에 들어간 이유는 분명했다.

주염의 기운을 느낀 석목의 혈맥이 머금고 있던 백원왕의 기억을 깨워 백원왕과 주염이 이별하는 장면이 나타난 것이었다.

“석 형이 한 말이 맞아. 나는 주염 어르신께 대물림을 받았지…… 다만 나는 주염 어르신의 공법과 보물을 일부만 얻었을 뿐, 어르신에 대해서 아는 게 많지 않아. 어르신과 천정의 관계에 대해서도 들은 게 없지. 그런데 석 형, 그건 왜 물어 보는 건가?”

풍리가 말했다.

“아녜요. 그냥 궁금했을 뿐입니다.”

석목은 실망스러웠지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석 형, 이제 어떻게 움직일 건가?”

풍리가 물었다.

“풍 형, 실은 저는 지금 미천거원 일족의 족장이 되었어요. 그래서 천정이 침입하는 걸 막기 위해 천하 성역의 여러 종족들과 연합을 하여 미천 연합을 만들었죠. 풍 형도 천하 성역에 오셨으니 별다른 일이 없으시다면 미천 연합에 들어와 함께 천정과 싸우는 게 어떻겠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그 말을 들은 풍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내가 천하 성역에 온 이유는 이 보물들을 찾기 위해서였지. 그리고 또 다르게 할 일이 있으니 이곳에서 오래 머물 수는 없어. 아쉽게도 석 형과 함께 천정과 싸울 수 없게 되었군.”

“그래요. 그렇다면 다시 헤어지죠. 풍 형, 혹시 천하 성역에서 어려운 일에 닥치면 언제든 무암성으로 찾아 오세요.”

석목이 아쉬운 듯이 깊은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하하. 그럼. 인연이 닿는다면 머지않아 또 만나게 되겠지. 잘 지내게!”

풍리가 하하 웃으며 빛으로 변하여 먼 곳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풍리가 멀어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용우비차을 꺼낸 후에 올라탔다.

그리고 손을 흔들자 채아가 영수 주머니에서 날아 나왔다.

“후!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석두, 왜 이제야 날 꺼낸 거야!”

채아는 나오자마자 재잘거렸다.

채아 같은 성격으로 영수 주머니에 있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래. 몸을 풀고 싶다면 이 비차는 네게 맡길게.”

석목은 용우비차를 채아에게 맡기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현화비록을 꺼냈다.

석목은 상고시대의 공법들에 매우 큰 흥미를 가졌는데 특히 현화 상인이 남긴 물건들은 매우 흥미로웠다.

비록 수령자도 상고 비술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석목은 이 죽지 않는 신혼이 그리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그리하여 혹시 이상한 길로 들어설까 두려워 쉽게 수령자에게 비술과 공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지 못했다.

“좋아!”

채아는 용우비차 모는 걸 매우 좋아했다. 그리고 채아는 빠른 속도로 달릴 때 쾌감을 느꼈기에 흥미진진하게 용우비차를 몰며 먼 곳으로 날아갔다.

* * *

석목은 구석에 앉아 현화비록을 펼치고는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 서책을 덮은 석목은 흥분한 기색을 내비쳤다.

조금 전에는 현화비록을 대충 훑어봤는데 역시 현화 상인이 물려준 서책이라 그런지 신묘한 공법과 무기, 그리고 비술들이 기록되어 있어서 석목은 눈이 번쩍 뜨였다.

현화 상인은 다양한 것들을 다루었는데 공법 말고도 진법에도 능통해 현화비록에는 현화의 진법도 일부 기록되어 있었다.

허나 아쉽게도 석목은 진법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에 자세히 읽어도 잘 알아볼 수 없었다.

이 밖에도 현화 상인이 수련을 하며 익힌 깨달음도 적혀있었다.

현화 상인은 신경 후기 강자로 서책에는 그가 신경을 이루는 각 경계를 돌파하며 깨달은 내용들을 기록해놓았다.

비록 신경 강자들이 성공적으로 경계를 돌파한 조건들을 똑같이 따라할 수는 없었지만 참고는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런 수련을 하며 얻은 깨달음이야말로 현화비록에 적힌 내용들 중에 가장 소중한 것들이었다.

특히 이 전집에는 화염의 원신을 응결하는 법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수령자가 석목에게 전수해준 것보다 조금 더 현묘한 것 같았다. 게다가 석목은 수령자가 전수해준 법문이 늘 의심스러웠지만 이 법문에는 절대 문제가 없을 터였다.

석목은 나중에 신경 중기에 들어서게 된다면 현화비록에 적힌 법문을 골라 수련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육신의 원만 경계를 돌파하며 석목은 수련 경지도 많이 강해졌다. 그래서 이제 신경 초기 정상과 그리 멀지 않게 되어 곧바로 경지를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화비록의 마지막 부분에는 현화 상인이 당부하는 말이 적혀있었는데 그건 꼭 대물림을 받는 사람이 종파를 열어 자신의 신통과 위명을 널리 알리라는 내용이었다.

이 부분을 읽은 석목은 조금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또 감탄스럽기도 했다.

모든 사람마다 각자 다른 욕망이 있었는데 현화 상인은 자신의 명성을 널리 알리는 일에 유난히 집착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풍리의 원숭이 조각상에 양의리지현화진이라는 수호 대진을 남겨둔 이유는 나중에 종파를 열 준비를 하라는 뜻일 터였다.

석목은 기회가 된다면 꼭 이 현화비록을 적합한 사람에게 전하여 현화 상인의 소원을 풀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석목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잡념을 떨쳐버리고는 두 눈을 감고서 계속 수련을 이어나갔다.

* * *

보름 뒤의 천하 성역.

주작성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풍승성(風乘星)이라는 큰 행성이 있었다.

권운(卷雲) 대륙은 풍승성에서도 가장 큰 대륙인데 대륙의 동쪽에는 구봉성(九風城)이라는 성시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성문과 가까운 곳에는 팔각 비첨 대전이 하나 있었는데 대전 안은 시끌벅적하니 사람들로 붐볐다.

이 대전은 풍승성에 있는 유일한 전송 대전이라 근처에 있는 크고 작은 행성들로 가려면 꼭 이곳을 통과해야만 했다.

대전의 서북쪽에는 회색 피풍의를 두른 훤칠한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는데 그의 어깨엔 화려한 깃털을 뽐내는 통통한 앵무새가 앉아있었다.

“도우님, 대진을 사용할 영석입니다. 주작성으로 향하는 진법은 어디인가요?”

석목이 대진을 지키는 노인에게 물었다.

“그게…… 죄송합니다. 도우님, 주작성은 지금 갈 수 없어요.”

성계 초기 경지인 노인은 석목에게서 성계 정상의 기운을 느낀 후에 공손하게 대답했다.

“갈 수 없다니요? 무엇 때문입니까?”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군요. 주작성의 전송 대진에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어찌 됐든 지금은 전송할 수 없어요.”

노인이 대답했다.

석목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다시 영석을 챙기고는 채아를 대리고 전송 대전 밖으로 향했다.

대전의 입구에서 석목은 고개를 돌려 전송 대전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망설이지 않고선 빛으로 변하여 채아를 데리고 성 밖으로 날아갔다.

“주작성에서 왜 전송 대진을 닫았지? 이상하네!”

채아가 고개를 갸우뚱대며 말했다.

“변고가 생긴 것 같아. 빨리 주작성으로 가자.”

석목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 잠깐 사이에 둘은 구봉성 밖에 솟은 한 산봉우리에 도착했다.

석목은 몸에 빛을 반짝이더니 흑백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석목이 하늘로 날아올랐을 때, 채아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석두, 나…… 나는 영수 주머니에 들어가 있을래.”

채아는 지난번에 고생한 기억을 떠올리며 다급하게 말했다.

석목은 곧바로 채아를 허리춤에 있는 영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별바다로 날아오른 석목은 방향을 확인하고는 주작성 방향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망망한 별바다에서 찬란한 별빛이 반짝이는 곳으로 사라졌다.

* * *

며칠 후 주작성 바깥쪽 별바다에선 밝은 빛이 먼 곳에서 날아와 번쩍이더니 이내 멈춰 섰다.

빛이 멈춰선 곳에서 석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석목은 피풍의를 거두어들이고는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붉은 행성을 바라보았다.

“음? 주작성이 왜……”

석목의 눈에 이채를 번지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주작성은 원래 붉은색이 아니었는데 행성 밖에 붉은 결계를 두르고 있어 붉은빛이 뿜어져 나와 조금 이상해 보였다.

잠깐 생각에 잠긴 석목은 순간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수호 대진을 펼친 걸 보니 주작성에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석목은 몸을 날려 주작성으로 날아갔다.

이때, 석목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근처에 자리한 운석 뒤에 서서는 주작성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작은 전함 하나가 주작성 밖으로 날아갔다.

석목이 곧바로 빛을 번쩍이며 그 전함을 따라가려다가 다급하게 빛을 감추었다.

전함에 박힌 깃발에서 화려한 빛이 흘렀는데 천정의 깃발이었다.

석목은 곧바로 몸에 감돌던 모든 기운을 숨겨버렸다.

일각 후에 전함이 석목의 옆을 스쳐 지나더니 별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석목은 주작성과 멀어져가는 천정의 전함을 번갈아보며 잠깐 망설이다가 몸을 날려 전함이 향하는 곳으로 쫓아갔다.

* * *

몇 시진 뒤에 천정의 전함은 작은 행성에 내려왔다.

이 행성의 이름은 작미성(雀尾星)이었는데 주작성의 부속 행성 중에 하나로 그리 크지 않은 행성이었다. 또한 영력도 매우 희박하여 수련하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행성이었다.

천정의 전함이 작미성으로 들어간 지 반각 정도 지났을 때, 석목이 나타났다.

석목은 작미성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빛으로 변하여 내려갔다.

석목은 한 시진이 넘도록 미행을 하다가 드디어 황량한 초원에서 천정의 전함들을 발견하였다.

지금 석목의 눈앞에는 천정의 전함이 다섯 척이나 있었다.

다섯 전함은 원목으로 지은 건물 하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건물의 상태를 파악해보니 천정의 전함 부대가 여기서 그리 오랫동안 머문 것 같지 않았다.

석목은 다급하게 앞으로 다가가지 않고서 조심스럽게 신식 한 줄기를 날려 천정의 전함이 모인 부지에 드리웠다.

하지만 놀랍게도 전함이 모인 부지에는 신경 존재가 없었다.

석목은 다시 고민을 하다가 몸을 번쩍이며 온몸에 감도는 기운을 완벽히 숨겼다.

그리고 빠르게 전함 부대로 향했다.

석목은 두 전함 사이의 골목을 가로질러 안쪽으로 들어갔다.

전함으로 둘러싸인 곳에 다가간 석목은 주변을 한 번 훑어보았다. 그러자 얼굴이 둥글고 키가 훤칠한 병사 한 명이 건물에서 걸어 나와 전함으로 향했다.

석목은 눈알을 굴리더니 곧바로 그 사람의 뒤를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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