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93화 (793/916)

793화. 천봉 열반

“석 맹주님, 우리 종족에게 열반봉염은 아주 중요한 물건이에요. 절대 천정의 손에 들어가서는 아니 됩니다. 어려운 부탁을 드리고 싶은데 들어주시겠습니까?”

조주명이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날아가면서 전음으로 석목에게 말했다.

“주명 장로님, 말씀하세요.”

석목이 답했다.

“열반봉염은 봉명골의 천갱과 연결된 비경에 있죠. 거기엔 비경을 지키는 대진이 있습니다. 만약 화도를 그 속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아마 놈을 죽여 버릴 수도 있을 거예요.”

조주명이 전음하여 말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될까요?”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대진은 비경의 입구에 있습니다. 우리 천봉족들이 비술로 대진을 열게요. 석 맹주님이 비경을 미끼로 화도를 천갱으로 끌어들이십시오. 그때 다시 비경을 닫고 대진을 펼치면 천갱 속에 갇힌 화도를 죽일 수 있을 테죠.”

조주명이 전음하며 말했다.

“미끼요?”

석목이 멈칫했다.

“어려운 부탁이라면 저도 강요하진 않을게요.”

조주명이 다급하게 말했다.

“어떤 위험을 마주할지 확실하게 말씀해주세요.”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석목은 그나마 화도와 겨룰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조주명도 석목을 미끼로 정했을 터였다.

“꼭 화도가 천갱에 들어가기 전에 석 맹주님은 비경에 들어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금제를 열었을 때, 화도와 함께 대진에 갇혀 위험하게 될 테죠. 이게 마주하실 위험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대진으로 화도를 죽이기 전에 저는 비경을 다시 열 수 없어요. 만약 그 사이에 비경을 열게 되면 화도가 그 틈에 비경으로 들어갈 테니까요. 그러니 석 맹주님은 화도가 죽기 전까진 계속 비경 속에 계셔야 합니다. 이게 마주하실 두 번째위험이죠.”

조주명이 전음을 보내며 말했다.

“비경에 있으면 어떤 위험한 점이 있나요?”

석목은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전음을 보내며 물었다.

“석 맹주님, 절대 열반성염에 닿아서는 아니 됩니다. 닿는 순간에 육신과 원신이 재가 되어 타버릴 거예요.”

조주명이 심각하게 말했다.

“주명 장로님, 이 열반봉염은 대체 무엇입니까?”

석목이 물었다.

“열반봉염은 우리 천봉 일족에 대대로 전해 내려온 최고의 화염이죠. 진령 천봉 열반께서 회생을 하실 때 변신한 불꽃이라고 전해져요. 그 안에는 세상에서 가장 현묘한 화염 법칙이 들어있으며 이미 영식(靈識)까지 탄생하여 매우 신묘하죠. 그러기 때문에 화도도 열반봉염을 넘보는 것이고요…… 그러니 만약 우리 종족의 족장이나 성녀가 아니라면 아마 열반봉염으로부터 반격을 당할 거예요.”

조주명이 말했다.

“네, 알겠어요.”

석목은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천봉족은 석 맹주님의 은혜를 꼭 기억하겠……”

조주명이 감격스럽게 말했다.

“큰일이군요. 화도가 쫓아왔어요.”

석목은 조주명이 하는 말을 끊어버리고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훅!

크기가 백 장에 이르는 금색 화룡이 입을 크게 벌리고는 석목 일행을 물어뜯으려 했다.

“주명 장로님, 먼저 가시죠. 저는 이곳에서 잠깐 막아내다가 곧 쫒아가겠어요.”

석목이 빠르게 말하며 몸을 멈춰 세웠다.

조주명은 이를 악물고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서 빠르게 날아갔다.

“석두.”

채아는 멈칫하며 허공에 서서 고개를 돌려 석목을 부른 뒤, 봉명골로 날아갔다.

석목은 허공에서 법결을 짚었다.

고번 세 개가 날아 나와 가마 모양으로 갈라지더니 붉은빛을 뿜어냈다.

불빛이 밝아지면서 백 장 가까이 되는 화염 원숭이가 고번에서 튀어나와 화룡을 맞이했다.

쾅!

원숭이의 커다란 주먹이 화룡의 머리를 내리쳤다.

허공에서 불빛이 흩어지더니 원숭이의 팔이 찢어져 비처럼 쏟아졌다.

금색 화룡은 용머리를 뒤로 치켜들고서 몇 장 정도 물러났다가 다시 덮쳐오며 원숭이와 맞붙었다.

석목이 법결을 짚자 현화번에서 불빛이 다시 번쩍이더니 커다란 화염 호랑이가 튀어나와 금색 화룡을 덮쳤다.

그리고 석목은 돌아서서 계속해서 봉명골로 날아갔다.

하지만 석목이 돌아서던 순간, 등 뒤에서 굉음이 울렸다.

석목이 고개를 돌려보니 화염 원숭이와 호랑이가 이미 커다란 불 칼날을 맞고서 찢어져 흩어져 버렸다.

화도가 부채를 가볍게 흔들면서 천천히 쫓아왔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두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망가진 고번 아홉 개가 날아 나와 현화번 주변을 맴돌며 새로운 진법을 이루었다.

진법이 나타나자 고번에서 흘러나오던 열기가 훨씬 강력해졌다. 그리고 아직 화염이 타오르지는 않았지만 뜨거운 열기 때문에 주변에서 수증기가 흘러나왔다.

“질(疾)!”

석목이 가볍게 소리를 내며 법결을 바꾸었다.

열두 고번에서 동시에 빛이 밝아졌다. 그리고 세 현화번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열기와 아홉 부번이 연결되자 찢어졌던 부번들이 마치 온전해지는 것 같았다.

아홉 부번에서 불빛이 폭발했고, 둥그런 영력 파동이 나타났다. 그러자 화룡이 파동 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잠시 후에 길이가 오십여 장이나 되는 화룡 아홉 마리가 아홉 부번에서 날아 나와 뾰족한 이를 드러내고는 화도에게로 향했다.

아홉 화룡은 석목이 비경 시험 속에서 봤던 화룡들과 모습이 똑같았지만 위력은 많이 줄어들었다.

훅!

아홉 화룡들이 입을 크게 벌리자 굵직한 화염이 동시에 뿜어져 나와 뜨거운 불바다를 이루었다. 그리고 불바다에서 크기가 십 장에 이르는 파도가 휘몰아치며 화도를 덮쳤다.

석목은 곧바로 열두 고번을 거두어들이고는 몸을 날렸다.

* * *

석목은 산골짜기를 지나 골짜기의 가장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거기서 조주명 일행은 이미 석목을 기다리고 있었다.

“석두!”

석목이 날아오자 채아가 좋아서 소리를 질렀다.

“주명 장로님, 준비 다 되셨나요?”

석목이 내려오며 물었다.

“이미 준비를 마쳤습니다. 보세요.”

조주명이 천갱을 가리키며 말했다.

석목은 몸을 굽혀 조주명이 가리키는 곳을 내려다보았다. 천갱의 밑 부분은 이미 돌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헌데 천갱의 암벽에는 기이한 화염 그림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고작 구룡화진으로 날 막겠다고?”

이때, 화도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려 퍼졌다.

물론 화룡이 완전히 막아낼 것이라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빨리 물리치고 쫓아올 줄은 몰라서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조주명은 몹시 긴장이 되었다.

“지금이에요.”

조주명이 전음으로 석목에게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석 맹주님, 이 열반봉염을 맹주님께 부탁하겠습니다. 절대 천정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돼요.”

조주명이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법결을 짚으며 어려운 주문을 외우자 손가락 끝에서 화염이 날아 나와 천갱 속으로 들어갔다.

화염이 암벽의 그림에 스며들자 암벽에 새겨진 화염 그림이 타오르면서 천갱에 화염 광막이 펼쳐졌다.

광막이 나타나자 화도는 얼굴에 탐욕스러운 빛을 보이며 아래로 날아갔다.

석목은 고개를 들어 화도를 한 번 바라보고는 몸을 날려 화도보다 빠르게 광막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광막에 닿기 직전에 석목은 검은빛을 드리우며 쫓아오는 화도를 맞이했다.

“꺼져!”

화도는 비경이 눈앞에 나타나자 소리를 질렀다.

화도의 손에서 불빛이 번쩍이더니 검은빛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검은빛은 화도의 앞에 다가온 순간, 천갱에서 날아 나가더니 화도를 막아서지 않았다.

검은빛이 반짝이며 채아의 옆에 나타났는데 그 빛은 마기를 감싸고 있던 석목의 분신이었다.

화도는 허공을 내리치고는 다시 천갱으로 날아갔다.

화도가 이제 막 화염 광막으로 들어가려할 때, 조주명의 눈에서 기이한 빛이 스쳤다.

이때, 광막이 ‘훅!’ 사라져버렸다.

펑!

화도가 천갱 속으로 빠져버리자 돌들이 부서져 먼지가 흩날렸다.

“죽어라!”

눈 앞에서 비경이 사라지자 화도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곧바로 돌아서서 두 눈에 화염을 뿜으며 조주명을 향해 날아갔다.

조주명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법결을 바꿨다. 그러자 천갱 아래에서 ‘우르릉!’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후에 아홉 갈래 붉은 빛기둥이 돌 더미에서 뿜어져 나와 붉은 광막을 펼치며 천갱을 봉쇄해버렸다.

펑!

화도의 몸이 붉은 광막에 부딪쳐 튕겨져 날아가더니 다시 웅덩이 속에 떨어졌다.

“화도 어르신!”

조극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이때, 아홉 갈래 붉은 빛기둥에서 부문들이 줄줄이 나타나며 막강한 화염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유화살진(流火殺陣)!”

화도가 눈썹을 치켜뜨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홉 갈래 빛기둥에서 화염이 용솟음치더니 나뭇잎 같은 화염 칼날이 자라나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다.

훅!

마치 바람이 숲속을 가르듯 나뭇잎이 흔들렸고 이어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후후후……”

바람 소리가 커질수록 붉은 기둥을 감싼 화염 칼날이 더욱 빠르게 맴돌았고, 불길도 점점 커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커다란 화염 바퀴로 변하여 화도를 안쪽에 묶어버렸다.

화도가 입으로 중얼거리며 몸에 나던 빛을 크게 부풀렸다. 그러자 둥그런 화염 영역과 붉은 광막이 펼쳐지면서 주변을 잘라내던 화염 칼날을 막아냈다.

지익! 지익!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화염 칼날이 화도의 영역을 잘라내면서 눈부신 불꽃이 튀었다.

이때, 조극이 옆에 있던 금색 옷을 입은 여인에게 눈치를 주었다.

금색 옷을 입은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은색 나침반 법보를 들고는 천갱 위로 날아갔다.

조극은 은색 장극을 꺼내 들고는 조주명 일행을 습격했다.

탱!

붉은빛이 반짝이더니 넓직한 붉은 장검이 옆에서 날아 나와 조극의 장극을 내리쳤다.

검을 휘두른 자는 검은 마기를 감고 있던 석목의 분신이었다.

분신은 붉은 단검에 빛을 드리우며 조극을 몇 장 뒤로 밀어버렸다.

조극이 차갑게 웃더니 다시 창끝을 돌려 분신과 격전을 펼쳤다.

“파렴치한 배신자. 죽어!”

백비는 눈에서 불빛이 번지더니 깜짝 놀라 다급하게 피했다.

조주명이 온몸에 화염을 감고서 살기가득하게 백비를 덮쳤다.

천봉족들은 전부 원한이 가득 맺힌 눈으로 백비를 공격했다.

백비는 이들이 자신들의 족장을 위해 복수를 한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매우 찜찜해져 빠르게 도망갔다.

“둘째 장로님, 더 이상 물러날 길이 없어요.”

이때, 백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홍은 이미 원숭이로 변신하여 천봉족들과 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자 백비가 결연한 기색을 내비치더니 백홍과 함께 천봉족들을 공격했다.

채아는 남아있는 천봉족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천갱으로 날아가는 금색 그림자를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너희는 날 따라와. 화도가 다시 나오면 모든 게 물거품으로 돌아갈 거야!”

채아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오르자 신경 기운이 흘러나왔고, 입으로 푸른 화운을 뿜더니 금색 피풍의를 두른 여인에게로 날아갔다.

그러자 남아 있는 천봉족들도 전부 소리를 지르며 채아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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