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94화 (794/916)

794화. 열반 대물림

석목은 화염 광막에서 나온 후, 천갱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석목은 어두운 가운데 한참을 날아 내려가서야 두 발이 바닥에 닿았다.

석목은 지금 칠흑같이 어둡고 끝이 없는 공간에 놓여 주변을 훑어보았다.

‘여기가 천봉 일족의 비경인가? 이렇게 어둡고 허무하다니.’

석목이 한창 의아히 여길 때, 수백 장 떨어진 곳에서 붉은빛이 반짝였다.

빛 속에는 높이가 백 장에 이르는 커다란 불타는 오동나무가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나무에서는 순수한 화염의 기운이 흘러나와 석목은 자신도 모르게 불타는 오동나무로 걸어갔다.

가까이에 와서보니 먼 곳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큰 오동나무였다.

불타는 오동나무는 열 사람이 팔을 펼쳐서 둘러싸야할 정도로 굵었고, 그 자태가 하늘 높이 우뚝 솟아있었는데 위쪽으로 수천, 수만 갈래 가지들이 촘촘하게 자라나 있었다.

바람은 한 점도 불지 않았지만 불타는 오동나무는 천천히 규칙적으로 흔들려 마치 나무가 호흡하는 것 같았다.

열기가 층층이 뒤덮인 불타는 오동나무 잎은 뜨거울 정도로 찬란한 불바다를 이루었다.

석목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불바다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취해있었다.

“누가 우리 천봉 일족의 성지에 들어왔는가?”

이때,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서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나뭇 가지에서 금색 화염 한 덩어리가 밝게 빛났다.

봉황 모양 화염이 마치 석목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석목입니다.”

석목이 공손하게 답했다.

무엇 때문인지 석목은 화염 봉황을 바라보는 순간 ‘고귀함’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공손하게 자세를 낮추었다.

“우리 천봉 일족의 후손이 아닌데, 어째서 이곳에 왔는가?”

화염 봉황이 담담하게 물었다,

“천봉 일족이 천정에게 침입을 당했습니다. 조윤 족장이 죽어버렸고, 성녀도 실종되었죠. 천봉족들은 사상자마저 파악할 수 없을 지경에 처했습니다. 또한 천정의 선장인 화도가 열반봉염을 빼앗으려 하고 있죠. 저는 화도를 막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석목이 사실대로 말했다.

“조윤은 자질에 한계가 있어서 내 열반을 대물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성녀인 종수가 신경에 오른다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천봉 일족이 봉변을 당했다니.”

화염 봉황이 한탄하듯 말했다.

“선배님은 천봉 일족입니까?”

석목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나는 천봉 일족의 조령이란다. 이곳에서 천봉 일족의 고수(古樹)를 지켜야하기 때문에 비경을 떠날 수 없구나.”

화염 봉황이 답했다.

“천봉 일족이 위기에 처해있어 후배가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혹시……”

석목이 침묵을 한 후에 말했다.

“우리 천봉 일족의 힘을 대물림 받겠다고? 네 그런 파렴치한 망상은 논할 가치도 없지만 천봉 일족의 직계 혈맥도 없이 강제로 열반봉염을 물려받는다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짓이나 다름이 없단다.”

석목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화염 봉황이 하는 말을 끊어버렸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얼굴에 실망하는 기색이 스쳤다.

“음…… 네 몸속에는 미천거원의 직계 혈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천봉 일족의 직계 혈맥도 있군?”

화염 봉황은 석목이 혈맥을 두 가지나 지니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는 놀란 듯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손을 굽히며 말했다.

“선배님, 천봉 일족의 성녀인 종수는 제 아내입니다. 아마 그런 연유로 제 몸에 천봉족 혈맥이 생겼을 테죠.”

화염 봉황은 그 말을 듣더니 오동나무에서 일어서서는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몸이 갑자기 굳어져 버렸고, 머리가 뜨거워져 아플 지경이었다.

이런 통증은 한참이 지나서야 가라앉았다.

“우리 종족의 성녀와 이렇게 깊은 인연을 맺었다니…… 그래, 그렇다면 외족은 아니구나. 내게 열반 대물림을 받을 수 있겠다.”

화염 봉황이 말했다.

석목은 흠칫 놀라더니 곧바로 기분이 좋아졌다.

석목은 조령이 갑작스레 수혼을 하여 놀랐으나 또 조령이 대물림을 허락하여 기뻤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석목이 손을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열반봉염은 평범한 불꽃이 아니다. 원래는 순수한 천봉 혈맥을 지닌 성녀가 가장 적합했지. 네 몸속에는 천봉 혈맥이 매우 적어 대물림을 받는 과정이 험난할 것이며 쉽게 실패할 수도 있을 게다. 만약 실패하게 되면 너는 나락에 빠질 텐데, 그런데도 시도해보겠느냐?”

화염 봉황이 물었다.

“물론이죠.”

석목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서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화염 봉황은 눈에 빛을 반짝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날개를 펼쳐 불타는 오동나무에서 하늘로 날아갔다.

화염 봉황이 날개를 펄럭이자 별빛처럼 반짝이는 불꽃이 날개에서 뿜어져 나와 불타는 오동나무로 쏟아졌다.

그러자 불타는 오동나무의 뿌리 깊숙한 곳에서 붉은빛이 밝아지더니 온 나뭇가지가 환해졌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나뭇잎들과 줄기가 투명한 빛을 반짝였다.

불타는 오동나무가 화려한 빛으로 휘감기자 너무 아름다워져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석목은 벅찬 마음을 억누르며 불타는 오동나무를 모두 보려고 뒤로 조금씩 걸어갔다. 그렇게 석목은 백 장 가까이 물러났다.

이때, 화염 봉황이 갑자기 울부짖더니 날개를 활짝 펼쳐서는 검은 공간을 붉게 물들였다.

그리고 커다란 금색 날개를 힘껏 펄럭였다.

순간, 바람이 불며 불타는 오동나무가 사시나무 떨듯이 흔들렸다.

화라락!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가 한참 동안 울려 퍼졌다.

무수히 많은 나뭇잎에서 금빛이 흘러 다녔으며 빛은 나뭇가지를 타고 석목의 머리 위로 줄줄이 날아갔다가 그대로 쏟아졌다.

붉은 나뭇잎이 흩날리자 바닥에 얼룩덜룩한 붉은 그림자가 드리웠는데 그 광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석목은 갑자기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때, 첫 번째 나뭇잎이 떨어지면서 금색 화염이 타올랐다.

훅!

이어서 두 번째 덩어리, 세 번째 덩어리……

석목의 주변 수백 장 안쪽은 순식간에 금색 화염으로 들끓어 불바다를 이루었다.

석목은 뜨거운 기운이 휘몰아치는 충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불바다 속에 떠다니는 촘촘한 화염 부문들을 본 석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과연 화염이 머금고 있는 법칙의 힘은 엄청나게 강력하고도 현묘했다.

석목이 곧바로 빛을 날려 현화번 세 개를 꺼내자 현화번이 석목의 주위에서 천천히 맴돌았다.

석목이 법결을 짚자 현화번에서 빛이 밝아지더니 주변에서 들끓던 화염들이 순식간에 얽히고설키면서 현화 공간을 이뤄 금색 불바다를 막았다.

현화 공간에 들어간 석목은 안색이 다소 누그러졌고, 견딜 수 없이 뜨겁던 느낌도 조금 덜어졌다.

그러나 잠시 후에 석목은 현화 공간의 외곽이 불안해져 다시 눈썹을 치켜떴다.

현화 공간과 주변을 감싼 금색 불바다는 똑같이 화염으로 이루어졌지만 둘은 어울리지 못했고, 오히려 서로 충격을 주었기에 물과 불이 한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석목은 숨을 돌리지도 못했는데 현화 공간이 흩어지려는 기미를 보였다.

금색 불바다는 석목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석목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두 손으로 법결을 짚었다. 그러자 현화번이 빠르게 돌아가며 뜨거운 화염이 밀려나와 붉은빛으로 변하더니 다시 금색 불바다를 막아냈다.

“불완전한 영역이지만, 꽤 모양새를 갖추었군.”

화염 봉황은 불타는 오동나무에 서서 석목을 내려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물론 석목은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아 미간을 찌푸린 채 온힘을 다해 영역을 다스리고 있었다.

이제야 석목은 진정으로 열반봉염이 감춘 위험을 맛보게 된 것이었다.

만약 석목이 일군 영역이 터져버리게 된다면 막강한 육신으로도 이 화염 속에서 세 시진을 버티지 못할 터였다.

목숨을 지킬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열반봉염을 제대로 물려받을 수 있는가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였다.

석목은 자칫 잘못하면 봉염이 영역 속으로 침입할 것 같아 조금도 긴장을 놓지 못했다.

영역이 안정되자 석목의 저장 반지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석목이 저장 반지를 꺼내자 붉은 깃발 아홉 개가 춤을 추며 날아 나와 주변에 떨어졌다.

아홉 깃발이 전부 바닥에 떨어지자 깃발에서 붉은빛이 번지면서 천천히 움직이던 현화번 세 개와 서로 호응을 하는 것 같았다

훅!

영역 밖을 둘러싼 금색 불바다는 마치 어떤 느낌이라도 받은 듯, 미친 듯이 용솟음치며 맹렬하게 붉은 광막을 덮쳤다.

석목은 금색 불바다가 고번의 영향을 받아 더 맹렬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석목은 호천현화번을 복구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얼굴에 망설이는 기색을 내비쳤다.

잠시 후에 석목은 고개를 들고는 눈에 빛을 반짝이며 붉은 광막을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영역 때문에 다가오지 못했던 화염이 고삐 풀린 말처럼 미친 듯이 석목에게로 몰려왔다.

고리 모양 불바다는 점점 줄어들었고, 석목의 아홉 부번은 단번에 화염에 삼켜질 것만 같았다.

이때, 낡은 고번 아홉 개에서 나던 빛이 더 밝아지며 망가진 부분들이 훨씬 환해졌다.

흉흉하게 몰려오던 금색 불바다는 곧바로 아홉 갈래 굵은 강이 되어 갈라져서 위아래로 들끓으며 끊임없이 아홉 고번으로 빨려 들어갔다.

고번들은 마치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것만 같았고, 불로 이루어진 용솟음치는 강을 전부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금색 화염 강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올수록 고번은 점점 밝아졌고, 파손된 부분들도 눈에 띄는 속도로 복구되었다. 또한 복구가 되는 속도는 호천현화번이 복구될 때보다 훨씬 빠른 것 같았다.

“음, 열반봉염을 빨아들여 파손된 부위들을 복구하다니. 대단한 영보군.”

화염 봉황도 놀란 것 같았다.

석목은 속으로 기쁨이 차올라 현화번 세 개도 꺼냈다.

하지만 현화번은 금색 불바다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현화번은 화려한 빛도 내지 않는데다가 기운 파동도 일지 않았고, 열반봉염을 삼키지도 않았다.

하지만 석목은 크게 놀라지 않았는데 사실 현화번은 이미 복구가 되었기에 화염을 더 빨아들일 리 없었다.

* * *

반각 후.

아홉 부번은 거의 다 복구된 것 같았다. 하지만 몰려오는 화염 강의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끊임없이 고번들로 화력을 불어넣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아홉 갈래 화염 강은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계속 화염이 흘러들어오다가는 부번들이 화염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여 도리어 망가질 터였다.

석목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손으로 법결을 짚은 후에 아홉 부번들을 거두어들이려 했다.

하지만 부번들은 화염 강 때문에 통제를 받는 듯이 땅에 박혀버려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석목은 초조해져 법결을 계속 바꾸었다.

석목은 붉은 광막을 펼쳐 아홉 부번들을 감싸려했지만 광막이 부번 근처에 다가간 순간, 더는 불어나지 못해 아홉 부번들을 감싸지 못했다.

석목은 영역으로 화염을 차단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때문에 석목은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눈썹을 치켜떴다.

잠시 후에 석목은 붉은 전집인 현화비록을 꺼내들었다.

현화비록을 대충 훑어본 적은 있었지만 아직 수련하지는 못했다.

석목은 화염 원신의 현묘한 법문을 수련하기 위해 이 서책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자세히 한 번 읽어본 후에 석목은 다시 비록을 거두어들였다.

이 법문은 열두 현화번으로 대진을 펼치는 것이었는데 성화 속에 깃든 힘을 뽑아내어 육신을 강화하는 동시에 수련자의 원신이 부여한 속성의 힘도 수련하여 강화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진법이었다.

석목은 아홉 부번들이 파손되는 걸 원하지 않아 이 법문을 수련하여 부번에 넘치는 불의 힘을 전부 자신의 몸속으로 흡수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세 현화번이 날아 나와 석목의 앞과 양쪽에 떨어졌다. 그리고 아홉 부번과 천지방원삼재(天地方圓三才)의 진법을 이루었다.

그리고 법결을 날리면서 입으로 현묘한 주문을 외웠다.

빛 몇 갈래가 석목의 몸에서 날아 나와 현화번 세 개를 뚫더니 계속해서 아홉 부번들과 이어졌다.

부번들에서 빛이 밝아지면서 모여들었던 힘이 임계점에 도달했다.

석목이 빛을 연결하자 아홉 부번들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마치 빛을 쏟아낼 구멍이라도 찾은 듯이 세차게 뿜어져 나와 석목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아악……”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힘이 몰려오는 순간, 석목은 온몸의 근맥이 늘어나고 혈액이 순식간에 들끓는 느낌을 받아 참지 못한 채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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