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5화. 탈변
석목은 몸에 옅은 금색이 한 층 뒤덮이자 끊임없이 부번에서 흘러들어오는 힘을 빨아들였다.
열반봉염은 극도로 순수한 힘이라 순식간에 석목의 몸 속에 흐르는 천봉 혈맥에 불을 지폈다.
순식간에 혈맥 속에 흐르는 피가 금색으로 물들어 끊임없이 들끓기 시작했다.
석목은 피부가 투명해진 듯, 혈관이 그대로 드러났고, 핏줄은 마치 금색 선처럼 온몸으로 퍼졌다.
석목은 뜨거운 화염이 몸에서 타오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고, 혈관 속에서 흐르는 게 혈액이 아니라 화염인 것만 같았다.
화염은 혈관을 타고서 몸 곳곳으로 퍼져갔다.
석목의 가슴에 붉은색 가마가 나타나자 가마 속에서도 금색 화염이 들끓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마는 석목의 피부를 뚫고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석목은 이를 악물고 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 주먹을 꽉 쥐고는 끊임없이 바닥을 내리쳐 어떻게든 고통을 덜어내고 싶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몸 곳곳에 낙인이 찍혀 뜨겁게 타들어가는 고통은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훅!
이때, 석목의 몸에서 맴돌던 금빛이 활활 타오르며 불바다보다 더욱 뜨거운 화염으로 변하더니 몸을 감쌌다.
석목이 화염 속에서 고개를 번쩍 들었는데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눈에서도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석목은 지금 화령(火靈)으로 변했다.
“하……”
석목은 머릿속이 맑아졌다. 그리고 종수가 천봉 진혈을 각성했을 때 보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석목은 극심한 고통을 억누르며 자리에 앉아 법결을 짚으면서 현화비록에 적힌 법문 구결을 외웠다.
불바다는 끊임없이 용솟음을 쳐 열반봉염을 모아 석목을 뜨겁게 달구었다.
석목의 모습은 불빛 속에서 일그러지며 점점 희미해졌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으나 금색 불바다에서 나던 빛은 점점 줄어들었고, 색깔이 점점 짙어져 붉은색으로 변하였다.
붉은 불바다는 한참 동안 들끓다가 조금씩 흩어져 손바닥만한 불씨로 변하더니 커다란 불타는 오동나무로 날아갔다.
나무에 떨어진 불씨는 다시 붉은빛이 되어 흩어지며 나뭇잎으로 변하였다.
화염 봉황은 나무로 올라가 두 눈에 빛을 뿜으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불바다가 사라진 텅텅 빈 땅에선 현화번 열두 개가 빛을 반짝였고, 석목은 고번들에 앉아 두 눈을 감고는 몸에서 옅은 금빛을 뿜어냈다.
석목의 옆에는 하얀빛이 한 덩어리 놓여있었는데 구슬처럼 차갑고 화려한 빛을 뿜는 자리 옆으로 얇은 금색 화염이 맴돌고 있었다.
이때, 구슬 같은 하얀빛이 갑자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구슬 주변을 맴돌고 있던 금색 화염에서도 빛이 줄줄이 흘러나와 얽히고설키며 작은 사람의 혈맥도를 이루었다.
이어서 하얀 빛 덩어리 속에서 눈부신 빛이 흘러나와 혈맥도를 빛으로 뒤덮었다.
잠시 후 열두 고번에서 몸집이 약 세 뼘 정도 되는 작은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이목구비가 매우 아담했고, 석목과 똑같이 생긴 본명 원신이었다.
작은 사람은 석목의 머리 위에서 한참 떠 있다가 석목의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게 마치 그를 훑어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잠시 후에 원신은 다시 석목의 정수리로 날아가 반짝이며 그의 의식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이어서 석목이 천천히 두 눈을 뜨자 눈에서 금빛이 반짝였다.
석목이 입고 있는 복식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풍기는 기운은 완전히 달라졌다.
석목은 주먹을 꽉 쥐고는 몸속에 흐르는 막강한 힘을 느끼며 흥분한 기색을 내비쳤다.
“네 의지는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구나. 열반봉염을 견뎌냈을 뿐만 아니라 수련 경지도 신경 중기에 도달했구나. 축하한다.”
말을 하고 있는 화염 봉황 조령은 금색 화염이 흩어지더니 몸이 빠르게 옅어졌다.
“선배님……”
석목은 조령의 모습을 바라보자 안색이 굳었다.
“내게는 시간이 얼마 없단다. 그래도 떠나기 전에 대물림을 해줄 사람을 찾아서 다행이구나.”
화봉 조령이 계속해서 말했다.
“선배님이 도와주셔서 순조롭게 신경 중기에 도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혹시 이루지 못한 소원이 있으시다면 후배가 최선을 다해 이뤄드리겠습니다.”
석목이 허리 굽혀 인사를 하며 말했다.
“누군가 열반봉염을 계승했으니 내 소원은 이루었단다. 다만 걱정되는 일이 있다면 천봉 일족이 어찌 될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구나.”
화봉 조령이 말했다.
“선배님, 걱정 마십시오. 후배가 최선을 다해 천봉 일족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그래.”
화봉 조령은 가볍게 대답을 하고는 사라져버렸다.
석목은 깊은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라 바깥 상황을 먼저 파악해야 할 때였다.
석목은 붉은빛으로 변하여 비경 입구로 날아갔다.
* * *
이 시각, 봉명골에서는 격전이 계속되고 있어 굉음이 수 리 밖까지 울려 퍼지며 대지가 격하게 흔들렸다.
허공에서 네 갈래 그림자가 날아다니며 다양한 빛깔을 내뿜어 하늘은 각양각색으로 물들어있었다.
네 그림자는 조극과 백비, 그리고 석목의 분신과 채아였다.
전투를 치르는 형세는 처음과 많이 달라졌다,
조극은 여전히 석목의 분신과 싸우고 있었지만 백비는 채아와 싸우고 있었다.
조주명은 유화살진 앞에 서서 심각한 얼굴로 두 손을 흔들며 법결을 날려 대진을 조종했다.
천봉족 열 몇 명은 가까운 곳에 자리한 허공에서 몸에 빛을 드리우며 화염 대진을 이뤄 금색 옷을 입은 여인과 백홍을 가둬두었다.
둘은 화염 대진 속에서 맹렬한 공격을 날렸다. 하지만 천봉족이 펼친 화염 대진은 매우 현묘하여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낼 뿐만 아니라 절대 두 사람이 빠져 나오지 못도록 가둬두었다.
유화살진은 이미 완전히 펼쳐져서 아홉 갈래 붉은 빛기둥이 부적들로 뒤덮여 법칙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유화살진 속에서 타오르는 백여 갈래 붉은 화염 회오리는 하늘과 땅을 잇고 있었다.
화염 회오리에도 무수히 많은 부문들이 튕겨져 나와 비록 진법의 광막이 회오리를 막고 있었지만 밖에서도 그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화염 회오리가 타오르는 위치가 고정되어 있지 않아 마치 광폭한 구렁이처럼 여기저기에 부딪쳐 스치는 자리마다 허공을 태워버릴 정도였다.
유화살진 안쪽은 화염이 들끓고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주명은 잔뜩 긴장을 한 채 유화살진의 가운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유화살진 가운데에서 금빛 구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빛나는 구체에는 금색 부문들이 날아다녀 은은하게 광막을 이루며 구체 안쪽을 보호했다.
금색 부문으로 이뤄진 광막은 화염 회오리들을 전부 막아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흥!”
조주명이 유화살진 속으로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유화살진 속에 우뚝 선 붉은 빛기둥 아홉 개가 한참 동안 번쩍이더니 살진 속에서 타오르는 화염을 모아 화염검 네 자루를 만들었고 막강한 기운을 풍겼다.
조주명이 주문을 외우며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화염검 네 자루가 우르르 주변을 베며 끝없는 위력을 이끌고서 금빛 구체를 내리쳤다.
금빛 구체를 감싸던 부문들은 한참 동안 흔들리다가 이내 찢어졌다.
화염검들은 계속해서 날아가며 빛나는 구체를 강하게 내리쳤다.
쾅!
굉음이 울려 퍼지니 산골짜기마저 흔들렸다.
네 자루 화염검은 단 한 번 공격을 날리자 부서져버렸다.
그러자 금빛 구체도 겉에 균열이 나타나더니 ‘펑!’ 소리와 함께 터져버렸다.
화도가 그 빛나는 구체 속에서 날아 나왔다.
조주명은 얼굴에 기쁜 기색이 스쳤다가 이내 등등한 살기를 내비치더니 입으로 주문을 외우며 두 손을 끊임없이 휘둘렀다.
그러자 유화살진 속에서 타오르던 화염이 들끓으며 화염검들을 줄줄이 뽑아내 순식간에 작은 검들 수 백 자루로 갈라 검진을 형성하였다.
화염검에서 흘러나온 날카로운 검의 기운들이 유화살진을 가득 채웠다.
“죽어라!”
조주명이 낮게 소리를 지르며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수백 자루 화염검들이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우르르 쏟아져 놀라운 기세로 화도를 공격했다.
그러나 화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입으로 주문을 외워 금색 화염 영역을 펼쳤다.
우르릉!
검들이 화염 영역에 쏟아지자 떨어질 때마다 영역이 격하게 흔들렸다.
한데 금색 영역은 비록 심하게 흔들리긴 했으나 부서질 기미는 보이지 않아 조주명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때, 화도가 영역에 서서 입을 크게 벌리고는 금색 구슬 세 알을 뿜어냈다.
화도가 손가락으로 앞을 짚자 구슬들은 점점 불어나더니 순식간에 맷돌만한 크기로 변하였다.
화도가 계속해서 법결을 짚으니 등 뒤에서 금빛이 반짝이면서 커다란 새의 환영이 나타났다. 그 환영은 신수인 봉황처럼 생긴 새였는데 봉황보다는 덜 신비로웠다.
금색 새가 입을 크게 벌리고는 구슬로 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구슬이 윙윙 소리를 내며 수많은 부문들을 뿜어내며 빙글빙글 돌리더니 족히 수백 개나 되는 둥근 못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못들은 찬란하고 투명한 빛과 막강한 법칙의 기운을 풍겼다. 하지만 그 기운은 오행의 법칙이 아니라 매우 기이하게 녹여버리는 힘이었다.
“부선정(腐仙釘)!”
조주명이 깜짝 놀라며 다른 술수를 쓰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화도가 손가락으로 앞을 짚자 수백 갈래 둥근 못이 촘촘하게 날아와 빠르게 불어나더니 크기가 한 장 정도 되는 커다란 못으로 변해 유화살진에 선 빛기둥 하나로 향했다.
칙! 칙!
금색 못 수백 갈래가 전부 빛기둥에 박혀버렸다.
못에서 뿜어 나온 빛은 빠르게 빛기둥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러자 빛기둥이 순식간에 금색으로 변하더니 터져버려 유화살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조주명은 얼굴이 얼어붙은 채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열 손가락을 바퀴 모양으로 맞잡은 후에 흔들었다.
휙!
구멍 근처에서 비치던 붉은빛들이 뚫린 구멍으로 퍼져갔다.
하지만 구멍이 막힌 순간, 빛 한 갈래가 구멍 속에서 날아 나와 조주명의 근처에 나타났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자 그윽한 눈길로 조주명을 바라보는 화도가 나타났다.
조주명은 눈에 절망을 하는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조주명은 도망가지 않고서 등 뒤에 붉은 봉황 환영을 만들어 냈는데 그 환영은 활활 불타올랐다.
조주명이 재빠르게 손가락으로 앞을 짚었다.
그러자 봉황 환영이 곧바로 날아 나와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흉흉하게 화도를 덮쳤다.
봉황이 입을 크게 벌리자 삼엄한 이빨들이 가득 튀어나왔다. 그리고 뜨거운 기운을 되감고는 붉은 화염을 뿜어내 화도를 공격했고, 화염을 뿜어낸 봉황 환영은 입을 크게 벌리고는 곧장 화도를 삼키려고 했다.
그러자 화도가 경멸스럽게 코웃음을 치며 두 손을 받쳐 들었다.
칙!
화도의 손바닥에서 금색 화염이 나타나더니 곧 팔뚝만한 화염 구렁이로 변하여 봉황 환영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봉황 환영은 몸통이 순식간에 불어나 ‘펑!’ 소리와 함께 터져버렸다.
조주명이 경악하며 또 무엇인가를 시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때, 조주명의 앞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구렁이가 빠르게 날아와 단번에 그의 몸통을 뚫어버렸다.
조주명은 뒤로 튕겨져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조주명의 복부와 가슴에는 까맣게 타버린 구멍이 두 개가 나타났고, 그는 입으로 피를 뿜어냈다. 조주명은 그대로 땅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져 버렸는데 도저히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