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99화 (799/916)

799화. 소홀하다

채아의 실력은 조극보다 훨씬 약해 절제하지 않고 요화를 뿜어내서 막다보니 몸속에 깃든 요화가 빠르게 소진되어 곧바로 채아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꺼져라!”

조극이 장극을 가로로 휘두르며 채아를 날려버렸다.

그리고 꽃 진법으로 날아가 전극에 은빛, 하얀빛, 붉은빛을 뿜어내며 백 장 가까이 되는 삼색 전극 허상을 만들었는데 그 허상은 마치 하늘을 가르는 거대한 칼날 같았다.

조극이 손을 힘껏 휘두르자 삼색 칼날이 묵직하게 꽃 진법을 내리쳤다.

쩍!

꽃 진법이 드디어 터져버리자 조주명이 피를 뿜으며 나타나 기운이 빠르게 쇠퇴했다.

조극은 조주명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주변을 둘러보면서 석목을 찾았다.

하지만 석목은 마치 증발해버린 듯이 어디에도 없었다.

“찾지 마. 여기 있으니.”

담담한 목소리가 조극의 등 뒤에서 흘러나왔다.

조극이 깜짝 놀라 번개 같은 속도로 돌아섰다.

하지만 반쯤 돌았을 때, 가슴에 통증이 밀려오더니 손바닥 하나가 조극의 가슴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손에는 붉은 피가 묻어있었고, 손 위에서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다.

석목은 조극의 옆에 바싹 붙어서는 싸늘한 눈빛을 내비치며 심장을 터뜨려버렸다.

이때, 조극의 허리춤에서 하얀 옥부가 ‘퍽!’ 소리를 내더니 조극의 몸이 빛이 되어 흩날렸다.

“분신옥부!”

석목이 눈살을 찌푸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백 장 밖 허공에서 빛이 번쩍이자 조극이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허나 조극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질려있었고, 이마는 땀범벅이 되어 겁에 질린 눈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서 붉은 새 모양 법보를 꺼내들고는 붉은빛으로 변한 조극은 저 멀리 날아갔다. 그렇게 조극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백 장 밖으로 날아갔는데 도망을 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어딜 도망가!”

석목이 차갑게 웃으며 흑백 날개를 펼치고는 조극을 쫓아갔다.

쫓아가기 전에 석목은 열반봉염을 화염창으로 바꿔서 앞으로 날렸다.

금색 화염창은 속도가 매우 빨라 번쩍이는 사이에 백비의 등 뒤에 나타났다.

백비는 이제 막 도망을 가려다가 등 뒤에서 뜨거운 기운을 느끼고는 얼굴이 굳어버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린 채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금색 화염창이 백비의 복부에 자리한 영해를 뚫고서 그를 땅에 박아놓았다.

“채아, 여기는 네게 맡길게.”

석목이 흑백 환영으로 변하여 조극을 쫓아갔다.

“걱정 마!”

채아가 날개를 펄럭이며 금색 옷을 입은 여신장과 백홍의 앞에 나타났다.

조주명은 단약을 삼키고 나서야 안색이 조금 돌아왔다. 그리고 몸을 날려 금색 옷을 입은 여인과 백홍의 뒤에 나타나 채아와 함께 두 사람을 막았다.

금색 옷을 입은 여인과 백홍은 얼굴에 절망스런 기색이 스쳤다.

백비는 영해가 뚫려버려 땅에 쓰러져 있었고, 입으로 피를 흘리는 걸 보니 이미 죽은 것 같았다.

백비의 눈에서 생기가 점점 줄어들었으나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눈에는 끝없는 원망이 가득 차 있었다.

금색 화염창이 터지면서 무수히 많은 금색 화염으로 변해 백비를 감쌌다. 그리고 백비의 몸을 활활 태워버려 신혼마저 도망을 치지 못했다.

* * *

산골짜기와 수 천리 떨어진 곳에서 두 갈래 빛이 하늘을 스쳐 지나갔다.

앞에서 날아가는 것을 붉은빛이었으며 뒤에서 쫓아가는 건 흑백 빛이었다.

둘은 속도가 매우 빨랐고, 속도가 거의 비슷했다.

석목이 눈살을 찌푸리며 의외라는 기색을 내비쳤다.

석목의 수련 경지는 조극보다 한 단계 높았고, 또 흑백 날개 비술을 시전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극과 속도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조극이 꺼낸 비조장사(飛鳥長梭)는 매우 대단한 비행 법보였다.

석목은 이제야 조금 진기를 회복했지만 이렇게 꾸물거리다가는 정말 조극이 도망가고 말 터였다.

‘아니, 이놈은 꼭 해치워야해. 그렇지 않으면 후환만 남길 거야!’

석목은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핏빛이 석목의 가슴에서 나타나 빠르게 온몸으로 퍼졌다.

훅!

석목의 몸에서 화염이 타올랐고, 등 뒤에 펼친 흑백 날개에도 빛이 번졌다. 그러자 석목이 날아가는 속도는 훨씬 빨라져 단 몇 번 호흡을 하는 동안 조극을 따라잡았다.

이건 <천화신체공> 속에 적힌 혈해의 힘을 촉발하는 비술이었다. 이 비술을 시전하면 순식간에 몸속에 깃든 잠재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나 다만 그 대가로 적잖은 정혈을 태워야만 했다.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천천히 회복을 하는 기간을 거쳐야만 했다.

“이제 너는 죽어야겠다!”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손을 휘둘렀다.

쾅!

열반봉염이 뿜어져 나와 허공에서 커다란 금색 손바닥으로 변하더니 조극을 내리쳤다.

조극은 금색 손바닥이 막강하게 짓누르는 힘을 느끼며 두 손을 앞으로 교차시켰다. 그러자 조극의 몸에서 일곱 가지 흑, 백, 적, 금, 청, 황, 남색 빛이 동시에 나타나 빠르게 뒤섞이더니 이내 거대한 일곱 빛깔 손바닥으로 변하여 금색 손을 맞이했다.

쾅!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일곱 빛깔 손은 터져버렸고, 조극도 막강한 힘에 짓눌려 허공에서 떨어지더니 피를 뿜어냈다.

“죽어라!”

석목이 조극의 머리 위에 나타나 주먹을 휘둘렀다.

휙!

열반봉염이 석목의 손에서 뿜어져 나와 뜨거운 주먹으로 변하여 아래 쪽으로 내리쳤다.

조극은 순식간에 공기가 자신을 옥죄더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이 몸을 내리치는 걸 느끼면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잠깐만! 날 죽이면 너는 영원히 조령수를 찾지 못할 거야!”

조극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금색 화염이 그대로 조극의 머리 위에서 열 장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멈추더니 석목의 안색이 변했다.

“뭐!”

석목은 안색이 싸늘해졌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조령수는 지금 내 손에 있지. 그녀를 만나고 싶다면 날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죽으면 조령수도 절대 살아남지 못 할 테니까.”

조극이 긴장을 풀며 차갑게 비웃었다. 그리고 웅덩이에서 일어서서 먼지를 털어내고는 차근차근 말을 이어갔다.

“수아가 네 손에 있다고? 증거라도 있어? 말 한 마디로 네 목숨을 살려줄 거라 믿나?”

석목이 안색을 바꾸며 소리를 질렀다.

조극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이내 웃는 얼굴로 무엇인가를 꺼내서 석목에게로 던졌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 물건을 받았다.

빛이 사라지자 부러진 푸른색 팔찌가 나타났으며 그 위에는 검은 머리카락이 한 가닥 엉켜있었다.

석목은 이 팔찌를 예전에 석목이 종수에게 선물해준 기억이 나 깜짝 놀랐다.

천봉 일족의 성녀 수임 축전에서 누군가 팔찌로 석목을 성 밖으로 유인한 후에 석목이 다시 팔찌를 찾아 종수에게 되돌려줬다. 그 후로 종수가 계속 몸에 지니고 다니던 팔찌인데 조극 앞에서 다시 나타나다니.

팔찌에 감긴 머리카락에서 옅은 기운이 흘러나왔는데 그 기운은 매우 익숙했다.

석목은 심장이 쿵쿵 뛰어 더는 냉정을 유지하지 못한 채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는 요동치는 심장을 억누르며 고개를 들어 멍한 표정으로 조극을 바라보았다.

조극은 지금 액체 같은 은빛을 두르고 있었으며 손에는 주먹만한 은색 구슬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액체처럼 일렁이는 은빛은 은색 구슬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어딜 도망가!”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금색 화염 주먹을 날려 은빛 구슬을 내리쳤다.

은빛 구슬은 격하게 흔들리더니 금색 주먹을 막아냈다.

조극이 주문을 외우자 미간에서 빛이 반짝이면서 세로로 자라난 눈이 나타났다. 그리고 눈에서 은빛을 뿜어 손에 들고 있던 은색 구슬로 날렸다.

퍽!

은색 구슬이 부서지자 무수히 많은 부문들이 날아 나와 빠르게 조극의 주변에 은색 진법을 만들었다.

진법이 조극을 감쌌다.

“석목, 우리 누가 마지막까지 웃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지. 다음번에 만날 때는 절대 오늘 같지 않을 거야!”

조극이 싸늘한 눈으로 석목을 바라보며 웃었다.

조극이 말을 끝내는 순간, 은빛이 흔들리더니 그는 모습을 감춰버렸다.

석목은 안색이 굳었다.

소홀했던 탓에 조극을 놓쳐버렸다.

석목은 조극이 도망갔다는 사실보다 종수가 정말로 천정의 손에 들어간 게 아닌지 걱정이 되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석목은 잠깐 망설였지만 끝내 쫓아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팔찌와 위에 감긴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의구심이 들었다.

만약 종수가 정말 조극의 손에 있다면 처음에 교전을 치를 때 조극이 이미 그 ‘무기’를 꺼내들었을 터라 그랬더라면 아마 석목은 마음이 흔들렸을 터였다.

그리고 천봉족들이 한 말에 의하면 종수가 실종될 당시로 미루어보아 조령롱과 조현기가 같이 있을 것이라고 들었다. 만약 선장과 만났다면 그렇다 쳐도 조극의 실력 정도로는 쉽게 조령롱을 무너트릴 수는 없을 터였다.

석목은 다시 천봉 일족의 성녀 수임 축전 전에 팔찌 때문에 함정에 빠졌던 일을 떠올리자 조극이 한 말이 점점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생각을 떠올려 봐도 헛수고였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다시 천봉 일족을 일으켜 나머지 천봉족들을 모아야한다는 점이었고, 그래야만 종수를 찾을 확률도 더 커졌다.

석목은 폐허가 되어버린 봉명골을 한 번 훑어보고는 조주명의 옆으로 날아갔다.

조주명은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 혼수상태에 빠졌다. 게다가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다행히 가슴과 복부에 입은 부상을 치료하여 큰 문제는 없었다.

조주명은 신경 강자라 이 정도 상처를 입혔다고 그의 목숨을 앗아갈 수는 없었다. 그러니 시간을 들여 원기를 회복한다면 곧 깨어날 터였다.

석목의 가슴에서 빛이 밝아지더니 푸른 가마 문양이 나타나 초록색 영기가 흘러나왔고, 영기는 석목의 팔을 타고 계속해서 손바닥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손바닥에 생기가 넘치는 짙은 푸른빛이 흘러 다녔다.

석목은 손바닥으로 조주명의 가슴과 복부에 난 상처를 매만졌다. 그러자 푸른빛이 별빛이 되어 흩날리면서 조주명이 입은 상처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찢어졌던 상처가 눈에 띄는 속도로 회복되었다.

잠시 후에 석목은 다시 분신을 꺼냈다.

분신은 몸통이 검게 타버렸고, 겉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아하니 크게 다친 것 같았다.

석목은 몸을 숙여 분신을 일으켜 세우고는 손으로 분신의 등을 받쳐 들었다. 그리고 손에 푸른빛을 드리우며 영력을 불어넣었다.

영력이 모여들었지만 분신이 회복되는 속도는 조주명보다 빠르지 않았다.

석목은 영력이 분신에게 큰 작용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때문에 분신은 스스로 조금씩 회복이 되어야만 했다.

이때, 조주명은 의식이 돌아왔고, 가슴에 난 상처도 전부 아물었다.

조주명은 석목을 보자 눈에 감격스러운 기색을 잔뜩 드러냈다. 그리고 이내 무엇인가를 떠올리며 석목을 훑어보고는 물었다.

“석 맹주님, 혹시……”

“주명 장로님, 운이 좋게도 천봉 일족의 조령에게 인정을 받아 열반봉염을 대물림 받았습니다.”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석 맹주님이 조령에게 인정을 받아 천봉 일족의 성염을 물려받은 건 하늘의 뜻이었을 겁니다. 석 맹주님이 화도를 죽여 우리 천봉 일족의 원한을 풀어주셨죠. 그러니 저와 천봉 일족은 이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조주명이 석목에게 인사를 올리며 공손하게 말했다.

석목이 다급하게 앞으로 다가가 조주명을 일으켜 세웠다.

“주명 장로님, 그럴 필요 없어요. 이제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석목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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