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2화. 앞뒤로 공격하다
“공격!”
대장로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미천 연합의 모든 전함에서 빛이 밝아지더니 천정의 전함들로부터 맹렬한 폭격을 받으면서도 두 배나 빨라진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 일제히 포화를 날렸다.
“대진에 계속 숨어만 있어서 공격을 할 수 없었는데 갑자기 왜 먼저 공격을 하지?”
한 천정의 신장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다 같이 죽자는 건가?”
또 다른 신장이 말을 이어받았다.
“비로 어르신, 조금 이상합니다. 전에 공격을 한 둥그런 전함은 공격을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러 온 것 같아요. 둥그런 전함이 갑자기 철수하는 걸 보니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서문설이 비로의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비로는 눈에 망설이는 기색을 내비쳤다가 이내 싸늘한 눈빛을 내비쳤다.
“무슨 음모가 있든 간에 정면 돌파를 하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흔하지 않은 기회지. 이참에 맹공격을 해야겠구나. 명령을 내려라. 모든 전함을 움직여 빠르게 전투를 끝내자!”
비로가 차갑게 말했다.
“네!”
서문설은 대답을 했지만 찝찝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명을 받은 천정의 전함 부대는 속도를 내어 미천 연합의 전함들을 공격했다.
쾅, 쾅!
폭발음이 끊이질 않았으며 두 전함 부대는 드디어 백병전을 펼쳤다.
그림자 수천, 수만 개가 두 전함에서 날아 나와 포화 구역을 벗어난 후에 격전을 치렀다.
비로가 검푸른 갑옷에 검은 기운을 감은 채 이제 막 하늘로 날아가려고 할 때, 전함의 뒤편에서 은색 갑옷을 입은 신장이 허겁지겁 다가왔다.
그리고 큰소리로 말했다.
“비로 어르신, 큰일 났습니다. 뒤쪽 상황이 좋지 않아요.”
그 말을 들은 비로가 깜짝 놀랐다.
혹시 모를 기습을 막아내기 위해 무암성을 공격하기 전부터 주변에 부대들을 일부 두고 있었는데, 미천 연합은 역시나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비로가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먼 곳에서 금빛이 촘촘하게 번쩍였는데 누가 봐도 그 빛들은 별빛이 아니었다.
“적군은 전력이 얼마나 되는가?”
비로가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전함은 백 척도 채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전력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앞에서 날아오고 있는 사람은 인족 청년인데 수련 경지가 아주 높아요. 녀석이 혼자서 제 부하들을 전부 죽여 버렸는데 만약 저도 한발 늦었더라면 분명히 살해당했을 겁니다.”
신장은 너무나 놀라 더듬거리며 말했다.
“비로 어르신,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우선 철수하죠.”
또 다른 신장이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말했다.
그러자 비로가 움츠러드는 신장을 바라보고는 눈에 살기가 어렸다. 비로는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비로 어르신, 앞뒤로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주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될 거예요. 우선 물러나시고 다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서문설이 다가와서 말했다.
비로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이를 악물고서 말했다.
“철수.”
천정의 전함들은 호기롭던 기세가 줄어들더니 병사들을 전부 전장에서 다시 전함으로 불러들였다.
천정의 전함 부대는 서서히 뒤로 물러나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천정이 철수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챈 미천 연합은 속도를 가하여 쫓아갔다.
쿵! 쿵!
수백 갈래 화염 기둥이 끊임없이 천정의 전함들을 공격했다.
천정의 전함들은 한편으로는 반격을 하며 물러나고 있었지만 생각지 못한 맹공격을 당하니 철수하는 속도가 매우 느렸다.
“서문 신장, 우선 전함 부대를 끌고서 철수해.”
비로가 말을 던지고는 몸에 검은 기운을 감고서 미천 연합으로 덮쳐갔다.
그리고 두 손을 빠르게 흔들면서 마기로 검은 안개벽을 만들어 두 전함 부대 사이를 막아놓았다.
검은 안개벽에 검은 얼굴 수천수만 개가 나타났는데 모두 악귀처럼 생겨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면 안개벽에서 귀신이 우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쾅!
수백 갈래 화염 빛기둥이 날아 나와 안개벽을 내리쳤다. 하지만 빛기둥은 안개벽에 닿는 순간, 안개벽 위에서 활활 타버렸다.
화염이 타오를수록 안개벽에서 들리는 귀신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으며 안개벽 뒤에 서 있던 비로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미천 연합의 폭격이 멎자 천정의 전함들이 후퇴하는 속도는 더욱더 빨라졌다.
* * *
석목은 천봉 일족의 전함에 서서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저 멀리 상황을 바라보면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천정의 전함 부대가 도망가고 있군요. 제가 먼저 가볼 테니 단 한 척도 도망가게 놔둬서는 안 됩니다!”
“석두, 천정의 전함들을 막고 있을 테니 조심해.”
채아가 그리 말을 하며 석목의 어깨에서 내려왔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별바다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석목은 아주 밝은 빛으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수백 장을 날아가 비로의 머리 위에 도착했다.
그리고 손을 활짝 펴고는 손가락 끝에서 백 장 가까이 되는 화염을 뿜어냈다.
다섯 갈래 화염 줄기는 전부 다 달랐는데 호천성염, 열반봉염, 구전현공 불의 힘이 전부 그 속에 들어있었다.
다섯 갈래 화염은 내리치는 번개처럼 얽히고설키며 다섯 갈래 화염 손으로 변하더니 비로의 머리를 단번에 붙잡았다.
화염들은 서로 맞부딪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함께 어우러지면서 훨씬 강력한 힘을 뿜어냈다.
붉은 법칙 부문들이 석목의 손에서 날아 나왔는데 산만하게 펼쳐지던 예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석목이 펼친 붉은 법칙에 흐르는 무수히 많은 부문들이 모여 각각 길이가 다른 법칙의 선을 이루었다.
법칙의 선에서 이전보다 몇 배나 강력한 법칙의 힘이 흘러나왔다.
석목은 눈에 사나운 빛이 스쳤는데 이건 석목이 <현화비록>에서 배운 비술인 현화대수인(玄火大手印)이었다. 석목이 만들어낸 각각 성질이 다른 다섯 갈래 화염이 대신통 하나로 뭉쳐 훨씬 강력한 위력을 뿜어냈다.
비로의 눈에 검은빛이 스쳤고, 이어 비로는 몸에 검은 기운을 감고는 구도 마기를 뿜어내 머리 위를 막더니 끊임없이 법결을 날렸다.
윙!
구도 마기가 하나로 합쳐져 크기가 백 장에 이르는 검은 방패로 변하였다. 그러자 두텁고 단단한 방패에서 검은 마문들이 번쩍였는데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섯 갈래 화염으로 뭉친 손이 검은 방패를 무겁게 내리쳤다.
쩍!
가벼운 소리와 함께 검은 방패가 곧장 터져버리자 오색으로 빛나는 손도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비로가 겁에 질린 순간, 절반이나 줄어든 화염 손이 빠른 속도로 날아와 비로의 몸을 강타했다.
쾅!
비로가 두 대군이 교전을 치르는 구역에서 튕겨져 날아가 멀어지며 피를 토해냈다.
비로가 튕겨져 날아가자 검은 안개벽도 흩어져버려 그 뒤로 미천 연합의 전함들이 곧장 다시 천정의 대군을 쫓아갔다.
한편, 천봉 일족과 지룡 일족의 전함들도 빠르게 날아와 천정의 전함들을 쫓아갔다.
세 전함 부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들이 하늘을 가리며 수천, 수만 명이나 되는 천정의 병사들과 연합의 요족들이 혼전을 펼쳤다.
고함이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석 맹주다!”
석목이 단번에 비로를 날려버리자 대장로 일행은 얼굴에 희색을 드러냈다.
“석 맹주님 혼자서 비로와 싸우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지원할 사람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육규종이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비로와 싸워본 적이 있는 육규종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상대인지 잘 알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석 맹주님은 이미 신경 중기에 들어섰군요. 아마 충분히 비로를 해치울 수 있을 것 같네요. 우리는 전력을 다해 천정 놈들을 전부 죽여 버립시다.”
대장로가 침묵하다가 천정의 대군을 훑어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육규종은 처음 본 순간 석목의 수련 경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장로가 하는 말을 듣자 석목의 기운을 느꼈는지 매우 기뻐했다.
석목은 신경 초기일 때도 비로에게 뒤처지지 않았는데 이제 중기에 들어섰으니 비로를 격살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닐 터였다.
“공격!”
육규종은 천정의 대군을 바라보며 얼굴에서 사나운 빛을 내비쳤다. 이어서 그는 큰소리를 치며 가장 먼저 천정의 대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반귀족들은 족장이 천정을 덮치는 모습을 보고는 곧바로 기세등등하게 따라나섰다.
천정의 대군은 연이은 습격을 당한데다가 비로 선장이 튕겨져 날아가 버린 탓에 기세가 많이 꺾여버렸다. 그래서 미천 연합의 대군과 천봉 일족과 지룡 일족 연합이 공격해오자 계속 뒤로 밀려났다.
천정의 대군 속에 서 있던 서문설은 석목을 바라보자 눈에 이채가 스쳤다.
하지만 지금 천정의 대군이 큰 위기를 겪고 있었기에 곧바로 시선을 거두어들이고는 금색 법보를 휘두르며 공격을 막았다.
비로는 몸에서 핏빛이 흐르자 허공에서 한 바퀴 돌더니 멈춰 섰다. 그런데 입가에 핏자국만 묻어있을 뿐,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비로는 혼란에 빠진 천정의 대군을 한 번 쳐다보더니 더욱 초조한 낯빛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병사들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석목이 비로의 코앞으로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못 뵀는데 비로 선장님은 풍채가 그대로시군요. 축하할 일이네요.”
석목이 미소를 지으며 유유자적하며 말했다.
하지만 비로를 훑어보던 석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현화대수인은 위력이 아주 막강한데 비로가 생각보다 너무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꺼져라!”
비로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검은빛을 번쩍이며 다시 구도 마기를 불러냈다.
비로가 불러낸 마기마다 길이가 이삼십 장에 이르렀는데 마치 커다란 촉수 아홉 개가 뱀처럼 하늘에서 흔들렸다.
석목은 동공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비로가 힘껏 손을 흔들자 구도 마기가 퍼져 나가는 동시에 석목에게로 날아가 물러날 수 없게 길을 막아버렸다.
아홉 갈래 마기에서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금속 같은 광택이 흘러나와 순식간에 커다란 철기둥으로 변하였다.
철기둥은 석목에게 닿기도 전에 난폭한 바람을 휘몰아쳤다.
비로는 이미 석목의 실력을 파악했기 때문에 온힘을 다해 공격했다.
석목이 소리를 치며 한 손으로 법결을 짚자 현화번이 열두 갈래 빛을 뿜으며 날아왔다. 그리고 반짝이는 사이에 수십 배나 불어나 한 줄로 펼쳐져서는 앞을 가로막았다.
석목이 다시 열두 화번으로 법결을 줄줄이 불어넣었다.
훅!
현화번에서 붉은 화염이 들끓더니 커다란 화염벽을 이루었다.
쾅!
아홉 촉수가 화염벽에 부딪치자 굉음이 울려퍼졌다.
화염벽은 격하게 흔들리며 움푹 파여버렸지만 부서지지는 않았다.
석목의 눈에서 빛이 반짝이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길쭉한 화염벽 양쪽이 가운데로 모이며 비로를 둘러쌌다.
화염벽이 완벽하게 붙기만 하면 석목은 십이도천현화대진을 펼칠 수 있어 화도를 죽였던 것처럼 비로를 산 채로 연화시킬 수 있었다.
비로는 비록 화염벽의 양 끝이 맞붙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주 위험하게 되리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화염벽이 붙어가는 속도는 매우 빨랐고, 눈 깜짝할 사이에 틈 하나만 남았다.
이때, 비로가 검은빛을 뿜으며 틈 사이로 날아가려 했다.
그러자 그림자가 반짝이더니 석목이 나타나 비로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석목의 손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번천곤이 나타나 가로로 휩쓸었다.
“꺼져!”
비로는 온몸에 기이한 핏빛을 드리우고 있었는데 등 뒤에도 핏빛이 흐르는 날개를 단 채 사나운 눈빛을 내비쳤다. 그리고 비로의 등에 돋은 날개에는 무수히 많은 붉은 뼈 가시가 나타나 괴상한 빛을 풍겼다.
칙, 칙, 칙!
비로가 날개를 펄럭이자 붉은 뼈 가시가 날아 나와 화살로 변하더니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석목에게로 향했다.
비로가 움직이는 동작은 번개처럼 빨랐고, 가까운 거리에서 날리는 공격을 피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비로는 결국 둘 다 패배하는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석목은 조금도 피할 생각을 하지 않더니 번천곤에 금빛을 더 크게 드리웠다. 때마침 석목은 누가 더 강력한지 궁금하던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