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3화. 절경 (1)
석목은 육신이 매우 단단해져 핏빛 뼈 가시에 공격을 당해도 기껏해야 상처를 입는 정도에서 멈추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번천곤으로 가하는 일격은 비로의 뼈까지 부러뜨릴 수 있었다.
“이놈아, 빨리 피해. 이런 화혈신자(化血神刺)에 찔리게 되면 죽지 않는다고 해도 육신이 무너져버릴 거야. 게다가 네 곤봉의 위력이 아무리 막강하다고 해도 절대 단번에 상대를 죽일 수는 없어!”
이때, 수령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안색이 변하더니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번천곤은 비로와 몇 뼘을 사이에 둔 곳에서 그대로 멈춰버렸다. 동시에 비로는 몸을 비틀더니 잔영을 그리며 빠르게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고,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촘촘한 핏빛 가시가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비로가 아쉬운 표정을 드러냈고, 몸에 핏빛을 드리우며 희미한 그림자로 변하더니 빠르게 화염벽의 갈라진 틈새를 비집고서 날아갔다.
그리고 곧바로 전장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비로가 이제 막 몸을 날렸을 때, 앞쪽 허공에서 빛을 반짝이며 석목이 다시 나타나 그가 가는 길을 막았다.
“비로 선장님, 승부도 채 가리지 못했는데 어딜 가십니까?”
석목이 차갑게 웃었다.
동시에 번천곤을 앞으로 내밀었다.
촘촘한 금색 곤봉 그림자가 허공에 나타나 막강한 힘을 끌고서 비로를 공격했다.
비로는 눈이 파르르 떨렸으며 천정의 대군이 처한 상황도 점점 위기로 몰려 더는 버틸 수 없게 되었다.
순간, 비로의 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스치더니 그는 입을 벌리고 진득한 피를 한 모금 뱉어냈다. 그러자 핏속에서 엄지만 한 구슬이 어렴풋이 나타났다.
석목이 손을 흔들어 법결을 날리자 구슬이 ‘퍽!’ 하며 깨져버렸다. 그리고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혈운이 넓게 펼쳐졌다.
살기가 가득한 기운이 혈운에서 흘러나왔고, 은은하게 귀신의 곡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촘촘하게 밀려오던 곤봉 그림자가 혈운을 내리치는 순간, 혈운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모든 곤봉 그림자를 삼켜버렸다.
우르릉!
곤봉 그림자를 삼켜버린 혈운은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점점 커지면서 천둥소리를 울리다가 곧바로 터져버렸다.
이때, 비로가 갑자기 손을 넓게 펴서는 왼쪽 팔을 잘라버렸다.
펑!
비로의 왼쪽 팔이 갑자기 폭발하더니 빛으로 변하여 혈운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러자 혈운이 내던 빛이 훨씬 더 밝아졌고, 한참 동안 들끓었다. 그리고 마치 아작아작 씹어버리듯 번천곤의 그림자를 가루로 부숴버린 후에 다시 평온해졌다.
석목은 번천곤으로 날린 공격을 이렇게 가볍게 막아낸 사람은 처음이라 속으로 깜짝 놀랐다.
하지만 비로는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렸는데 조금 전에 시전한 공법으로 인해 원기를 크게 상한 탓이었다. 때문에 비로는 싸늘한 눈빛으로 석목을 노려보며 주문을 외웠다.
혈운이 한참 동안 들끓다가 석목을 덮쳤다. 그 순간, 별하늘에는 피비린내가 자욱했고, 핏빛이 얼룩덜룩하게 묻어 온 하늘이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 모든 행동을 마친 비로는 몸을 비틀며 핏빛으로 변하더니 혈운을 에돌아 전장으로 급히 날아갔다.
그러자 석목이 다시 한번 차갑게 웃으며 두 손을 흔들어 법결을 날렸다.
불빛이 반짝이며 현화번 열두 개가 날아 나와 비로의 앞을 가로막았다.
비로 선장이 혈운을 시전할 때, 석목도 그 틈을 타 현화번을 다시 소환했다.
화염이 현화번에서 쏟아져 나와 혈운보다 막강한 화운을 펼쳤다.
쾅!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굉음이 백 리까지 울려 퍼졌다.
석목이 힘껏 땅을 짚고는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이어서 석목이 다시 비로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말했잖습니까? 승부를 아직 가리지도 않았는데 자꾸 어디를 가시려는 겁니까?”
석목이 담담하게 웃으며 번천곤에 빛을 크게 드리우더니 수십 갈래 금색 곤봉 그림자를 날렸다.
비로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핏빛을 반짝였고, 몸에 빛을 드리워 붉은빛의 벽을 이루었다.
우르릉!
금색 곤봉 그림자가 핏빛 벽에 떨어지자 벽은 잠깐 사이에 다시 터져버렸다. 하지만 곤봉 그림자도 힘이 전부 소진되어 사라져버렸다.
그 충격 때문에 비로는 열 몇 걸음 밀려났다가 다시 몸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석목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드러내고는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비로는 그제야 만약 석목을 해치우지 못한다면 절대 자신을 놓아주지 않으리란 걸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이때, 비로의 왼쪽 어깨에서 핏빛이 번쩍이며 살이 뭉개지더니 새로운 팔이 하나 자라났다.
석목은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그리고 지난번에 무암성에서 치른 대전에서 비로와 직접 교전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조윤과 육규종을 비롯한 사람들과 격전을 치르는 것을 보았을 때, 이런 기이한 핏빛신통을 시전하지 않았었다는 사실이 점점 의문스러워졌다.
“이놈아, 조심해. 비로 저놈이 무슨 수단을 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놈은 아마 ‘불사신’ 신통을 어느 정도 썼을 거야.”
수령자의 목소리가 다시 석목의 머리에서 울려 퍼졌다.
“불사신? 상고 육체 수련의 여덟 번째 단계?”
석목이 깜짝 놀라 전음을 보내며 물었다.
“그래, 비로 이놈은 ‘불사신’의 회복 능력은 갖췄지만, ‘불사신’의 힘은 없어.”
수령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석목은 흠칫 놀라더니 이내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석목은 ‘불사신’ 단계에 관해서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하지만 계속 관건이 되는 부분을 터득하지 못했는데 오늘 반쪽짜리 불사신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만약 비로의 몸에서 ‘불사신’과 관련된 오묘한 이치를 터득하게 된다면 나중에 수련을 할 때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석목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비로가 다시 공격을 했다.
비로의 온몸에서는 핏빛이 흘렀고, 몸은 마치 바람을 불어넣은 것처럼 부풀어 있어 눈 깜짝할 사이에 백 장 가까이 늘어났다.
그리고 등 뒤에서 퍽, 하는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붉은 꼬리 아홉 개가 나타나 하늘에서 흩날렸다. 그러나 등 뒤에 돋았던 핏빛 날개는 사라지고 없었다.
석목은 아홉 꼬리가 풍기는 기운을 느끼며 실눈을 떴는데 이건 필시 구사 윤회 마공의 마기였다.
비로는 기운이 터져나와 신경 후기 경지까지 이르렀다.
커다란 꼬리에서 핏빛이 번쩍이더니 붉고 뾰족한 수정들이 나타났는데 그것들은 조금 전에 본 뼈 가시들이었다.
“이제 죽어라!”
비로가 소리를 치며 아홉 꼬리를 힘껏 흔들었다.
칙, 칙!
무수히 많은 뼈 가시가 날아 나와 석목에게로 쏟아졌다.
핏빛 뼈가 빠르게 하늘을 찢으며 고막이 터질 듯한 폭발음과 함께 석목에게로 날아갔다.
석목은 안색이 굳었으나 당황하지 않고 미간 사이에 하얀빛을 반짝였다. 그러자 하얀 구슬이 빙글빙글 돌며 날아 나왔다.
구슬은 겉에 빛이 반짝였고, 속에선 하얀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하얀 구슬 광막으로 변하더니 물샐틈없이 주변을 막아버렸다.
구천현강조였다!
화도를 죽인 후에 화도가 지니고 있던 법보와 저장 반지는 전부 번천곤이 부숴버렸으나 하얀 구슬은 남았다.
하얀 구슬은 법보가 아니었지만 그 위에 구천현강조의 부문이 새겨져 있어 구슬에 진기만 불어넣으면 상고 신통을 펼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이때 석목은 기쁜 마음으로 구슬을 조심스럽게 거두어들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구슬은 번천곤의 공격을 받아 영성이 상하여 시간을 들여 진기로 다스려야만 원상복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절반 정도만 위력을 뿜어낼 수 있었다.
펑, 펑, 펑!
수없이 많은 뼈 가시가 구천현강조에 떨어져 핏빛이 되어 소리를 내면서 터져 나갔다.
구천현강조가 격하게 흔들리며 간신히 붉은 뼈 가시들을 막아냈다.
이때, 석목의 눈앞에서 그림자가 반짝이더니 비로가 가까운 곳에 나타나 거대한 꼬리를 흔들며 번개 같은 속도로 구천현강조를 꽉 묶어버렸다.
석목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가 별다른 공법을 시전하기도 전에 핏빛 꼬리가 녹아내리더니 끈적이는 혈액으로 변하여 석목과 구천현강조를 단번에 안으로 묻어버렸다.
밖에서 바라보면 붉은 꼬리가 녹으면서 크기가 수십 장에 이르는 커다란 구체로 변해, 끈적이는 피가 끊임없이 겉에서 맴돌며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를 풍기는 모양새였다.
한편, 비로가 변신한 핏빛 거인의 뒤에 달린 꼬리는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비로는 긴장을 조금도 풀지 않고, 입으로 주문을 외우며 핏빛 그림자를 크게 펼쳐 검은색과 붉은색 영역을 이루었다.
비로가 현묘한 주문을 외우자, 영역이 비로의 몸과 떨어져 나가더니 구체 속으로 녹아들었다.
동시에 가까운 곳에서 화운과 맹렬하게 부딪치고 있던 혈운도 다시 날아와 구체 속으로 스며들었다.
혈운이 갑자기 사라져버리자 화운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물론 화운은 자아의식이 없어 석목이 조종하길 멈추자 그대로 멈춰버렸다.
쾅!
영역과 혈운이 녹아든 구체는 다시 점점 불어나더니 넓은 피바다를 이루었고, 폭발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자 무수히 많은 붉은 부문들이 피바다 속에서 춤을 췄다.
피바다는 허공에 떠 있었지만 환영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마치 피바다가 이 공간을 벗어나 또 다른 시공간에 있는 것 같았다.
연이어 공법을 시전한 비로는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하지만 얼굴 한쪽 구석에는 희색이 돌았다.
다행히 제준 어르신이 하사한 혈하지정(血河之晶)이라는 보물 덕분에 비로는 드디어 혈하대법을 단번에 수련할 수 있었고, 실력도 크게 늘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절대 석목을 해치울 수 없을 터였다.
비로가 멀리 있는 전장을 한 번 쳐다보았다. 비록 지금은 천정의 대군이 계속 밀리고 있었지만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로가 숨을 고르면서 몸을 날려 피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 * *
이 시각, 석목은 미간을 찌푸린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석목은 지금 핏빛 공간에 서 있었는데 곳곳에서 끝없이 혈운이 떠다니면서 거센 파도처럼 기승을 부려댔다.
또한 방대한 공간의 힘이 몸을 짓눌러 움직이기조차 버거웠다.
뿐만 아니라 공간 속에는 알 수 없는 법칙의 힘이 있어 끊임없이 석목의 몸속에 흐르는 불의 법칙과 다양한 화염의 힘들을 짓눌렀다.
석목은 눈에서 빛을 계속 번쩍였다.
이곳은 석목이 일군 현화 대진 속 공간과 매우 흡사했는데, 보아하니 비로가 그를 진법 공간 비술 속으로 가둬버린 것 같았다.
칙, 칙!
피안개가 끊임없이 밀려오며 구천현강조에 부딪쳤고, 구천현강조도 끊임없이 번쩍이며 윙윙 소리를 냈다.
석목은. 구천현강조가 상고 신통인데다 혈운이 주는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아 눈썹을 치켜떴다. 그런데 어째서 구천현강조가 끊임없이 흔들릴까?
“아니야!”
석목은 안색을 바꾼 채 신식을 내보냈다. 그렇게 둘러보니 혈운 속에 기이한 힘이 들어있어 끊임없이 구천현강조를 부식해 현강조가 격하게 흔들리는 것이었다.
“이놈아, 이건 혈명지기(血冥之氣)야. 조금 전에 본 화혈신사도 혈명지기로 뭉친 거지. 아주 막강한 부식 시키는 힘이 담겨있어 육신을 크게 손상시킬 수 있어.”
수령자가 하는 말을 듣자 석목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큰 난관에 봉착했군.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으면 너는 오늘 이곳에서 죽어버릴 거야.”
수령자가 매우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의 표정이 굳더니 이제 막 무엇인가를 물어보려 할 때였다,
앞쪽에서 빛을 번쩍이며 비로가 나타나 의기양양한 얼굴로 석목을 내려다보았다.
“석목, 네 실력이 막강해졌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 내 핏빛 공간 속에서 죽어 버려라!”
비로가 싸늘하게 웃으며 곧바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비로의 몸에서 검은빛이 번쩍이더니 아홉 갈래 굵직한 마기가 흘러나왔다.
마기는 길이가 백 장 정도 되었는데 그것들은 바로 구사 윤회 마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