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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804화 (804/916)

804화. 절경 (2)

비로가 법결을 짚으며 등 뒤에 드리운 구도 마기 속으로 핏빛을 날렸다.

슥, 슥!

온 핏빛 공간이 순식간에 천지를 뒤엎는 격변을 일으키자 수많은 혈운들이 용솟음치며 구도 마기와 어우러져 아홉 마리 혈룡으로 변신하였다.

혈룡은 길이가 백 장이나 되어 맷돌만 한 거대한 비늘들로 핏빛을 내뿜으며 방대한 기운을 흘려보내는 모습을 보니 신경 중기는 되는 것 같았다.

석목은 안색이 굳었다.

그는 비록 천정의 선장을 두 명이나 죽여 버렸지만 그들이 갖춘 실력으론 절대 비로를 따라올 수 없었다. 지금, 석목은 근래 가장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자칫 잘못한다면 되돌릴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할 터였다.

석목이 목숨을 걸고 싸워야한다는 수령자가 한 말이 맞았다.

“수령자, 이 핏빛 공간을 어떻게 뚫어야 할지 알고 있나?”

석목이 현명신주를 꺼내 옷소매에 넣어두고는 신념으로 수령자와 소통했다.

석목은 이미 원신을 수련해 육신을 빼앗는 신혼 공격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러니 수령자가 기습을 하는 건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석목이 현명신주를 꺼낸 이유는 하나가 더 있었는데 그건 바로 수령자가 빨리 방법을 생각해내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만약 석목이 죽게 된다면 수령자도 죽어버릴 터였다.

“이 핏빛 공간은 네 현화 공간과 같아. 전부 법보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곳이지. 법보를 찾아서 부수기만 하면 이 공간은 자연스레 사라질 거야.”

수령자는 석목의 의중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법보가 자리한 위치를 찾을 수 있나?”

석목이 다급하게 물었다.

석목의 십이도천현화대진도 이와 같았기에 수령자가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을 알 수 있었다.

“찾을 수 있긴 한데 시간이 필요해.”

수령자가 말했다.

“그럼 내가 시간을 벌 테니 빨리 법보가 자리한 위치를 찾아줘.”

석목이 곧바로 대답했다.

비로가 차갑게 웃으며 석목을 향해 손가락을 짚었다.

그러자 아홉 갈래 혈룡들이 동시에 석목을 향해 큰 발을 휘갈겼다.

용의 발에서 붉은 부문들이 튕기며 금 속성 광택을 뿜어내자 거대한 용의 발이 구천현강조를 내리쳤다.

구천현강조는 붉은 뼈 가시를 막아내면서 힘을 많이 쓴데다가 강한 타격을 받아 곧바로 균열이 그어지더니 이내 부서져 버렸다.

석목이 몸을 비틀거리며 잔영으로 변하여 수십 장 밖으로 피했다.

핏빛 공간 속에서 공간의 힘이 압박을 했지만 석목은 육신이 단단해 속도만 느려질 뿐, 완전히 제압을 당하지는 않았다.

혈룡은 비록 신경 중기만큼 강한 실력을 갖췄지만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다. 석목은 공간의 힘 때문에 방해를 받아 속도가 절반이나 줄어도 혈룡들보다는 빨랐다.

하지만 석목은 기쁘기는커녕 오히려 심각해 보였다.

그는 구천현강조가 사라지자 차가운 기운이 순식간에 몰려와 온힘으로 공법을 시전해도 차가운 기운이 스며드는 걸 완전히 막아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석목은 절대적인 위기 상황에 놓였다.

비로는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지더니 다시 법결을 한 갈래 날렸다.

허공에 떠 있던 아홉 마리 용이 흩어져서는 흉악한 이를 드러내며 석목을 덮쳤고, 석목은 눈에 빛을 반짝이며 흑백 날개를 펼쳤다.

하지만 핏빛 공간 법칙이 짓누르는 가운데 흑백 날개는 전보다 절반이나 줄어들어 빛도 매우 어두워졌다.

석목이 몸을 날려 속도를 내 한쪽으로 날아갔다.

“어딜 도망가!”

비로가 주문을 외우자 공간에 떠다니던 혈무가 또다시 들끓기 시작해 석목의 앞을 가로막았다.

석목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번천곤에 빛을 크게 두리우자 금색 번개 무리가 곤봉에서 나타나 석목의 몸을 감고는 뇌전 갑옷을 이루었다.

혈무는 석목의 금색 뇌전에 닿는 순간 찢어져버렸다.

비로의 눈에 분노한 기색이 어렸고, 주문을 외우며 손가락으로 앞을 짚었다.

석목의 등 뒤에서 다섯 마리 혈룡이 입을 크게 벌리고는 희미한 빛기둥을 뿜어냈는데 빛기둥들의 속도는 매우 빨라 순식간에 석목을 따라잡았다.

석목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공격을 피하고 싶었지만 이미 늦어버렸기에 급한 대로 번천곤을 힘껏 내리쳐 빛기둥들을 막아냈다.

금빛이 번천곤에서 흘러나오며 금색 물살을 이루자 흐름 속에서 무수히 많은 금색 부문들이 번쩍이면서 방대한 기운을 풍겼다.

석목은 금색 물살 속으로 법결을 줄줄이 날렸다.

물살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수많은 금색 칼날들이 나타나 검기를 뿜어내며 빠르게 날아오는 빛기둥들을 맞이했고, 빛기둥들은 수많은 금색 칼날에 파묻혀 모두 터져버렸다.

그러나 금색 물살은 속도가 조금도 줄지 않은 채, 혈룡들의 몸을 내리쳤다.

쾅!

금색 물살이 흩어지자 혈룡들도 크게 부상을 당하여 몸 곳곳에 구멍이 뚫렸고, 비늘이 찢어졌다. 심지어 혈룡들 중에 한 마리는 발이 잘려나가 그 모습이 매우 처참해 보였다.

하지만 석목이 멈칫하는 순간, 다른 혈룡이 쫓아왔다.

허공을 찢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또 다른 혈룡이 다른 방향에서 덮쳐와 발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석목이 낮게 소리를 치며 몸에 하얀빛을 번쩍이는 순간, 석목의 몸통이 빠르게 불어나 순식간에 이삼십 장까지 커졌다.

석목의 왼쪽 팔에서 은색 문양이 반짝이더니 은은하게 수많은 비늘로 뒤덮여 난폭한 기운을 풍겼다.

석목은 날아오는 혈룡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쾅!

형태가 없는 파동이 사방으로 퍼지자 스친 곳은 허공이 일그러지면서 거울이 깨지듯이 와장창 부서져 버렸다.

석목은 다시 몸을 세웠다.

혈룡의 발은 부서져 버렸고, 거대한 몸통마저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핏빛 공간은 석목의 진기를 짓눌렀지만 육신의 힘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석목이 익힌 가장 대단한 신통은 바로 그 육신이었다.

석목은 주먹을 거두어들이고는 하얀빛을 반짝이며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석목은 몸집이 커질수록 더욱더 많은 차가운 기운이 침습한다는 걸 느꼈다.

이렇게 되면 필살기인 거원 변신도 쉽게 시전할 수 없게 되어 석목은 가슴이 다시 내려앉았다.

비로는 처음엔 멈칫하더니 이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석목의 육신은 그가 예상했던 단계보다 훨씬 강했다. 하지만 핏빛 공간에는 혈명지기가 가득 흐르고 있어 육신이 천천히 부식될 터라 상관이 없었다. 만약 핏빛 공간만 터지지 않는다면 비로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터였다.

순간, 비로가 다시 낮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며 법결을 날렸다.

나머지 몇 마리 혈룡이 또다시 석목을 덮치자 동시에 주변에서 혈운이 들끓으며 상처를 입은 혈룡들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쿵!

부상을 입은 혈룡의 발이 빠르게 회복되었고, 곧바로 처음 모습으로 돌아와 다시 석목을 향해 덮쳤다.

두어 마리라면 쉽게 막아냈을 테지만 동시에 네 마리가 날아오니 석목은 조금 버거워 어쩔 수 없이 피해 다녔다.

석목은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고, 차가운 기운이 계속해서 침습하여 몸이 마비가 되는 느낌이었다.

“수령자, 아직 법보의 위치를 못 찾았나?”

석목이 신념으로 수령자에게 물었다.

“아직 못 찾았어. 이 공간은 조금 기괴하군. 어떤 힘이 내 눈을 막고 있으니 시간이 필요해.”

수령자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은 점점 조급해졌다.

이렇게 지체하다가는 육신이 더는 버티지 못할 터였다.

이때, 석목이 갑자기 비로를 바라보며 날개를 펄럭여 혈룡들 사이를 뚫고서 그대로 덮쳤다.

그러자 비로가 다시 차갑게 웃으며 법결을 짚었다.

순간, 비로는 주변에서 일렁이는 혈운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러자 석목이 천천히 멈춰 섰다.

비로를 먼저 공격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곧장 진법 속으로 숨어버렸다.

이때, 수령자가 한 위치를 가리켰는데 그곳은 석목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저놈은 저기 있어.”

수령자가 말했다.

석목이 기뻐하며 망설이지 않고서 수령자가 가리키는 곳으로 날아갔다. 물론 수령자가 어떻게 위치를 알아냈는지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석목은 번천곤에 금빛을 감아 앞을 강하게 내리쳤다.

훅!

핏빛 공간에 크기가 수백 장에 이르는 균열이 생기자 그림자 하나가 틈 속에서 날아 나왔다. 그리고 비로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을 내비치며 나타났다.

비로는 하반신이 번천곤 때문에 터져버려 혈무로 변했다.

상반신만 남은 비로는 먼 곳으로 빠르게 날아가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비로의 몸에서 핏빛이 한 층 나타났다.

터져버린 혈무가 다시 서서히 모여들며 비로의 몸속으로 스며들어가더니 단 몇 번 호흡을 할 동안 비로의 하반신이 원래 모습대로 복구되었다.

“이게 불사신인가!”

석목이 흥분하며 중얼거렸다.

비로는 비록 몸이 원래대로 돌아갔지만 안색이 하얗게 질린 걸 보니 원기가 크게 상한 것 같았다.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알아냈지?”

석목은 비로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할 생각이 없어 곧바로 몸을 날려 또다시 비로에게로 날아갔다.

비로가 깜짝 놀라며 먼 곳으로 도망쳤다.

비로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아 혈룡과 비슷한 속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석목과 쫓고 쫓기는 놀이를 하고 싶지 않아서 몸을 날려 혈룡들 사이로 들어갔다.

혈룡들은 순식간에 모여들어 비로를 가운데로 감싸 지켜주었고, 석목은 안색이 퍼렇게 질린 채 몸을 멈춰 세웠다.

“역시 비범한 놈이군. 하지만 오늘은 꼭 내 손에 죽게 될 거야!”

비로는 석목을 바라보며 흉악한 웃음을 드러내더니 주문을 외우며 두 갈래의 핏빛을 날렸다. 그러자 핏빛 속에서 수많은 부문들이 튕겨져 나와 번쩍이는 사이에 혈룡들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혈룡들은 몸이 격하게 흔들리면서 핏빛을 뿜어내더니 순식간에 합쳐져서는 커다란 구체를 이루었다.

비로가 계속해서 손을 흔들며 또 두 갈래 핏빛을 혈룡들의 몸속으로 날렸다.

혈룡들의 몸에서 빛이 크게 번지며 순식간에 빛나는 구체로 스며들었고, 비로가 현묘한 주문을 외우며 구체에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구체에서 빛이 번지며 소름이 돋는 기운이 흘러나왔는데 어떤 두려운 존재가 튀어나오려는 것만 같았다.

석목의 안색이 얼어붙어서는 뒤로 수백 장 밀려나 온통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이때, 비로가 법결을 멈추자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고, 동시에 정혈을 뿜어냈다.

정혈이 번쩍이며 커다란 부문으로 변하더니 핏빛 구체 속으로 스며들어 갔고, 핏빛 구체가 들끓더니 굉음과 함께 찢어져 버렸다.

이어 방대한 기운이 폭발하며 커다란 혈룡이 나타났다.

혈룡은 길이가 족히 천 장이나 되었고, 발이 여섯 개나 자라나 있었다. 또한 몸통에는 붉은 비늘을 두텁게 두르고 있었고, 등 뒤에는 굵직한 뼈 가시가 박혀있었는데 그 뼈 가시는 하늘을 찢어버릴 듯한 기세를 풍겼다.

화염 같은 핏빛이 용의 발 여섯 갈래를 휘감고 있어 그 모습은 마치 세상을 멸망시킬 미친 용 같았고, 붉게 충혈이 된 눈으로 석목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은 눈앞에 선 용이 그동안 자신이 만난 어떤 강적들보다 강한 것에 놀라 몸이 굳어버렸다. 그야말로 석목은 엄청난 곤경에 빠져버렸다.

석목은 곧바로 뒤로 물러나 하얀빛을 드리우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순식간에 기운이 폭발하더니 크기가 천 장 가까이 되는 하얀 원숭이로 변하였다. 그리고 하얀 원숭이의 몸에 그려진 무수히 많은 은색 무늬들이 은은한 비늘로 변했다.

하얀 원숭이의 머리에서 붉은 머리가 하나 더 튀어나왔고, 갈비뼈 부위에 굵직한 팔이 두 개나 더 자랐다.

석목은 순식간에 혈룡에 버금가는 커다란 몸집으로 변하였다.

거대한 짐승 두 마리가 마주하고 서서는 미친 듯이 강한 기운을 풍기자 핏빛 공간에 광풍이 휘몰아쳤다.

“죽어라!”

비로의 눈에서 흉악한 기색이 스치더니 이어서 그가 다시 법결을 날렸다.

혈룡의 거대한 몸통은 속도가 매우 빨라 순식간에 하얀 원숭이의 앞에 나타났다.

이에 하얀 원숭이가 고개를 들고 포효하더니 번천곤에 빛을 크게 드리워 혈룡을 힘껏 내리쳤다.

용은 거대한 몸을 비틀어 간발의 차이로 곤봉을 피하며 여섯 발로 백원의 가슴을 잡으려고 했다.

하얀 원숭이는 입을 찢으며 차갑게 비웃었다. 그리고 또 다른 두 팔에서 빛을 번쩍이더니 무수히 많은 환영을 그리면서 혈룡을 미친 듯이 공격했다.

이어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촘촘한 은색 주먹이 혈룡의 몸에 떨어지자 현란한 빛으로 변하여 폭발했고, 혈룡의 거대한 몸통은 튕겨져 날아갔지만 크게 다치진 않았는지 곧바로 핏빛을 번쩍이며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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