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05화 (805/916)

805화. 천하가 뒤바뀌다

혈룡이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하얀 원숭이 앞에 섰다.

혈룡이 입을 크게 벌리고는 굵은 핏빛을 뿜어내자 겉에 나타난 붉은 화염이 빠른 속도로 하얀 원숭이에게 향했다.

이에 하얀 원숭이가 번천곤을 가로로 휘둘렀다.

쾅!

붉은 화염과 곤봉의 금빛이 폭발하며 붉은색과 금색 바람기둥으로 변하여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두 빛깔이 바람기둥 주변에서 춤을 추었다.

거대한 짐승 두 마리가 붉은 공간에서 격렬한 싸움을 펼치자 굉음이 끊이질 않았고, 두려운 파동이 주변으로 퍼져 붉은 공간을 뒤섞어놓았다.

두 짐승은 한참 동안 격전을 펼쳤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하얀 원숭이가 맹공격을 퍼부어도 혈룡은 거대한 몸집을 영리하게 움직이며 곧잘 피해 다녔다.

석목의 몸이 차가워지면서 부들부들 떨렸고, 그는 마음이 점점 가라앉았는데 혈명지기가 이미 엄청나게 몸속으로 스며들었다는 방증이었다.

석목에게 남은 시간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수령자가 여전히 핏빛 공간을 이루는 법보가 있는 곳을 찾아내지 못해 역전을 할 수 있는 한 줄기 희망의 빛마저 점점 옅어졌다.

비로는 먼 곳에 서 있었고, 나머지 다섯 마리 혈룡도 비로의 주변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는 빙빙 돌며 헤엄을 쳤다.

비로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으나 눈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순간, 비로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며 가슴을 짚자 한 갈래 빛이 비로의 손끝에서 날아 나와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슥!

찬란한 핏빛이 비로의 가슴에서 퍼져 나갔고, 핏빛 속에서 차갑고도 짙은 혈명지기가 흘러나왔다.

비로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기색이 스쳤고, 그가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자 법결이 줄줄이 날아 나와 핏빛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어서 무수히 많은 부문들이 핏빛 속에서 날아 나와 점점 커지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맷돌만 하게 커져 혈명지기의 차가운 기운을 흘려보냈다.

순간, 비로가 주문을 외우길 멈추고는 손가락으로 하얀 원숭이를 가리켰다.

그러자 부문들이 전부 사라졌다가 순간이동을 하듯 하얀 원숭이의 옆에서 나타났다.

석목이 깜짝 놀라 막을 자세를 취하고자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붉은 부문들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빠른 속도로 하얀 원숭이의 몸으로 흘러들어갔다.

퍽!

석목은 막강한 혈명지기가 몸속으로 흘러들어와 거의 순식간에 사지를 먹어치워 온몸이 차갑고 아팠다. 이어 혈명지기는 석목의 혈맥을 통해 빠르게 더욱 깊이 흘러들어갔다.

하얀 원숭이는 몸이 굳어버려 조금도 움직일 수 없어 멈춰버렸다.

“너무 방심했어!”

석목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 사이에 혈룡이 입을 크게 벌리고는 굵직한 핏빛을 뿜어내 원숭이의 가슴을 내리치자 원숭이는 튕겨져 날아가 버렸다.

핏빛이 터지더니 수많은 칼날로 변했다. 그리고 하얀 원숭이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내자 붉은 피가 온몸을 적셨다.

석목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런데 이때, 석목은 심장이 쿵쾅거리더니 몸속에 자리한 혈해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움직이면서 온 세상을 삼킬 듯한 강력한 힘을 뿜어냈다.

석목의 몸속에서 흐르던 혈명지기도 갑자기 흔들리더니 강물이 바닷물로 흘러들어가듯이 혈해 속으로 밀려들어갔다.

그리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하얀 원숭이의 굳었던 몸은 순식간에 원래대로 회복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막강한 원기가 혈해 속에서 흘러나와 석목의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가 연이은 격전을 치르며 지쳐있던 몸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석목은 깜짝 놀랐다가 이내 흥분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혈해가 혈명지기를 삼켜 다시 정혈 원기로 바꿔버린 것이었다.

이제 석목은 혈명지기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고, 오히려 혈명지기를 빨아들일수록 유리했다.

“혈해가…… 천하를 뒤바꾸고 있어!”

석목은 벅차오르는 기쁨을 억누르며 몸속에서 용솟음치는 막강한 힘을 느꼈다.

이때, 하얀 원숭이를 단번에 날려버린 혈룡이 다시 덮쳤다. 물론 혈룡은 하얀 원숭이가 무엇 때문에 갑자기 움직이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살육을 저지르고픈 본능이 계속 공격을 하게 만들었다.

혈룡의 여섯 발에서 핏빛이 번지며 발톱 끝이 두 배나 더 불어났고, 삼엄한 빛을 내뿜어 이 기세라면 단번에 원숭이의 머리를 부술 수도 있을 듯 보였다.

“죽어라!”

하얀 원숭이의 눈에서 싸늘한 빛이 스쳤다. 그리고 원숭이는 거대한 몸집을 날렵하게 돌려 옆으로 수백 장이나 물러서 용의 공격을 피했다.

동시에 번천곤이 하늘을 찌를 듯한 곤봉 그림자로 변하더니 혈룡의 몸을 내리치자 혈룡은 순식간에 튕겨져 날아갔다.

쿵!

하얀 원숭이가 소리를 지르며 두 손으로 잔영을 그렸다. 그러자 번천곤이 거대한 금색 그림자로 변하여 혈룡을 그대로 묻어버렸다.

그 광경을 본 비로는 혈명지기가 제대로 된 힘을 낼 수 없어 깜짝 놀랐다!

석목은 조금 전까지 혈명지기가 두려워 진기로 대부분 혈명지기를 막아냈는데, 이제 더 이상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 온힘을 공격에 집중을 할 수 있어 기분이 매우 통쾌했고, 그는 단숨에 혈룡을 제압했다.

게다가 혈명지기를 흡수해서 그런지 핏빛 공간이 석목의 진기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줄어들어 번천곤도 위력이 그대로 돌아온 것 같았다.

석목은 몸속의 진기를 전부 번천곤에 불어넣고는 힘껏 휘둘렀다!

쿵!

방대한 금색 물살이 곤봉에서 일었다.

핏빛 공간의 법칙이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자 석목은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이 하얀 원숭이의 두 손으로 법결을 줄줄이 날렸다.

그러자 금색 물살이 한참 동안 들끓으면서 금색 조각달로 변하였다. 그리고 조각달은 무수히 많은 금색 부문들을 반짝이며 날카롭고도 방대한 기운을 풍겼는데 마치 모든 것을 자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펑! 펑! 펑!

혈룡은 무수히 많은 곤봉 그림자 때문에 튕겨져 날아가 비틀거리며 아직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금색 조각달은 곧장 날아와 혈룡의 몸을 내리쳤다.

혈룡의 뼈 가시는 조각달을 막아낼 수 없었는지 가볍게 잘려나갔다.

쩍!

혈룡의 몸통도 두 덩이로 갈라졌고, 순식간에 폭발하여 혈운이 되어 흩날렸다.

비로는 안색이 다시 바뀌었다.

“찾았다! 법보의 위치를 찾았어…… 음? 이 자식이 혈명지기를 녹여버렸네!”

이때, 석목의 귓가에 수령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령자는 흥분하는듯하더니 목소리가 다시 차분해졌다.

“이제 안 나가도 될 것 같아…… 아니, 안 나가는 게 좋겠어!”

석목이 수령자에게 말을 하고는 몸을 날려 비로에게로 향했다.

석목은 온힘을 다해 혈해를 시전하여 핏빛 공간에 흐르는 혈명지기를 흡수했다. 그러자 육신이 다시 빠르게 회복되었다.

이때, 육신에 자리한 신비스러운 연결점들이 각성하기 시작해 회복 능력도 크게 강해져 구전현공 나무의 힘을 시전하지 않아도 가슴에 난 커다란 구멍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석목은 성격이 차분한 편이었지만 지금은 흥분을 억누르지 못했다.

혈명지기를 흡수한 후로 석목은 ‘불사신’의 단계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석목이 흥분하여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번천곤을 들고 팔을 휘두르자 금빛이 나타나 공간을 찢어버릴 듯한 금색 조각달로 변해 비로를 베어나갔다.

비로는 순간 어리둥절해져 금색 조각달이 코앞까지 날아와서야 알아차렸다.

다급해진 비로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옆에 있던 혈룡이 비로의 앞으로 날아가 금색 조각달을 맞이했다.

동시에 비로는 돌아서서 먼 곳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쾅!

굉음과 함께 금색 조각달과 혈룡이 부딪쳐 전부 폭발해버렸다.

비로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모든 게 비로가 예상하던 바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이제 막 몸을 날렸는데 석목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서 비로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번천곤을 휘둘러 다시 금색 조각달을 날렸다.

그러자 비로가 입을 크게 벌려 다섯 덩이 핏빛을 뿜어냈다.

핏빛 속에는 법보가 다섯 개 들어있었는데 그것들은 영패와 옥병, 깃발 같은 것들이었다.

이어서 비로가 다시 두 손으로 법결을 짚자, 다섯 법보가 빠르게 돌아가며 희미해지더니 붉은 광막으로 변하여 비로를 감쌌는데 과연 머리부터 발끝까지 촘촘하게 막아냈다.

붉은 광막에서 무수히 많은 부문들이 번쩍이며 법칙의 기운이 흘러나왔고, 이제 막 비로가 법칙을 펼칠 때, 금색 조각달이 날아왔다.

쾅!

붉은 광막은 단 몇 번 호흡을 할 동안 다시 부서져버렸다.

조각달은 계속해서 비로의 몸을 탐했다.

이어서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석목이 비로의 옆에 나타났다.

석목은 몸에 붉은빛을 펼치면서 활활 타오르는 화염 영역을 만들어 비로의 몸을 가둬버렸고, 영역 속에서 연이은 폭발음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에 석목이 손을 흔들어 화염 영역을 거두었다.

그러자 금빛이 서서히 흩어지면서 비로의 모습이 나타났다.

비로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는데 손 하나와 발 하나가 잘려나갔고, 몸통은 피범벅이 되었다. 비록 기운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곧 꺼져버릴 것같은 등불처럼 힘이 없었다. 또한 석목의 영역이니 신경 강자라 할지라도 애초에 움직일 수 없을 터였다.

석목은 목숨이 간당간당한 비로를 바라보며 깊은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상하다는 듯이 수령자에게 물었다.

“저 자는 이미 불사신이 아닌가? 어째서 바로 회복되지 않지?”

“저 녀석은 굉장한 공간 비술을 펼쳤어. 그리고 연이어 비술을 시전했으니 신경 중기라 해도 원기가 죄다 털렸을 거야. 불사신이라고 할지라도 정말로 죽지 않는 건 아니니까.”

수령자가 천천히 말했다.

“너…… 어째서 혈명지기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지?”

이때, 비로가 간신이 고개를 들고는 물었다.

석목은 차갑게 웃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손가락 끝을 튕기자 화염 영역 속에서 금색 화염이 펼쳐지더니 비로를 가둬버렸다.

“하하……”

“날 죽였다고 한들 달라질 게 있을까? 천정의 선장은 나뿐만이 아냐! 십이 선장 위에는 제준 어르신이 계신다! 너희들은 반드시 천정에게 멸망당할 거야!”

활활 타오르는 금색 화염 속에서 비로가 미친 듯이 웃었다.

비로가 화염 속에 묻혀버리자 미친 듯한 웃음도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 사라져버렸다.

비로가 죽자 핏빛 공간에도 여러개의 구멍이 뚫렸다가 잠시 뒤에 혈무가 되어 흩어져버렸다.

비로가 핏빛 공간으로 석목을 가둬두면서부터 공간이 터져버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일주향이었다. 물론 아무도 그 공간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몰랐지만.

석목은 피범벅이 된 채 제자리에 서 있었고, 비로가 사라진 걸보니 확실히 승리를 거둔 모양새였다.

미천 연합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오며 사기가 하늘을 치솟았다!

서문설이 복잡한 눈빛으로 멀리 있는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의 주변에는 붉은 깃발 법보 아홉 개가 허공에 떠 있었다.

석목이 붉은 깃발 아홉 개를 들고는 얼굴에 희색을 드러냈다.

이 깃발들은 비로가 핏빛 공간을 펼칠 때 썼던 법보였는데 이렇게 큰 핏빛 공간을 펼칠 수 있다면 절대 평범한 보물이 아닐 터였다.

그리고 이렇게 묶음으로 다루는 법보는 아주 진귀한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세히 들여다볼 때가 아니라 석목은 곧바로 깃발들을 거두어들이고는 현화번이 이룬 화해로 시선을 던져 법결을 날렸다.

화해가 터져버리면서 열두 화번으로 변하였다.

모든 일을 마친 석목이 법결을 줄줄이 날리자 금색 화염이 흩어지면서 비로의 시체가 드러났다.

석목은 일부러 비로의 시체를 태워버리지 않았는데 신경 중기 강자의 시신으로 분신을 복구할 수 있었다.

“음!”

석목이 다시 비로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비로의 가슴에는 주막만한 붉은 수정이 박혀있었는데 은은한 핏빛을 뿜으면서 차가운 기운을 풍겼다.

석목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붉은 수정이 풍기는 기운은 엄연히 혈명지기였고, 그것도 훨씬 더 순수한 기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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