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06화 (806/916)

806화. 석파천경(石破天惊)

석목이 하얀빛을 날려 붉은 수정을 거두었다.

이때, 붉은 수정에서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갑자기 폭발했다.

퍽!

수정이 부서지면서 혈무로 변하였다.

혈무가 한참 동안 들끓다가 희미하게 일그러진 사람의 그림자로 변하였다.

비록 용모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 사람의 그림자는 키가 훤칠했고, 어깨도 쫙 벌어져 마치 모든 걸 지탱할 것만 같은 위엄을 풍겼다.

이때, 희미해진 그림자가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가슴이 쿵 내려앉았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두려운 감정이 밀려와 도망치려 했다.

제준!

아무도 말해준 적이 없었지만 석목은 한눈에 이 희미한 그림자가 틀림없이 제준이리라는 걸 알았다.

“천정의 대군을 가로막는 자에겐 죽음뿐이다!”

희미한 그림자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는데 마치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있는 제왕이 고개를 숙여 개미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어서, 제준이 손을 들어 석목을 내리쳤다.

쾅!

백 리 안에 맴돌던 천지의 영기가 미친 듯이 흔들리면서 순식간에 빨려나가더니 오색찬란한 빛줄기로 변하였다. 그리고 소용돌이를 이루어 희미한 그림자의 손으로 몰려들었다가 다시 크기가 백 장에 이르는 붉은 손으로 변하였다.

거대한 손바닥에는 손금이 깊게 파여있었고, 무수히 많은 오색 부문들이 교차하여 흐르며 강렬하기 그지없는 법칙의 파동을 풍겼다.

붉은 손이 석목을 내리치며 공기마저 짓눌렀는데 그 모습은 마치 천지의 힘이 전부 거대한 손바닥으로 몰려들어 내리치는 것과 같아 석목은 별바다가 부서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손바닥이 다가오기도 전부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힘이 먼저 몰려와 석목은 절대 도망을 갈 수 없었다.

그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고, 몸속에 든 모든 공기까지 전부 짓눌리듯 짜여 숨을 쉬기조차 버거웠다.

석목은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무력감이 몰려왔다.

“이게 제준의 실력이다!”

석목은 깜짝 놀라더니 살고 싶은 의지가 형태 없는 힘에 짓눌려 절망과 두려움만이 남아 이제 죽음을 맞이해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 돼! 나는 여기서 죽을 수 없어!”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몸속에 남은 모든 진기를 미친 듯이 시전하여 발버둥을 쳤다. 그렇게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폭발하더니 심신을 짓누르던 힘이 단번에 부서지며 몸에서 빛이 폭발하였다.

흑, 백, 적, 청, 황, 남. 일곱 가지 빛이 동시에 번져 눈부시게 밝아졌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석목이 갖춘 잠재력은 전례 없이 터져 나왔다.

석목은 어떤 법보도 꺼내지 못한 채 두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일곱 빛깔이 한데 어우러져 칠색 손으로 변하더니 핏빛 손과 부딪쳤다.

퍽!

칠색 손은 부서져버렸고, 석목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이 튕겨져 날아가 입으로 피를 마구 뿜어 냈다.

막강한 일격을 맞아 중상을 입은 석목은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핏빛 손은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하늘을 뒤덮으며 석목을 덮쳤다.

석목은 얼굴에 쓴웃음을 지었다.

이 거대한 손바닥 앞에서 석목은 마치 정말로 한 마리 개미가 된 것 같았다.

석목의 몸속에 흐르던 진기는 극도로 혼란해졌고, 혈해와 영해까지 모두 흔들려 제대로 몸을 조절할 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석목이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죽음을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석목의 옆에서 은빛이 번지더니 그 빛은 순식간에 열 배나 밝아져서는 주변 백 리를 환하게 비추었다.

이어서 은빛이 폭발하며 흩날리다가 거대한 손바닥으로 변하여 붉은 손을 막아냈다.

두려운 위압감이 은빛에서 흘러나왔는데 그 빛은 마치 별하늘을 수놓는 은하수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신경 후기!”

석목은 빠르게 흐트러진 진기를 정돈했다. 그리고 방대한 위압감을 느끼고는 안색을 바꾸었다.

“음, 당신이군!”

붉은색 희미한 그림자가 놀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은빛은 그 말을 들어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은빛은 한참 동안 들끓더니 그 속에서 칠색 나뭇가지가 나타났다.

나뭇가지가 나타나는 순간, 일곱 가지 빛이 한참 동안 흐르다가 하늘을 찌를 듯이 영롱해졌다. 또한 빛에서 섬뜩한 파동이 흘러나와 온 별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것만 같았다.

백 리 안쪽에 드리운 천지의 영기들이 다시 흔들리며 칠색 나뭇가지로 몰려들었다. 그러자 칠색 나뭇가지의 빛이 더 밝아졌다.

순간, 칠색 나뭇가지가 희미해지며 석목에게로 날아가는 붉은 손을 맞이했다.

거대한 붉은 손은 한참 동안 흔들리더니 결국은 ‘쩍!’하며 부서져버렸다.

칠색 나뭇가지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계속해서 날아가서는 희미한 사람의 그림자에 빛을 드리웠다.

“후후, 당신이 돌아왔으니 다시 만날 날도 멀지 않았군……”

붉은 환영은 저항하지 않고서 차갑게 웃기만 했다. 그리고 칠색 나뭇가지 때문에 몸통이 부서지더니 사라져버렸다.

하늘에서 칠색 빛이 흩날리자 은빛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은색 갑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칠색 나뭇가지를 들고 나타났다.

“연나!”

석목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비록 연나가 나타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두 눈으로 그녀를 직접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벅차올랐다.

특히, 죽다가 살아난 상황이라 더욱 가슴이 벅찼다.

연나는 고개를 돌려 석목을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실력이 많이 늘었네. 좋아.”

“난 별 보잘 것도 없는 놈이야. 네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죽었을 거야.”

석목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시 제준의 거대한 손이 지닌 위력을 떠올려 본 석목은 소름이 돋았다.

“낙심할 필요 없어. 제준이 수련한 시간은 너보다 훨씬 길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네가 이런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는 게 아주 대단한 거야.”

연나가 아무 표정도 짓지 않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천정이 천하 성역을 공격하려고 보낸 대군은 전부 이곳에 있지?”

연나가 먼 곳에 있는 천정의 대군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때, 천정의 대군과 미천 연합은 모두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지를 뒤흔드는 기운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해 아무도 전투를 이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에 제준이 나타난 건 단 한 순간이라 이어서 천정의 대군은 곧바로 다시 격렬한 전투를 펼쳤다.

하지만 비로가 죽어버렸기에 천정의 대군은 혼란에 빠졌다.

미천 연합의 전함들 때문에 앞뒤가 막혀버린 천정의 전함 진형은 더욱 혼란에 빠져 서로 부딪치며 길이 막혀 도망갈 수도 없게 되었다.

“당황하면 안 된다. 전함의 방향을 돌려서 오른쪽을 집중공격해!”

천정의 전함 부대에서 서문설이 명을 내렸다.

서문설이 진두지휘하는 가운데 혼란스럽던 천정의 상황이 조금은 정돈되었다. 덕분에 서로 얽혀있던 전함들도 전부 방향을 틀어 천천히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그동안 혼란을 겪으며 극심하게 정체를 빚었고, 미천 연합의 전함들이 전력으로 추격을 하고 있어 천정의 전함이 전쟁터를 탈출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낙해(落海), 출양(出陽), 너희는 오른쪽으로 가서 틈을 만들어야한다. 나머지 신장들은 나를 따라 뒤에서 쫓아오는 전함을 막자!”

서문설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애써 차분하게 명령을 내렸다.

“네!”

나머지 신장들이 대답을 하고는 뿔뿔이 흩어졌다.

서문설은 신장 여러 명을 데리고 뒤로 날아가 쫓아오는 미천 연합의 전함들을 맞이했다.

쿵, 쿵, 쿵!

미천 연합의 전함들은 선두에서 불빛을 터뜨리며 수백 갈래 화염 기둥으로 별하늘을 수놓으며 천정의 전함들을 쫓아갔다.

그러자 서문설이 눈살을 찌푸리며 손에 든 무기를 앞으로 던져버렸다.

서문설의 무기가 허공에서 한참 돌다가 금빛을 펼쳤다. 그러자 크기가 수백 장에 이르는 거대한 칼날로 변했다.

서문설이 다시 두 손으로 재빠르게 법결을 짚었다.

휙!

거대한 무기는 마치 커다란 풍차처럼 허공에서 ‘휙, 휙’ 돌아가 뿜어져 나오는 금빛으로 별하늘을 가려버렸다.

펑!

폭발음이 연이어 울려 퍼지자 수 백 갈래 화염 빛기둥이 금빛을 내리쳤다.

순간, 금빛과 붉은빛이 하늘을 채워 다른 법보에서 이는 빛을 전부 삼켜버렸다. 그리고 천지를 뒤흔드는 폭발음이 끊임없이 빛 속에서 흘러나왔다.

화염 빛기둥은 터져버렸고, 금색 무기도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서문설은 입가에는 피를 묻힌 채 신음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다시 무기를 휘둘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신장들도 전부 무기와 법보를 날려 화염 빛기둥과 맞섰다. 이윽고 신장들이 날린 법보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서문설의 금빛과 합쳐져 채색 광막을 이루었다.

쾅!

별하늘에서는 폭발음이 끊이질 않았다.

화염 기둥이 채색 광막과 부딪치자 별하늘이 격하게 흔들렸지만 화염 기둥은 광막을 뚫어버릴 수 없었다.

이때, 별하늘에서 갑자기 하얀빛이 퍼지면서 푸르고 짧은 털이 자라난 거대한 주먹이 날아와 채색 광막을 내리쳤다.

쿵!

채색 광막이 흔들리다가 부서지자 무기와 법보들이 줄줄이 뒤로 날아갔다.

“공격!”

힘이 담긴 명령이 짧게 울려 퍼지자 별하늘에서 족히 크기가 천 장이나 되는 푸른 원숭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는 포효를 했다.

그러자 육규종을 비롯한 신경 강자들이 하늘에서 번쩍이더니 서문설을 비롯한 신장들을 덮쳤다.

허공에서 빛이 흐르며 다시 격전이 펼쳐졌다.

푸른 원숭이는 대장로 백박이 변신한 모습이었다.

백박이 주먹을 휘두르자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곤봉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곤봉에 노란빛이 줄줄이 흐르더니 천정의 전함을 향해 놀라운 기세를 몰아 공격을 날렸다.

천정 전함에 서 있던 사람들은 전부 놀란 얼굴로 법보를 꺼내 거대한 곤봉을 향해 던져버렸다.

수천 갈래 빛이 합쳐지며 채색 물살을 이루어 거대한 곤봉과 부딪쳤다.

쾅!

거대한 곤봉이 감고 있던 노란빛이 터지더니 빛나는 반원형 파동으로 변하여 전함을 베었다.

겁에 질린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며 전함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뿔뿔이 흩어졌다.

쾅!

천정의 전함이 노란빛 파동을 맞아 두 덩이로 갈라져버렸다.

하늘을 찌를 듯이 거대해진 곤봉은 전함 한 척을 부숴버리고는 곧장 다른 전함으로 날아갔다.

그 광경을 본 서문설은 이를 악물고 금색 무기를 거두어들였고, 무기를 다시 작게 줄여서 번쩍이며 전함 위로 올라왔다.

서문설이 두 손으로 무기를 꽉 잡고 몸 앞에 세워둔 채 현묘한 주문을 외웠다.

서문설의 주변에서 형태가 없는 파동이 일렁였는데 마치 바람이 불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서문설의 뒤로 막강한 기운을 풍기는 금색 사람 환영이 나타났다.

주문을 마친 서문설이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니 거대한 곤봉이 이미 그녀의 머리를 내리치고 있었다.

서문설은 눈에 싸늘한 빛이 스치더니 무기를 높이 치켜들고 앞을 향해 내달렸다.

그러자 서문설의 뒤에 있던 금색 사람 환영도 길이가 수백 장에 이르는 금빛 무기를 휘두르며 거대한 곤봉을 향해 돌진했다.

탱!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빛 무기의 끝단이 거대한 곤봉을 막아냈다.

쾅!

금빛과 노란빛이 동시에 터지자 폭풍이 휘몰아쳤다.

천정의 전함이든, 미천 연합의 전함이든 전부 막강한 힘의 파동이 일자 격하게 흔들리며 서로 부딪쳤다. 그러자 전함 밖에서 교전을 하던 신경 강자들도 막강한 힘의 여파 때문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미천 연합과 달리 천정의 전세는 싸울수록 심난해졌다. 다들 이미 기운이 떨어져 전의를 상실한데다가 적잖은 사람들이 전함에서 날아 나와 홀로 별하늘로 도망을 쳤다.

하지만 도망자들이 이제 막 몸을 날렸을 때, 채색 빛이 날아오더니 그들을 푸른 화염 속으로 묻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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