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8화. 현문 계획
방문이 열리자 입구에 금소채가 서 있었다. 그리고 금소채는 방 안에 있는 서문설을 쳐다봤다가 다시 석목을 쳐다보며 무슨 말을 하려다 멈추었다.
석목이 돌아서서 길을 내주었다.
서문설이 일어서서 문 앞까지 다가가 멈추었다. 그리고 갑자기 고개를 돌려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천정이 무엇 때문에 성역에 있는 영석 광산들을 마구 채굴하는지는 아무도 몰라. 아마 십이 선장 같은 자들이나 알고 있겠지. 하지만 천정이 무슨 일을 도모하든 간에 그리 멀지 않았어.”
“고마워.”
석목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서문설은 더는 말을 하지 않고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때, 석목은 매우 급한 일이 떠올라 다급하게 서문설을 쫓아갔다.
“서문 사저, 한 가지 더 부탁할게 있어.”
석목이 말했다.
“무슨 일?”
서문설이 다시 되돌아오며 물었다.
“주작성이 뚫리면서 종수가 조극에게 붙잡혔다는데, 알고 있어?”
석목이 물었다.
“주작성이 뚫렸다고? 언제?”
서문설은 놀라는 듯이 물었다.
“이 일을 모르는 건가?”
서문설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석목은 깜짝 놀랐다.
“설아가 모른다고 하면 정말 모르는 거야. 널 속이기라도 하겠어?”
금소채는 화가 난 듯이 말했다.
“오해하지 마. 서문 사저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놀라워서 그런 거야.”
석목이 말했다.
이어서 석목은 화도가 주작성을 공격한 일과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을 서문설과 금소채에게 말해주었다.
“화도 선장이 독단적으로 움직였을 거야. 천정이 명을 내렸더라면 아마 비로 선장이 대군을 이끌고 공격했겠지.”
서문설이 말했다.
“알았어.”
석목도 그런 짐작을 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천정으로 돌아가면 알아볼게. 소식을 접하면 어떻게 해서든 연락을 할 게.”
서문설이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고마워.”
석목이 감격스러운 마음을 내비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소채는 이상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보고는 무엇인가가 떠올랐는지 눈빛이 바뀌더니 한숨을 내뱉었다.
서문설이 복잡한 눈으로 석목을 한 번 쳐다보고는 정원 밖으로 걸어 나갔고, 그녀는 다시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동안 챙겨줘서 고마워. 설아도 있으니 잔소리는 하지 않을게. 너도 항상 조심하고.”
금소채가 웃는 얼굴로 석목에게 말했다.
그리고 석목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곧바로 서문설을 쫓아갔다.
석목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흑백 날개를 펼쳐서는 동쪽으로 날아갔다.
* * *
석목이 동부로 돌아가니 대장로와 육규종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곳에 온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맹주님, 인사 올립니다!”
둘은 석목을 보자 다가와서 인사를 올렸다.
“어서 앉으세요.”
석목이 손을 흔들며 두 사람을 자리로 안내하고는 주좌 옆에 자리한 의자에 앉았다.
“연합이 처한 상황은 어떻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이틀 전에 치른 전투로 천정의 대군을 철저히 짓밟았지만 미천 연합이 입은 손실도 적지 않았다. 때문에 미천 연합은 며칠 동안 축제 분위기였어도 석목은 이런 분위기가 어색하여 연합과 관련된 일들을 전부 대장로와 육규종에게 맡겼다.
“맹주님, 연합을 이루는 각 종족의 대군의 정비를 마쳤습니다. 언제든 불러 모을 수 있죠.”
대장로가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단번에 천정의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건 석목이 세운 비범한 전략과 뛰어난 실력이 덕분이었다.
미천거원 일족은 다시 천하 성역에서 가장 큰 종족으로 돌아와 천 년 동안 잃어버렸던 영광을 단번에 되찾았다.
대장로는 백홍과 백비와 관련된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러나 두 배신자가 죽은 일을 두고서 대장로는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천정의 대군을 물리쳤지만 아직 긴장을 놓을 때는 아니죠. 천정의 대군은 언제든 다시 침입할 수 있어요. 두 분은 빠른 시일 안에 연합의 대군을 이끌고 천정이 있는 천하 성역 곳곳으로 날아가 중요 거점들을 되찾아야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종족들이 미천 연합에 들어오게 만들어야 천정의 기습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맹주님, 걱정 마시죠. 천정의 대군을 물리쳤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점점 더 많은 종족들이 연합에 가입하려고 해요. 이 종족들은 처음에는 천정이 두려워 전부 관망만 했었는데, 우리가 천정의 대군을 물리쳤으니 그들도 누굴 선택해야 할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렇게 연합의 세력이 점점 막강해진다면 천정이 다시 대군을 보낸다고 해도 잘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육규종이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육규종은 속으로 반귀 일족을 이끌고 미천 연합에 들어온 일을 매우 뿌듯하게 여겼다.
이제 천하 성역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원래 천하 성역의 삼대 종족을 이루던 종족 중에 하나인 천봉 일족은 난관에 봉착하는 바람에 실력이 크게 줄어 곧 몰락하게 될 처지였다.
그리고 지룡 일족은 실력이 아직 여전했지만 일전에 석목과 충돌을 빚어 미천 연합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삼대 종족 중엔 오직 반귀 일족만이 원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미천거원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천하 성역을 전부 되찾게 된다면 반귀 일족은 오히려 영향력과 지위가 높아져 천봉 일족이나 지룡 일족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오르게 될 터였다.
“그래요. 이 모든 일들은 두 분이서 맡아주세요.”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두 사람을 대답을 하고는 석목이 다른 일을 하려고 한다는 걸 눈치 챘는지 인사를 올리고서 떠나갔다.
석목은 잠깐 앉아있더니 일어서서 안쪽에 자리한 비밀 석실로 향했다.
* * *
손을 흔들어 비밀 석실의 문을 연 석목은 깜짝 놀랐다.
연나가 비밀 석실 안에 앉아있었다.
은색 갑옷을 입고 있던 연나는 어느새 하얀 궁장 치마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검은 머리가 어깨까지 드리워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참 동안 멍하니 연나를 바라보던 석목은 곧바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를 돌려보냈지? 네가 옛정을 못 잊는 사람인 줄은 몰랐어.”
연나가 고개를 들어 석목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얼굴에 이상한 표정을 드러냈다.
“나와 서문설은 이미 맞서는 입장에 서 있지만, 그녀는 예전에 나를 여러 번 도와줬어. 그러니 은혜를 갚았을 뿐이야. 그리고 이곳에 서문설을 남겨둬 봤자 좋을 것도 없고.”
석목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연나는 코웃음을 치더니 눈을 감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목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무슨 말을 이어갈지 몰라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아, 축하해. 수련 경지가 신경 후기에 올랐잖아. 이미 예전 실력도 회복했을 테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계속 연락이 안 되던데.”
석목이 아무 말이나 던지며 화제를 돌렸다.
“문제가 좀 있었어. 하지만 이미 해결했지.”
연나는 눈을 뜨지 않고서 말했다.
“그럼 다행이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그러자 연나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별일 아니야. 너야말로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네.”
연나가 일어서며 말했다.
“천정이 계속 천하 성역을 침공해서 계속 막아내고 있었어. 백원왕이 미천거원 일족을 내게 맡겼는데 미천거원족들이 천정의 손에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잖아.”
석목이 말했다.
“백원……”
연나는 눈에 복잡한 기색이 스치더니 이어서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연나, 또 뭔가 생각이 난 거야?”
석목이 물었다.
연나는 여전히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듯했다. 하지만 석목이 묻는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네 실력도 많이 올라왔으니, 이제 너도 알아야할 사실이 있어. 천정의 제준이 그동안 왜 다른 성역들을 침공하며 영석을 약탈했는지 알고 있어?”
한참 후에 연나가 고개를 돌리며 석목에게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천정이 어떤 일을 도모하느라 도처에 묻힌 영석을 갈취하는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멈칫하다가 말했다.
“너도 알고 있었구나.”
연나는 눈에 의외라는 기색이 스쳤다.
“누군가 말해줬어.”
석목이 말했다.
이 일은 수령자가 석목에게 말해준 것이었다. 하지만 수령자도 천정의 계획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 못했다.
“맞아. 천정은 지금 큰일을 도모하고 있어. 제준은 천 년 가까이 재정비를 했지. 그리고 지금 벌이는 모든 일은 다시 현문 계획을 펼치려는 거야.”
연나가 말했다.
“현문 계획? 그게 뭐지?”
석목이 깜짝 놀라며 다급하게 물었다.
“현문을 온전히 부르는 말은 아마 현계지문일거야. 우리가 있는 이 성역 세계엔 미양 성역과 천하 성역 그리고 다른 큰 성역들이 있지만 모두 일컬어 부르는 말이 있지. 그게 바로 현계위면(玄界位面)이야. 위면에 있는 사람들이 상계로 비승(飛升)하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어. 그것은 바로 전설 속의 문을 열어 비승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 거야. 이 문이 바로 현계지문이지.”
연나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드디어 천정과 제준이 숨긴 목적을 알게 되었다.
“상계로 비승하는 게 이렇게 어렵다고……”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석목이 알고 있는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련 경지는 신경이었다.
수련 경지가 신경에 도달했다 해도 인족의 수명은 무한하지 않았다.
석목은 예전에 전집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상계 비승과 관련된 기록은 전혀 없었고, 그 어떤 전집에서도 성역 세계에서 누군가 상계로 비승했다는 기록을 본 적은 없었다.
“현계지문은 어디에서 왔지?”
석목이 침묵하다가 물었다.
“그건 아무도 몰라. 상고시대 때부터 존재했다고 들었어.”
연나가 말했다.
“현계지문은 엄청나게 신묘하군. 상계로 연결된다니. 그럼 그 문을 열려면 많은 대가를 치러야하겠지?”
석목이 침묵하다가 물었다.
“현계지문을 열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원기가 필요해. 그렇기 때문에 천정은 천 년 동안 계속 영석만 채굴하고 있었던 거야.”
연나가 말했다.
석목의 안색이 바뀌었다. 이게 바로 천정이 영석을 채굴하는 이유였다니.
“원기만 필요한 게 아니야. 현계지문을 열면 아주 강한 공간 진동이 일어날 터라 현계위면에 큰 영향을 미쳐서 많은 성역이 무너지겠지. 아마도 생령들은 모두 사라질 테고, 심지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 최악의 상황이라면 현계위면이 몽땅 사라질지도 몰라.”
연나가 실눈을 뜨고는 싸늘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천 년간 약탈을 벌이면서 천정은 이제 충분한 원기를 모았어. 그러니 곧 현계지문을 열려고 할 거야. 만약 제준이 현계지문을 열게 된다면 현계위면에는 큰 재난이 닥칠 테니 어떻게 해서든 제준을 막아야해.”
연나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들어 연나를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목, 나는 이제 곧 모든 전력을 모아 천정을 공격해서 제준이 현계지문을 여는 순간을 막을 거야. 나와 함께 할래?”
연나가 석목을 바라보며 물었다.
“좋아, 같이 가자!”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석목은 연나처럼 세상이 처한 일을 자신이 짊어질 책임처럼 생각하는 마음을 품고서 함께하자고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성역 곳곳이 무너진다면 석목 또한 아무렇지 않게 있을 수 없을 터라 그렇게 답했다.
미천거원 일족이든, 남해성이든 석목에겐 지켜야할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백원 선조의 의발을 들며 천정의 만선을 죽이겠다는 맹세를 했으니 그 약속을 지켜야만 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종수가 지금 행방불명이 된 상태라 천정에 붙잡혔을 가능성이 높아 어떻게든 석목은 천정에 쳐들어가 그녀를 구출해야만 했다.
그리고 석목은 연나가 혼자서 모험을 하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