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09화 (809/916)

809화. 오행마굴(五行魔窟)

석목이 그리 말하자 연나는 미소를 지었는데 대답이 매우 흡족한 듯했다.

하지만 흡족하게 생각하는 표정은 단 한순간뿐이었다.

“우리 둘이 갖춘 실력으로는 부족해. 우리가 힘을 합친다고 해도 절대 제준에겐 상대가 될 수 없어.”

연나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머릿속에서 제준이 시전했던 일격이 떠올라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게다가 그건 제준의 분신이었을 뿐인데 그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뿜어냈으니, 진짜 제준은 얼마나 대단할까?

그리고 제준에게는 십이 선장이 남아있었다. 비록 석목이 그중 몇 명을 해치웠지만 그들은 선장들 중에 가장 약한 이들이리라 짐작이 되었다. 때문에 더욱 강한 선장들이라면 절대 만만하지 않을 터였다.

“그럼 어떻게 해? 천정은 곧 현계지문을 열 테고, 우리에겐 실력을 끌어올릴 시간이 부족해.”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괜찮아, 시간은 아직 있어. 너는 빨리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를 대성까지 수련해. 그래야 우리가 힘을 합쳐서 제준과 싸울 수 있을 거야!”

연나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말은 그렇다고 쳐도 구전현공의 여덟 번째 단계는 절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야. 조극은 이미 여덟 번째 단계를 마친 것 같던데. 비록 지금은 내 실력이 조극보다 뛰어난 것 같지만 조극의 뒤에선 천정이 지지를 하고 있어. 그러니 수련 속도도 절대 뒤처지지 않을 테고. 이번에 그를 놓쳐버리면서 너무 많은 변수가 생겼어. 만약 그놈이 나보다 먼저 아홉 번째 단계를 수련한다면 큰일인데.”

석목이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너, 오행강역도를 갖고 있지?”

연나가 물었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았어?”

석목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하지만 연나는 우선 대답을 잇지 않고서 말했다.

“우선 꺼내봐.”

석목이 옥갑을 하나 꺼냈다.

“오행강역도는 구전현공을 끝마칠 때 중요한 관건이라고 알고 있어.”

연나가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석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천천히 오행강역도를 펼쳤다. 그렇게 펼쳐진 두루마리 안에는 붉은색, 파란색, 금색, 노란색, 푸른색 가마 모양 그림 다섯 개가 별 모양을 이루고 있었고, 검고 깊은 둥그런 그림이 가운데에 그려져 있었다.

석목은 오행강역도를 얻고 여러 번 훑어보았기에 이미 그림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석목이 다시 물어보는 듯한 눈빛으로 연나를 바라보았다.

“이 물건에 순수한 오행의 힘을 불어넣어야 그림 속에 그려진 가마 다섯 개를 밝힐 수 있어.”

연나가 오행강역도를 한참 동안 훑어보다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오행의 힘을 불어넣는다고? 실은 나도 예전에 그 방법을 시도해봤어. 헌데 영력을 불어넣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

석목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행의 힘을 불어넣는 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우선 구전현공의 여덟 번째 단계를 대성까지 이뤄야만 오행의 힘이 평행을 이룰 수 있어.”

연나가 설명했다.

“그렇군……”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는 아직 구전현공의 여덟 번째 단계를 대성까지 수련하지 못한데다가 천정은 곧 현계지문을 열려고 할 거야. 우리에게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연나가 말했다.

“연나, 좋은 방법이 있을까?”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일곱 번째 단계를 대성까지 수련했으니 오행에서 물의 힘이 빠졌다고 해도 나머지는 이미 평형을 이루었을 거야. 그러니 명수의 힘으로 잠시나마 여덟 번째 단계인 물의 힘을 원만까지 이끌어 오행이 평형을 이루게 만들 수 있어. 그곳에서부터 시작하면 돼. 다만 영력이 많이 필요한데다가 공법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도 매우 짧을 거야.”

연나가 말했다.

“알았어. 그렇다면 지체하지 말고 지금 시작하자.”

석목은 연나가 하는 말을 듣고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는 곧바로 오행강역도를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이어서 석목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손을 몸 앞에서 빠르게 짚어 법결을 여러 갈래 날렸다.

석목에게서 빛이 번지더니 가슴과 복부 위에 청색, 적색, 황색, 금색, 남색 작은 가마 다섯 개가 연이어 나타났다.

그중에 청색, 적색, 황색, 금색 가마 네 개는 선명했으며 옅은 빛을 뿜어냈지만 파란색 가마는 희미한데다가 뿜어내는 빛 또한 매우 어두웠다.

그 모습을 본 연나는 눈에 빛을 반짝이며 손가락으로 석목의 팔을 눌렀다.

그리고 또 다른 손을 활짝 폈다가 굽히며 손바닥에 나타났던 붉은 빛 덩어리를 부숴버렸다.

퍽!

핏빛이 폭발하며 붉은 흐름으로 바뀌더니 허공에서 핏빛 고리를 만들어 연나의 입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연나가 입술을 움직이며 어려운 주문을 외웠다.

파란빛이 연나의 손가락 끝에서 밝아져 석목의 팔에 둥그런 물결을 일렁이며 퍼져갔다.

석목의 가슴에 자리한 파란 가마 무늬도 점점 뚜렷해졌고, 풍기는 빛도 점점 불어났다.

“됐다!”

잠시 후에 석목이 소리를 질렀다.

석목이 말을 떨어뜨리기 바쁘게 연나의 손에 감돌던 파란빛이 사라져버렸다.

이어서 석목의 앞에 가마 허상 다섯 개가 나타나 빙글빙글 돌아가더니 석목이 들이쉬는 호흡과 함께 움직였다.

오색 무늬가 다섯 가마의 빛에서 흘러나와 허공에 현묘한 진도를 그렸다.

“지금이야!”

연나가 가볍게 소리쳤다.

그러자 석목이 눈에서 금빛을 뿜어내어 금색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동시에 석목은 손가락으로 오행강역도의 한 곳을 짚었다. 그러자 석목의 복부 위치에서 나타난 푸른색 가마 무늬가 점점 커져 푸른빛으로 변하더니 석목의 팔을 따라 오행강역도로 흘러들어갔다.

푸른 가마 모양 빛이 환하게 밝아지더니 곧 빛이 그림에서 튀어나와 허공에서 떠다녔다.

이어서 석목의 가슴 앞에 있던 노란 가마 무늬도 점점 커지더니 노란빛으로 변하여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이에 맞춰 그림 속에 그려진 노란 가마도 밝아지더니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어서 빛이 여러 갈래 연이어 모여들자 가마가 자리한 자리 네 곳이 전부 밝아졌다.

마지막으로 파란빛이 가마 허상에서 날아 나와 순식간에 오행강역도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그림이 밝아지더니 마지막 가마도 튀어나왔다.

다섯 가마가 전부 튀어나와 허공에서 합쳐지며 한 뼘 정도 되는 찬란한 별하늘로 변하였다. 그렇게 생긴 별하늘에선 촘촘한 별빛이 현란하게 반짝이는 게 매우 황홀했다.

“이것은…… 미양 성역의 성도.”

석목은 마치 무엇인가 떠오른 듯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정말로 이게 미양성역이라고?”

연나가 물었다.

“예전에 남해성에서 나와 동성성으로 향하며 미양 성역을 오랫동안 떠돌아다녔어. 그때 수백 장도 넘는 미양성역의 성도들을 봤었는데 그것들을 전부 합치면 이 미양 성역의 지도와 흡사할 거야…… 여기, 동성성은 이곳에 있어.”

석목이 별하늘에서 반짝이는 행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석목이 가리킨 행성은 망망한 별바다에 떠다니는 먼지처럼 작은 점과 같았다. 하지만 석목이 행성을 가리키자 연나는 곧바로 그곳을 알아봤다.

이때, 오행강역도에 그려진 깊고 둥그런 그림이 갑자기 튀어나와 별하늘이 그려진 그림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둥그런 그림은 한참 동안 별바다에서 날아다니더니 성역 북쪽에 자리한 한 곳에서 멈췄다.

“이것은 뭐지?”

석목은 둥그런 그림을 바라보며 의아한 듯이 물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전설 속에 나오는 오행마굴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

연나가 시선을 거두어들이며 마찬가지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오행마굴? 거긴 또 어디야?”

석목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행마굴은 구전현공이 대성에 이를 때가 되어서야 진입할 수 있다고만 알고 있어. 마굴 속에는 천지간에서 가장 소박한 원시 오행의 힘이 있다고 하지…… 하지만 이 모든 얘기는 전설에 불과해. 마굴에 가봐야만 알 수 있을 거야.”

연나가 말했다.

“그 방법밖에 없겠군.”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때, 별하늘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별빛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석목이 다시 오행의 영력을 강역도에 불어넣었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별하늘 또한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여덟 번째 단계가 아직 대성에 이르지 못했으니 이 정도 밖에 유지하지 못하는 거야.”

연나가 말했다.

“괜찮아, 위치는 이미 기억했으니. 연합과 관련된 일들은 따로 지시를 내려놓고 우리는 바로 출발하자.”

석목이 그리 말했다.

* * *

한 시진 뒤, 반귀 일족의 의사대전.

백박과 육규종이 한쪽에 앉아 무엇인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어서서는 입구를 향해 다가갔다.

입구에서는 두 사람이 앞뒤로 날아 들어오고 있었다.

“석 맹주님.”

백박과 육규종이 인사를 올렸다.

“인사는 필요 없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대장로와 육규종은 석목의 뒤에 서 있는 연나를 바라보며 안색이 바뀌었다가 이내 연나에게도 인사를 올렸다.

연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모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를 돌파할 기회를 찾게 되어 무암성을 잠시 떠나야만 해요.”

석목이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좋은 일이군요.”

대장로가 희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석 맹주님, 축하드립니다.”

육규종도 축하하는 말을 전했다.

“이번에 나가게 되면 시간이 또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으니 종족들과 관련된 일은 두 분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맹주님,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저희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육규종이 정중하게 말했다.

대장로는 석목과 연나를 훑어보고는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물었다.

“혹시 연나 선배님도 맹주님과 함께 가십니까?”

연나는 대장로가 일컫는 호칭을 듣고서 놀라는 듯이 물었다.

“백박, 날 잊었는가?”

“선배님…… 혹시……”

대장로는 눈에 놀란 기색이 점점 짙어지다가 믿기지 않는 듯이 목소리를 떨면서 말했다.

“예전에 백공 장군을 따라다니며 한번 본 적이 있었지?”

연나가 말했다.

“보화 선자…… 정말 보화 선자님입니까?”

대장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육규종은 깜짝 놀라며 연나를 훑어보았다.

“너무 오래전 일이니 기억이 안날만도 하지. 나는 같이 가서 석목이 구전현공 아홉 번째 단계를 수련하는 걸 도울 예정이라네.”

연나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다행이군요……”

대장로는 간신히 벅차오르는 기분을 억누르며 말했다.

“아, 채아는 어디 있습니까? 폐관 수련을 한 뒤로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석목이 물었다.

“채아는 이번 전쟁에서 많은 걸 깨달았다며 무암성에 자리한 극화(极火) 지역에서 수련을 하는 중입니다.”

육규종이 말했다.

“아마 여러 가질 먹으러 갔을 겁니다. 화령 적백이나 잡으러 갔겠지요. 그럼 이번에는 채아를 데려가지 않는 게 좋겠군요. 채아가 돌아오면 전달해주세요. 신식으로는 따로 연락하지 않을 테니.”

석목이 말했다.

“네.”

육규종과 대장로가 일제히 대답했다.

석목은 여러 가지 일을 지시한 후에 연나와 함께 무암성을 떠나 미양 성역으로 향했다.

* * *

만 리에 걸쳐 길게 뻗어 있는 두터운 구름 위에 또 구름이 한 송이 피어오르자 마치 성난 파도가 기슭을 때리는 것처럼 겹겹이 휘몰아쳤다.

구름 파도의 끝엔 높이가 백 장에 달하는 금색 궁전이 있었다.

금색 궁전의 밑바닥은 서서히 소용돌이치는 구름바다에 가려져 그 위에 뿌리를 내린 듯이 구름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궁전 안에는 굵직한 금빛 돌기둥이 숲처럼 서 있었는데 그 밖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아서 텅텅 비어보였다.

대전 한복판에는 덩치가 크고 용모가 점잖은 청년이 숙연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청년 앞에는 키가 열 장쯤 되는 사람의 환영이 그와 마주 서 있었고, 몸에 실존하는 듯한 금빛을 두르고 있었다.

사람의 환영은 이렇게 서 있기만 해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듯이 엄청난 위엄을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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