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화. 청란 유적
“보아하니, 석목 이놈은 정말로 능력이 있는 것 같군. 그렇다고 너무 신경을 쓸 건 없다. 네가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를 대성까지 이루면 그놈은 네게 가장 좋은 먹잇감이 될 테니.”
환영의 목소리가 대전에서 울려 퍼졌다.
“네!”
조극이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특별히 기른 먹잇감도 준비를 마쳤으니 너는 이제 충분히 준비를 마쳐 단번에 성공하기만 하면 되겠구나.”
환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존상님, 제가 만약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를 끝마치게 되면 저는 이 사람들이 지닌 현공의 힘을 빨아드릴 수 없습니다.”
조극이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말했다.
“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는데 내가 아직도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너에게 줘야하느냐? 백원처럼 놀라운 자질을 지닌 사람은 너무 적어. 물론 네 자질도 뛰어나긴 하나 백원과 비교한다면 아직 턱없이 부족하구나.”
제준의 환영은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고, 이어 위엄찬 투로 말했다.
조극은 곧바로 다시 고개를 떨어뜨리며 이를 악무는 게 몹시 내키지 않는 것만 같았다.
“존상님, 제자가 그 전에 처리해야할 일이 있는데 혹시 고명(高明) 선장님의 도움을 받아도 되겠습니까?”
조극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제준은 조극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그래, 그렇게 내키지 않다면 고명과 함께 가보거라. 이 법보도 네게 도움이 될 게다.”
환영이 손바닥으로 허공을 짚었다. 그러자 손바닥 주변으로 파동이 일어나더니 그 속에서 한 줄기의 빛이 날아 나와 조극의 손에 떨어졌다.
그 말을 들은 조극은 무엇 때문에 고명 선장이 돕길 바라는지 말하지 않았지만 제준이 이미 속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아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제준이 하는 말을 듣던 조극은 얼굴에 희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존상님, 감사합니다.”
* * *
미양 성역 북쪽에 자리한 한 이름 없는 행성.
이 행성은 그리 크지 않은데다가 황사가 하늘에 가득 차있었고, 광풍이 휘몰아쳐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하늘 끝까지 치솟는 모습이 매우 황량해보였다.
두꺼운 흙먼지가 뭉쳐 노란 구름을 이루며 온 별을 감싸 행성 주변에 드리운 성운과 하나가 되어 밖에서 들여다보면 거의 이 행성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라 마치 잊힌 행성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세상에서 잊힌 이 별의 고요함을 깨트렸다.
두 갈래 빛이 멀리서부터 날아오더니 순식간에 근처에 이르렀다. 그리고 빛이 번쩍이는 사이에 연나와 석목이 나타났다.
“지도가 없었더라면 이곳에 이런 행성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절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야.”
석목이 앞에 펼쳐진 성운을 바라보며 눈에 금빛을 반짝였다.
“오행마굴을 숨기기 위해서일 거야. 구전현공을 수련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여길 찾고 싶어할 테니까.”
연나가 말했다.
“제대로 찾았기를.”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두 사람은 오행강역도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천하 성역에서 미양 성역으로 와서는 몇 달 동안 헤매다가 마침내 이곳을 찾았다.
“가자.”
석목이 하얀빛을 번쩍이며 성운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연나는 석목의 뒷모습을 한번 쳐다보고는 따라갔다.
연나와 석목은 행성을 뒤덮은 노랗고 두터운 구름을 뚫고서 곧장 행성으로 내려왔다.
행성 위에는 광풍과 모래 바람이 휘몰아치며 사방팔방을 휩쓸었다.
석목은 손에 빛을 반짝이며 보호막을 펼치더니 자신과 연나에게 드리워 모래바람을 피했다.
연나는 석목을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여기가 맞는 것 같은데 오행마굴로 들어갈 실마리는 어디 있지? 여긴 너무 황량하잖아.”
석목은 주변을 훑어보더니 동시에 행성을 향해 신식을 내보냈다.
이 행성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석목의 신식으로 단번에 전부를 드리울 수는 없었다.
“내가 볼게.”
연나가 담담하게 말하더니 미간에서 은빛을 반짝이자 방대한 신식의 힘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연나가 드리운 힘은 석목의 신식보다 몇 배는 더 커 온 별을 단번에 드리울 수 있었다.
석목은 눈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신경 후기 강자가 쓰는 신식의 힘이 이렇게 방대하다니.
연나는 한참 동안 훑어보다가 눈에 빛을 반짝였다.
“찾았어?”
석목이 다급하게 물었다.
“이쪽인 것 같아. 따라와.”
연나가 그리 말을 하고는 몸을 날렸다.
석목이 이어서 뒤를 따라갔다.
* * *
잠시 후에 두 사람은 커다란 골짜기로 내려왔다.
골짜기의 깊은 곳에는 무너진 석대가 하나 있었다. 무너진 석대는 법단 같았는데 먼지로 덮여있는 모습을 보니 오랜 기간 방치가 된 것 같았다.
법단 주변에 가마 모양 조각상이 하나씩 서 있었으며 적색, 금색, 황색, 남색, 녹색이 뿜어져 나왔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다섯 조각상은 별 모양으로 놓여 있었고, 오행강역도에 그려진 가마 모양과 똑같은 생김새였다.
석목과 연나가 하늘에서 법단 위로 내려왔다.
“역시 이곳이었어.”
석목은 법단 주변에 선 가마 조각상들을 번갈아 보며 기뻐했다.
그리고 신식으로 주변을 훑어보고는 다시 시선을 법단의 꼭대기로 던졌다.
법단의 꼭대기 쪽엔 부문이 줄줄이 그어져 커다란 진법을 이루었다.
“이건…… 전송진법?”
석목은 한참 동안 훑어보다가 말했다.
“음, 그것도 아주 오래된 진법이야. 하지만 아직 사용할 수는 있어.”
연나가 은빛을 날려 법단에 드리우더니 샅샅이 훑어보았다.
“이 전송진법이 전설 속의 오행마굴에 닿는다는 건가?”
석목이 물었다.
“그건 나도 잘 몰라. 하지만 단서는 이곳에 있어. 우선 이 진법을 가동시키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자.”
연나가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과 연나는 모두 진법을 섭렵한데다가 석목에게는 수령자도 있었다. 확실히 수령자는 모르는 게 없었고, 상고시대의 진법에 대해서는 더욱 정통했다.
둘은 한참동안 바쁘게 움직이며 파손된 진법을 복구했다. 그리고 다섯 조각상의 진안에 들어가 있던 영석들을 전부 바꾸었다.
석목과 연나는 나란히 진법 앞에 서서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주문을 외우면서 법결을 날렸다.
윙!
진법 위에 적힌 무늬가 전부 밝아지더니 다섯 가마 모양 조각상들은 훨씬 밝은 빛을 뿜어냈다. 이어서 색깔이 다른 빛기둥 다섯 갈래가 하늘로 치솟았다.
다섯 빛기둥이 하나로 합쳐지며 다시 법단 위로 모였다.
쿵!
법단 위에 그려진 진법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빠르게 돌아갔다. 그리고 화려한 오색 빛이 진법에서 뿜어져 나와 석목과 연나를 안쪽으로 드리웠다.
두 사람은 그렇게 법단 위에서 사라져버렸다.
* * *
석목은 고개를 흔들자 어지럼증이 조금 가라앉는듯했다.
그런데 연나는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것 같아 석목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흠칫 놀랐다.
두 사람은 지금 푸른 공간 속에 놓여 있었다.
얼핏 보기엔 비경 속인 듯싶었지만 큰 우여곡절을 겪은 듯이 여간 허술해 보이지 않았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온통 커다란 자국이 긁혀있었고, 어떤 곳은 너무 깊어 바닥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사방을 감싼 허공에도 크고 작은 공간 균열들이 번쩍였다.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 더욱 놀라운 건 무너지기 직전 같은 이 공간에 천지의 영기가 유난히 짙었고, 바닥에는 희귀하고 기이한 나무들과 영화, 영초들이 왕성하게 자라나 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멀지 않은 곳에서는 푸른 고목 한 그루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었고, 고목은 눈에 보이는 푸른빛을 풍기고 있어 바라만 봐도 기분이 상쾌했다.
보건대 고목은 굉장히 보기 드문 진귀한 물건일 터였다.
“여기는 어디지? 오행마굴은 아닌 것 같아.”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연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눈에 의아한 기색만 내비쳤다.
“이 나무는 어딘가 익숙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아, 청란성수잖아!”
석목은 커다란 나무를 한참 동안 훑어보다가 놀란 표정을 내비치며 소리를 질렀다.
“뭐?”
연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맞아. 청란성수야!”
석목은 푸른 나무 옆으로 날아가 다시 자세하게 훑어보고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푸른 나무는 엄연히 청란성지의 상징이었던 청란성수였다!
그런데 청란성수가 어째서 이곳에 있을까?
“여긴…… 청란성지 안인가?”
석목은 확실하지 않은 듯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 이 공간은 네가 머물렀던 청란성지의 현계 공간과 비슷한 느낌을 풍기고 있어. 하지만 여긴 현계 공간보다 천지의 영기가 훨씬 짙게 흘러.”
연나가 침묵하다가 말을 꺼냈다.
연나는 청란성지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었는데 그리 길게 머문 건 아니었지만 연나가 수련한 공법들은 공간과 관련된 공법들이라 연나는 공간의 기운을 매우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청란성지의 유적으로 돌아온 것 같아. 혹시 여기가 그때 머물던 지계 공간일까? 혹은 천계 공간?”
석목이 신식을 흘려보내 주변을 훑어보며 말했다.
청란성지는 이미 천정에 귀속된 이진종이 무너뜨렸지만 다행이 여긴 철저히 무너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찌됐든 여기로 전송이 되었으니 아마 오행마굴과 관련이 있을 거야. 우선 오행강역도를 꺼내봐.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니.”
연나가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행강역도를 꺼냈다.
오행강역도는 나타나자마자 손에서 날아나가 팽팽하게 펼쳐졌다.
석목이 다급하게 오행강역도를 붙잡으려 했지만 결국 잡지 못했다.
지도에 그려진 가마 그림 다섯 개가 스스로 빛을 발해 윙윙 소리를 내더니 이어서 빛기둥 다섯 갈래가 허공 속으로 날아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석목은 매우 기뻤다.
오행강역도는 크기가 빛 다섯 갈래로 싸여 빠르게 불어났고, 빛기둥도 점점 커졌다.
오색 빛기둥은 소리를 내며 천천히 합쳐져서는 희미하고도 괴상한 빛기둥으로 변하였다.
빛기둥이 허공에 떨어지니 주변이 물 위처럼 격하게 흔들렸고, 무수히 많은 부문들이 공간에서 날아 나와 커다란 손으로 뭉쳐 허공을 향해 내달렸다.
큰 손이 허공을 잡아당기자 허공에 커다란 공간의 입구가 나타났다.
입구는 칠흑처럼 어두웠고, 무수히 많은 검은빛이 일그러지더니 살아있는 듯이 꿈틀거리는 것으로 보아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오행 원기의 파동도 어두운 공간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혹시 이 안이?”
석목이 흠칫 놀랐다.
“들어가 보면 알게 되겠지.”
연나가 눈에 은빛을 반짝이며 공간 통로를 바라보았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고 공간 통로 속으로 몸을 날리려다가 갑자기 무엇인가가 떠오른 듯 고개를 돌려 연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연나, 같이 들어가지 않을 거야?”
연나가 한 말대로라면 오행마굴은 아마 아주 드문 수련 성지일 터였다.
“정말 오행마굴이라 할지라도 내게는 큰 쓸모가 없을 거야. 혼자서 들어가. 나는 밖에서 기다릴게.”
연나가 말했다.
“그래.”
석목이 공간 입구로 날아 들어갔다.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굵직한 하얀빛이 먼 곳에서 석목에게로 날아왔다.
석목이 갑자기 한 손으로 허공을 잡자 열반봉염이 나타나 금색 화염 방패로 변하더니 몸 앞을 막았다.
퍽!
하얀빛이 화염 방패에 떨어지는 순간, 방패는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열반봉염도 하얀빛에 닿는 순간, 곧바로 해체되어 흩어져버렸는데 그 모습이 마치 가벼운 종잇장과 같았다.
열반봉염은 석목이 쓸 수 있는 가장 막강한 화염 신통이라 그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가볍게 부서져버리다니.
퍽!
금색 화염 방패는 눈 깜짝할 사이에 부서져버렸으며 하얀빛은 계속해서 석목에게로 날아왔다.
석목은 곧바로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수십 장 밖에 나타나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석목의 왼쪽 팔 부분에서 옅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피부를 태워버렸다.
석목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하얀빛에 스쳤을 뿐인데 이렇게 심하게 타버리다니. 대체 무슨 신통일까?
석목은 하얀빛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며 실눈을 떴다.
수 백리 밖 허공에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서른이 좀 넘어 보이는 남자는 용모가 뛰어났다. 하지만 두 눈을 회색 천으로 가린 걸 보니 실명을 한 사람 같았다.
남자의 오른쪽 손바닥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금 전에 날아온 하얀 빛기둥은 그의 손바닥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