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11화 (811/916)

811화. 민목(泯目)

“누구냐?”

석목이 묵직한 목소리로 말하며 손에 금빛을 반짝였다. 그러더니 번천곤에서 강력한 파동이 흘러나왔다.

말도 없이 공격을 하는 걸 보니 벗이 아닌 적이라는 사실은 확실했다. 또한 상대는 수련 경지도 신경 중기였다.

“천목 선장(天目仙將) 고명!”

이때, 연나가 석목의 옆에 나타나더니 얼굴에 두려운 기색을 내비쳤다.

“선장?”

석목은 동공이 줄어들었다.

“보화 선자님, 오랜 세월 못 뵀는데 풍채는 여전하시군요. 축하드립니다.”

눈을 가린 남자는 연나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민목 신통이 칠중(七重)까지 도달했군. 그동안 많이 수고했겠어.”

연나가 담담하게 말했다.

“저 녀석의 두 손을 조심해. 천정의 세 번째 선장인 천목 선장이야. 손바닥에 달린 천목이 내뿜는 민목에는 파멸의 법칙이 담겨있어. 그러니 나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이야.”

석목의 귓가에 연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석목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세 번째 선장!

예전에 만났던 비로나 화도와 달리 이 자는 십이 선장들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전력을 갖추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 사람이 왜 여기에 나타났을까? 혹시 오행마굴을 위해서? 아니면 석목을 따라왔을까?

이 사람은 천목이라 불리지만 두 눈을 가리고 있는데다가 연나가 석목에게 고명의 두 손을 조심하라고 말했다. 혹시 두 눈이 손에 자라났을까?

석목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전설 속의 오행마굴이 청란성지의 폐허 속에 숨겨져 있었다니. 후후 놀랍군.”

고명이 고개를 들어 허공에 뚫린 공간 통로를 한번 ‘쳐다보고’는 후후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기분이 찜찜하더라니. 네가 계속 따라오고 있었군.”

연나가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보화 선자마저 제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니 놀랍군요. 혹시 다른 생각에 빠져있던 게 아니실지?”

고명은 웃는 듯, 아닌 듯한 얼굴로 석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닥쳐!”

연나는 얼굴이 순간 붉게 달아오르더니 화를 냈다. 그리고 몸을 날려 칠보묘수를 꺼내들고는 칠색 빛을 드리웠다.

그러자 거대한 칠색 나무 그림자가 허공에 나타나더니 고명에게로 우르르 몰려갔다.

쾅!

공간은 격하게 흔들리더니 칠보묘수의 힘을 막아내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연나의 안색이 바뀌자 칠보묘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도 순식간에 줄어들면서 공간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고명은 하하 웃으며 두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고명의 두 손에서 하얀빛이 폭발하더니 하얀 빛기둥이 두 갈래 날아 나와 칠보묘수 앞을 가로막았다.

석목은 두 눈에서 금빛이 흘렀다.

이제야 석목은 제대로 보았는데 과연 고명의 두 손바닥 가운데엔 은색 눈이 한 쌍 붙어있었다.

놀라운 빛기둥은 고명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연나가 주문을 외우며 가느다란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칠보묘수가 빛을 번쩍이더니 본체가 빠르게 자나라 순식간에 크기가 몇 배나 커졌다.

동시에 일곱 나뭇가지에서 빛이 번지더니 칠색 꽃봉오리가 활짝 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부문들이 꽃봉오리에서 튕겨 나오며 강렬한 법칙의 파동도 흘러나왔다.

연나가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으며 소리를 질렀다.

모든 꽃봉오리가 곧바로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더니 고명에게로 향했다.

고명은 꽃봉오리를 몹시 두려워하는 것처럼 안색이 바뀌었고, 그는 몸을 뒤로 날려 두 손으로 법결을 짚었다. 그러자 미간에 가로로 박힌 눈이 하얀빛을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몸 앞으로 일곱 갈래 빛벽을 만들었다.

퍽, 퍽, 퍽!

칠색 꽃봉오리가 첫 번째 빛벽을 순식간에 뚫어버렸다.

구멍이 뚫려버린 빛벽은 번쩍이더니 흩어져 찬란한 빛이 되어 쏟아졌다. 그러자 칠색 꽃봉오리도 조금 어두워졌지만 꽃봉오리는 멈추지 않고 두 번째 벽을 내리쳤다.

빛벽들이 줄줄이 부서지면서 칠색 꽃봉오리도 빛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그렇게 여섯 번째 빛벽과 부딪치는 순간, 꽃봉오리는 전부 흩어져버렸다.

석목은 교전을 치르는 두 사람을 보며 연나를 도와줘야하는 게 아닌지 한참 동안 망설였다.

“이놈은 내가 해결할 테니 너는 빨리 오행 마굴로 들어가!”

이때, 연나의 목소리가 석목의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석목은 연나가 우세하니 저놈을 해치우지 못한다하더라도 스스로를 지키는 건 큰 문제가 아니리라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은 곧바로 공간 통로로 향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석목은 안색이 굳더니 곧바로 번천곤에 금빛을 내뿜으며 가로로 휘둘렀다.

“누구냐! 나와라!”

금색 곤봉 그림자가 공간 통로 근처의 허공을 내리쳤다.

금색 곤봉 그림자가 내는 빛은 매우 빨랐고,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갔다. 그러자 이때, 허공에서 파동이 일렁이더니 하얀빛이 부서지면서 숨어있던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극!”

석목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스쳐지나갔다.

아마 조극도 오행강역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먼 곳에서부터 이곳까지 쫓아왔을 터였다. 그 점을 보아하니 조극 역시 오행마굴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연나가 말한 바를 추측해보면 천목 선장은 아마 조극을 도와 석목을 쫓아왔을 터였다.

숨어있던 조극은 자신의 정체를 들켜버리자 전혀 망설이지 않고서 붉은빛으로 변하여 공간 통로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석목이 조극을 쫓아갔다.

그리고 하얀빛을 드리우며 주먹을 날렸다.

훅!

커다랗고 하얀 주먹 그림자가 나타나자 막강한 힘의 파동이 순식간에 공간을 꽉 채워서 공기마저 굳어버렸다.

쿵!

주먹 그림자가 붉은빛을 내리치자 붉은 반투명 광막이 나타나더니 번쩍이다가 이내 부서져버렸다.

조극은 비틀거리며 나타나더니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막강한 힘에 밀려나 빠른 속도로 튕겨져 날아갔다.

하지만 조극도 찬란한 금빛으로 주먹 그림자를 막아내 숨을 몰아쉬고는 있었지만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다.

석목이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동안 조극은 실력이 많이 강해진 것 같았는데 만약 예전이었더라면 절대로 석목의 주먹을 받아내지 못했을 터였다.

석목이 차갑게 비웃으며 살의를 불태워 다시 조극을 덮치려 할 때였다.

“잠깐만! 석목, 이걸 봐.”

조극이 눈을 깜빡거리며 하얀 구체 하나를 꺼내들고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하얀 구체 속에는 종수가 들어있었다.

종수는 돌기둥에 묶여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공격을 하려던 몸을 멈춰 세웠다.

연나는 신식으로 석목을 훑어보고는 곧바로 그가 처한 상황을 알아차렸다.

“꺼져라!”

연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명을 바라보다가 머리 뒤로 칠색 고리를 둘렀다.

고리에서 빛이 반짝이자 ‘윙!’ 소리와 함께 무수히 많은 칠색 빛이 날아 나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고명을 내리쳤다.

동시에 연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공간이 이토록 취약하지만 않았더라면 연나는 더욱 강력한 위력을 시전할 수 있어 온힘을 다해 이미 고명을 죽여 버렸을 터였다.

“보화 선자님, 그냥 가만히 있는 편이 좋을 겁니다.”

고명이 담담하게 웃으며 두 손을 앞으로 나란히 들고는 말했다.

순간, 고명의 손바닥에 붙어있는 은빛 눈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와 무수히 많은 하얀 부문들이 빛과 얽히고설키더니 커다란 눈동자 허상이 되어 나타났다.

칠색 빛이 빠르게 날아와 곧장 고명의 몸을 뚫어버릴 것만 같은 기세를 드러냈지만 고명은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고명은 낮게 소리를 지르며 손바닥에 드리운 은빛을 번쩍였다.

고명의 등 뒤에 있던 커다란 눈동자 허상이 번쩍이더니 기이한 파동을 뿜어내 순식간에 연나와 그녀가 날린 공격을 전부 감쌌다.

하얀 파동이 드리우자 연나가 날린 모든 공격들은 순식간에 느려졌는데 뿜어져 나오던 칠색 빛마저 속도가 몇 배나 느려졌다.

고명이 몸을 날려 가볍게 연나가 날린 모든 공격을 피했다.

하얀 눈동자 허상이 고명과 함께 움직이자 풍기던 기이한 파동이 순식간에 사라져 연나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시간의 법칙! 민목 신통을 이 수준까지 수련했다니!”

연나가 실눈을 뜨며 말했다.

“별 거 아닙니다. 시간의 법칙을 조금 깨우쳤을 뿐이죠. 보화 선자님께서 더 가르쳐주시지요.”

고명이 연나의 앞을 가로막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나가 다시 칠보묘수에 빛을 번쩍이며 칠색 영역으로 고명을 감쌌다.

고명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주문을 외웠다.

고명의 뒤에 떠있던 하얀 눈동자가 빛을 번쩍이며 다시 하얀 파동을 날려 연나의 칠색 영역과 부딪쳤다.

* * *

연나와 고명이 격전을 치르는 소리와 거대한 힘의 파동이 근처까지 몰려왔지만 석목과 조극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전에 얘기 했잖아. 조령수는 우리 천정의 손에 있다니까. 내가 아무 준비도 없이 왔을 거라 생각했나? 흥! 네 여자를 죽일지 말지 그 여부는 오롯이 내 손에 달려있어. 내가 이 전신 영구(影球)를 부숴버리기만 하면 내 부하가 곧바로 조령수를 죽이겠지!”

조극이 하얀 구체를 들고는 큰소리로 웃었다.

석목은 하얀 구체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이를 악물었다.

“원하는 게 뭐야?”

석목이 천천히 말했다.

“걱정 마. 내가 할 요구는 그리 많지 않으니. 네가 이 오행마굴로 향하는 통로를 뚫었으니 나는 너와 함께 들어가서 다시 공평하게 경쟁을 하고 싶군. 누가 먼저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를 대성까지 수련하여 그 오묘함을 깨우칠까.”

조극의 눈에서 의기양양한 기색이 스쳤다.

말은 그럴 듯했지만 조극이 들고 있는 하얀 구체는 석목의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공평한 점이라곤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

석목이 일그러진 얼굴로 천천히 고래를 끄덕였다.

조극은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기서 움직이지 마. 내가 먼저 공간 통로로 들어갈 테니!”

조극은 위협을 하듯이 하얀 구체를 든 손을 흔들며 말했다.

석목의 안색은 퍼렇게 질려버렸지만 차마 움직일 수 없었다.

조극이 몸을 날려 석목을 스쳐지나 공간 통로 앞에 서서 환하게 웃으면서 안으로 들어가려했다.

이때, 조극의 뒤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극은 안색이 굳어서는 고개를 돌렸다.

석목이 얼음 같은 눈빛을 내비치며 조극의 뒤에 나타났다.

번천곤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끝없는 위력을 내뿜으며 조극의 머리를 내리쳤다.

방대한 위압감이 번천곤에서 터져 나오자 주변 공간 수백 장이 전부 굳어버렸다. 그리고 조극은 마치 만 장이나 되는 거대한 봉우리가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어 무겁게 가라앉았다.

“너……”

조극이 소리를 지르며 하얀 구체를 높이 치켜들더니 내리치듯이 움직였다.

하지만 석목은 조금도 거들떠보지 않은 채 번천곤에 다시 금빛을 드리우며 조극을 내리쳤다. 그 모습을 보니 이제 막 조극의 머리를 깨부수려는 것만 같았다.

이때, 하얀 파동이 먼 곳에서 날아와 석목의 몸에 드리웠다.

석목이 움직이는 속도는 순식간에 열 배 가까이 느려졌고, 번천곤이 내려오는 속도 또한 매우 느려졌다.

먼 곳에 있던 고명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선 붉은 피를 뿜어냈다. 그러자 등 뒤에 뜬 하얀 눈동자에서도 빛이 번쩍이더니 검붉은 균열이 두 줄 나타났다.

조극이 다시 희색을 드러내며 물고기가 헤엄을 치듯 번천곤에서 빠져나와 공간 통로 속으로 들어갔다.

하얀 파동이 흩어지자 석목 또한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석목의 안색은 굳어있었다.

석목이 고개를 돌려 고명을 바라보니 그는 칠색 영역 사이에 있었는데 석목에게 시선을 돌린 동안 연나에게 공격을 받은 것이었다.

석목은 시선을 거두어들이고는 곧바로 공간 통로 속으로 들어갔다.

석목은 눈앞에 하얀빛이 반짝여 잠깐 동안 앞이 잘 보이지 않다가 몸이 다시 허공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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