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12화 (812/916)

812화. 상극의 길

잠시 후에 석목은 다시 바닥으로 내려와 드넓은 사막에 놓이게 되었다.

퍽!

석목 가까이에 조극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동시에 짙은 살의를 내뿜었다.

“네가 감히…… 조령수의 목숨은 내 손에 있어. 그녀를 죽이고 싶나? 날 공격하다니!”

조극이 소리를 질렀다.

“같은 수작에 두 번 속을 줄 알아? 수아는 네 손에 없어.”

석목이 차갑게 말했다.

조극은 눈빛이 멈칫하는 듯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단 한순간이었지만 석목은 조극의 표정이 달라지는 걸 읽어내고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주작성에서 너는 내게 참패를 당했지. 만약 수아가 정말 네 손에 있었다면 너는 이미 그 일을 폭로해서 나를 묶어두려 했을 거야. 그러니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 네 손에 들고 있는 전신 구체가 진짜라면 숨어서 날 쫓아올 필요 따윈 없었잖아?”

석목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조극은 얼굴이 더욱 굳어지더니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고는 하얀 구체를 거두어들였다.

두 사람은 전부 내뿜는 살의가 하늘을 찔렀지만 아무도 먼저 공격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둘은 서로 마주 서서는 신식을 보내 주변을 훑어보았다.

석목은 곧장 이곳이 밖에서 보던 사막들과 똑같다는 걸 알아차리고 공간의 힘으로 이뤄낸 환경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막의 하늘에는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이 걸려있었는데 뜨거운 온도 때문에 사방이 온통 건조한 기운으로 뒤덮였다.

하지만 이상한 건 주변 수십 리 안에 살아서 숨을 쉬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고, 위험한 것들 또한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훅!

석목의 머리 꼭대기에서 하얀빛이 밝아졌다.

수룡이 하얀빛에서 날아 내려와 입을 크게 벌리고는 석목의 머리를 물어뜯으려했다.

석목이 몸을 번쩍이며 피했다.

펑!

수룡이 노란 사막 속으로 질러 들어가 투명한 물빛을 튕기더니 사막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석목이 조극을 바라보았다.

“널 묻기에 딱 알맞은 곳인 것 같군.”

조극은 한 손에 은색 장극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수정탑을 하나 들고 있었다. 그리고 조극은 싸늘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번천곤을 꽉 쥐었다. 그리고 ‘슥!’ 몸을 날려 공기속으로 사라졌다가 순식간에 조극 앞에 나타나 곤봉을 내리쳤다.

조극이 장극을 들어 올리고 곤봉과 맞서려다가 눈가를 파르르 떨며 한쪽으로 날아갔다.

석목 또한 멈칫하다가 마찬가지로 한쪽으로 피했다.

두 사람은 굳은 얼굴로 둘 사이에 펼쳐진 사막을 바라보았다.

이때 갈색 모래가 갑자기 커다란 언덕을 이루었다.

이어서 언덕의 꼭대기가 터지더니 짙은 갈색 손이 하나 튀어나왔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한 기색을 내비쳤다. 분명 석목이 조금 전에 신식으로 사막을 훑어봤을 땐 아무것도 없었는데 갑자기 손이 튀어나오다니.

모래가 계속해서 ‘스슥!’ 움직였다.

튀어나온 커다란 손은 바닥을 짚으며 몸통을 땅속에서 뽑아냈다.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은 몸이 짙은 갈색이었는데 얼굴이 희미해 잘 보이지 않았으며 눈이 있을 자리에는 구멍만 두 개 뚫려있었다. 미루어보건대 눈앞에 선 건 진정한 사람이 아니라 모래로 만들어진 ‘모래 사람’이었다.

모래 사람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고개를 돌려 가까이에 있는 조극을 덮쳤다.

조극이 눈살을 찌푸리며 장극을 날려 모래 사람의 몸통을 뚫어버렸다.

가슴에 구멍이 뚫려버린 모래 사람은 마치 아무 느낌도 들지 않는다는 듯이 계속 흉악한 모습을 드러내며 조극을 덮쳤다.

조극은 장극을 가로로 휩쓸었다.

퍽!

모래 사람은 곧장 부서져버려 모래로 변하였다.

석목은 무표정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며 곤봉으로 발 옆에서 이제 막 올라오고 있는 모래 사람을 찔러버렸다.

모래 사람은 다시 가루가 되어 부셔졌고, 평범한 모래로 변했다.

석목은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이 입을 벌렸다. 확실히 모래 사람은 사막과 한 몸이었기에 석목은 사막의 기운만 느낄 수 있었을 뿐, 모래 사람 자체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다.

석목이 깊은 생각에 잠긴 사이에 사막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이전처럼 언덕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모래 쓸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고, 곧이어 모래 사람들이 울룩불룩 언덕을 뚫고 기어 올라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천, 수만 구나 되는 모래 사람들이 개미들처럼 석목과 조극을 꽁꽁 둘러쌌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가까이에 서 있던 조극도 안색이 굳어버렸다.

모래 사람들은 사막 위로 올라오더니 희미하게 뭉개진 얼굴로 석목과 조극을 바라보다가 미친 듯이 덮쳤다.

순식간에 백 구가 넘는 모래 사람들이 석목의 옆으로 다가와 손과 발을 휘두르며 기세등등하게 그를 덮쳤다.

석목은 곧장 옆으로 날아가 번천곤을 가로로 휩쓸었다.

금빛이 빠르게 날아 나와 날카로운 칼날을 이뤄 백 구 가까이 되는 모래 사람들을 쓸어버렸다.

퍽, 퍽, 퍽!

모래가 흩어지는 소리와 함께 모래 사람들도 흩날리다가 땅에 가라앉았다.

금빛이 내뿜는 기세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곧장 수 백 장 밖으로 날아가 다가오는 모든 모래 사람들을 부숴 눈 깜짝할 사이 석목의 눈앞에는 다시 빈 사막만이 나타났다.

한편, 조극도 석목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향하며 장극을 끊임없이 휘둘러 현란한 은색 광막을 펼치더니 자신의 몸을 물샐틈없이 감아버렸다. 그리고는 다가오는 모래 사람들을 전부 부숴버렸다.

하지만 주변에 흩어졌던 모래먼지는 땅에 닿는 순간, 다시 뭉치더니 모래 사람으로 변하여 다시 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그리고 주변에서 몰려오는 다른 모래 사람들과 함께 계속해서 두 사람을 덮쳤다.

잠시 후에 석목과 조극은 천 장 가까이 떨어지게 되었고, 끝없이 몰려오는 모래 사람들 또한 크게 두 덩이로 갈라졌다.

석목이 눈살을 찌푸렸다.

잠깐 사이에 석목은 이미 천여 구가 넘는 모래 사람들을 부셔버렸지만 주변에서 몰려오는 모래 사람들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고, 심지어 점점 살기가 넘치게 변하는 것 같았다.

이때, 석목이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자 또 다른 갈색 손이 사막에서 튀어나와 그의 발목을 덥석 잡았는데 마치 족쇄와도 같았다.

갈색 손은 힘이 막강해 석목이 발을 들고자 애를 썼지만 도무지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 압력으로는 붙잡아두기만 할 뿐, 석목에게 상처를 주지는 못했다.

석목이 손가락을 칼처럼 펴서는 아래를 향해 빛을 내뿜자 모래로 만든 손은 물러났다. 그리고 석목은 다시 곤봉을 휘둘러 모래 사람 수백 구를 부셔버렸다.

주변에서 몰려오는 모래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자 석목은 미간에 파인 주름이 더 깊어졌다.

석목이 몸을 날려 빛으로 변하더니 하늘로 날아갔다.

그리고 두 손으로 번천곤을 잡고는 뒤로 물러났다가 바닥을 내리쳤다.

쾅!

굉음과 함께 번천곤이 곧장 바닥으로 질러 들어갔다.

둥그런 빛이 번천곤에서 사면팔방으로 흐르더니 들끓은 모래의 기운을 감고는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주변 수백 장 범위 안에 모래 바람이 휘몰아치자 무수히 많은 모래 사람들이 바람에 흩날려 산산조각이 났다.

잠시 후에 모래 바람이 멈추었고 석목은 순식간에 수천, 수만 구나 되던 모래 사람들을 모두 쓸어버렸다.

하지만 석목은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심각한 표정을 드러냈다.

조금 전까지 조용했던 사막이 다시금 울리더니 이어서 언덕이 여기저기서 튀어 올라왔다.

잠깐 사이에 석목의 주변에는 다시 얼굴이 뭉개진 모래 사람들이 잔뜩 모였다.

석목에게 모래 사람들이 갖춘 실력은 아무것도 아니라서 단 한 방으로도 없앨 수 있었다. 하지만 모래 사람들은 끊임없이 모래에서 자라났다.

신경에 들어선 후로 석목은 언제든 번천곤으로 공격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번천곤은 영보였기 때문에 한 번 시전할 때마다 많은 영력을 많이 소모했다. 게다가 낯선 구역에 놓여있어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도 못한 채 힘을 다 털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하여 석목은 번천곤을 거두어들이고는 두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으나 석목은 주변에 촘촘하게 둘러싸인 모래 사람들을 둘러보며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석목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모래 사람들을 죽였는지 알지 못했는데 그는 다만 한 방향을 따라서 날아가며 적들을 물리쳤다. 그렇게 석목은 족히 천 리는 날아온 것 같았으나 주변으로는 여전히 모래 사람들이 끝없이 몰려왔다.

법력도 쓰지 않고서 주먹만 날렸을 뿐인데도 피곤할 지경이었다.

물론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게 아니라 끝없이 몰려오는 모래 사람들과 전혀 변하지 않고서 펼쳐진 사막의 막연함 때문이다.

석목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가 정말 전설로 전해지는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를 수련할 수 있는 오행마굴이 맞는 걸까?

여긴 석목이 상상하던 풍경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석목은 그리 생각을 하며 몰려오는 모래 사람 무리를 전부 부숴버렸는데 또 모래 사람들 한 무리가 몰려오고 있었다. 결국 석목은 숨을 쉴 틈조차 없이 움직였다.

퍽!

순간,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모래 사람을 물리치면서부터 몸동작이 날렵하지 못하고 점점 무거워지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몸을 과도하게 움직였기 때문이라 짐작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조금 전에 석목은 주먹으로 모래 사람들을 수백 구 날려버린 후에 몸을 살짝 비틀거렸다.

이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는데 특히 이런 저급한 모래 사람들 앞에서는 더더욱 그럴 리가 없었다.

석목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팔을 훑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팔의 색깔이 조금 이상해졌는데 어렴풋이 모래 사람들의 색깔과 비슷한 갈색을 띠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자세히 훑어보니 팔을 덮은 짙은 갈색은 전부 얇은 모래알이었다.

모래 사람들을 물리치면서 미세하여 보이지 않는 모래알들이 석목의 몸에 붙어버려 몸이 점점 무거워져 동작마저 점점 느려진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미세하게 일어난 변화인데다가 끝없이 몰려오는 모래 사람들을 물리치느라 석목은 차마 이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제야 석목은 몸이 눈에 띄게 무거워진 걸 느꼈다.

석목은 한 손으로 법결을 짚으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맑은 물줄기가 석목의 손에서 흘러나와 팔을 타고서 온몸을 뒤덮은 모래알들을 씻어버렸다.

모래알을 씻어버리자 석목은 몸이 가벼워졌다.

이때, 주변에서 모래 사람들이 다시 몰려왔다.

석목은 다시 주먹과 발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모래 사람들을 물리쳤으나 곧이어 가슴이 뻐근해지더니 입으로 붉은 피를 뿜어냈다.

하지만 피의 색깔은 붉은색이 아니라 노란색이었으며 갈색도 섞여있어 매우 괴상한 색이었다.

석목이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자세히 피를 들여다보니 핏속에 얇은 모래알들이 섞여 있었다.

모래알들은 석목의 몸에 붙었을 뿐만 아니라 숨을 쉴 때를 틈타 석목의 몸속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석목은 더는 쉽게 볼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치고는 다급하게 법결을 짚었다. 그러자 석목의 가슴에서 푸른빛이 나타났다.

푸른 가마 허상이 석목이 가슴에서 나타나더니 푸른 영력을 뿜으며 석목의 사지와 혈맥을 따라 흘러 다니기 시작했다.

푸른 영력은 석목의 몸에서 한 바퀴 흐른 후에 다시 목을 통해 입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석목은 입을 벌리며 다시 노란 피를 토해냈다. 그러자 묵직했던 가슴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석목이 몸속을 덮은 모래알들을 제거했지만 푸른 가마 허상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점점 더 밝아졌다.

석목은 멈칫했다.

황량한 사막에는 아무런 식물도 자라지 않아 나무 속성 영력이 희박하리라 생각했는데 근처엔 꽤 많은 나무 속성 영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 영력은 전부 공간 속에 흩어져있어 구전현공 나무의 힘을 시전하지 않으면 그리 쉽게 느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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