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화. 물의 본원
석목은 조금도 방심할 수 없어 파란 물빛을 크게 드리우더니 동시에 빙글빙글 돌면서 희미하게 변하였다.
그러자 촘촘한 주먹 그림자가 주변에 꽂혔다.
덮쳐오던 구렁이들은 곧장 터져버렸고, 하늘에서 쏟아지던 거대한 운석들도 전부 돌로 변해 부서졌다.
하지만 공간에서 몰려오는 공격은 조금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점점 격해졌다. 이윽고 쏟아지는 운석들이 점점 커졌고, 땅을 뚫고 나오는 구렁이들의 위력도 점점 더 강해졌다.
하지만 석목은 아주 버거워도 여전히 공간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중요한 때인 만큼 석목은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일각이나 지나 석목은 드디어 영수 구슬 속에 담긴 영력을 전부 빨아들였다. 그러자 구슬이 투명하게 변하더니 ‘쩍!’ 소리와 함께 부서져 버렸다.
석목은 다시 진기를 빠르게 숨겨버리고는 몸을 날려 하늘로 날아올라 육신의 힘으로 허공을 향해 날았다.
노란 구렁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사라져버렸다. 그러자 허공에 떠있던 노란 구름도 서서히 사라졌고,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석목은 한숨을 내뱉으며 허공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몸속에 흐르는 물의 힘을 느끼면서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비록 대성을 이루기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지만 잠깐 사이에 한 달 동안 수련을 했을 때에 버금가는 성과를 이룬 셈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에선 그 위력을 맛볼 수 없었다.
“후후, 이놈, 운이 아주 좋군. 나는 비술로 물의 본원 영맥을 찾았어.”
이때, 수령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어딘데?”
석목이 기뻐하며 물었다.
“북쪽.”
수령자가 가볍게 대답했다.
“좋아.”
석목은 큰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가다가 몸을 날려 검은 그림자로 변하더니 북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 * *
몇 시진 후.
석목은 허공에서 내려오기 전부터 바닥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었다.
“이렇게 짙은 물의 영기라니.”
석목은 얼굴에 희색을 드러냈다.
“물의 영맥은 아마 밑에 있을 거야.”
수령자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빠른 속도로 땅을 향해 내려갔다.
석목이 내려온 곳은 강이 흐르는 곳이었다. 또한 북쪽으로 가면 커다란 적갈색 산이 솟아있는데 그 중 큰 산 두 곳이 겹치는 자리에서 폭이 백 장이나 되는 거대한 강이 흘러나왔다.
이 강은 산맥이 늘어선 방향을 따라 흘러내려 굽이쳤다.
석목이 주변을 훑어보니 영력의 강이 막 산골짜기에서 흘러나올 때, 마치 말 만 필이 고삐가 풀린 양 맹렬하게 쏟아지는 것처럼 느꼈고, 호탕한 강물이 세차게 출렁이면서 절벽을 때려 하얀 물보라가 솟구치는 걸 보았다.
석목이 바깥으로 나가자 지세가 조금 완만해졌고, 영력의 강도 덜 출렁였으나 강이 흐르는 기세는 여전히 놀라웠다.
강물 위에는 짙은 남색 소용돌이가 수없이 많은 푸른빛을 내뿜으며 돌아가고 있었는데 소용돌이는 마치 파란 화염처럼 흔들거리면서 차가운 기운을 풍겼다.
그리고 또 다른 소용돌이 속에는 푸르스름한 빛깔이 흘렀고, 소용돌이 안쪽에서 가느다란 불꽃이 흔들거렸는데 그 모습을 보니 마치 도깨비불 같았다.
“이건 남묘진수와 현명진수군. 이 영하(靈河)를 이용한다면 구전현공의 여덟 번째 단계를 대성으로 끌어올리는 건 걱정이 없을 거야.”
수령자가 말했다.
석목은 크게 기뻐하더니 몸을 날려 강으로 들어갔다.
풍덩.
물방울을 튀기며 석목의 몸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석목은 두 손을 흔들며 법결을 짚어 구전현공의 여덟 번째 단계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한 갈래 파란빛이 밝아지더니 석목의 가슴에 파란 가마 무늬가 나타나 몸과 분리되어 천천히 움직였다.
영력 파동이 흘러나오자 강에 크고 작은 소용돌이들이 나타났고, 물줄기가 소용돌이 속에서 날아 나와 석목의 가슴 앞에 있는 파란 가마 속으로 모여들었다.
솨아아!
물이 그리 거세게 흐리지 않던 강은 석목의 진기와 만나자 순식간에 급물살이 되어 옆으로 흐르다가 석목의 기운에 이끌려 저절로 그를 둘러싸는 둥근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이때, ‘슥!’하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더니 노란 화살이 하늘을 가르면서 석목에게로 날아왔다.
석목은 진기를 사용하면 오행마굴에서 공격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대비를 하여 돌아선 후에 공격을 피했다.
슥, 슥.
이어서 수천, 수백 개나 되는 화살이 비처럼 촘촘하게 석목에게로 쏟아졌다.
양쪽 강변에는 몸집이 웅장한 돼지 수백 마리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들을 돼지라고 부르는 건 정확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몸에 피와 살이 없이 온통 흙모래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석목은 법결을 바꾸지 않고 계속해서 구전현공을 시전하는 상태를 유지했다.
“하.”
석목이 낮게 소리를 지르자 진기가 순식간에 밖으로 흘러나갔다. 그리고 석목은 하얀 기운 파동과 강물을 감아 사방팔방을 공격했다.
퍽, 퍽, 퍽!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날아오던 화살들이 전부 튕겨져 날아갔다.
흙이 물을 억제한다지만 석목이 날린 공격은 막강했기 때문에 흙화살을 막아내기엔 충분했다.
강변에 있던 모래 돼지들이 입을 크게 벌리자 등 뒤에서 흙으로 만들어진 가시들이 튀어나와 다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석목은 눈썹을 치켜뜨며 법결을 바꿔 파란빛을 손바닥에 뭉쳤다.
“이놈아, 소용없어. 나무 속성의 힘으로 이 모래흙으로 빚어진 돼지들을 물리친다면 더 많은 공격만 받을 거야. 넌 지금 강 속에 있으니 물의 영력이 아주 많아. 그러니 물의 힘으로 싸우면 물의 영력을 흡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공격도 받지 않게 될 테지.”
수령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곧바로 나무 속성 영력을 거두어들였다.
그 후에 강에서 파동이 일렁이더니 두 마리 수룡이 석목이 이끄는 가운데 물 위에서 날아올랐다.
물빛을 튀기며 수룡이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들을 전부 막아내고는 강변에 늘어선 모래 돼지들을 덮쳤다.
쿵!
먼지를 흩날리며 수백 마리나 되는 돼지들이 수룡에게 휩싸여 부서졌다가 이내 모래로 변하여 흩어졌다.
석목은 다시 법결을 짚었다. 그러자 석목의 가슴에 파란 가마가 나타나더니 순수한 물의 영력을 받아들였다.
강에서 눈부신 물빛이 펼쳐지더니 석목을 감싸자 그를 둘러싼 소용돌이도 빠르게 돌아갔다.
슥, 슥!
모래가 움직이는 소리가 울렸다.
석목은 한편으로 현명진수를 빨아들이며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며 강변의 모래가 날아올라 허공에서 뭉쳐 사룡(沙龍) 백여 마리를 이루었다. 그리고 사룡은 입을 크게 벌리고는 석목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석목은 빠르게 법결을 바꾸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순간, 물이 흐르는 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석목 주변을 에돌던 강물이 들끓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강에서 휘몰아치던 남묘진수 소용돌이도 함께 들끓기 시작했다.
파란 화염이 갑자기 소용돌이 속에서 튀어나왔다가 강으로 들어가자 강의 색깔이 훨씬 짙어지더니 하얀 한기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쾅!
석목의 주변에서 물결이 일렁였고, 파도가 밀려와 하늘까지 치솟았다.
백여 마리 사룡이 강변에서부터 날아왔지만 허공에 피어난 물꽃 때문에 막혀버렸다.
하얀빛이 번쩍이자 물꽃에 감돌던 한기도 훨씬 강력해져 투명하고 단단한 얼음으로 변하며 단번에 사룡들을 얼려버렸다.
칙, 칙.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얼어붙은 사룡의 이마에서 갑자기 무토신뢰(戊土神雷)가 뭉치기 시작했다.
쩍!
백여 갈래 무토신뢰가 동시에 터져버리자 노란빛이 뿜어져 나와 하얀 얼음을 노랗게 물들였다.
석목은 비록 이 번개에 닿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번개가 맴돌자 모공에 미세한 전류가 흐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쩍!
가벼운 소리와 함께 얼음에 얇은 균열이 생겼다.
이때, 석목의 앞에 떠있던 파란 가마가 파르르 떨리며 푸르스름한 빙염(氷炎)이 가마 속에서 흘러나와 하얀 얼음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푸른빛이 하얀 얼음을 덮는 순간, 조금 전에 나타났던 얇은 균열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얼음 전체에서 옅은 푸른색이 흐르며 더욱 차가워진 기운을 풍겼다.
사룡들은 더는 무토신뢰로 얼음벽을 무너트릴 수 없었다.
사룡들의 하반신은 미친 듯이 꿈틀댔고, 백여 개나 되는 커다란 꼬리들이 끊임없이 얼음을 내리쳤다.
석목은 그 틈을 타 전력을 다해 구전현공의 여덟 번째 단계를 시전하여 파란빛을 번쩍거리면서 물의 힘을 터뜨렸다.
* * *
대략 반나절이 흐르자 석목은 두 눈을 감고 완전히 물의 힘을 깨달아 흡수하는데 빠져버렸다.
석목의 파란 가마 무늬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모양이 점점 뚜렷해졌다.
얼어버린 사룡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지만 공간에서 몰아치는 공격은 끊이질 않았다.
이때, 석목의 주변에 키가 수십 장에 이르는 검은 갑옷을 입은 무사들 여덟 명이 나타났다.
검은 갑옷을 입은 무사들은 몸집이 거대했고, 생김새는 사람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무사들은 입에 검고 뾰족한 이가 드러났는데 그 생김새가 매우 흉악해 보였다.
검은 갑옷을 입은 무사들은 몸이 칠흑처럼 까맸는데 검게 반사되는 빛이 유난히 빛났다. 또한 무사들은 전부 주먹을 꽉 쥐고는 계속해서 석목 주변을 맴돌고 있는 푸른 수정벽을 내리쳤다.
무사들이 틀어쥔 주먹의 겉에 노란 빛고리가 맺혀 극도로 순수한 흙 속성 영력을 풍겼다.
펑, 펑, 펑!
아주 평범해 보이는 주먹 공격이었지만 묵직하게 내리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실은 모두 흙 속성 영력이 강화되어 있는 주먹이라 각각 만근에 달하는 힘을 머금고 있었다.
검은 갑옷을 입은 무사 여덟 명이 공격을 하자 석목 주변을 둘러싼 푸른 얼음에서 투명한 얼음 가루가 튀었다.
그러나 석목은 얼음 너머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푸른 얼음에 미세한 균열이 갈라졌다.
쩍!
미세한 균열이 드디어 깊어지더니 얼음이 깨져버릴 것만 같았다.
검은 무사가 다시 한번 주먹을 날리면 푸른 얼음벽이 부서질 터였다.
하지만 석목은 여전히 수련 상태에 빠져있어 얼음벽이 처한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이놈아, 빨리 일어나!”
수령자가 다급하게 석목을 깨웠다.
수령자가 말을 떨어뜨리는 순간, ‘펑!’ 소리와 함께 검은 갑옷을 입은 무사가 주먹을 휘둘러 막강한 흙 속성 영력을 풍기며 터뜨리듯이 옅은 얼음벽을 부숴버렸다.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얼음 부스러기들이 주변으로 흩날려 마치 거울이 부서지듯이 깨지더니 강물 속으로 떨어졌다.
검은 갑옷을 입은 무사의 주먹은 곧장 석목이 두른 수막(水膜) 소용돌이를 뚫어버리고는 묵직하게 밀려왔다.
주먹 여덟 갈래가 석목의 주변에서 일제히 날아왔고, 주변의 공기조차 끊임없이 흔들렸다.
이때, 석목의 파란 가마에서 빛이 번지며 부드러운 물빛이 가마에서 흘러나와 몸을 따라 흘러내렸다.
파란빛은 물결처럼 겹겹이 퍼져나가 검은 주먹 여덟 갈래를 모두 막아냈다. 그러자 밀려오던 주먹들이 파란빛에 닿는 순간, 순식간에 속도가 느려졌다.
석목이 눈을 번쩍 뜨고는 두 눈으로 실존하는 듯한 빛을 뿜어냈다.
이어서 석목이 아무런 진기도 뿜어내지 않자 몸 앞으로 뿜어져 나왔던 파란빛도 흩어져버렸다.
여덟 갈래 주먹은 맹렬하게 날아오다가 석목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에 멈춰버렸다.
가장 가까이 날아온 주먹은 석목의 코끝에 닿았다.
검은 갑옷을 입은 무사 여덟은 갑자기 목표를 잃어버린 듯이 어리둥절한 모습을 드러내며 강 근처에서 서성이다가 이윽고 검은 모래로 변하여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이 녀석! 반나절도 안 되는 사이에 구전현공의 여덟 번째 단계를 대성까지 수련했군,”
수령자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여기 있는 순수하고 풍성한 물의 힘 덕분이지. 아니었더라면 절대로 이렇게 순조롭게 마칠 수 없었을 거야.”
석목이 말했다.
“그런데 우린 아직 오행마굴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돼.”
수령자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본원의 영맥을 찾아야 할 것 같아. 어떤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겠지.”
석목이 대답했다.
오행 마굴에 들어오면서부터 수령자는 진심으로 석목을 돕고 있었다. 그리하여 석목은 수령자를 더욱 크게 믿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