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818화 (818/916)

818화. 같은 부류의 사람

석목은 정신을 가다듬고 칼바람을 피해 다니긴 했으나 칼바람이 끊임없이 날아와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많이 느려졌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문을 외우는 순간, 석목의 입에서 하얀 빛 덩어리인 구천현강조가 날아 나왔다.

진기를 많이 사용할수록 공간이 더욱 거세게 공격을 할 테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을 염려할 때가 아니었다.

석목이 법결을 날리자 하얀 빛 덩어리는 순식간에 불어났다가 다시 반원 모양 방패로 변하였다.

구천현강조는 둥그런 보호막으로 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방패 모양으로도 변할 수 있었다.

방패가 이제 막 모양을 갖추었을 때, 앞쪽에서 다시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칼바람 두 갈래가 번개 같은 속도로 날아와 하얀 방패를 내리쳤다.

탱, 탱!

하얀 방패는 살짝 흔들렸지만 푸른 칼바람은 부서져 버렸다.

석목은 그제야 긴장을 풀면서 깊은 숨을 내뱉었다. 구천현강조는 역시 대단해 이제 푸른 칼날들을 막을 수 있었다.

구천현강조를 꺼내자 공간이 다시 거세게 공격을 날렸지만 아직은 버틸 만했다.

석목은 속도를 더하여 빠르게 앞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얼마 날지 않아 다시 속도가 줄어들었다.

동굴 안쪽 공간이 순식간에 넓어지면서 거대한 지하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동굴 벽에 벌집 같은 작은 구멍들이 수도 없이 뚫려있었는데 기승을 부리는 바람은 바로 이 구멍들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안쪽 공간에 부는 바람은 놀라울 정도라 허공에서마저 파동이 끊이질 않았다.

푸른 칼바람이 우르르 몰려왔는데 이전보다 몇 배는 더 커졌고, 심지어 허공에 균열마저 나타났다.

칼바람 몇 갈래 정도는 가볍게 막아냈지만 열 갈래, 수십 갈래에 이르는 칼바람이 동시에 몰려오자 구천현강조가 끊임없이 흔들렸다.

동굴 속에 놓인 괴석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는데 두려운 바람과 수많은 칼바람 때문에 무너져버린 것 같았다.

기이하게 휘몰아치던 바람들이 갑자기 소리를 바꾸자 귀신이 내는 울음소리가 아닌 피리를 부는 소리 같았다.

그 소리는 매우 미세했지만 끊임없이 석목의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석목의 눈앞이 흐려져 진기가 사라지자 구천현강조도 빠르게 어두워졌다.

무수히 많은 칼바람이 석목의 방패를 내리쳐 곧 부서져 버릴 것 같았다.

“빨리 일어나!”

수령자의 목소리가 석목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는데 그 소리는 마치 천둥소리처럼 석목의 귓전을 내리쳤다.

석목이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는 다급하게 방패를 가다듬었다.

하지만 피리 소리는 워낙 강력하여 석목의 신혼은 또다시 흐려졌다.

순간, 석목의 머릿속에 부문들이 줄줄이 나타났다가 하나하나 터지자 바람 소리가 거의 사라졌다.

석목은 눈앞이 조금 뚜렷해졌다.

“고마워.”

석목이 말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빨리 앞으로 나가. 내 뇌음신주(雷音神呪)는 신혼의 힘을 쓸 수 있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야!”

수령자가 빠르게 답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앞으로 날아갔다.

여긴 바람이 시작되는 곳이라 이 자리만 벗어나면 곧 주맥이 흐르는 곳이 나타날 터였다.

석목은 마음 같아서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바람이 너무 거세게 휘몰아쳐 육신의 힘이 받쳐주지 못했더라면 이미 멀리 날아갔을 것이다.

칼바람이 구천현강조를 격하게 짓눌렀기에 석목은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동굴의 바닥은 기이하고 두꺼운 얼음이 깔려있어 토둔술로도 바닥이 뚫리지 않았다.

지하 공간은 이삼천 장 정도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짧은 거리를 석목은 대략 반시진이나 걸려서야 어렵게 통과했다.

눈앞에 늘어선 동굴이 다시 좁아졌다.

바람도 점차 줄어들었고, 바람 소리도 가벼워졌다,

석목은 깊은 숨을 내뱉으며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십 리가 넘는 거리를 날았다.

앞으로 갈수록 바람 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곧 사라질 것만 같았다.

“수령자, 고마워.”

석목이 멈칫하다가 말했다.

“됐고, 내가 부탁한 일이나 신경 좀 써줘.”

수령자가 말했다.

“걱정 마.”

석목이 대답했다.

수령자는 선천 수원 혈맥이 흐르는 육신을 원했다. 그래서 석목은 이미 대장로에게 미천 연합 사람들을 시켜 찾아보라고 분부했다. 하지만 이런 혈맥은 너무 희귀하여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석목은 이번에 마굴에서 수련을 끝마치면 다시 대장로 일행과 그 일을 논의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석목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다섯 갈래 방대한 영력 파동이 앞쪽에서부터 몰려왔다.

“드디어……”

석목의 눈에 감격의 기운이 스쳤고, 석목은 계속해서 앞으로 날아갔다.

앞쪽 길은 평탄했으며 더는 아무런 장애물이 나타나지 않아 석목은 빠르게 그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석목의 앞에 커다란 지하 공간이 나타났는데 족히 수십 리나 되는 것 같았고, 칠흑같이 검게 뻗어있어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지하 공간에는 입구가 다섯 곳 있었는데 석목은 그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날아갔다.

나머지 네 동굴에는 색이 다 다른 강물들이 폭포처럼 지하 공간으로 쏟아졌다.

아래를 바라보던 석목은 안색이 굳어버렸다.

공간 아래에는 포효하는 용이 다섯 마리나 있었는데 각각 다섯 가지 색인 적, 금, 황, 록, 남색을 띠었다. 그리고 그 용들은 방대한 다섯 갈래 영맥이었다.

다섯 영맥은 마치 살아 숨 쉬는 것 같았고, 각양각색 영력이 끊임없이 흘러나와 다섯 입구 쪽으로 퍼져갔다.

“역시 오행마굴의 주맥답군. 이미 용 모양 형태를 갖췄어. 몇 만 년만 더 지나면 용혼으로 변하여 생령으로 변할 수도 있겠군!”

수령자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은 천천히 숨을 뱉어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섯 갈래 영맥이 흘리는 방대한 위압감은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용 모양 영맥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석목은 어렴풋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순간 석목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옆에 있는 공간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사람 모양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날아오더니 이어서 빛을 번쩍이며 사람이 한 명 나타났다.

석목은 동공이 줄어들었다.

그 사람은 조극이었다!

조극이 고개를 돌려 석목을 바라보자 반듯하게 생긴 얼굴에서 음흉한 기색이 스쳤다.

석목과 조극은 아무도 다급하게 공격을 날리지 않았다. 심지어 둘은 아무런 영력도 흘려보내지 않았다.

조극은 한참 동안 석목을 훑어보다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는데 석목이 구전현공의 여덟 번째 단계 정상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하지만 조극은 곧바로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조극의 표정이 달라지는 걸 바라보던 석목은 청란성지 입문 시험 때 처음으로 조극을 봤을 때가 생각났다.

둘은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서 서로 바라만 볼 뿐, 아무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한참 동안 둘 사이에서 이상한 기운이 흘렀다.

“석목, 이 세상에 윤회의 숙명이 있다는 걸 믿는가?”

한참 후에 조극이 먼저 침묵을 깨며 차분한 얼굴로 물었다.

“숙명? 나는 숙명 따위는 믿지 않아. 자기 운명은 스스로 일군다고 믿을 뿐이지.”

석목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 궁금하지 않나? 내가 어떻게 네 대답을 알았는지?”

조극이 웃으며 또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왜 이렇게 널 싫어하는지 알아? 그 이유는 천정과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구전현공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 아냐. 그 이유는 딱 하나지. 너와 나는 너무 닮았거든. 수천청산 비경에서 처음 너를 봤을 때, 처음으로 그런 기분이 들었어. 우리는 같은 부류인 사람이라고.”

조극은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아, 그래?”

석목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게 말해주었지. 너와 나는 숙명의 적이라고. 하지만 나, 조극은 숙명 같은 걸 믿지 않아. 정말로 숙명이 있다고 해도 내가 다스릴 수 있는 운명일거야. 그러니 오늘 너는 내 손에서 죽어야만 해.”

조극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이어서 조극이 손에서 은빛을 반짝이자 은색 장극이 하나 나타났다.

조극의 몸에서는 금빛이 찬란하게 비쳤고, 그가 장극을 휘두르자 소용돌이 모양 금빛이 장극에서 뽑혀나가듯이 튀어나왔다.

석목은 예측이라도 한 듯이 몸을 날려 빠르게 피했다.

쿵!

소용돌이치는 금빛이 석목의 옆을 스쳐 지나는 순간, 갑자기 폭발해버렸다.

맹렬한 기운 파동이 다가오자 석목은 열 장 밖으로 날아갔다.

조극이 진기를 사용했기에 공간이 밀어내는 힘을 내뿜었다.

동굴 가운데 놓인 지하 공간에서 거대한 붉은 용이 들끓으며 붉은빛을 뿜어냈다.

훅!

굵직한 화염 기둥이 아래에서 튀어올라 조극에게로 몰려갔다.

쾅, 쾅, 쾅!

들끓는 화염이 동굴 벽을 타고 위로 올라가면서 굉음을 냈다.

그러자 조극이 공간 입구에서부터 화염 기둥과 함께 석목에게로 날아갔다.

석목이 법결을 짚어 번천곤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번천곤을 맹렬하게 휘둘렀다.

훅, 훅!

금색 곤봉 그림자가 번천곤에서 튀어나와 조극에게 드리웠다.

그러자 조극이 한 손으로 법결을 짚으며 주문을 외우면서 장극을 힘껏 내리쳤다.

윙!

장극에서 은빛이 뿜어져 나와 금색 곤봉 그림자로 향했고, 금색 곤봉 그림자가 찢어지며 조극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때, 석목은 이미 허공으로 날아올라 번천곤에 금빛을 감고는 엄청난 힘으로 조극의 머리를 내리쳤다.

이때, 조극이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노란빛을 감고는 동굴 아래로 내려갔다.

조극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은 순식간에 석목을 삼켜버렸다.

뜨거운 힘이 석목을 묶어버리자 화염 속에 갇힌 석목은 마치 진흙탕에 빠져버린 듯이 한참 동안 허우적댔다.

조극은 동굴로 떨어졌고, 바닥에 닿으려는 순간, 푸른빛을 몸에 감았다.

이때, 용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와 덩굴을 감싼 푸른 목룡(木龍)이 입을 크게 벌리고는 동굴 아래쪽으로 조극을 쫓았다.

그러자 조극이 허공을 짚고는 다시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조극은 한 장 정도 날아가기도 전에 갑자기 발목을 붙잡혀 몸통 째로 그대로 이끌려 갔다.

여러 갈래 푸른 덩굴이 목룡의 입에서 뿜어져 나와 조극을 꽁꽁 묶어 버리고는 빨아들였다.

조극이 장극을 휘둘러 은빛을 날렸지만 푸른 덩굴은 흔들리기만 할 뿐, 끊어지지 않았다.

잠깐 시간을 지체하는 동안 푸른 목룡이 날아와 단번에 조극을 삼켜버렸고, 이때 허공에서 갑자기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하얀 물안개가 백 장 가까이 퍼졌고, 석목이 파란빛을 반짝이며 안개 속에서 날아 나왔다.

석목이 흑백 날개를 펄럭이며 푸른 목룡에게 날아갔다.

쾅!

순간, 수십 갈래 검은 그림자가 옆에서 공격해왔다.

하지만 석목은 이리저리 몸을 날리며 검은 그림자 속을 뚫고 지나갔다.

다시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동굴 벽에서 돌 손 수십 개가 석목을 잡으려 뻗어나가고 있었다.

거대한 손들은 크기가 족히 수십 장이나 되었으며 노란빛을 감은 손들은 두께가 열 장이나 되었다.

공격이 적중하지 못하자 돌 손들은 수십 장 정도 물러났다가 다시 맹렬하게 튕기며 날아왔다.

돌 손 수십 개는 주먹을 쥐면서 노란빛을 반짝였다. 그리고 허공에서 희미한 주먹 그림자를 이뤄 빛을 펼치더니 석목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노란빛이 드리워진 순간, 석목은 몸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마치 커다란 산에 짓눌린 듯이 자신도 모르게 동굴 바닥으로 밀려났다.

쿵!

석목이 두 발로 무겁게 바닥을 내리치자 다리가 반쯤 땅속에 묻혀버렸다.

석목과 수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노란 폭포가 쏟아지더니 금빛 구슬이 튕겨져 나왔다.

머리 위로는 돌주먹 수십 개가 세상을 부숴버릴듯한 기운을 감고는 계속해서 석목을 내리쳤다.

석목은 막강한 힘에 짓눌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를 냈고, 그는 이를 부러질 듯이 꽉 깨물었다.

순간, 석목의 가슴 부위에서 금색 가마가 나타나 뿜어져 나온 빛이 석목의 팔을 타고 주먹 끝으로 뻗어나갔다. 그러자 석목의 팔이 순식간에 금색으로 물들었다.

쿵!

폭발음이 울려 퍼지자 석목이 오른쪽 주먹을 꽉 쥐고는 돌들을 향해 휘둘렀다.

거대한 금색 주먹 그림자가 석목의 주먹 끝에서 뿜어져 나가 돌 손들을 강하게 내리쳤다.

쿵, 쿵, 쿵!

굉음이 일어나자 산이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수많은 바위들이 무너지면서 돌들이 주변으로 튕겼다. 그리고 돌들 중 일부는 폭포 속으로 날아가 물빛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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