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화. 숙명의 교전
차천곤에 움푹 파인 점들에서도 빛이 반짝였고, 속에서 공간이 밀어내는 힘과 비슷한 힘들이 흘러나왔다.
“적의 칼로 적을 베야지! 이제 너도 이 물과 불이 뒤섞인 맛을 봐라.”
조극이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곤봉으로 석목을 가리키며 손으로 곤봉을 내리쳤다.
쾅!
붉고 파란색이 뒤섞인 빛이 석목에게로 날아갔다. 그리고 번개와 화염이 빛 속에서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석목을 중심으로 백 장 범위 안에 드리웠다.
석목은 불빛과 번개 속에서 끊임없이 번천곤을 휘둘렀다. 그러자 무수히 많은 금색 곤봉 그림자가 춤추며 날아 나와 동굴 속에 흐르는 수많은 영기를 휘감으며 커다란 영역 회오리를 이루었다.
이어서 번천곤이 하늘로 향했다. 그러자 영력 회오리가 단번에 부서지더니 수천 마리 짐승 모양으로 갈라져 번개와 불빛이 뒤섞인 곳으로 향했다.
쾅, 쾅!
굉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고, 적, 남, 금색 세 갈래 기이한 빛이 번쩍여 허공이 흔들리자 기운 파동이 사방으로 퍼졌다.
먼지가 흩날렸고, 화염과 번개가 기승을 부렸다. 또한 땅 위에 놓인 돌들마저 가루로 부서져 사방으로 튀었다.
펑!
석목이 먼지 속에서 튕겨져 날아가 바닥에서 몇 바퀴 구르더니 다시 일어섰다.
석목이 입고 있던 옷은 온통 타버린 자국이 남았고, 입가에는 핏줄기가 묻어있는 게 조극보다 훨씬 더 크게 다친 것 같았다.
조극이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법결을 짚었다.
조극은 이마의 살이 뒤집히더니 세로로 뜬 눈에서 은빛을 뿜어내 차천곤 속으로 불어넣었다.
그러자 차천곤은 한참 동안 흔들리더니 양 끝에 달린 짐승의 머리에서 검은빛이 일렁였다. 그리고 마기처럼 보이는 검은 안개가 짐승의 머리에서 흘러나왔다.
조극은 두 손으로 곤봉을 잡고는 돌아서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모습으로 곧장 밑을 향해 덮쳤다.
그러자 석목이 다급하게 백 장 정도 떨어진 곳으로 물러났다.
쾅!
조극이 들고 있던 차천곤이 땅을 찍었다.
땅이 격하게 흔들리며 거대한 돌들이 주변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수백 장 범위 안에 있던 모든 게 무너져버렸다.
석목은 고개를 숙여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땅에서 균열이 구부러지다가 찢어지며 서로 연결되더니 기이한 진법 무늬를 이뤄 하얀빛을 번쩍였다.
이때, 동굴 천장에서 검은 안개가 자욱하게 펼쳐져 반원 모양 광막을 이루더니 석목의 주변에 드리웠다.
검은 광막이 나타나는 순간 석목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흐름을 멈춘 듯이 멎어버려 모든 영력 흐름이 끊어졌고, 동굴 속에서 기승을 부리던 다섯 갈래 번개 기둥마저 차단되었다.
“차천곤…… 그래서 차천곤인가?”
석목은 눈에 빛을 반짝였다. 그리고 자신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때, 앞쪽에서 은빛이 반짝이더니 조극이 나타났다.
“석목, 너는 이 공간 영역 속에서 죽게 될 거야.”
조극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차천곤을 한 바퀴 돌리고는 곤봉 끝으로 석목을 겨누었다.
차천곤에서 검은빛이 반짝이며 형태가 없는 파동이 양 옆으로 퍼졌다.
석목은 마치 형태가 없는 힘에 짓눌리듯이 몸이 무거워져 곧 바닥에 붙어버릴 것만 같았다.
차천곤의 힘은 매우 기이했는데 실제로 석목의 몸을 짓누르는 힘이나 물건 따윈 없었지만 석목은 무언가가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또한 절대로 저항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쿵!
석목이 번천곤으로 땅을 짚으며 두 손으로 힘껏 곤봉을 짚으면서 몸을 지탱했다.
조극의 이마에서 힘줄이 툭툭 튀어나왔다. 그리고 조극은 또 다시 차천곤을 힘껏 짓눌렀다.
묵직한 힘 때문에 석목의 주변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그러자 석목은 자기도 모르게 두 무릎을 구부렸다.
그러자 조극이 웃음을 드러내며 주변의 영력을 모아 차천곤 속으로 흘려보냈다.
“무릎 꿇어라.”
조극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석목의 몸통은 계속해서 짓눌렸고, 이마에 힘줄이 툭툭 튀어나와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놈아, 빨리 이 구역을 벗어나야 해. 저놈이 검은 막 속에서 중력과 영력을 조종하고 있어. 그러니 이곳에서는 영력을 보충할 수도 없지. 시간이 지나면 넌 힘을 너무 많이 써서 죽게 될 거야.”
수령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빨리 해치울 수밖에 없겠군.”
석목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순간, 석목의 몸속에 흐르는 백원 혈맥이 혈관 속에서 격렬하게 부딪치기 시작했다.
석목은 몸에서 은빛이 맴돌자 몸속에 자리한 모든 관절들이 부딪치며 소리를 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근육이 빠르게 불어났고, 석목의 모공에서는 하얀 털이 자라났다.
잠깐 사이에 석목의 몸통은 마치 공기를 불어 넣은 공처럼 천 장 가까이 되는 거원으로 변하였다.
석목이 두 손으로 바닥을 내리치자 한참 동안 짓눌렸던 몸통이 꼿꼿이 서며 석목은 조극에게 주먹을 날렸다.
막강한 힘을 감싼 주먹은 끊임없이 폭발음을 냈고, 또한 격렬히 마찰하자 공기 속에서 화염이 타올라 그 불길이 조극의 몸 앞까지 뻗어갔다.
하지만 조극은 당황하는 기색을 드러내기는커녕 차천곤을 가로로 들고는 앞을 막았다. 그러자 차천곤에서 검은빛이 폭발하면서 커다란 원판 모양 소용돌이가 나타나더니 석목의 주먹을 맞이했다.
쾅!
순간, 석목이 날린 주먹 끝에서 검은 번개가 나타났고, 석목을 가두었던 검은 공간도 조금씩 찢어졌다.
조극은 몸통이 뒤로 날아가 검은 광막의 끝에 부딪치더니 멈춰버렸다.
미칠 듯이 화를 내는 울부짖음과 함께 조극이 은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조극의 몸통도 순식간이 커지면서 석목과 비슷한 크기에 도달했다.
조극이 변신한 백원은 석목이 변신한 백원과 달랐는데 조극의 이마에 세로로 자라났던 눈 주위에는 옅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차천곤에서도 검은빛을 뿜어내며 끊임없이 불어났다. 그리고 차천곤은 조극이 변신한 거원과 크기가 비슷한 곤봉 기둥으로 변하였다.
조극은 두 손으로 차천곤을 들고는 동그라미를 그리며 휘둘렀다가 곤봉으로 석목을 가리켰다. 그렇게 조극은 아주 흉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석목을 보았다.
석목은 조극의 표정을 바라보며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둘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끊임없이 충돌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또 어떤 인연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조극이 말한 대로 둘은 닮아있어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적인 것 같았다.
다시 말해 구전현공이 아니었더라도 둘은 결국 한 사람만 살아남을 운명이었을 터였다.
이 궁극의 대결은 어쩌면 절대 피할 수 없는 필연일 터였다.
그리고 오늘, 그 끝을 보아야만 했다.
석목의 몸 앞에는 얇은 번천곤이 서 있었는데 번천곤에서 금빛이 찬란하고 눈부시게 대나무처럼 토막토막 자라나 천장이나 되는 커다란 금색 기둥이 되어 커졌다.
두 기둥 끝에서 금색 꽃무늬가 맴돌자 가운데에 있는 현묘한 부문에서 찬란한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금빛은 웅장한 산처럼 묵직했고, 놀라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백원으로 변신한 후에 번천곤을 바라봤을 때, 석목은 늘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석목은 오른손을 뻗어 한 손으로 금색 곤봉을 붙잡았다.
곤봉에서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파멸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때, 조극이 변신한 백원이 차천곤을 휘두르며 석목을 내리치려했다.
그리고 조극의 이마에 세로로 자라난 눈에서 붉은 핏빛이 뿜어져 나왔다.
조극이 들고 있던 차천곤도 핏빛으로 물들었고, 조극의 주변에 기이하고도 검붉은 혈무가 흘러 다녔다.
조극을 마주한 석목의 거대한 몸통이 팽이처럼 돌아갔고, 석목이 번천곤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훅, 훅!
공기가 찢어질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촘촘하게 얽히고설킨 곤봉 그림자가 현란한 금색 잔영을 그리며 강풍을 휘감고는 검은 막을 찔렀다.
“죽어라.”
조극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거대한 몸을 날렸다. 그리고 혈무가 들끓는 차천곤으로 석목의 머리를 내리쳤다.
“멸선곤법.”
석목이 포효하는 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졌고, 동굴에서 메아리쳤다!
금색 곤봉 그림자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두 갈래 흑백 빛이 순식간에 폭발해 검은 광막 안 모든 공간을 채웠다.
쾅!
조극의 차천곤이 흑백 빛을 내리쳤다.
붉은 안개가 용솟음치더니 무수히 많은 흑백 빛을 삼켜버렸다.
흑백 빛을 많이 삼킬수록 차천곤은 점점 더 막강한 위력을 풍겼다. 그리고 조극의 눈에서 맴돌던 붉은빛도 점점 짙어졌다.
혈무가 흑백 빛을 전부 삼켜버리려던 찰나, 허공에서 갑자기 ‘챙!’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번천곤이 곤초에서 빠져나와 곤초가 머금고 있던 막강한 힘이 눈부신 금빛이 되어 사방으로 튀었다.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두 손으로 곤봉을 뒤로 휘둘렀다. 그러자 석목의 튼실한 팔 근육이 툭툭 튀어나왔고, 은백색 털이 금빛 속에서 투명하게 빛났다.
훅!
석목이 번천곤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차천곤을 내리쳤다.
쾅!
검은 광막 속에 흐르던 공기가 한참 동안 일그러지더니 혈무가 삼켰던 흑백 빛도 순식간에 폭발하였다.
굵기가 백 장에 이르는 흑백 빛기둥이 두 사람의 곤봉이 부딪친 자리에서 폭발하며 하늘로 치솟다가 터져버렸다.
동굴이 격하게 흔들렸고, 백 리 안쪽의 암석이 전부 부서지고 굴러 떨어져 바닥이 울퉁불퉁해졌다. 그리고 다섯 갈래 영맥마저 좌우로 흔들렸다.
쩍!
검은 광막의 천장이 흑백 빛에 충격을 받아 부서져 버렸다.
다섯 갈래 번개 기둥이 순식간에 쏟아지며 흑백 빛기둥 속으로 몰려들었다.
쾅!
마지막 폭발음이 드디어 울렸다.
막강한 흑백 기운이 무수히 많은 번개를 감으며 밖으로 퍼졌다.
석목의 귓전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그는 거대한 힘에 밀려 튕겨져 날아갔다. 그 사이에 석목은 몸통이 줄어들어 인족으로 돌아왔다.
석목이 곁눈질로 조극을 바라보니 조극도 끊임없이 줄어들면서 입으로 붉은 피를 뿜어냈다. 그러자 조극의 피가 용 모양 영맥이 있는 곳으로 튀었다.
동굴은 족히 반각이나 흔들리다가 다시 잠잠해졌다.
석목은 번천곤으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서서는 온통 폐허가 되어버린 대지를 훑었다. 그리고 시선을 다시 용 모양 영맥으로 던졌다.
때마침 조극도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조극의 가슴은 붉게 물들어있었고, 머리카락은 난잡하게 뒤엉킨 채 석목을 바라보았다.
쩍!
이때, 찢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조극은 얼굴이 굳더니 믿기지 않는 눈으로 차천곤을 내려다보았다.
차천곤 가운데에 얇은 균열이 갈라졌다.
조극은 안색이 퍼렇게 질리더니 이어서 온통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결국 내 보물은 네 것을 따라갈 수가 없군.”
“아니, 내게 법보가 없다고 해도 나는 너를 이겼을 거야.”
석목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오행마굴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기억해. 내가 갖지 못하는 건 너도 영원히 가질 수 없다는 걸!”
조극이 흉악한 표정을 드러내며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때문에 그동안 조극이 일관되게 유지했던 문아한 표정을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조극이 곤봉을 휘두르자 차천곤에서 빛이 번지더니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차천곤은 순식간에 공기 속으로 스며들며 사라져버렸다.
이어서 물의 영맥 근처에서 허공이 일렁이더니 차천곤이 나타나 번쩍이는 사이에 영맥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석목은 그제야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고는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뭐하는 거야?”
조극은 석목을 거들떠보지도 않고는 흉악한 얼굴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조극의 다섯 손가락 끝에서 빛이 터져 나와 한 번, 두 번, 세 번 연이어 번쩍이다가 사라져버렸다.
조극은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